소설리스트

999번째 로그라이크 헌터-17화 (17/235)

17화

<1001번째 로그라이크 헌터(3)>

다음 날.

나는 아침 해가 밝자마자 컴퓨터 앞에 앉았다.

어제가 첫 번째 게이트 붕괴일이었다. 하루씩 텀을 두고 게이트가 붕괴하는 법칙상, 오늘은 내 휴일이다.

이 금쪽같은 휴일 날. 내가 하기로 결정한 일은 바로…….

“웹 서핑을 좀 해볼까.”

인터넷 서핑이다.

좀 더 정확히는 정보 사냥에 가까웠다.

‘나에 대한… 아니. 붉은 갑옷 남자에 대한 여론을 좀 찾아봐야겠다.’

기왕 할 거면 철저하게 하는 게 낫다.

우선은 나에 대한 여론을 조사한다. 그 결과에 따라서 향후 이미지 메이킹 방향을 결정할 것이다.

“흐음.”

다각다각.

마우스를 놀려 각종 검색 엔진을 틀었고. 검색창에 일괄적으로 ‘붉은 갑옷 남자’라는 키워드를 입력했다.

“…별건 없군.”

한참 찾아본 결과. 감상은 그랬다.

어제 뉴스에서 봤던 것들의 확장판. 딱 그 수준이다.

‘궁금해 하는 놈들. 의심하는 놈들이 반반인가.’

그곳은 대책 없이 빠는 놈들과, 대책 없이 까는 놈들의 전쟁터였다.

인터넷 기사 하나를 클릭했다. 실시간으로 열심히 싸우는 댓글들을 훑어내려 봤다.

[아니ㅋㅋ 솔직히 그게 누군 줄 알고 빨아주냐. 딱 봐도 존나 수상하죠? 보이면 신고각이죠?]

[님이 뭘 안다고 그렇게 안 좋게 말하시나요? 사람들 구해줬다잖음.]

[왜 시비임. 까놓고 그 빨갱이 새끼가 게이트 붕괴랑 연관 없다는 보장 있음?]

[있다는 보장은 있냐? 억까 지리네ㅋㅋㅋ]

그렇게 서로 지리멸렬한 물어뜯기가 한동안 계속된다. 읽는 내가 지쳐서 스크롤을 쭉 내렸다.

[응 니애미~]

[앙 느금띠~]

서로 부모님 안부 걱정해 주고 훈훈하게 끝나는 모습이다. 전투 민족 한국인 아니랄까 봐. 사람이 1만 명 넘게 죽은 와중에 잘도 싸우는군.

내가 내일 민트 초코 오이무침이라도 먹으면, 인터넷 상에선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다.

“음?”

그렇게 서칭을 계속하던 도중.

나의 시선은 어떤 댓글 하나에 박혔다.

[근데 진짜 궁금하네. 관대하 이 새끼 정체가 뭘까?]

앞뒤 문맥으로 보니 나에 대한 글인 건 확실하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관대하?”

가만있어 봐라. 별명이 붙는 건 이해한다. ‘붉은 갑옷 남자’는 길기도 하고, 무엇보다 오글거리니까.

근데 왜 하필이면 ‘관대하’라는 괴상한 닉네임이 붙었냐?

‘이런 이름을 밝힌 기억은 전혀 없는데.’

그리고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별명의 원인을 알아냈다. 뉴튜브에 짧게 올라온 뉴스 영상이 문제였다. 캐스터가 전문가를 모아놓고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문제의 붉은 갑옷 남자가 생존자들에게 남겼던 말이 있다고 하죠?]

[네. 그렇습니다. ‘나는 관대하다.’ 라는 말을 했다고 하지요.]

아.

그 말을 듣는 순간 직감이 팍 왔다. 내가 이마를 싸매는 순간. 영상 속 토론은 이어졌다.

[선생님, 이거 어떻게 해석할 수 있겠습니까?]

[글쎄요. 일종의 자기과시라는 해석도 있고. 말 그대로 자기 이름이 ‘관대하’다. 이런 추측도 있는데요.]

[이름이 관대하요? 그건 좀 억측이 아닐까 싶은데요.]

[하핫.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만은…….]

그 영상 조회수가 상당히 폭발적이었다.

아래 수많은 댓글들이 달리고 있었다. 1만 개나 되는 댓글 중, 추천수가 많은 댓글만 좀 훑어봤다.

