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1000번째 로그라이크 헌터(5)>
나는 월미도 테마파크 주변을 멍하니 돌아다녔다.
옆에는 강서윤이 노점에서 산 아이스크림을 핥아먹고 있었다. 내가 물끄러미 바라보자, 그녀는 내 시야에서 아이스크림을 확 치웠다.
“뭐. 안 줄 거야. 꺼져.”
참고로 저거 내가 사준 거다. 던전 게이트는 뭐 하나. 빨리 붕괴해서 이 개년 좀 괴롭히지.
말하면 입 아프고, 쳐다봐야 눈만 아프니 시선을 돌려버렸다.
“…….”
“…….”
그렇게 침묵을 유지한 채, 얼마나 남처럼 걸었을까.
잠시 후. 오히려 강서윤 쪽에서 내 옷깃을 꾹꾹 잡아당겼다.
“저, 저기. 그… 이제 우리 뭐 할 거야?”
몬스터 존나게 사냥할 거야.
사실대로 대답해 주려다 말았다. 어차피 믿지도 않을 거고. 믿으면 또 그거대로 곤란하다.
“일단 적당히 시간 좀 때우자.”
나는 대충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자 강서윤의 표정이 대번 밝아지더니. 곧장 내 앞으로 손가락을 들이밀었다.
“야. 그럼 우리 저거 타자! 나 저거 한번은 타보고 싶었어.”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다. 고개를 돌려보니 바이킹이 있었다. 나는 황당한 나머지 물었다.
“…바이킹이 타고 싶냐? 네가?”
아니. 비꼬는 게 아니고. 진짜 궁금해서 묻는 거다.
“너 위상능력 계열 헌터잖아.”
강서윤은 공간의 조작에 관련된 스킬을 특화해서 익힌 헌터. 던전에서 얻은 아이템들도 그것에 특화해서 세팅한 걸로 알고 있다.
“그냥 직접 하늘 날지 왜.”
그래서 직접 하늘을 날아다니거나, 물체의 순간이동. 공간 절단 같은 것도 밥 먹듯이 한다. 강서윤 입장에서 바이킹은… 나이 서른 먹고 유모차 타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
“야. 내 힘으로 나는 거랑, 바이킹이 같냐?”
하지만 강서윤은 볼을 빠방하게 부풀렸다. 내가 의아하게 빤히 쳐다보자, 그녀는 얼굴을 조금 붉히며 고개를 홱 돌렸다.
“이, 이런 건 그냥 분위기인 거지 새꺄! 그렇게 일일이 따지고 들지 마!”
그렇다고 한다.
전주에 갔으면 비빔밥을 먹듯, 월미도에 갔으면 바이킹이 국룰이다 이건가.
대충 논리가 이해는 된다.
“그래. 타자 그럼.”
결국 우리는 바이킹에 사이좋게 올라탔다. 그녀는 필요 이상으로 나와 가까이 앉았다. 굉장히 기대하는 얼굴이었다.
“바이킹 출발하겠습니다. 안전바 한번 확인해 주세요.”
안전 요원의 짤막한 통보와 함께 바이킹이 기동음을 흘렸고.
쿠구구궁. 선체가 천천히 움직였다.
“꺄아아악!”
“와아아악! 으아악!”
여기저기서 탄식과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어… 와, 와아…….”
기대에 부풀어 있던 강서윤의 얼굴은, 시간이 갈수록 천천히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결국 그녀는 운행 종료 때까지 그 표정을 고수했다.
“…….”
“…….”
모두가 즐거움의 비명을 지르는 와중. 목석처럼 무표정을 유지하는 우리들. 누가 보면 우리 둘만 다른 차원에 격리된 느낌이겠다.
“흐아암……. 아.”
바이킹이 절정의 높이까지 올라갔을 때. 강서윤은 급기야 하품까지 하다, 내 눈치를 보고 퍼뜩 입을 닫았다.
“어. 뭐… 음.”
강서윤은 바이킹에서 내린 뒤에도 한참을 말이 없다가, 이내 뒷머리를 긁적였다. 연이은 탄식 끝에 그녀가 머쓱하게 중얼거렸다.
“나이 먹고 유모차 탄 느낌이네. 음.”
의외로 내 비유는 굉장히 정확한 구석이 있었다.
* * *
그 뒤로 카페에서 커피를 들이키거나, 경품 사격을 하거나. 디스코 팡팡을 타는 등. 굉장히 쓸데없는 짓들로 시간을 소비했다.
