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1001번째 로그라이크 헌터(2)>
나는 전자상가 주변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그러모으기 시작했다.
현자의 눈으로 모든 생존자 위치는 진작에 파악하고 있었다. 때문에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다, 당신은……?”
생존자 대부분은 기절하거나 상처 입어 이동 불능이 된 사람들이었다.
덕분에 내가 일일이 생존자 스팟에 순간이동하며, 무너진 잔해를 치운 뒤 사람들을 업고 날랐다.
‘망할. 단체 텔레포트 마렵다.’
새삼 강서윤의 능력이 부러워진다. 나는 나 혼자만 텔레포트할 수 있을 뿐, 한 번에 다수를 이동시키는 스킬이 없으니까.
제발 이번 생엔 대규모 텔레포트 스킬을 뱉는 던전 마스터가 나와주길. 그리고 그 스킬 나한테 뱉어주길.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끄, 으으… 어, 어머니.”
구조 작업을 벌이는 와중. 과다출혈이나 탈진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다.
결과적으로 전자상가 일대의 최종 생존자는 약 150명 안팎. 현자의 눈으로 안 세어봐서 정확하진 않다.
‘음. 이제 끝인가.’
기진맥진한 생존자들을 한 곳에 그러모았다.
“여, 여긴……?”
“뭐, 뭐야. 우리… 사, 산 거야?”
생존자들은 얼떨떨하게 주위를 둘러봤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나는 처참한 몰골의 인파를 눈대중으로 훑었다.
“감사합니다.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누, 누굽니까. 당신은 대체……?”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둘로 나뉘었다. 감사. 그리고 경계. 후자는 좀 괘씸하다는 생각도 얼핏 든다. 하지만 이내 납득했다.
‘하긴. 경계할 법도 한가.’
방금 전까지 드래곤 브레스 처맞고 죽다 살아났는데. 정체를 알 수 없는 빨갱이 갑옷맨이 자기를 구해준 상황이다.
혈천갑의 디자인은 평화나 질서와는 거리가 멀다. 전체적으로 기괴하게 뒤틀린 형상에, 뾰족뾰족하고, 곳곳에 해골이 양각돼 있다.
영락없는 빌런의 유니폼이다.
‘…이놈들을 안심시킬만한 대사를 쳐볼까.’
자고로 만화나 영화의 영웅이란 시그니처 대사를 하나씩 가지고 있는 법이다.
뭔가 영웅이 칠만한 멋있는 대사를 생각해 보자. 그러는 편이 소문도 더 빨리 퍼지겠지.
‘근데, 뭐라고 하지.’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내 감성이 쩍쩍 메마르다 못해 터져버렸다는 것. 사람들에게 믿음과 안심을 줄만한 말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모르겠군.’
결국 나는 고개를 저었다.
될 대로 돼라. 그냥 당장 생각나는 대로 주워섬겨야겠다. 헛기침을 해서 목을 풀었다.
“흐흠.”
퍼뜩. 백 명이 넘는 생존자들이 순식간에 주목했다.
의문의 중심인 내가 말하려는 기미를 보이니, 이목이 저절로 집중된 것이다.
“들어라.”
나는 양팔을 넓게 벌렸다.
그리고 최대한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관대하다.”
너희를 해할 마음이 없다. 그리고 아무런 보수도 요구하지 않겠다. 그런 복합적인 의미를 함축적으로 담은 말이다.
나치고는 멘트 선정이 좋았다고 자부한다.
“…어, 예?”
“과, 관대?”
그런데 생존자 무리의 반응이 영 시원찮다.
왜지. 말이 더 이어질 줄 알고 기다리는 건가. 미안하지만 더 할 말 없다.
뒤늦게 클로징 멘트를 추가했다.
“이상 전달 끝.”
아까보다 더 오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날 응시한다. 그리고 제들끼리 술렁거렸다.
“저기. 혹시 저분 뭐라고 하셨는지, 들었어요?”
