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1001번째 로그라이크 헌터(1)>
1001번째 회차의 첫 번째 게이트 붕괴가 일어났다.
어김없이 장소는 용산 전자상가 일대. 시간은 11월 29일, 오전 10시쯤.
―퀘아아아악!
―키이이이이!!
수십 마리 드래곤이 오늘도 일제히 하늘을 찢고 쏟아져 내렸다.
전번 회차보다 한나절 정도 늦은 시간이었다.
“괴, 괴물! 몬스터다!!”
“꺄아아악! 살려줘어어!!”
“끄아악! 아아아악!!”
어김없이 고함과 비명, 살 찢는 소리가 오가는 와중.
나는 광학 미채 스킬을 사용해 은폐장 뒤에 숨은 뒤, 진입할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원래라면… 기다리기 귀찮아서라도, 나오자마자 전부 때려 부쉈을 텐데.’
하지만 이번엔 그러면 안 된다.
나는 이번에, 히어로가 된다.
‘그러려면 우선. 사람들이 어느 정도 죽어나가 줘야지.’
내가 절망에 빠진 시민들을 구하는 그림이 되어야 한다. 영웅은, 위기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법이다.
“이번 기회에 좀 시험을 해봐야겠다.”
어느 선까지 사람들이 죽어나가야 나는 가장 빨리 우상화가 되는가.
우선은 최대치부터 어림잡아 시험한다. 그리고 천천히 수치를 하향조정해 보겠다.
“끄아아아악!”
“꺄아아악! 아파! 아파아아아!!”
비명 소리가 쉴 새 없이 귓가를 흐른다.
건물이 무너지고, 교량이 박살 난다.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는 사람들이 하나씩 드래곤의 입 안으로 사라졌다.
“끄… 으헉!”
우저적!
뜯겨나간 인간의 팔다리가 드래곤의 이빨 사이로 흘러나왔다.
“…….”
나는 침묵을 지키며 그것을 지켜봤다.
이렇다 할 감정은 들지 않는다. 나는 이제 내 죽음에도 아무 감흥이 없는 사람이다. 하물며 남의 죽음 따위. 내가 알 게 뭐냐.
‘수아만 안 죽으면 돼.’
기억과 감정은 소모품이다.
영원한 건 없고, 시간에 마찰되어 계속 닳다 보면 사라지기도 한다. 그러니까 내가 수아를 구하려는 이유도 잊어버린 거 아니겠나.
나도 모르는 새 뭔가가 내 안에서 사라진 거다.
뭔가, 아주 소중한 무언가가.
“마, 막아! B급 이상들! 빨리 전열로 튀어 나가란 말이야!!”
전자상가 옥상 쪽에서 쩌렁쩌렁한 고함이 들려왔다.
꽤 구색이 번지르르한 헌터 부대다. 현자의 눈으로 대충 살펴보니, 대부분이 B급 이상의 한가락 하는 헌터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저건…….”
헌터 부대의 견장과 복식이 눈에 익다.
게이트 재해 대책반이다. 정부 소속 상비군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새 15분이 지났나?’
1000번 반복한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놈들이 현장에 출동하는 건 게이트 붕괴 후 대략 15분 전후다.
최근 회차엔 내가 드래곤들을 늦어도 5분 안에는 쳐 죽이니까, 얘네들이 등장할 일이 없었다. 오랜만에 봤더니 좀 반가울 정도다.
“쫄지 마, X발! 시민들 다 죽일 거냐?!”
“월급 받은 값을 하라고! 개새끼들아!!”
소대장급 리더들이 연신 목청을 높여 부대원을 독려했다. 하지만 부대원들은 두려움에 떨며 뒷걸음질을 칠 뿐. 아무도 드래곤에게 맞서려 하지 않는다.
“그, 으윽……!”
“씨, X발… X발!”
누구의 얼굴에도 전의를 찾아볼 수 없었다. 이길 수 없는 압도적인 존재를 눈앞에 둔 공포. 그것만이 만면에 가득했다.
‘뭐, 저럴 수밖에.’