아니지. 디스코 팡팡은 좀 유익했다. 강서윤이 DJ한테 저격당해서 존나게 괴롭힘을 당했으니까.
“저… 시, X발… 개 같은 새끼! 저 새낀 내가, 언젠가 꼭 죽이고 말 거야……!”
디스코 팡팡에서 내렸을 땐 온 세상 억울함 다 짊어진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오뉴월에 서리가 내릴 분위기라 나도 더 놀리진 못했다.
그리고 그녀의 복수는 생각보다 쉽게 이루어졌다.
―자 그럼 다음 손님들 입자… 어, 으어? 끄아아아악!!
삐이이익―!!
마이크의 찢어지는 노이즈가 테마파크 전역으로 퍼졌다. 동시에 DJ 특유의 느물거리던 음성이 단말마로 바뀌었다.
“뭐, 뭐야?”
“비명? 방금 비명 소리야?!”
털컹!
격렬한 진동과 함께 디스코 팡팡이 정지했다. 모두의 혼란스러운 시선이 디스코 팡팡 컨트롤 박스로 향했다.
“어, 어?”
“저, 저, 저거…….”
DJ가 있어야 할 부스가 온통 새빨간 피로 물들어 있었다. 유혈이 낭자한 부스 안에 하나의 신형이 서있다. DJ의 핏기 없는 면상이 얼핏 보인다.
그래서 처음엔 DJ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으, 으아……!”
그것은 DJ의 토막 난 머리통을 들고 있는, 누군가였다.
“으, 으아아아악!!”
“뭐, 뭐야! 꺄아아아악!!”
순식간에 장내가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런 가운데. 부스 안에 있던 누군가가 문을 열고 나왔다.
끼이익. 그 소음이 혼잡한 비명 소리 가운데서도 선명하게 들려왔다.
“즐거워. 재밌구나! 너무 즐겁다!!”
광기에 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알록달록 광대 차림을 한 3미터의 비쩍 마른 거구였다.
“축제다 축제! 아하하하하!!”
핏기가 전혀 없는 하얀 얼굴과 귀까지 찢어진 입.
그 안에 빼곡히 박힌 날카로운 이빨과 시커멓게 번들거리는 눈알. 그리고 손끝에 달린 길다란 손톱들.
사람? 그럴 리가.
어딜 봐도 몬스터였다.
“저, 저, 저거!!”
그제야 사람들은 하늘을 쳐다봤다.
파지지직! 디스코 팡팡 위로 공간이 찢어발겨져 거대한 균열이 있었고, 거기에서 계속해서 무언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즐겁다! 재밌다! 신나게 놀자!”
부스에서 등장한 그 광대 괴물들이다. 디스코 팡팡뿐만이 아니다. 바이킹 위에도, 경품 사격장에도 균열이 일그러졌다.
“아아! 축제! 즐거운 축제다! 축제를 일으키자!”
그냥 월미도 테마파크 전역에 산발적으로 균열이 생겨 있었고. 그 너머에서 광대 괴물들이 끝도 없이 우글우글 쏟아져 나오는 중이었다.
“불꽃놀이! 아아! 새빨간 불꽃놀이야!!”
광대들 몇이 소리치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주변에서 혼비백산 도망치던 사람들 몇 명이 우뚝 멈췄다. 표정이 기괴하게 뒤틀리더니, 이내 머리 전체가 울룩불룩 요동친다.
“끄… 어… 그르르륵!!”
펑, 퍼퍼펑!!
격렬한 폭발음과 함께 머리가 터져버린다. 새빨간 피와 뇌수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꺄아아아악!”
“사, 살려줘! 몬스터! 괴물이다아아!”
“누가 헌터 좀 불러줘요!”
사람들은 그제야 이곳이 지옥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혼란이 점철된 인간들의 무질서한 달리기가 사방천지에 가득해진다.
“이, 이런 X발… 묘지기 광대잖아.”
강서윤은 단박에 현 상황을 이해한 듯하다. 그녀가 천천히 뒷걸음질 치며 눈을 부릅뜬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서, 설마. 또 게이트가 붕괴했다고?! 고작 이틀 만에?!”
역시 오버랭커 급의 헌터는 눈치도 남다르군.
999번 반복한 나도 저 광대들 이름을 떠올리는데 잠깐 시간이 걸렸거늘. 나보다 빨리 이름을 기억해낼 줄은 몰랐다.
‘이번엔 저놈들이 두 번째인가.’
