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1000번째 로그라이크 헌터(9)>
돌발적인 상황에 돌발적인 강수아의 발언.
“오빠. 붉은 갑옷의 남자, 아시죠?”
내 심장이 철렁 내려앉기엔 충분했다. 순간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뭐야. 뭐지. 어떻게 반응해야 하지.’
무슨 뜻으로 한 말인가. 이미 정체를 들킨 건가.
그럴 리가. 어떻게, 어디서 알아챘지. 그리고 나는 무슨 반응을 해야 하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래. 알긴 하지.”
그래서 반응이 꽤 늦었다. 가까스로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그건 왜?”
내가 조심스럽게 물어보자, 가만히 나를 노려보던 강수아는…….
“와! 역시 아시는구나!”
대번 화색을 띄며 내게 그런 말을 해왔다.
뭐랄까. 꿈꾸는 소녀 같은 면상이었다.
“뉴스 보셨죠?! 진짜, 지이인짜 멋지지 않아요?!”
…다행이군. 그럼 그렇지. 깜짝 놀랐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뭐, 좋은 일 하는 거 같더만.”
“그냥 좋은 일 정도가 아니죠! 세상을 구하는 거잖아요! 영웅이라고요, 영웅!”
“글쎄. 영웅까지야…….”
별안간 하늘을 찌르는 강수아의 텐션을 따라가기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하릴없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얘가 왜 이럴까.’
원래 이 시기쯤의 강수아는 한없이 우울한 행색을 해야 정상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현실에, 서서히 절망해 가는 게 지금까지의 그녀였다.
이런 밝은 모습이 싫냐 하면, 당연히 아니다.
다만 낯설고 이질적인 건 사실이다.
“지금 전 세계가 난리도 아닌데, 꽤 들떠 보인다?”
나는 그 점이 의아해진 나머지 고심 끝에 물어봤다. 그러자 강수아도 퍼뜩 입가에 떠있던 웃음을 지웠다.
“그, 그건. 그렇지만요.”
이내 볼을 조금 부풀리며 나를 올려다봤다.
쓸데없이 태클을 건 내가 원망스럽다는 행색이다.
“꽁해 있어봤자 좋은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잖아요. 이럴 때일수록 사소한 좋은 일에도 감사하고 기뻐해야죠! 안 그래요?”
“그야 그렇지. 알아도 그게 힘들어서 그런 거지.”
“아님 뭐예요? 내가 풀 죽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럴 리가. 보기 좋아서 한 말이었다.”
이건 가감 없는 사실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수아가 기뻐하는 표정을, 슬픈 표정보다 가치 책정을 훨씬 높게 한다.
‘슬픈 표정은 너무 흔하니까.’
999번 반복하면서 역겨울 정도로 봤다.
그러니 훨씬 희귀한 기쁜 표정 쪽이, 나도 훨씬 좋다.
“…언니가 그랬어요.”
문득 강수아가 바닥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그 붉은 갑옷 남자가 아니었으면… 자기가 월미도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을 살리지도 못했을 거라고요. 자기조차도 죽었을지도 모른댔어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강수아가 슬픔을 참을 때 하는 습관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새 그녀의 웃는 얼굴에 살짝 그늘이 져있었다.
“좀 후유증은 있었지만, 언니도 무사했고. 오빠도 그 끔찍한 곳에서 무사히 돌아왔잖아요.”
“…그래. 그랬지.”
“이것도 다 그 붉은 갑옷 남자가 있어서 그런 거라 생각하니. 그 사람한테 너무 감사해요.”
어느새 강수아는 울먹거리고 있었다. 말하다 보니 안도감과 기쁨 때문에 제풀에 북받친 모양이다.
“저한테 있어서는, 구세주 같은 사람이란 말이에요. 흑, 흐흑……!”
내가 월미도에 갔던 것을 강서윤 본인에게 전해 들은 듯한데. 강서윤이 어떤 식으로 MSG를 쳐서 둘러댔을지 모르니, 반응하기도 좀 애매하다.
그래서 그냥 화제를 돌려버리기로 했다.
“그 붉은 갑옷의 남자가 진짜 구세주라고 생각하냐?”
무의식중에 조금 차가운 말투가 흘러나왔다. 그것을 느꼈는지, 훌쩍이던 강수아도 어깨를 흠칫 떨었다.