내가 1차 붕괴의 드래곤들을 스킬 시험대, 3분 요리 취급을 해서 좀 저평가된 감이 있는데.
드래곤은 원래가 위험도 S급의 초고위험군 몬스터다. 한 마리 상대하는 데만 A급 헌터 부대를 최소 8개 스쿼드 때려 박는 게 FM이지.
급하게 고기 방패로 출동한 B급 헌터들에겐, 저 반응이 당연한 거다.
“이 X발!! 내 명령이 우습냐?! 개새끼들아!!”
헌터 부대의 지휘관이 분노에 차 일갈한다.
투다다다! 놈이 들고 있던 미래형 소총이 불꽃을 마구 뿜는다. 총알이 향한 곳은 드래곤들이 아니었다.
푸바바박!
가장 앞에서 머뭇거리던 B급 헌터 한 명의 머리통이 벌집이 되었다.
“끄, 어헉……!”
본보기로 사형당한 말단 헌터가 털썩, 바닥에 엎어졌다. 놈은 낚아 올린 물고기처럼 온몸을 펄떡대다가, 이내 숨이 끊어졌다.
“…….”
“…….”
술렁이던 부대원들이 순식간에 침묵에 잠겼다.
투다다다다!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지휘관이 하늘로 총알을 쏴 갈겼다.
“X발 돌격!! 시민들이 대피할 때까지, 이 악물고 버티란 말이야!! 이 개새끼들아!!”
지휘관은 그렇게 명령하더니. 이내 본보기를 보였다. 타탓! 지휘관이 부대원들을 앞질러 드래곤 무리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한다.
“주, 중대장님!”
“아오, X팔 진짜… 모르겠다 X발!!”
나머지 부대원들도 하나둘씩 결연한 표정을 짓는다.
크게 두 부류였다. 죽음을 각오한 눈. 그리고 될 대로 되라는 자포자기의 눈.
“으아아아아아!!”
“씨이이파아아알!!”
하나둘씩 돌격하더니. 이내 군중심리에 따라 모든 부대원이 함성과 함께 돌진하기 시작했다.
고양이를 물기 위해 달려드는 광기의 들쥐 떼. 내 눈엔 딱 그 짝이었다.
―그르르르……!
이내 가장 높은 곳에 고고하게 떠있던 드래곤이 시선을 디룩, 내렸다. 시커먼 몸통에 검붉은 문양이 인상적인 드래곤.
‘이름이 칼라마이트…였던가.’
전생에서 몇 번이나 봤던 놈의 이름을 떠올렸다.
스르륵. 칼라마이트의 시뻘건 눈동자가 정확히 헌터 부대 쪽으로 겨누어졌다.
―크오오오오오!!
격렬한 노성이 놈의 아가리에서 쏟아졌다.
콰콰콰쾅! 그것만으로도 거대한 풍압이 사방을 휩쓸었다.
“크우욱!”
콰장창!
수많은 건물의 유리들이 일거에 박살 난다. 전자상가 주변의 작은 건물들은 그대로 폭발하듯이 무너져 내렸다.
“크아아악!”
“꺄아아아악!”
풍압에 직격당한 몇몇 B급 헌터들은 종잇장처럼 허공을 날았다.
퍼걱! 우지직! 옥상에서 추락한 헌터들 중 몇이, 그대로 시뻘건 빈대떡이 되었다.
비행 관련 스킬이 없거나. 신체 강화 스킬이 없는 서포터거나. 둘 중 하나겠지.
―퀘에에에에엑!!
물론 전자상가 옥상의 살아남은 헌터 부대원. 그들도 안심할 처지는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그들의 시련은 지금부터다.
―쿠르르르……!
드래곤 칼라마이트가 숨을 크게 들이쉰다.
놈의 가슴 쪽이 한없이 크게 팽창한다. 무지성 돌진하던 지휘관이 발을 우뚝 멈췄다.
“저, 저거.”
칼라마이트가 하려는 짓을 눈치챈 것이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X발! 도망! 도, 도망쳐! 브레스다! 브레……!”