사방에서 광소를 흘리며 사람들을 죽이는 광대들을 쳐다봤고. 낮은 탄식을 흘렸다.
삐빅. 자동적으로 현자의 눈이 발동되어 눈앞에 패널이 떠올랐다.
[몬스터 정보]
[명칭: 묘지기 광대]
[체력: 27 마력: 33]
[힘: 21 민첩: 22 지능: 7]
[상세: 제53던전 ‘유령의 축제’ 소속 레귤러 몬스터. 사시사철 희생제가 일어나는 묘지의 마스코트이자 바람잡이. 인간을 사용한 폭죽놀이를 가장 즐긴다.]
“히히히! 하하하! 놀자! 다 같이 놀자!”
광대들은 사방에서 날뛰며 사람들을 찢어 죽였다. 쉴 새 없이 뜯어낸 인간의 머리로 저글링을 했다. 그리고 즐겁게 웃었다.
“으하하하하! 축제다 축제!!”
더 이상 디스코 팡팡 주변엔 살아있는 이가 없다. 박살 난 디스코 팡팡 기체만이 육중한 비명을 흘릴 뿐이다.
“하하하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학!!”
그 와중에 끊임없이,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광대의 괴기스러운 웃음.
강서윤은 미간을 바짝 찌푸렸다.
“이건 말도 안 돼! 바로 그저께 게이트 붕괴가 일어났잖아! 게다가… 예전에 닫혔던 게이트가 이제 와서 재붕괴하다니!! 이, 이딴 일이 일어날 리가 없어!!”
나를 쳐다보며 하소연하듯 꿍얼댄다.
그런데 나한테 말해봐야. 내가 무슨 말을 해주겠냐.
‘지금 상황이 제일 답답한 건 네가 아니야.’
999번 반복하고도 해답에 다다르지 못한 나지.
나는 고개나 한 번 까딱해 준 뒤. 강서윤에게 현실을 읊었다.
“가능하든 불가능하든. 지금 눈앞에 일어났잖아.”
“그, 그건 그렇지…….”
“헌터가 언제부터 이유를 찾았냐. 몬스터가 나왔으면 신속하게 대처를 할 뿐이지. 프로잖아?”
“…하. 그래. 맞지. 맞는 말이야. X발!”
내가 당황한 기색도 없이 말하자 오히려 강서윤이 흠칫 놀랐다. 그러든 말든. 나는 왼손의 스마트워치를 가리키며 계속 통보했다.
“난 D급 따리라 전투에 딱히 도움도 안 돼. 그러니 사람들 대피나 돕고 있으련다. 지원은 내가 불러놓을 테니까 저놈들 좀 막아줘.”
“으… 응. 알았어.”
이내 강서윤이 슬쩍 고개를 끄덕이며 심호흡을 했다. 다시 뜨인 그녀의 눈에는 혼란이 싹 물러가고, 비장한 결의가 들어차 있었다.
“너, 오랜만에 좀 멋있었다! 한정용!”
파지직!
평상복 차림이었던 그녀의 주변에 스파크가 튄다 싶더니. 순식간에 점프슈트 차림으로 탈바꿈했다.
“좋아. 가볼까!!”
그녀의 손아귀 안에는 어느새 검붉은 단검이 들려있었다. 허공에 불길한 적색 기운을 일렁거리는 기분 나쁜 단검이었다.
‘크로노스 대거.’
제813던전인 시간의 탑.
거기의 던전 마스터인 ‘레테 크로노스’를 처치하고 얻는 보상이다. 특수 스킬로 마력을 담으면 공간을 절단하는 효과가 있다.
던전에서 루팅할 수 있는 A급 무기를 통틀어, 특정 상황에 한해 개사기급 무기 중 하나다.
‘나도 이미 갖고 있지.’
물론 ‘시간의 탑’은 영원회귀의 한 달 동안 붕괴하지 않는다.
이건 몬스터를 잡아서 루팅한 게 아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건, 한참 전의 전생에서 계승해 온 강서윤의 유품이다.
“3년 만에 받은 휴가였어.”
그그그긍.
고개 숙인 강서윤을 중심으로 공기가 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곧 게이트와 비슷한 형태로 허공이 이지러지고 갈라진다.
그리고 거기서 우수수 쏟아져 나오는 것은 무수한 총. 총. 그리고 또 총.
“헌터 생활 3년 중에 처음으로 휴가 받아서 놀러 왔더니, 그걸 방해해……?!”