[어떻게 사람 이름이 관대하ㅋㅋㅋㅋ]

[근데 진짜 무슨 생각으로 한 말이지. 미친놈인가?]

[관대하면 어떻고 엄대하면 어떠냐. 든든하다! 엄.대.하!]

[ㄹㅇㅋㅋ. 좋은 일 하는 사람이자너. 즐기시게 냅둬~]

뭐랄까. 영웅보다는 광대가 되어있었다.

이건 좀 내 계획에서 엇나갔는데. 심히 당황스러워 뒷머리를 긁적였다.

띵동―!

그 순간, 낡은 초인종이 울렸다.

“음?”

나는 토론 영상을 멈추고 인터폰에 다가갔다. 거기에 비친 사람을 가만히 살펴봤다.

“…수아.”

강수아다. 수아가 난데없이 우리 집에 찾아왔다.

이틀 차에 수아가 찾아오다니. 지금까지 겪어본 적 없는 전개에 살짝 당황했다.

‘역시, 안 하던 짓을 하면 이렇게 되는군.’

오히려 좋다. 전개 예측이 안 된다는 건 좋은 거다. 최소한 전과는 다른 미래에 근접했다는 소리니까.

그리고 긍정적 변화든 부정적 변화든. 일단 내가 지겹지 않아서 좋은 것도 있다.

“아, 오빠. 안녕하세요!”

내가 문을 열자, 문밖에서 기다리던 수아가 퍼뜩 인사를 박았다. 그리고 대뜸 한 발짝 다가오며 말했다.

“보셨어요?!”

갑자기 순식간에 가까워진 거리. 내 쪽이 식겁해서 한 발짝 물러났다.

자연스럽게 수아는 현관 안으로 들어왔고. 나는 그녀를 이끌 듯이 거실로 먼저 향했다.

“보다니. 뭐 말이냐.”

“그 붉은 갑옷 남자에 대한 것들이요! 지금 인터넷에 완전 난리예요!”

“…아아. 안 그래도 지금 좀 찾아보고 있었다.”

컴퓨터를 가리켰다. 모니터에선 멈춰놓은 뉴스 영상이 비치고 있다.

수아는 대번 화색을 띄었다. 그녀가 흥분한 얼굴로 내 뒤를 졸졸 쫓아왔다.

“역시! 오빠도 궁금하죠?! 진짜, 진짜 멋지지 않아요?!”

그건 좀 익숙한 멘트였다. 전생에서 천안의 오크군대 퇴치 후에 벌어졌던 해프닝이 플래시백된다.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그렇구나. 이게 이쪽 전개로 이어지네.’

이렇게 보니 날짜만 좀 달라졌지. 전생에서 3번째 붕괴 이후와 별로 다를 게 없었다.

그냥 이게 ‘붉은 갑옷 남자 등장’이라는 트리거 발동에 따른, 가장 일반적인 전개였던 듯하다. 깨닫고 나니 한숨이 흘러나왔다.

‘좀, 실망스럽군.’

아직은 인류 종말까지의 흐름에 유의미한 변화가 없다는 소리다.

좀 더 흐름을 지켜봐야 하는가. 하긴, 이제 고작 회귀하고 나흘 차다. 계획의 흥망을 점치기엔 너무 시기상조긴 해.

‘여기선 일단… 수아 비위나 맞춰줄까.’

전생에선 내가 쓸데없는 팩트를 나불대서, 좋던 분위기 한껏 곱창 냈었지.

이번엔 무지성 오냐오냐 머신이 돼보자. 저쪽도 이해가 아닌 공감을 바라니까. 까짓거 나도 공감해 달라면 공감해 줄 수 있다.

“대체 뭐 하는 사람일까요? 궁금하지 않아요?”

“궁금하네.”

“수십 마리나 쏟아진 드래곤들을 한 번에! 칼질 한 번에 한 마리씩 썰어버렸대요!”

“대단한걸.”

“그쵸? 대단하죠? 소문이 어디까지 진짜일까요? 그 정도로 대단한 무력을 가진 사람은, 현존하는 오버랭커 중에서도 거의 없을 텐데? 그죠?”

“그러게.”

“…오빠. 제 얘기 제대로 듣는 거 맞아요?”

“…그, 그럼. 당연하지.”