푸화아악!
압도적인 칠흑의 화염 세례가 순식간에 전자상가 건물 전체를 집어삼켰다. 지휘관의 마지막 명령은, 그렇게 불꽃에 삼켜졌다.
“그아아아악!!”
“끄아, 아아아아악!!”
“뜨, 뜨거, 뜨거워어어어!!”
이글거리는 흑염 속. 끔찍한 비명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그러나 채 30초가 지나지 않아 거짓말같이 침묵이 강림했다.
화염에 휩싸인 모든 헌터들이, 뼈까지 새카맣게 타서 죽어버렸으니까.
―크아아아아아아!!
단 한 방.
칼라마이트의 브레스 한 방으로 수백의 B급 헌터들은 물론이고. 전자상가 내부에 갇혀있던 민간인들도 죄다 타 죽었다.
‘현자의 눈.’
정확한 피해 현황을 알아보기 위해 현자의 눈을 발동시켰다. 삐빅. 곧 패널이 눈앞에 떠올랐다.
[해당 위치 내 생명 반응: 0개체]
[최근 1분 내에 사멸한 생명 반응: 1513개체]
그 브레스로 최소 천 단위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정확히는 1513명이라고 한다.
―크오오오오!!
문득 칼라마이트가 하늘을 보며 의기양양하게 포효했다. 사람들을 소각하는 맛에 들린 건가. 놈은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크에에에에에!!
푸화아악!
사방을 향해 흑염의 브레스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콰콰쾅! 건물이 불타오르고, 도로의 아스팔트가 지글지글 녹아내린다.
검은 연기와 불꽃으로 시야가 온통 새카맣다. 공기조차 시커멓게 이글대는 지옥도가 펼쳐졌다.
“꺄아아아악!!”
“끄아아아악!!”
사람들은 불길에 휩싸여 생에 마지막 화려한 춤사위를 벌이고 있었다.
주변에서 빠르게 생명이 전소되어 간다.
“음. 이쯤인가?”
전자상가 일대가 완전히 초토화가 되었다.
눈에 힘을 줬다. 그리고 현자의 눈을 발동시켜, 원하는 주변 정보를 읽어 들였다.
[반경 500M 내 생명 반응: 271개체]
딱 좋군.
내 소문 내줄 정도만 소수 정예로 남았다.
“축하한다. 271명.”
너희들 운이 좋구나. 내 덕에 최소 하루는 더 살게 됐으니.
앞으로 이어질 절망적인 전개를 생각하면, 살아있는 게 운이 좋은 건지는 모르겠다만.
‘하트 기어. 발동.’
푸직!
나는 하트 기어의 뾰족한 부분을, 그대로 내 심장에 쑤셔 박았다. 불쾌한 이물감이 가슴팍에 가득 찬다.
‘소비 생명력 최대. 혈천갑 발동.’
전생에 많이 해봐서 하트 기어를 발동시키는 건 익숙했다.
[생명력의 50%를 갑주로 환원합니다.]
촤르르륵! 능숙하게 온몸에 시뻘건 피의 갑주를 둘렀다. 그리고 오른 손등의 사복검을 채찍 형태로 늘어뜨렸다.
“후딱후딱 가자. 얘들아.”
중얼거리는 것과 동시에 광학 미채 위장을 풀었다.
쉬쉭! 내 신형이 완전히 드러나기도 전에, 나는 이미 칼라마이트의 등 위로 올라타 있었다.
“재미 볼 만큼 봤잖아. 이 정도면.”
우선 제일 재미 많이 본 칼라마이트.
사형 집행은 너부터다.
“죽어.”
우지직, 뿌드드득!
나는 놈의 등가죽을 사복검으로 난자하기 시작했다.
―크레레레레렉?!
칼라마이트가 당황과 고통이 섞인 괴성을 내뱉었다. 놈이 저항하려는 듯이 온몸을 격렬하게 뒤틀기 시작했다. 물론 내가 그걸 가만히 보고 있을 리가 없다.
“어딜.”