“아, 예. 그, 관대하다고…….”
“아?? 진짜 그거 맞아요? 갑자기 웬?”
“그러게요……?”
…….
…이런.
커뮤니케이션에 약간 오류가 일어난 듯하다. 역시 내 감성을 믿는 게 아니었다.
‘됐다. 설명하긴 귀찮아.’
이제 와서 구구절절 설명하면 추하다. 그게 영웅의 모습이 아니라는 건 나도 알겠다.
원래 대가리가 가벼우면, 아가리라도 무거워야 하는 법이다.
“그럼.”
푸쉬익!
나는 블러드 스트림을 이용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여기 더 있어봐야 알량한 밑천만 드러난다. 한시라도 빨리 현장에서 도주해야 한다.
“아, 아아……!”
“가, 감사했습니다! 붉은 갑옷님!!”
“정말 감사했습니다!!”
지상이 빠르게 멀어지는 가운데. 사람들의 함성 소리와 감사 인사가 귓가를 스쳤다.
“…….”
별 감흥은 없다.
언론에 내 소문이나 잘 내주길 바랄 뿐이다.
* * *
모든 작업을 마친 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어김없이 TV를 보고 있었다.
[…네. 끔찍한 용산 게이트 참사가 일어난 지, 현재 약 5시간이 경과한 상태입니다. 현장에 김대기 기자 나와 있습니다. 김대기 기자?]
[네. 현장의 김대기입니다.]
어김없이 김대기 기자가 출동해 있었다.
저 기자 양반은 1001번째 봤더니, 이젠 얼굴만 봐도 흥겹다. 내적 친밀감이 극한까지 충만해진 상태다.
[현장 상황은 어떻습니까?]
[네. 이루 말할 수 없이 끔찍합니다. 그야말로 초토화, 라는 말이 어울리는 광경인데요…….]
1001번 반복된 지긋지긋한 멘트가 오간다.
대충 필요 없는 부분은 알아서 흘려들었다. 회귀를 반복하면서 이런 잡기술은 착실히 늘었다.
“사상자 1만 3천이라.”
이번엔 내가 좀 느리게 막았다고, 피해자가 단숨에 13배 가까이 뛰었다.
서울이 좁긴 좁군. 이런 좁은 땅에서 바글바글 모여 사니까, 재해 한 번 터지면 집단 폐사를 당하지.
‘그야말로 양계장에 조류 독감 퍼진 꼴인가.’
아무렴. 조류 독감 터지면 양계장 닭들이야 다 죽는 게 맞다. 그게 순리다.
‘역시, 그게 맞나?’
그러면 닭장에 갇힌 일개 닭은… 대체 어떻게 해야. 무슨 짓을 해야 조류 독감의 확산을 막을 수 있을까.
이 순리는 역시... 나의 알량한 힘으론 거스를 수가 없는 건가?
“후우.”
속으로 대상 없는 한탄을 잠깐 했다.
결론적으로 나오는 건 한숨뿐이었다. 괜히 고민한 내가 병신이지.
“오, 오빠. 어떡해요……?”
그렇게 얼마나 뉴스를 보고 있었을까. 옆에서 두려움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집으로 대피시켜 놨던 수아였다.
“사람이. 사람들이, 엄청 죽어버렸대요. 만 명이나, 만 명이나요!!”
TV에 꽂혀있는 수아의 시선.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다. 얼굴은 공포 때문인지 하얗게 질려있었다.
‘이건… 좋지 않군.’
실수다. 판단이 잘못됐다.
너무 많은 사람이 일거에 죽어서, 수아의 멘탈이 벌써부터 위기 상태에 빠졌다.
‘수아의 멘탈 관리를 깜빡했어.’
실험에만 너무 신경 쓰고 있었다.
나를 우상화하려는 것도 전부 수아를 웃게 만들기 위한 거였는데. 그새 주객이 전도돼버린 것이다.
