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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9번째 로그라이크 헌터-11화 (11/235)

11화

<1000번째 로그라이크 헌터(10)>

콰아아앙!

거대한 팔뚝이 헌터 부대를 후려쳤다. 우리들이 미처 반응할 새도 없었다. 수많은 헌터들이 입 한번 뻥긋하지 못한 채, 그대로 납작한 피떡이 되어 버렸다.

―오오오오오!!

그리고 다시 한번 지척에서 울리는 포효.

거신병은 내리쳤던 팔을 마구 휘저었다. 지면을 휩쓸 듯이 양팔이 무자비하게 진형을 무너뜨렸다.

“으, 으아……!”

비명이 삼켜졌다.

우지끈, 콰지직! 거대한 나무가 수수깡처럼 부서지고 주변 지형이 마구 춤을 춘다.

콰과과광! 건물들이 장난감처럼 무너져 내렸다.

“끄, 아악!”

“아아아악!!”

헌터들은 그 정신 나간 조화에 저항할 생각조차 못했다. 그저 불도저처럼 사방을 밀어버리는 거인의 팔뚝에 온몸이 으깨져 죽어나갈 뿐이다.

“씨, X발……!”

“미쳤어! 저, 저딴 걸 어떻게 막냐고! X바아알!!”

우리 D급 헌터들의 임무. S급 오버랭커들이 출격하기까지 시간을 버는 것.

이 오합지졸들은 그것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은 혼비백산 뿔뿔이 흩어져서, 지리멸렬하게 도망치는 중이다.

“흐음.”

나는 그사이 하트 기어를 발동시켜 혈천갑을 꺼냈다. 그리고 잽싸게 하늘로 날아올라, 거신병의 공격을 피한 상태였다.

“…….”

피바다가 되어 버린 D급 부대의 참상을 잠깐 내려다봤다.

쯧, 낮게 혀를 찼다.

‘이번 회차는 전체적으로 좀 재수가 없군.’

던전이 붕괴하는 장소가 항상 몬스터 입장에서 유리하다. 이번 붕괴만 해도 그렇다.

‘이번은 차라리, 도심의 마천루 한복판에 소환됐으면 좋았다.’

그러면 오버랭커들을 불러오는 시간도 최소한으로 줄어든다. 게다가 건물들이 이동에 방해돼서, 거인들의 동선에 제약도 많이 생겼을 것이다.

“하필이면 이번 붕괴 때 저놈들이 걸리다니.”

안타까운 마음에 탄식을 연신 흘렸다.

이런 개활지는 거인류 몬스터들이 설치기 최적의 조건이다. 대 거인전은 초동 진압이 중요한데.

‘그 초동 진압이 실패했다.’

거인들의 움직임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속이 붙는다.

이놈들은 곧 살아있는 인간을 찾아, 민가와 아파트를 무자비하게 부수고 다닐 것이다. 그렇게 설계된 마법 골렘들이니까.

‘좀, 예정보다 빨리 움직여야겠군.’

어느 정도의 피해는 솔직히 방관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그랬다간 피해가 상상 이상으로 커질 우려가 있다. 그냥 내가 초장에 제압해 버려야겠다.

그렇게 결심하고 거신병의 이목을 집중시키려는 찰나.

“하하하! 이번엔 또 뭐야. 존나 크잖아!!”

문득 머리 위에서 유쾌한 고함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행동을 우뚝 멈췄다.

“하고 많은 랭커 중에, 나를 먼저 부른 이유가 있었구만! 갑옷 부수기는 전문이지!!”

푸쉬이익!!

내 위로 쏜살같이 날아가는 굵직한 광선 한 발.

빛의 속도로 허공을 찢어발긴 광선은, 가장 앞서 진군하던 거신병의 대가리에 적중했다.

―그… 오오오오오!!

콰콰쾅!

벽력같은 굉음이 쏟아졌다.