물론 공감하는 척을 하는 거다.

애초에 진정한 의미로 타인과 공감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건 영원회귀에 속박되기 전부터 가지고 있던 가치관이다.

“…근데 오빠. 댓글 읽는 중이었어요?”

문득 수아가 모니터에 시선을 박았다.

서로의 부모님 인종이 바뀌고, 신체장애 등급이 바뀌어가는 댓글 전쟁터 최전선. 그것을 수아가 한동안 빤히 쳐다본다.

“으. 진짜 수준 떨어져.”

수아가 극혐하는 얼굴로 어깨를 떨었다. 그리고 이해가 안 된다는 양, 내 쪽으로 시선을 확 돌렸다.

“오빠. 한심한 방구석 여포들 댓글은 왜 보고 있어요?”

“인플루언서들의 고충을 실감하는 중이야.”

“…네?”

인터넷의 나는 이미 ‘관대하’가 본명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한마디였는데. 이렇게까지 일파만파 퍼질 줄이야. 그것도 내 의도와는 아무 상관없는 억측까지 덧붙었다.

그게 한정용 오피셜이라는 듯이 회자되고 있으니… 그저 기가 막힐 따름이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네, 네에. 아무튼 오빠는 가끔 이상한 소리를 한다니까요!”

푸후후, 하고 수아가 눌러 죽인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튼 마침 잘 됐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수아가 집에 놀러 온 김에, 내일 있을 붕괴 대책도 마련해 놓자.

“수아야. 혹시 당장 언니랑 연락 가능하냐.”

내일은 월미도에서 두 번째 게이트가 붕괴한다.

원래의 전개대로면 어제 강서윤이 우리 집에 찾아왔어야 정상인데. 이상하게 찾아오지 않았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팔 수 밖에.’

하지만 강서윤은 S급 오버랭커라 바쁜 몸이다.

그래서 내 연락을 자일리톨처럼 쉽게 씹어버리지만. 동생의 연락은 하늘이 두 쪽 나도 반드시 받는다.

강서윤에게 연락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수아를 꼬시는 거다.

“언니는 당분간 엄청 바쁠 거라던데요? 지금까지도 집에 얼굴도 못 비쳤어요.”

근데 수아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소리가 나왔다.

나는 고개를 갸웃, 꺾었다.

“음? 그럴 리가. 왜지?”

“그, 용산에서 엄청난 난리가 났잖아요. 피해 규모가 하도 커서… S급 헌터들 웬만한 사람들은 전부 재해복구에 투입된다 그랬어요.”

“…아.”

그렇구나. 이해했다.

피해 규모의 차이. 그걸 간과하고 있었다.

‘전생에는 피해가 비교적 경미해서 강서윤이 쉴 수 있었는데. 이번은 그렇지가 않은 거군.’

하물며 강서윤은 위상능력자다. 무너진 건물 잔해 제거. 생존자 색출과 구출에 안성맞춤이지.

어제 강서윤이 찾아오지 못한 이유도 이거였나. 이제야 좀 이해가 된다.

‘내가 아직 많이 약하던 시절엔, 자주 이랬던 것 같기도 하다.’

인프라 피해 규모가 클수록 강서윤이 오래 불려갈 확률이 높아진다.

물론 헌터 협회 소속 위상능력자가 강서윤밖에 없는 건 아니지만. 오버랭커인 위상능력자는 확실히 강서윤밖에 없으니까.

“스읍. 그러면 어쩔 수 없네.”

나는 입맛을 다시는 한편. 깔끔하게 강서윤 포섭을 포기했다. 다음 월미도 붕괴 땐 오랜만에 혼자 작업하겠군.

‘내일 월미도 생존자는 0명이다.’

나는 멀티태스킹이 취약하다. 강서윤처럼 광역 텔레포트 스킬도 없다.

한 줌 생존자까지 챙기는 건 깔끔하게 포기하자. 이 순간 확정을 내려버렸다.

“저… 오빠. 근데 언니는, 갑자기 왜요?”

뜬금없이 언니 얘기가 나와서인가. 수아가 내게 조심스레 물어왔다.

그녀의 어조엔 짙은 불안이 섞여있었다. 천 개월 가까이 봤더니 저 정도 감정표현은 금세 읽을 수 있었다.

‘근데, 왜 불안해하지?’

