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1000번째 로그라이크 헌터(11)>
나는 폐허의 한가운데 서있었다.
“후우.”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고.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쏟아지는 주먹을 대충 털어냈다. 그러자니 문득, 뒤에서 얼빠진 신음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으… 아, 으으……!”
“뭐, 뭐야. 사, 사, 살았… 어?”
슬쩍 뒤를 돌아봤다.
내가 살려낸 D급 헌터 부대의 잔당들이 있다. 그들이 자리에 주저앉은 채, 얼떨떨한 얼굴로 사방을 둘러보는 중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한편.
“아. 다, 당신은……!”
이내 하나둘씩 나를 포착해 냈다.
한 명이 탄성을 지르자 곧장 모두의 이목이 내게 쏠렸다.
“부, 붉은 가, 갑옷.”
“뉴스에서 나오던… 그 사람?!”
“서, 설마. 진짜 있었단 말이야?”
놈들이 흥분한 얼굴로 한마디씩 웅성거린다. 눈가에 일말의 희망이 스치기 시작했다.
“아니. 자, 잠깐.”
하지만 기뻐하는 것도 잠시뿐이다. 그들은 주변 상황을 뒤늦게 눈에 담고 아연실색 했다.
“이게. 이, 이게 뭐야. X발……!”
“마, 말도… 안 돼.”
하나같이 경악 어린 탄성을 주워 담는다.
나도 그제야 주위를 슬쩍 둘러봤다.
“…….”
일대가 그야말로 초토화되었다.
수십 대의 거신병을 중심으로 발사된 광자포. 그것들이 휩쓸고 간 자리엔 인간도, 건물도,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뭐, 뭐야. 뭐냐고. 이게!!”
거대한 운석이라도 한 발 떨어진 듯하다.
죽음만이 가득한 거대한 공허와 폐허. 그들을 중심으로 까마득한 방사형 황무지가 드리워져 있다.
어디로 고개를 돌려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귀를 기울여 봐도. 반경 수 킬로 내에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당연하다. 시야 내의 모든 생물이 사멸해 버렸으니까.
“꿈? 꿈인가……?”
마치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의 한 장면. 그 정도로 비현실적인 광경이 눈앞에 현실로 펼쳐져 있다.
철퍼덕. 문득 질척한 소리가 울렸다.
“…응?”
하늘에서 무언가가 D급 헌터들 사이로 떨어져 내린 것이다.
“이, 이건…….”
누군가 그것을 주워 들었다. 그리고 멍하니 쳐다봤다.
그의 두 눈이 서서히 부풀어 올랐다.
‘이런.’
나도 물체의 정체를 파악하고 눈살을 바짝 찌푸렸다.
곧 물체를 주워 들었던 D급 헌터가 자지러지는 비명을 내질렀다.
“히이이익!!”
그는 기겁하며 손에 있던 물체를 집어던졌다.
쿠덩텅. 그것이 헌터들 사이로 나뒹굴었다. 그제야 다른 이들도 그것의 정체를 깨닫는다.
“…어?”
인간의 머리통.
좀 더 정확히는, S급 헌터 오윤나의 뜯겨나간 머리였다.
“으, 으아아아악!!”
“X발! 뭐야! 으아아아!!”
파바박!
헌터들이 기겁하며 오윤나의 머리에서 멀어졌다.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는 이. 오줌을 줄줄 지리는 놈들도 부지기수였다.
“주, 주, 죽을, 죽을 거야.”
문득 살아남은 D급 헌터 중 누군가가 말했다.
패배감과 공허감이 지독하게 찌든 목소리였다.
“다… 죽을 거야. 끝났어. 살아남아도. 지금처럼, 또 금방 게이트가 터져서… 결국은. X발!! 다 뒤져버릴 거라고……!”
흠칫. 모두가 어깨를 떨었다.
그리고 아무도 반박의 말을 꺼내지 못했다. 다만 딱 한 명. 나만은 옅은 탄성을 내질렀다.
‘촉이 좋은데?’
너는 헌터는 몰라도 점쟁이에 재능이 있는 거 같다. 지금부터라도 좌판 깔고 점집이나 운영하도록.
얼마 안 남은 살날 동안 한철 장사나 땡겨라.
‘그냥 자포자기 심정으로 저주를 퍼부은 거겠지만…….’
