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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9번째 로그라이크 헌터-5화 (5/235)

5화

<1000번째 로그라이크 헌터(4)>

“야 이 X발 한정용!”

쿠당탕!

내가 현관문을 열자마자, 짧은 단발에 점프슈트 차림의 여자가 득달같이 쳐들어왔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를 맞이했다.

“강서윤, 어서 오고.”

외관상 나이는 나와 비슷한 정도. 다만 성난 멧돼지 같은 기세와, 험악한 인상 때문에 좀 더 나이가 들어 보인다. 동생 강수아처럼 웃고만 다녀도 5년은 젊어 보일 텐데. 성격상 무리겠지.

“이 개새꺄! 너 왜 자꾸 내 동생 납치하는데!!”

강서윤.

강수아의 언니. 나이는 나와 동갑인 25세. 그리고 오자마자 나를 납치범 취급한다.

“후우.”

천성이 미친년인 건 1천 번을 반복해도 안 바뀌는구나.

탄식에 겨워 한숨을 흘렸다.

“뭘 잘했다고 한숨 쉬냐? 진짜 뒤질래?”

덜덜덜덜.

강서윤이 내 멱살을 붙잡고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내가 뭘 잘못했는데.”

“안 그래도 지금 정신없어 죽겠는데! 용산 게이트 사태 끝나고 집 왔더니, 동생 없어져서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냐고! 이 납치범 새꺄!!”

“뭔가 좀 오해가 많구나. 내가 말해도 안 믿을 테니 관계자를 초빙하고 싶다.”

해명을 부탁하는 간절한 시선을 수아에게 보냈다.

강수아가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곧장 강서윤을 말리기 시작했다.

“아 언니. 그만해! 내가 내 발로 찾아온 거야! 오빠는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왜 그래!”

최선을 다해 실드를 쳐주는 수아. 그런데 그 모습이 더 아니꼽게 보였던 건가. 강서윤은 더욱 길길이 발광하기 시작했다.

“구라 치지 마! 네가 뭐가 아쉬워서 이런 돈도 없는 미친놈을 찾아와!”

“도, 돈은 우리도 없잖아! 뭘 자기 얼굴에 침 뱉고 있어!”

“너 자꾸 왜 이런 또라이 새끼를 커버 치는 거야! 협박이라도 당했니?”

“아냐! 또라이는 맞지만 그런 짓 하는 사람 아니라니까!!”

또라이는 맞구나.

내가 피식 웃자 강서윤이 쌍심지를 치켜세웠다.

“처웃지 마! 네 얘기하잖아!”

웃지 말라네. 시무룩한 표정을 해줬다. 그 즉각적인 표정 변화가 웃겼는지 수아가 푸훗,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너… 진짜아!”

반대로 강서윤은 놀림 받았다고 생각했는지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아무튼! 동생 다시 데려간다! 앞으로 또 내 동생이랑 있는 모습 보이면, 진짜 뒤질 줄 알아! 한정용!!”

강서윤은 험악한 얼굴로 일갈했다. 그리고 동생 손을 굳게 잡고 현관으로 돌진했다.

“아! 어, 언니!”

강수아가 끌려가는 와중에 나를 흘깃 돌아봤다.

난처한 얼굴로 고개를 꾸벅 숙이는 수아. 나도 슬쩍 손을 흔들어줬다. 그리고 자매가 나란히 우리 집을 나가기 직전.

“야. 강서윤.”

나는 언니 쪽을 툭 불렀다.

“뭐. 왜!”

홱!

강서윤의 차가운 눈초리가 내게 향했다. 부른 내가 놀랄 정도로 신경질적인 반응이다. 어쨌든 나는 하려던 말을 계속했다.

“좀 있다 동생 떼놓고 혼자 좀 와라. 할 얘기가 있다.”

“족까. 난 할 말 없어.”

“그래? 그럼 네 동생이랑 하지 뭐.”

“…….”

서윤의 표정이 험악하게 뒤틀렸다.

콰앙! 현관문을 발로 차서 열어버린 그녀가 으르렁거렸다.

“…30분 후에 다시 온다.”

그리고 빠르게 문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뒤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십쇼.”

* * *

지금 서로의 태도를 보면 못 믿을지도 모르겠다만.

나와 강서윤은 나름 초등학생 때부터 친했던 소꿉친구다. 무려 20년 지기 친구지.

오히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강수아와 별로 안 친했다. 그냥 친구의 여동생이구나. 그 정도 인식이었다.

“나 나중에 꼭 헌터가 될 거야!!”