“네. 그, 그럼요?”
수아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랑 언니랑, 그 외에도 수천, 수만 명의 목숨을 구한 영웅이잖아요.”
“글쎄. 내 생각엔, 그렇게 마냥 좋은 사람은 아닌 거 같은데.”
단호한 확신이었다.
당연하지. 내가 그 새끼고. 좋은 사람이 아니니까.
그런 내 모습이 황당했는지, 강수아가 눈을 좀 크게 떴다.
“네? 아니. 무, 무슨 근거로요?”
“아무 근거도 없어. 그냥 감으로.”
“그런 게 어딨어요! 감으로 남을 후려치면 돼요?”
“너도 그냥 감으로 좋은 놈일 거라 단정하는 거잖아. 나도 똑같다.”
“…….”
강수아가 입을 다문다. 할 말이 궁색해진 듯하다.
나를 흘겨보던 그녀가 뾰로통하게 중얼거렸다.
“그렇게 일일이 따지고 들면… 여자한테 인기 없어요. 오빠.”
“그래. 실제로 없었다. 지금도 없고.”
“후. 말이나 못 하면.”
“강서윤은 어때. 그 공산당 갑빠맨이 좋은 사람일 거 같다던?”
“고, 공산당 갑빠맨이 뭐예요!!”
기상천외한 별칭에 강수아가 버럭 화를 냈다.
별명 좀 장난쳤다고 저 정도로 화내다니.
‘그새 나의 진성 빠순이 다 됐네.’
내가 혀를 내두르는 찰나. 강수아는 잠깐 머뭇거리다 마지못해 대답했다.
“어, 언니는… 잘 모르겠대요.”
“잘 모르겠다. 그게 다냐?”
“일단, 정체를 숨기고 있으니 수상하대요. 좋은 느낌은 안 드니까 관심 갖지 말라던데요.”
“그래. 딱 그 말이 맞아.”
“아니. 하지만……!”
“너도 수상쩍은 공산당 혁명전사 새끼보단 네 언니를 믿어라. S급 오버랭커의 감을 무시하지 마.”
“…으.”
강수아는 좀 원망스러운 듯이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끝내 볼을 빠방하게 불린 채, 내게서 팩 고개를 돌렸다.
“오빠는… 말이 좀 통할 줄 알았는데.”
그리고 콰당. 현관문을 매몰차게 닫아버렸다. 나는 닫힌 문을 뻘쭘하게 쳐다봤다. 이내 황당한 나머지 중얼거렸다.
“아니. 진짜 붉은 갑옷 얘기만 하러 온 거였냐?”
그 정도로 붉은 갑옷 남자의 존재가 기뻤던 건가? 당장 누구에게라도 자랑하고. 자기 들뜬 기분을 공유하고 싶어질 만큼?
그랬는데 언니는 공감해 주지 않았다. 그래서 급한 대로 나를 찾아온 거고?
‘이 정도로 붉은 갑옷 남자가… 이 애한테 영향을 준다?’
내가 느끼기엔 실로 천지가 개벽했다 싶을 정도의 변화다. 아까부터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이 정도면 세계 멸망과 관련이 있든 없든 상관없다. 만약 다음 생이 온다면…….
‘이제부턴 무조건. 혈천갑 뒤집어쓰고 영웅 행세를 해야겠다.’
그렇게 다짐할 정도였다.
역시나. 전생에서 하트 기어를 계승한 내 선택은, 존나게 옳은 선택이 분명했다.
* * *
다음 날.
어김없이 제4차 게이트 붕괴가 일어났다.
여의도 근방. 마포대교 부근이다. 한강이 어느 순간 부글부글 끓나 싶더니, 수면이 점점 불룩하게 솟아나기 시작한다.
“뭐, 뭐야?”
“물 밑에 뭐가 있나 봐!”
“어, 엄청 큰데? 또, 또 몬스터야?!”
마포대교 주변에 지나다니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그곳으로 고정되었다. 연이은 재난에 사람들은 트라우마처럼 공포가 각인돼 있었다. 이미 비명을 지르며, 119 헌터 호출을 하는 중이다.
그리고 구르르르!
한강 전체가 요동치는 소리가 한 번 울렸다.