자조 어린 쓴웃음을 머금었다.
‘진짜, 존나게 멍청하긴.’
1천 번의 회귀를 경험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게 있다.
사람은 정말이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내가 그랬다.
그래도 1천 번이나 반복하면 좀 스마트해질 법도 한데. 1회차나 1천 회차나. 내가 생각이 짧은 병신인 건 당최 변함이 없었다.
‘왜 하필이면, 나지?’
멍청한 실수는 자괴감을 불러왔고.
자괴감은 마이너스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왜 하필이면. 내가 회귀를 하는 건데.’
마이너스 감정은 항상 근본적인 의문을 떠올리게 했다. 대체 누구냐. 누가 나한테 이런 미친 뺑이질을 반복시키는 거냐.
신? 혹은 그에 준하는 언저리인가?
‘세상에 X발 하고많은 사람 중에. 왜 하필 나냐고.’
강서윤처럼 전투의 재능이 넘치거나, 강수아처럼 똑똑한 사람이 선택받았다면.
내가 그런 놈이었으면. 이해라도 갈 텐데.
‘만약 수아가 회귀를 1천 번이나 반복했다면… 게이트 붕괴를 막을 방법을 벌써 찾아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병신이라 도저히 모르겠다.
그냥 들이박았다. 이게 안 되면 다음엔 저걸 시험해보고. 저게 안 되면 그다음엔 그걸 시험해 봤다.
그야말로 머리가 나빠서 몸을 혹사시킨 케이스다.
‘반대로 강서윤이었다면. 지금의 나 따위보다 훨씬 강해져서, 무력으로 최종 보스를 때려잡았을지도 모른다.’
회귀 때마다 전투의 숙련도, 스탯의 상승 속도가 비교가 안 된다.
포텐셜 1대 98의 싸움이다. 강서윤이 회귀를 했다면 최소 지금 나보다 98배는 강한, 반신급의 무력을 가졌을 거라고.
‘생각할수록 모르겠네. 정말로.’
신, 혹은 그에 준하는 누군가야.
머리도 나쁘고, 돈도 없고, 힘도 없고, 재능도 없는 밑바닥 인간이 나다.
왜 나냐? 대체 나한테 뭘 바라는 거냐?
“오빠. 저, 너무 무서워요…….”
수아가 어깨를 바들바들 떨며 중얼거렸다. 나는 상념에서 벗어나 슬쩍 시선을 돌려봤다.
“이, 이런 일. 또 일어나거나, 그러진 않겠죠……? 네?”
수아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제발 내가 긍정해 줬으면 하는 얼굴이다. 내가 긍정한다고 딱히 정해진 미래가 변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
안타까운 마음이 들 법도 한데. 불경스럽게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지겨운 표정이다’라는 생각이었다.
‘너무 많이 봤어. 저 표정은.’
어쨌든 뭔가 위로를 해줘야겠다.
수아가 저런 표정으로 있게 하고 싶진 않으니까.
“수아야.”
“아, 네?”
“나는 사실 예언을 좀 할 줄 안다.”
“…네에?”
“내 학창시절 별명이 사평고 용궁선녀였다. 천기를 읽을 줄 알아.”
“오, 오빠. 지금 대체 무슨……?”
나는 창의력도 병신이라 대화의 레퍼토리도 거기서 거기다. 전생에도 줄곧 써먹었던 멘트를 이번에도 우려먹었다.
“계속 뉴스 봐봐. 네가 솔깃할 만한 소식도 곧 나올 거야.”
“이, 이 난리 통에 솔깃하다니. 오빠, 저 지금 장난할 기분 아니거든요……?”
수아의 눈초리가 싸늘하게 식었다.
망할. 분위기 곱창 났군. 방금 건 레퍼토리의 사용처가 좀 잘못됐었지 싶다.
곤란한 상황에 진땀을 빼던 순간.
[김대기 기자, ‘붉은 갑옷의 남자’에 대한 정보들은 사실인가요?]