거신병이 육중한 신음 소리를 흘렸고. 그 거체를 심하게 휘청거렸다.

“아?”

대형 아파트만 한 거신병이 휘청거린다.

그것은 주변에 숨죽이고 있던 D급 헌터들과 민간인들에겐, 이미 재앙 그 자체였다.

“도, 도망쳐! X발!!”

“으아아아악!!”

쿠구구궁!

박살 난 골렘의 잔해가 사방으로 쏟아진다.

그것에 깔려 죽는 사람도 부지기수였고, 거신병이 휘청이며 생긴 한강의 파도에 휩쓸려 죽는 사람들도 많았다.

“아.”

나는 낮은 탄성과 함께 뒤쪽을 올려다봤다. 익숙한 인상착의의 남녀가 하늘 높이 둥둥 떠 있었다.

“하핫! 첫타는 적중했다! 남은 놈들도 하나씩 격추시키자고!!”

“…큰 소리로 소리치지 좀 마세요. 내가 다 부끄럽네.”

열혈 청년 느낌이 물씬 흐르는 시커먼 가죽 재킷 차림의 남자. 그리고 그 옆에 정장을 빼입은 이지적인 인상의 여자.

나는 그들의 정체를 알고 있다.

‘S급 헌터 박철민. 오윤나잖아.’

서열 7위. 그리고 23위의 S급 랭커 헌터. 남자, 박철민 쪽은 무려 강서윤보다도 서열이 높은 오버랭커다.

나는 반사적으로 중얼거렸다.

“이번은… 저 두 사람이냐.”

제4차 게이트 붕괴에서 가장 처음 출격하는 S급 헌터 부대. 이게 또 회차마다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등장하기 전까진 누가 호출됐을지 나도 정확히 모른다.

아무튼 두 사람의 등장으로, 주변 분위기가 극적으로 변했다.

“오, 오오… 랭커! 랭커부대! 화, 화이트 팽이다!!”

“살았다, 이제 우린 살았어!!”

화이트 팽. 박철민과 오윤나. 두 사람으로만 이루어진 부대.

보통 S급 부대가 극히 소수 정예로 운용된다고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2인 부대 체제는 이쪽이 유일하다. 나는 기억 속의 두 사람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 내봤다.

‘박철민의 스킬 구성은, 그야말로 공격 일변도.’

손에서 광자포를 발사하는 방금 그거. 딱 하나만 사용할 줄 안다.

저 광자포 스킬의 파괴력. 속도. 그거 하나만 보고 모든 능력치와 아이템을 때려 박은 케이스다.

말하자면 인간 시즈탱크. 극한의 컨셉충.

‘저거 하나로 오버랭커를 찍다니. 어떤 면에선 대단한 놈이지.’

당연히 능력치 몰빵 케이스는 단점도 많다.

신체 성능도 지나치게 편중되었고, 기동력도 딸린다. 던전 탐색에서 가장 중요한 정보 습득 능력도 현저히 떨어진다.

‘그걸 보완해 주는 게 오윤나고.’

오윤나는 박철민과 완전히 반대 케이스다.

전투 능력이 심각하게 없고. 보조 능력과 정보 습득 스킬들만 잔뜩 있다. 근데 그 보조능력이 너무 대단해서, S급 헌터가 된 케이스다.

모두에게 인정받는 S급 서포터 느낌이지.

“하하핫! 바로 다음 사격 간다!!”

유쾌한 목소리가 재차 귀청을 쩌렁쩌렁 울린다.

박철민의 고함 소리다. 그는 어느새 양손을 전방에 뻗고, 그 앞으로 어마어마한 섬광의 에너지를 차징하고 있었다.

“에―네―르―기―!!”

“아, 그것 좀 하지 마세요. 좀. 쪽팔린다고요 진짜.”

박철민이 장난스럽게 외치자, 곧장 오윤나가 핀잔을 준다. 대화의 티키타카가 꽤 자연스럽다. 두 사람의 결속력이 간접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다.