실제로 얘네들은 한 달 이내에 모두 죽는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니 남들 조롱하고 있을 처지도 못 된다.
“고맙다는 인사는 됐으니까. 내 소문이나 멀리멀리 퍼트려 줘라.”
스슥. 공포로 패닉에 빠진 D급 헌터들에게 손을 뻗었다. 조용히 마법을 영창한다.
‘수면 안개.’
스스스스.
손아귀에서 스멀스멀 연분홍빛 안개가 뻗어나간다.
[스킬 발동: 수면안개]
수아에게 항상 사용하는 마법인 ‘슬립’과는 다르다. 그건 단일 타깃 마법이고, 이건 광역마법이다.
‘그리고 이건, 후폭풍이 좀 있지.’
잠에 빠졌다가 깨면, 숙취 마냥 뒷골이 오지게 땡긴다.
내가 당해봐서 안다. 대상자인 D급 헌터들에겐 심심한 유감을 표하는 바다.
“어… 그윽……?”
“왜, 왜… 갑자기, 졸음이…….”
털썩, 털퍼덕.
순식간에 모든 헌터들의 눈빛이 몽롱해졌고. 30초도 안 돼서 전원이 꿈나라로 직행했다.
아무렴. 나보다 지능 스탯이 높은 이가 전 세계에 아무도 없는데. 내 스킬에 저항할 수 있는 인원이, 고작 D급 따리들 중에 있을 리가.
“위상변이.”
어쨌든 재웠으면 다음은 피난 조치다.
쉬쉬쉭! 놈들의 발밑에 거대한 마법진이 생겼고, 새하얀 섬광에 휩싸인 그들은 순식간에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일단 대피는 끝났고.”
나는 강서윤처럼 광역 텔레포트 마법은 못 쓴다.
방금 사용한 건 위상변이 스킬. 아공간을 만들어서, 거기에 잠깐 동안 사람이나 물건을 가두는 마법이다.
한 30분 후면 지속 시간이 다 돼서 다시 이곳에 소환될 거다.
‘어쨌든. 일대에 살아있는 인간은 없다.’
즉 더 이상 거리낄 것도 없다. 내게 남은 건. 헌터 본업에 충실해지는 것뿐이다.
“가볼까.”
푸화악!
곧장 블러드 스트림을 발동해 하늘로 솟구쳤다.
단숨에 신형이 거신병들의 눈높이까지 치솟았다. 사위를 둘러본 나는 낮은 신음을 흘렸다.
“이거야 뭐, 많이도 죽었겠군.”
멀찍이 지평선 부근까지 멀쩡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핵폭탄에 직격당한 듯한 폐허만이 가득한 가운데. 산 하나가 둘로 쪼개져 열기를 이글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여의도 상공에서 보이면. 저게 무슨 산이더라? 서울 지리를 잘 몰라서 그런 생각을 잠깐 했다.
‘스킬 발동.’
머리로는 그런 쓸데없는 생각이나 하는 한편. 내 몸은 마치 기계처럼, 이미 거신병들을 쳐 죽일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인벤토리 오픈.”
파지지직!
허공에 푸른 스파크가 튀며 공간이 일렁거린다. 나는 흉터처럼 찢어진 공간 너머로 손을 불쑥 집어넣었다.
‘그래. 그게 좋겠군.’
꺼낼 물건을 강렬하게 떠올린 뒤, 손에 집힌 것을 그대로 빼냈다. 스르릉! 검신 길이만도 내 키보다 거대한 특대검이 들려 나왔다.
―구우우우……!
거신병들은 다음으로 파괴할 대상을 찾아, 이미 모든 기체가 뭍으로 올라온 지 오래였다.
그런 그들의 눈앞에는 내가 버티고 있었다.
“안녕. 얘들아.”
초토화된 폐허에서, 아직 유일하게 살아있는 내가.
당연히 그들의 눈에 일제히 들어간 것이다.
―오오오오!!
―그르르르르!!
놈들이 포효와 함께 손을 들어 올렸다. 거대한 그림자가 내 위로 드리운다.
쇄애액! 놈들이 말아쥔 주먹을 그대로 내려친다.
―구오오오오오!!
콰콰쾅!
바닥을 일제히 내리치는 거대한 주먹 수십 개.
운석이 추락한 듯 거대한 충격파가 일어났고. 사방으로 흙먼지가 비산했다.