쉬리릭!
채찍처럼 유려하게 늘어난 사복검이, 칼라마이트의 모가지를 단단히 휘감았다.
―크… 케게겍!
우지지직!
약간씩 힘을 더 준다. 칼날 파편이 놈의 목을 점점 더 깊게 파고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뿌드득!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목이 잘려버린다.
“흠.”
나는 칼라마이트의 몸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쿵, 쿠우웅! 육중한 땅울림이 두 번 일었다. 칼라마이트의 목과 몸통이 따로 나뒹구는 소리였다.
“이제 하나.”
철컹!
사복검을 그러모아 장검의 형태로 합쳤다. 나는 권태롭게 흘겨 뜬 눈을 나머지 드래곤들에게 향했다.
“두 번째로 뒤질 놈. 신청 받는다.”
일일이 찾아가기 귀찮아서 신청제를 시행해 봤다.
다행히 용가리 친구들의 참여도가 굉장했다.
―키에에에엑!
―크라라라라락!!
쇄애액!
사방팔방에서 드래곤들이 내게 일제히 날아왔다.
하나같이 입 안엔 이글거리는 브레스를 담았고. 눈동자는 적대감과 위기감으로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피식.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다음에 보자. 얘들아.”
푸화아악!
검을 휘두를 때마다 드래곤의 선혈이 사방으로 튀었다. 살점과 비늘 조각이 무자비하게 날아다녔다.
―크에에에에엑!!
―키이이이익!!
새빨간 살점의 우박이 전자상가 일대에 내렸다.
칼라마이트의 검은 불꽃이, 쏟아지는 피의 빗줄기에 진화(鎭火)되어 간다.
* * *
[제99던전의 던전 마스터, ‘멸망을 부르는 용’이 세계와 단절되었습니다.]
모든 드래곤을 때려잡는 데는 딱 3분 안팎이 걸렸다.
여기서 더 숙련될 순 없을 줄 알았는데. 그새 혈천갑에 익숙해졌더니 더 시간이 단축된다.
이래서 회사의 인사과들이 대가리 깨져도 경력직을 찾는가 싶다.
[던전 마스터 ‘멸망을 부르는 용’ 사냥 보상을 획득합니다.]
어쨌든 중요한 건 보상이다.
‘멸망을 부르는 용’은 던전 마스터가 여러 마리다. 각각의 개체가 개별적으로 보상을 뱉기 때문에, 쓸 만한 물건이 뜰 확률이 높은 편이다.
이번 전투의 전리품은 대충 이렇다.
[스킬 획득: 드래곤 피어]
포효를 내뿜어 광역 공포 상태 이상을 거는 스킬.
처음 얻는 스킬도 아니었고. 애초에 나는 ‘수라흉인’이라는 완벽한 상위호환 스킬이 있다.
그래서 쓰레기 당첨.
[아이템 획득: 드래곤 스킨 (B급)]
[아이템 획득: 스카사하의 눈 (A급)]
[아이템 획득: 용아검 (C급)]
‘드래곤 스킨’은 피부를 드래곤처럼 단단하게 해주는 소모성 물약. ‘스카사하의 눈’은 일시적으로 천리안 능력을 갖게 해주는 물약.
마지막 ‘용아검’은, 문자 그대로 용의 이빨을 연상시키는 하얗고 투박한 대검이었다.
‘무기는 버린다 치고.’
용아검은 C급의 그저 그런 무기. 혈천갑에 옵션으로 딸려있는 사복검에도 스펙이 한참 못 미친다.
그러니 쓰레기 당첨.
‘물약들은 차라리 다행이다.’
다만 소모성 물약들은 그 효과가 일시적이긴 해도, 성능은 확실하다.
또한 꼭 내가 마셔야 한다는 보장도 없지. 드래곤 스킨 같은 경우엔, 급할 때 수아에게 마시게 해서 위기 모면도 노려볼 수 있다.
“뭐… 그래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군.”
전리품의 총평은 그 정도. 최소한 유효템이 하나라도 나왔으니 만족이다.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