―그오오오……!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그 낮은 울림에 몸을 굳혔다.
푸화악! 솟아올랐던 수면을 뚫고 곧 시커먼 신형이 등장했다. 그것은 웅크렸던 몸을 일으키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커져갔다.
―오오오오오오!!
태산처럼 거대한 거인. 인간의 형체를 하고, 온몸은 단단한 갑주로 둘러싸였으며. 얼굴 전체가 촉수 같은 것에 뒤덮인 기괴한 거인이었다.
―그오오오오오!!
스스스스.
거인의 포효에 따라 자욱한 물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자욱한 안개 속. 아득하게 높은 곳에서 보라색 안광이 형형하게 빛을 뿜었다.
거인. 물안개. 그리고 보라색 안광.
그쯤에서 놈의 정체를 대충 파악했다.
‘85던전이군.’
붕괴한 던전의 정체를 추측했다.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곧바로 현자의 눈을 발동했다.
[몬스터 정보]
[명칭: 코스모의 거신병]
[체력: 124 마력: 27]
[힘: 78 민첩: 22 지능: 8]
[상세: 제85던전 ‘거신(巨身)제국’의 던전 마스터 중 하나. 천재 마도 공학자 코스모에게 제작된 인조 생명체. 코스모의 유지에 따라, 모든 생명체를 멸하기 위해 움직인다.]
‘거신제국’이라는 던전명답게, 제85던전은 거인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눈앞의 던전 마스터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야말로 살아 움직이는 자연재해. 그것이 코스모의 거신병이었다.
“아… 아, 아아아!”
몬스터의 등장. 게이트가 또 한 번 붕괴했다.
지켜보던 군중들의 불길한 예감이 현실로 드러났다.
“꺄아아악!!”
그것을 깨달은 시민들은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앞다투어 한강 변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모, 몬스터다!!”
마포대교 위의 자동차들이 역주행도 아랑곳 않고 마구잡이로 이동한다.
끼이익, 쾅! 삐삐삐삑! 서로 부딪치며 요란한 소음이 난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다.
―그우우우……!
천둥 같은 노성이 연신 울린다.
동시에 거신병이 팔을 훌쩍 들어 올렸다.
쿠구구구. 흡사 거대한 철거용 크레인이 움직이듯 천천히 올라간 팔이, 그대로 마포대교 한가운데를 내리쳤다.
―오오오오오오!!
콰아아아앙!
여의도 전체를 울리는 듯한 폭발음.
마포대교는 무너졌냐? 진짜 무너졌다.
허리가 산산조각 나서. 거짓말같이 허물어져 한강으로 우수수 쏟아진다.
“끄아아악!”
“꺄아아아악!!”
차에서 내려 허겁지겁 도망치던 사람들도, 차량에 탑승해 있던 사람들도. 그대로 마포대교의 잔해와 함께 한강 바닥에 수장되어 간다.
“끄륵, 우르륵……!”
첨벙, 첨벙!
거대한 물보라가 연신 일어났다. 생명이 엄청난 속도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우우우우……!
이내 마포대교를 무너뜨린 거신병은 고개를 슬쩍 돌렸다. 스으으. 안개 속에서 불길하게 일렁이는 보라색 눈동자가, 한강변의 개미 떼 같은 인간들에 닿았다.
―그그그그그그.
쿠구구구.
거신병의 신형이 움직인다.
거대한 육체가 물살을 거칠게 가른다. 천천히 뭍을 향해 걸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으아아아악!”
“오, 온다! 온다아아아!!”
사람들은 본격적으로 패닉에 빠져 사방팔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한강 공원 주변에 포진해 있는 것은 나를 비롯해, 개성적인 갑주로 무장한 헌터 병력들.
내가 소속된 D급 헌터 제13중대를 포함한, 수많은 헌터들뿐이었다.
“으… 으, 씨, X발. 왜 하필. 왜 하필 내가 헌터가 되자마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냐고.”
문득 옆에서 징징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슬쩍 고개를 돌려봤다. 유약한 인상의 20대 청년 하나가 울먹이고 있었다.
‘얜 뭐냐.’
처음 보는 얼굴이다.
나는 일단 현자의 눈부터 발동시켜 봤다.