“어딜 보시는 겁니까.”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이미 거신병 한 놈의 머리통에 대검을 쑤셔 박은 뒤였다.
“저는 이쪽입니다만.”
그래. 뭐, 거신병들. 행동 빠르지.
저 덩치 치곤 비정상적으로 빠르다. 그 갭에 당황해서 전멸하는 S급 부대들도 많이 봤다.
“암만 니들이 그래봐야. 민첩 22따리지.”
내가 한마디 하는 것과 동시에, 퍼퍼퍼펑!
선봉에 서있던 여덟 마리 거신병들이 일제히 머리가 폭발했다.
―그욱?!
―그오옥……?!
방금 찌른 놈은 어디까지나 마지막에 후려친 놈이다. 이전에 이미 8마리를 먼저 공격했다.
그것이 뒤늦게 일제히 폭발한 거다.
“후우.”
쉬리릭! 특대검을 허공에 빙 돌려 어깨에 짊어졌다. 그리고 칼날의 상태를 확인했다.
낮게 혀를 찼다.
“쯧.”
그사이 이가 죄다 나가고 칼날이 찌그러졌다.
힘 조절 없이 잠깐 무식하게 썼더니, 그걸 못 버티고 망가져 버린 것이다.
‘뭐, 희귀급 무기가 다 이렇지.’
그래. 거신병을 일격에 썰어버리는 참격을 9번이나 견뎠다. 오히려 그 점에서 내구성을 칭찬해 줄 만하다.
나는 망가진 특대검을 대충 주위로 던져버렸다.
“어차피 스페어는 많아.”
지금 혈천갑의 사복검은 쓰지 못한다.
혈천갑 자체가 ‘하트 기어’라는 아이템에서 파생된 아이템 스킬의 일부. 때문에 사복검을 사용했다간, 혈천갑이 놈들에게 카피될 우려가 있었다.
‘그러면 그건 좀 많이 곤란하지.’
굉장히 희박한 일말의 가능성이긴 하지만. 999번이나 똑같은 한 달을 반복하면. ‘가능성’이라는 말의 무서움을 실감하게 된다.
웬만한 가능성의 말로들을 직접 겪어봤으니까.
“정보가 없으니까. 안전빵으로 간다.”
어차피 이루어질 운명은 전부 이루어진 이후다. 주변에 살아있는 사람도 없으니, 거리낄 것도 없다.
놈들을 전부 쳐 죽이는 일만 남았다.
“대가리 딱 대라. 깡통들아.”
아공간에서 투박한 특대검 하나를 더 꺼내든 뒤. 조용히 뇌까렸다.
콰콰콰쾅! 다시 한 번 격렬한 폭발음이 터졌다.
―그오오오오오!!
거신병들의 대가리가 터져나가는 소리였다.
거신병의 비명 소리가 여의도를 가득 메웠다. 천지가 신음하며 공기가 찌르르 울린다.
―그오오오오……!
“아가리.”
퍼거걱!
그렇게 마지막 거신병의 미간에 대검을 쑤셔 넣은 직후.
[제85던전의 던전 마스터, ‘코스모의 거신병’이 세계와 단절되었습니다.]
던전 폐쇄 패널이 등장했고. 전투는 종료되었다.
그리고 보상은… 이번에도 별 쓰잘데기없는 쓰레기 당첨. [거신의 갑각]이라는 B급의 갑옷이 나왔다.
“에휴.”
나오자마자 아공간에 처박아 버렸다.
처음 보는 템이긴 한데. 혈천갑보다 당연히 성능이 아득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후우우. 스읍.”
놈들을 전멸시키기까지. 정확히 5분 걸렸다.
신기록이었다. 혈천갑의 블러드 스트림.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데다 우월한 기동성까지. 이 스킬이 시간 단축에 톡톡히 한몫을 했다.
‘다음 기회엔 S급 헌터가 출동하기도 전에, 던전 마스터를 죽여버리는 쪽으로 시험해 볼까?’
어찌나 여유가 생겼는지. 그런 생각까지 해볼 정도다.
한 줌의 생존자들 구하는 걸 넘어서. 여의도 몰살의 비극 자체를 틀어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발칙한 생각. 나치고는 굉장히 사치스러운 발상이었다.
“…흐.”