“…씁.”

나는 곧장 청각 증폭 스킬의 출력을 좀 줄였다.

아무튼 만날 때마다 느끼는 건데. 박철민 저 새끼, 진짜 목소리 존나 크다.

“후우. 못 살아 진짜. 좌표 따고, 정확한 각도 계산해줄게요.”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닌 듯하다.

옆에서 허공의 홀로그램을 매만지던 오윤나도, 한쪽 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있었다.

“다음에 노릴 놈은, 제일 오른쪽에 있는 개체입니다. 그놈이 육지와 가장 가까워요.”

“확인!! 약점 위치는?!”

“똑같아요. 후두부의 핵. 한 번에 파괴하려면, 아까처럼 관통력을 극한까지 높여야 할 것 같네요.”

“수신 양호!!”

파지지직!

양손에 에너지를 모으던 박철민이, 천천히 우측으로 몸을 회전한다.

―그르르르……?

이글거리는 광자탄. 가장 오른쪽의 거신병. 두 개체가 바라보는 궤도가 허공의 일점에서 교차한다.

박철민이 사나운 웃음을 머금었다.

“발사!!”

콰아아앙!!

압도적인 굉음과 섬광이 폭발했다.

발사된 광자 포탄은 사선(射線)을 따라 직선으로 뻗어나갔다. 궤도 끝에는 당연히 거신병의 머리통이 있었다.

“…….”

나는 그 광경을 무표정하게 지켜봤다.

어떤 표정도 뜨지 않는다. 지금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기 때문이다. 굳이 드는 감정을 표현하자면.

“저것도 이제, 하도 봤더니 지겨워 죽겠네.”

참기 힘들 정도의 지겨움. 그 정도겠다.

무려 999번이다. 999번 이 지랄을 반복할 동안. 제4차 붕괴에서 화이트 팽이 호출된 게 몇 번일 것 같은가?

‘모르겠다. 이젠 세기도 귀찮아.’

하도 많아서 세다가 지쳤을 정도다.

다만 코스모의 거신병과 화이트 팽. 이 조합은 지금까지 겪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에 대한 궁금증은 살짝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 그 이상의 흥미는 동하지 않는다.

‘어차피 결말은 정해져 있으니까.’

4차 붕괴 때 어떤 랭커가 불려오는가.

그건 나도 모른다. 애초에 딱히 알고 싶지도 않다.

왜냐하면 중간 과정이 어떻게 되든, 결말은 항상 똑같았기 때문이다.

―그… 오오오오오!!

그리고 지금. 몇 번이나 반복해 왔던 예정된 결말이, 눈앞에서 실현되려 하고 있었다.

그 시작은 타깃이 되었던 거신병의 거대한 포효였다.

―구우우우우!!

문득 거신병이 걸음을 우뚝 멈췄고. 양팔을 지면에 고정시켰다.

지금까지의 울음소리가 분노와 증오에 찬 괴성 같았다면. 지금 내뱉은 포효는 느낌이 살짝 달랐다.

―그구구구구구!!

사냥 직전의 맹수가 내뱉는 그로울링.

그런 느낌이다.

‘오호?’

저 거신병을 중심으로 뭔가 일어나겠군. 그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리고 내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오오오오오오!!

쩌어억.

촉수로 둘러싸였던 거신병의 안면부가 가로로 쩍 갈라진다. 그대로 한계를 모르고, 한껏 크게 벌어졌다. 마치 거대한 야수의 아가리 같다.

―구오오오오!!

그리고 한계까지 벌어진 거신병의 입 안으로, 광자포가 그대로 빨려 들어갔다.

지켜보던 두 S급 헌터가 눈을 부릅떴다.

“읏……?!”

“무, 무슨!”

쿠과과과!

엄청난 섬광의 폭발. 격류와 흙먼지가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그리고 자욱했던 폭연이 가라앉은 뒤.