[인물 정보]
[명칭: 오경태]
[별칭: D급 헌터, 악운의 사나이]
[체력: 12 마력: 14 신체 상태: 공포, 무기력]
[힘: 8 민첩: 7 지능: 13 포텐셜: 15]
[최종 전투력: 16]
‘진짜 처음 보는 사람 맞군.’
상태창까지 보고 확신했다. 이 인간도 랜덤성 요소인 듯하다. 지난 999번 전생엔 어땠는지 몰라도, 이번엔 나와 같은 부대원이 되었나 보다.
거 새끼. 재수도 드럽게 없지.
“이 X발. X바알… 저, 저딴 걸. D급 헌터들이 어떻게 이기냐고오오…….”
남자. 오경태는 연신 질질 짰다. 그리고 쉴 새 없이 부정적인 말을 주워섬겼다.
“우린 X발, 고기 방패야. 뻔하지. 다 죽을 거야. 죽을 거라고……!”
뒤에서 다른 부대원이 “X발! 재수 없는 소리 처하지 마! 신병!” 하고 소리친다.
그리고 빠악! 오경태의 뒤통수를 있는 힘껏 후려 갈겼다.
“으극!”
시원한 타격음. 하지만 오경태의 흐느낌은 절대 멈추지 않았다.
“으흑. 이럴 줄 알았으면 X발, 그냥 엄마 말대로 공시 공부나 하는 건데… 엄마. 엄마아!”
엄마 찾아 음메, 아빠 찾아 음메. 난리가 났다. 그를 중심으로 분위기가 곱창 나고 있음을 나도 느꼈다.
“…X발.”
“하아. 존나, X발.”
압도적인 공포가 서서히, 하지만 확실하게 부대 전체로 퍼져나간다. 나는 딱히 위로도 타박도 하지 않았다.
‘촉이 좋네. 웬만하면 전부 뒤질 거다.’
이곳에 도열해 있는 D급 헌터 제13중대는 오늘 사실상 괴멸한다. 오늘 붕괴한 게 무슨 던전이든, 내가 어떤 개지랄을 하든 대부분 죽는다.
몇 번을 반복해도 변하지 않은 ‘비랜덤성 요소’ 중의 하나. 피할 수 없는 운명이지.
‘유일하게 전조가 있는 붕괴. 그게 오히려 문제였다.’
이 지옥같이 반복되는 한 달 중. 대부분의 붕괴는 아무런 전조도 없이 갑자기 게이트가 열리고 붕괴한다.
하지만 이번 네 번째 붕괴만은 왜인지 좀 다르다.
‘게이트가 붕괴하기 약 10분 전. 강력한 마력 파동이 일어난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랬다.
헌터 협회가 ‘전조’라고 부르는 그것이 감지되었다. 때문에 비상 체계에 들어가 있던 헌터들이 이렇게 붕괴 전에 미리 소집될 수도 있었다.
마포대교도 원래는 통행이 통제됐어야 맞다. 하지만 고작 10분이라는 촉박한 시간 때문에, 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애초에 뒤늦게 통제한다고, 저런 괴물한테서 도망갈 수 있을 리도 없긴 하지.’
나는 시선을 아득히 높게 들어 올렸다. 족히 50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신형이 어느새 뭍에 도달했고. 천천히 지면을 걸어 올라오고 있었다.
―그으으으…….
쿠웅, 쿠우웅.
거신병이 땅을 밟을 때마다 지축이 염을 토했다.
흥건하게 젖은 거신병의 몸에서 한강 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린다.
시야에 전신이 다 들어차지도 않는다. 태산이나 거대한 절벽. 차라리 하나의 자연물처럼 느껴졌다.
“…….”
“…….”
그래서인가. 놈이 천천히 다가오며 몸에 묻은 물을 쏟아내자, 흡사 국지적으로 폭우가 내리는 듯했다.
―고오오오…….
그리고 거신병의 시선이 디룩, 아래를 향했다. 정확히 우리들. 한강 공원에 도열한 헌터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
“……!”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그 거대한 몸과 안광이 주는 위용에 압도되어 버린 것이다.
―그우우우우우!
그리고 구우우웅, 거신병이 다시 한번 팔을 들어 올렸다. 콰아아앙! 거대한 팔뚝이 자비 없이 우리에게 쏟아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