이내 벌써부터 ‘다음 기회’부터 떠올리는 나 자신이 한심해졌다. 그래서 마음을 억지로 다잡았고. 생각하길 그만뒀다.
“피곤하다.”
폐허를 걷는다.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 * *
그런데 얄궂게도, 나는 금세 다음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 아니. 맞이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번에도 이 상태군.’
던전 게이트 폐쇄를 끝내고 집에 돌아왔을 때. 첫 감상은 그거였다.
우리 집 빌라는 여의도에서 애매하게 떨어져 있다. 덕분에 광자포의 직격타는 받지 않았지만. 광자포 폭발의 후폭풍으로 인해 사실상 폐건물의 꼴이 되어 있었다.
“306호! 아직 사람이 갇혀있어!!”
“투입! 투입해 X발! 의료반 대기시켜! 빨리!!”
“으아아앙! 흐윽, 엄마아… 눈 좀 떠봐!!”
사방으로 뛰어다니는 소방관의 고함 소리. 민간인의 절규와 울음소리가 정신없이 사운드를 채운다.
그러든 말든. 나는 태연하게 건물 계단을 타고 우리 집으로 올라갔다.
‘항상 이런 식이었지.’
우리 집에는 배리어가 둘러쳐져 있다. 아파트 전체는 아니다. 딱 우리 집 내부에만 쳤다.
그러지 않으면 너무 눈에 띈다. 주변이 온통 쑥대밭이 됐는데 아파트 한 채만 지나치게 멀쩡해 봐라. 너무 수상하지 않은가.
쓸데없이 이목을 끄는 건, 공산당 갑빠맨 놀이로 충분하다.
“수아야. 다녀왔…….”
그렇게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순간.
나는 온몸을 굳혔다.
“…응?”
집이 허전하다.
분명히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강수아를 배리어가 둘러쳐진 우리 집에 피신시켰는데. 정작 그녀가 집에 없는 것이다.
“아…이런.”
그제야 깨달았다.
실수다. 한 가지 실수를 범했었다. 붕괴 현장에 출동하기 전에, 수아를 재우는 걸 깜빡 잊었다.
“아. X발…….”
온몸의 피가 순식간에 싸늘하게 식는다.
그녀가 얼마나 개복치인지, 말귀를 못 알아들어 처먹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는데.
“이런, X발……!”
급하게 나가느라 정신이 없었다곤 하지만. 이런 치명적인 실수를 하다니.
진짜 나는 구제 불능의 병신인가? 어떻게 999번을 반복했으면서. 이런 초보적이고 기본적인 실수를 저지를 수가 있지?
‘아니. 아니야. 지금, 이럴 때가 아니야……!’
자책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당장 강수아를 찾아야 한다.
콰앙! 곧장 현관문을 열고 복도를 박찼다. 일단 가장 가능성이 높은 옆집을 향해 부리나케 달렸다.
“후우……!”
콰자작!
옆집 현관문을 발로 차서 박살 내버렸다.
종잇장처럼 우그러지는 현관문 너머. 망설임 없이 진입했다.
“…….”
그리고 한동안 침묵했다.
그곳에는, 예상대로 강수아가 있었다.
“…….”
방바닥이 온통 새빨갛다.
강수아의 온몸에 유리 조각이 박혀있었고. 무너진 천장 잔해에 하반신이 깔려, 피를 왕창 쏟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그녀를 불렀다.
“수아야.”
물론 나도 안다.
보나 마나 죽었다. 평범한 인간인 그녀가 견딜 수 없는 출혈량이다. 나도 어떻게든 부정하고 싶지만. 시체는 현직 장의사들보다 익숙한 편이다.
수아의 창백한 안색을 보니, 몰라보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강서윤.”
놀랍게도 거기엔 수아의 언니인 강서윤도 있었다.
망연자실하게 무릎 꿇은 채. 자기 동생의 시신을 내려다보는 중이다. 그녀의 굽은 등을 한동안 빤히 주시했다.
“네가 여기 왜 있냐.”
퍼뜩, 강서윤의 시선에 생기가 돌았다.
눈동자에 천천히 증오가 차오르더니. 그 증오가 오롯이 나를 향해 쏟아진다.
“…너. 한정용. 너……!”
쑥대밭이 된 강서윤 자매의 집.
우리는 수아의 시체를 사이에 두고, 비참한 대치를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