―…그우우우…….

광자포를 직격 받은 거신병은 여전히 두 다리로 서있었다. 거신병의 기분 나뿐 촉수 안에서는, 투지와 살의에 불타는 보라색 안광이 일렁거린다.

“미, 미친. X발?!”

박철민은 이상 사태에 아연실색했다.

어찌나 당황했는지 욕설을 터뜨리는데. 나도 저 정돈 아니지만, 꽤 놀라고 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중얼거렸다.

“…삼켰다.”

방금 일격은 거신병에게 치명상을 주지 못했다.

왜? 거신병이 그의 광자포를 삼켜버려서. 충격을 흡수해버린 것이다.

‘저놈한테, 저런 기능이… 있었나?’

그제야 필사적으로 전생의 기억들을 뒤져본다.

999개나 되니 이거, 뒤질 게 너무 많은 것도 문제다. 한참을 상념에 잠겨야 했다. 그리고 뒤늦게 생각났다.

“아아.”

있었다. 지금과 비슷한 경험이 하나 있긴 했다.

그렇군. 방금 거신병이 한 행위. 저건 정확히는 충격 흡수가 아니라…….

“스킬 카피.”

아마 3백 몇 번째 전생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코스모의 거신병들이 랭커들의 특정한 스킬 공격을 받았을 때. 충격을 대부분 흡수하고, 그 스킬을 그대로 복사해서 역으로 랭커들을 학살했던 적이 있었다.

‘딱 한 번. 999번 중에서, 딱 한 번 봤는데.’

아마 거신병들도, 스킬을 카피하는 데 어떤 제약이 있는 것이리라. 카피할 수 있는 스킬 분류가 따로 있다든가. 뭐 그런 것들 말이다.

‘그리고 하필이면…….’

박철민의 광자포는 당첨.

거신병들이 카피할 수 있는 스킬인 듯하다.

“그랬군.”

나는 뒤늦은 깨달음에 헛웃음을 흘렸다. 자조 어린 미소가 입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확정성 미래의 실현. 이래서 가능한 거였나.’

이 앞에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도사리고 있다.

제2차 붕괴 때 월미도가 반드시 궤멸하는 것처럼. 내 알량한 힘으론 넘을 수 없는 신이 세운 벽.

‘최초로 호출된 랭커 부대의 전멸.’

그리고 그 후에는 여의도 초토화. 국회의사당 붕괴. 최소 수만 명의 죽음.

이번에 예정된 운명은 바로 그것이다.

‘호출된 S급 헌터 부대가 전멸하기 전까진… 내가 나서봐야 아무 의미 없었지.’

내가 아무리 개지랄해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그렇다고 S급 헌터 부대 쪽을 못 싸우게 막아서면, 얘네들이 오해해서 나랑 적대적으로 변하니 문제. 우리끼리 싸우느라 피해가 더 막심해진다.

‘진퇴양난이었지. 항상.’

내가 지금까지 강 건너 불구경을 했던 이유. 그것도 바로 이것이었다. 수백 번의 실패와 고배로 완성된 학습된 무기력.

‘솔직히 뭐, S급 헌터들은 뒤지든 말든 아무래도 좋은데.’

수만 명의 죽음. 이번 회차에선 이게 어떻게 실현될지가 가장 궁금했다.

호출된 S급 헌터들이 뒤지고 나면. 그때부턴 나도 본격적으로 거신병들을 때려죽일 예정이었으니까.

‘나는 5분 안에 모든 거신병을 쳐부술 수 있는데.’

절륜한 성능의 하트 기어 덕분에 그것이 가능해졌다. 그러니까 5분. S급 헌터 부대 사망 이후, 놈들에게 허락된 시간은 고작 5분이다.

최소한 민간인 사상자를 수만이 아니라, 수천 단위까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이 정도의 소박한(?) 희망을 품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끝났네.”