설마 음흉한 목적이라도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직도 이렇게 신뢰를 못 받다니 좀 섭섭하긴 한데. 어쨌든 걱정을 좀 덜어줄 필요가 있겠다.

최대한 솔직하게 용건을 밝히기로 했다.

“둘이서 월미도 좀 가려고 했거든.”

“…아?”

“네 언니랑. 거기서 중요한 볼일이 있었어.”

순간 수아의 얼굴이 바짝 일그러졌다.

왜지. 그녀의 입술 끝이 파르르 떨린다. 적잖이 충격받은 표정이다.

“주, 중요한, 볼일이라니……? 그게 뭐, 뭔데요?”

“어, 그건 좀 말해주기 곤란하고. 어쨌든 한 1박 2일쯤 데려갈 생각이었지.”

“1박……?!”

수아가 경악한 표정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두 눈을 부릅뜨고, 난데없이 새빨개진 얼굴로 나를 삿대질했다.

“오, 오빠. 어, 어, 언니랑, 버, 벌써 그런 사이였어요?!”

그런 사이가 무슨 사이를 말하는 거지.

그렇군. 같이 숙박 여행 갈 정도로 막역한 사이를 말하는 건가. 이해했다. 나는 당연히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걔랑 알고 지낸 지가 벌써 20년 가까이 된다. 이런 사이가 되는 게 이상할 건 없지.”

“그, 그거야! 20년이면 물론, 그럴 수야 있지만……!”

털썩. 수아가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니. 뭐야. X발 대체 뭔데. 왜 그러는데.

“수아야?”

“…언제부터? 대체 언제부터, 그런 사이였어요?”

“어, 언제부터냐니. 너랑 본격적으로 말 트기 전부터. 이미 우린 그런 사이였다.”

‘소꿉친구’라는 표현도 애매할 정도로 서로 거리낌이 없지. 한쪽이 알은 없지만. ‘불알친구’라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할 것 같다.

고아인 나한텐 반쯤 가족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가장 가까이서 봐온 네가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수아야.”

“그럴 수가. 그, 그런 줄도 모르고, 난……!”

수아가 고개를 푹 떨군 채 온몸을 파들파들 떨었다. 흐느끼는 듯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으, 흐으윽……!”

우냐? 운다. 아무리 봐도 우는 것 같다.

분위기가 전생보다 더 곱창 났다.

‘왜지.’

이것도 내가 빡대가리라 그런가? 전개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내가 이 시점에 대체 뭘 잘못한 거야. 전생의 수아는 최소한 울진 않았다.

‘분명 직전까진 좋은 흐름이었는데.’

문제없이 그녀의 관심사를 공감해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나 보다. 돌아버리겠다. 이번엔 또 뭐가 문제였지?

‘…그래. 그건가?’

대가리를 쥐어짜자 해답 비슷한 게 나왔다.

삐진 거다. 자기만 떼놓고 놀러 간다니까, 말하자면 소외감이 든 거군.

그래도 역시 경력직. 썩어도 준치구나. 1001번쯤 반복하니 이 정도 눈치는 생겼다.

“수아야. 다음에… 그래. 사흘 후에, 같이 어디 놀러 갈까?”

억지로 입가에 미소를 건 채 자상함을 연기했다.

이러다 면상에 쥐 나겠다 싶은 순간. 퍼뜩! 수아가 고개를 쳐들었다.

‘워 씨.’

깜짝 놀라서 살짝 물러났다. 수아는 눈물 범벅된 얼굴로 나를 표독스럽게 노려봤다.

“몰라요!! 언니랑 많이 놀러 다니시든가요!!”

타타탓, 콰앙!

단숨에 달려간 수아가 현관문을 열었고. 그대로 잽싸게 나가버렸다. 부지불식간이었다.

나는 닭 쫓던 개처럼 멍하니 현관문만 쳐다봐야 했다.

“…스읍.”

한참 후에 가까스로 입맛을 다셨다.

파지지직! 허공을 찢어발겨 아공간을 열었고. 거기서 새파란 단검을 꺼내 들었다.

블라이스의 단검. 내가 자살할 때 애용하는 바로 그놈이다.

“그냥 다시 할까……?”

결국 다시 납도하긴 했지만. 반쯤은 진담이었다.

어제부터 X발. 뭐 하나 내 맘대로 되는 게 있어야지.

진심으로 리셋이 마려워지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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