드디어 내가 고대하던 그 주제를 캐스터가 던졌다.
나는 퍼뜩 TV로 시선을 박았다. 나를 빤히 쳐다보던 수아도 덩달아 TV를 쳐다봤다.
[네. 사실로 보입니다. 참사의 생존자들에게서 모두 같은 증언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붉은 갑옷의 남자를 봤다는 증언인가요?]
[단순히 본 것을 넘어섰습니다. 붉은 갑옷의 남자가 모든 드래곤을 일거에 격살하고, 자기를 안전지대까지 대피시켜 줬다는 증언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의문의 붉은 갑옷 남자>.
화면 아래쪽으로 그런 문구가 대문짝만하게 적혀있다.
이건 좀 만족스럽군. ‘대서특필’이란 바로 저런 것을 칭하는 단어다.
‘확실히 전보다 주목도가 대폭 상승했다.’
직전 회차에서 드래곤을 때려잡았을 때는, 방송 3사 어디의 뉴스에서도 언급조차 안 됐다.
그땐 일부러 사람들의 이목을 피했으니까. 적당히 보는 눈 없어졌다 싶을 때 후다닥 드래곤들을 때려잡았다. 작정하고 어그로를 끄니 이렇게나 취급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게 광고 마케팅의 힘인가.’
속으로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자니.
삐빅. 뉴스 화면이 전환됐다. 생존자 인터뷰였다. 꼬질꼬질한 몰골의 참사 생존자들이 하나씩 화면에 비쳤다.
[정말 그 분이 아니었으면, 저도 아마 건물 잔해에 깔려서 그대로 죽었을 겁니다.]
[영웅이에요, 영웅! 저 오늘부터 그 사람 팬 할 거예요!]
[말도 안 되게, 진짜 압도적으로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헌터 협회의 비밀 병기 같은 걸까요……?]
그새 참사의 생존자들에게서 인터뷰를 따왔나 보다.
아무튼 기특한 생존자들이다. 계획대로 내 소문을 언론에 마구 퍼뜨려주고 있으니까.
[이것이, 생존자들의 증언을 모아 만든 ‘붉은 갑옷의 남자’ 몽타주인데요. 한 번 보시죠.]
화면이 다시 전환되며, 새빨간 갑옷의 그림이 화면에 떴다.
내 혈천갑의 몽타주인가. 생각보다 재현율이 괜찮군. 몽타주 화가에게 속으로 잠깐 칭찬을 보냈다.
“…와아.”
옆에서 수아가 넋이 나간 얼굴로 탄성을 흘렸다.
그래. 나한테는 지금부터가 중요하지. 나는 수아의 반응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오빠! 오빠가 말한 게 저거예요? 붉은 갑옷의 남자?!”
퍼뜩! 그녀가 내게 얼굴을 가까이 가져오며 물었다. 선망에 찬 시선이 오롯이 내게 쏟아졌다.
“어. 맞아.”
“어떻게? 어떻게 알고 있었어요? 저런 사람이 현장에 나타났다는 걸?”
“말했다시피 나는 용궁선녀…….”
“오빠.”
“…방송국 다니는 친구한테 어깨너머로 들었다.”
수아의 눈빛이 어지간히 싸늘해져서 대충 둘러댔다.
‘용궁선녀 한정용’ 컨셉을 밀고 싶었는데. 차가운 현실에 굴복해 버렸다.
“아아. 그, 그렇구나!”
어느새 수아는 울음을 그친 상태였다.
그녀가 먹먹한 얼굴로 TV를 하염없이 쳐다봤다.
“저런 사람이, 진짜 있는 거군요! 하아, 진짜 대단하다……!”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홀린 표정이다. 그녀의 까만 눈동자가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음. 반응 좋고.’
저 반응이면 반쯤은 작전 성공 아닐까. 그나마 최종적인 결과가 좋으니 다행이군.
안도의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