게임 셋.

나는 체념의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 이어질 전개가 머릿속에 그려졌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고오오오오오!!

스킬을 흡수한 문제의 거신병이 포효를 쏟아냈다.

치지지직! 놈의 벌어진 아가리에서 새파란 빛줄기가 쏟아졌고. 그것이 빠르게 다른 거신병들의 투구로 스며든다.

―그… 우우우…….

거신병들이 일제히 몸을 움찔거린다.

사방에서 괴기스러운 울음소리가 공명하길 잠시.

―그걱… 거거거걱……!

쩌저적.

수십 개의 거대한 아가리가 일제히 벌어진다. 그리고 그곳에 새하얀 입자 에너지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고고고고…….!

―기기기기긱……!

광자포.

박철민의 그것보다도 훨씬 거대하고, 막대한 에너지체가 자그마치 수십 개. 모든 거신병이 동시다발적으로 광자포의 발사를 준비하고 있다.

스킬 흡수. 그리고 스킬 공유.

이것이 코스모의 거신병이 가진, 특별한 고유 스킬.

‘나는 저거 언제 써보냐.’

개인적으로 참 탐나는 스킬인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놈들이 이 스킬을 떨군 적이 없다. 레어도가 굉장히 높은 스킬이지 싶다.

최소 A급 중에서도 최상급이지 않을까?

“…이럴, 수가.”

사태를 지켜보던 박철민이 망연자실하게 중얼거렸다. 그도 드디어 사태가 파악된 모양이다.

“처, 철민, 씨. 이거, 이, 이건……! 도, 도망! 당장 도망쳐야……!!”

옆에서 오윤나는 안색을 파리하게 물들인 채 더듬거릴 뿐이다. 특유의 도도했던 얼굴엔, 어느새 공포가 한가득했다.

―그극.

그리고 걷잡을 수 없이 팽창하던 입자탄이, 우뚝. 어느 순간 성장을 멈춘다. 찰나의 적막. 압도적인 폭풍전야가 찾아왔다.

―그오오오오오오!!

침묵이 거신병들의 포효로 깨지는 순간.

콰콰콰콰쾅!! 전장 50미터짜리 거대한 포탑에서, 일제히 수십 발의 광자포가 쏟아져 나왔다.

―오오오오오오오!!

세상이, 시야가, 온통 새하얗게 물들어 간다. 운명이 실현되었음을 직감했다.

‘이건 아무리 나라도 못 막지.’

무차별적인 전방위 일제 포격. 나 혼자서 막는 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아무리 강하면 뭐 하냐. 내 몸뚱이가 결국 하나밖에 없는데.

‘일단…….’

수십 줄기로 쏟아지는 광자포 중. 나는 D급 헌터 부대 쪽으로 쏟아지는 놈을 우선적으로 포착했다.

‘지킬 수 있는 것들이나 지키자.’

포격 궤도를 빠르게 계산한다. 블러드 스트림을 사용해 허공을 가르고, 예상 궤도 한복판에 끼어들었다.

“최소한. 내 눈에 보이는 거라도.”

오른손을 어깨 뒤로 한껏 장전했다.

숨을 깊게 들이쉰다.

“스으으.”

키이이잉!

날카로운 금속음. 불끈 쥔 주먹 주위로 시뻘건 혈류가 맹렬히 회전한다. 나는 타이밍을 극한까지 재다가, 그대로 주먹을 내질렀다.

“스파이럴 블러드.”

광자포가 주먹과 정면으로 맞닿는다.

거대한 폭음이 세상을 집어삼켰다.

―콰콰콰콰쾅!

마포대교를 중심으로 한 여의도 일대. 서울의 노른자 땅 한복판에, 거대한 흉터가 수십 줄기나 새겨졌다.

그 흉터는 수많은 인간의 목숨을 일거에 앗아갔다.

뉴스가 말하길. 대략 32,988명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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