강서윤은 서슬 퍼렇게 말하며, 허공에 도열한 수백 개의 총들을 일제히 조작했다.
철컥, 철커덕. 격철음이 겹치고 또 겹쳤다. 모든 총들이 한 번에 장전되는 소리다.
직후 강서윤이 주먹을 틀어쥐었다.
“다 죽어! 개새끼들아!!”
투두두두!
수백 개의 마탄총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인간이 이미 전멸해버린 디스코 팡팡 주변으로 총알 비가 우수수 쏟아졌다.
“으힉?”
퍼버벅!
광대들이 그것에 맞고 온몸을 뒤틀었다. 흡사 춤을 추는 모양새였다.
“으히! 으히! 아파! 아프다!”
“히히히! 고통! 아아! 고통이 멈추지 않는다!”
수십 초간 이어진 총알의 포화가 끝났다.
강서윤은 과열로 연기를 내뿜는 총들을 전부 아공간에 다시 밀어 넣었다. 그녀가 천천히 스텝을 밟는다. 고통에 떠는 광대들 사이로 스르륵 미끄러졌다.
“고통스러우면, 죽어! 개새끼들아!”
쉬쉬쉭!
붉은 단검의 잔영이 일렁거린다 싶은 순간, 세 마리 광대의 목이 일거에 떨어져 나갔다.
푸화악! 뚜껑이 열린 광대들의 몸뚱이에서 피가 일자로 솟구쳤다.
“오?”
“오오…….”
살아남은 광대들은 바짝 굳은 채 그 광경을 물끄러미 쳐다봤고…….
“으, 으하!”
“으하하! 히히하하학!!”
이내 자지러질 듯이 웃기 시작했다.
“축제다! 분수다! 으하하하!!”
“새빨갛게 물들어 가는구나!! 즐겁다!! 즐겁다고!!”
“불꽃놀이! 또 한 번 불꽃놀이야!!”
살아있는 광대들이, 죽은 광대들의 시체를 마구 찢어발겨 피를 사방으로 흩뿌렸다. 바쁘게 전장을 유린하던 강서윤도 인상을 바짝 찌푸렸다.
“…미친 새끼들.”
중얼거린 강서윤이 손을 하늘로 번쩍 들어 올렸다.
파지지직! 짙푸른 스파크가 전과는 격이 다르게 몰아쳤다. 스파크가 응집된 곳으로 허공이 갈라지기 시작한다.
“진짜… 존나 기분 나쁘다고! 너희들!!”
끄그그긍.
육중한 고철의 비명이 들리는가 싶더니. 균열의 안에서 무언가 천천히 떨어져 내려왔다.
아까 망가져 버린 디스코 팡팡의 몸통 부분이다.
“다 죽어버려!!”
강서윤은 디스코 팡팡을 허공에 띄운 채 원반처럼 빙빙 돌렸다. 이내 원심력이 최고조에 이르자, 시선을 날카롭게 벼리며 광대들 방향으로 힘껏 날렸다.
“으아아아아!!”
퍼퍼퍼퍽!
엄청난 기세로 날아간 디스코 팡팡이 모든 광대들을 일거에 쓸어버렸다.
멀리서 지켜보던 나는 탄복했다.
‘역시 오버랭커. 성능 확실하구만.’
내가 강서윤을 활용하기 시작한 건 굉장히 최근의 회차부터였다.
970회차였나 980회차였나 그랬을 텐데. 저 절륜한 잡몹 처리 성능 덕에, 이제 강서윤이 없으면 살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그럼…….”
불구경은 여기까지.
나는 강서윤이 잡졸들 줄여주는 사이 할 일이 있다.
“나도 할 일 해야지.”
슈르륵. 우드드득.
내 심장엔 어느새 하트 기어가 박혀있었고. 줄줄 흐르는 피가 꾸덕하게 달라붙어 갑주를 형성하는 중이었다. 나는 월미도 자이로드롭 앞에 도착했다.
‘이번에도 여기 있겠지?’
푸화악! 블러드 스트림을 사용해 붉은 기운을 양발 주변에 둘렀고. 그대로 하늘로 솟구쳤다.
자이로드롭 꼭대기에 도달했다. 나는 허공에 뜬 채로 피식 미소를 머금었다.
“그럴 줄 알았다.”
온몸의 관절을 까딱거리는, 소녀를 닮은 목각 인형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저것이 제53던전의 던전 마스터.
월미도에 쏟아진 모든 괴물들의 우두머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