던전 게이트 사태가 일어나기 시작한 게 2021년의 막바지. 강서윤은 대략 중2 때부터 그런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냐. 그래라.”

당연히 그냥 중2병인 줄 알았다.

대충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 줘서 넘겼다. 남들 앞에서 저런 쪽팔리는 대사를 나불대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헌터가 될 거야! 입단 테스트도 봤는데 성적이 꽤 좋아! 나 입시 안 해도 될 거 같은데?!”

근데 고2 때도 똑같았다.

고2병 같은 것도 있나 생각했다. 열심히는 하되, 안전빵으로 대입도 신경 쓰라고 돌려 말해줬다.

“나 헌터가 됐어! 봐! 이거 C급 헌터 자격증이야!! 멋지지?!”

근데 X발. 대2 때 결국 진짜 헌터가 됐다.

그때가 2028년. 강서윤은 즉시 대학교 때려치우고 본격적으로 헌터 일을 시작했다.

“정용아. 우리 엄마… 이제, 수술 받을 수 있겠지?”

강서윤은 헌터 자격증을 꽉 쥐고, 내 앞에서 그렇게 울먹였다.

그녀는 3년 동안 헌터로서 뼈 빠지게 일했다. 그리고 결국 던전발(發) 희귀병 환자인 어머니의 수술비와, 향후 입원 치료비를 전액 부담하는데 성공한다.

지금까지 사용된 전체 비용은, 적게 잡아도 50억 이상.

무려 S급 헌터 강서윤이, 아직도 D급 따리인 나와 같은 빌라에 사는 이유다.

* * *

“그땐 애가 참 귀여운 맛이 있었는데. 세상 풍파를 너무 맞았어.”

나는 침대에 삐딱하게 앉은 강서윤을 보며 탄식했다. 강서윤은 대번 인상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렸다. 그리고 점프슈트 안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능숙하게 불을 붙였다.

“뭐래, 병신이. 갑자기 혼잣말 하네. 미친 새낀가.”

강서윤은 그 3년간의 헌터 생활 중 말씨가 꽤 험해졌다. 담배도 배웠다. 줄담배 밥 먹듯이 피우는 상골초다.

“…….”

나는 그녀를 잠깐 물끄러미 주시했다. 스테이터스 창을 띄우기 위해서였다.

[인물 정보]

[명칭: 강서윤]

[별칭: S급 헌터, 서열 8위 오버랭커]

[체력: 45 마력: 84 신체 상태: 정상]

[힘: 17 민첩: 44 지능: 47 포텐셜: 98]

[최종 전투력: 187]

대한민국 헌터들 중에서 가장 상위권에 있는 100명의 랭커. S급 헌터. 그 랭커들 중에서도 최고 정점에 있는 10인. 그들을 속칭 ‘오버랭커’라고 부른다.

다시 말하면 강서윤은, 대한민국 헌터들 중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자.

요즘 시대가 시대다 보니. 대중들이 서울시장은 몰라도 오버랭커 10명 이름은 안다.

‘이 여자의 놀라운 점은… 압도적인 포텐셜의 수치.’

현자의 눈으로 표기되는 ‘포텐셜’ 항목은 말 그대로 잠재력. 앞으로 성장의 가능성과, 자기 능력의 최대 활용 가능성을 말한다.

이 포텐셜 수치가 높으면 최종 전투력도 더 쉽게 높아지고. 현재 표기된 전투력의 최대 2배까지도 순간적으로 발휘할 수 있다고 한다.

‘최대치가 99인데 98이라니. 말이 되나 저게.’

극한의 재능충. 사기캐라는 말은 저런 년을 두고 하는 말이다. 쟤보다 포텐셜 높은 사람, 거짓말 안 하고 지금까지 한 명도 못 봤다.

“…….”

나는 오랜만에 내 손을 잠깐 물끄러미 쳐다봤다. 삐빅. 현자의 눈이 발동되며 내 스테이터스가 패널에 표기되었다.

[인물 정보]

[명칭: 한정용]

[별칭: 1000번째 회귀자, D급 헌터, 초인]

[체력: 198 마력: 81 신체 상태: 약한 혼란]

[힘: 99+ 민첩: 99+ 지능: 99+ 포텐셜: 1]

[최종 전투력: 968]

포텐셜 꼴랑 1.

단 하나!

나는 포텐셜 수치가 다른 헌터들보다 현저히, 비정상적으로 낮다. 심지어 같은 D급 헌터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낮은 편. 사실 일반인도 최소한 3 정도는 된다.

‘폭발적 성장의 가능성이 국물도 없다는 소리.’

그럼에도 최종 전투력 표기는 강서윤의 약 6배다.

저 정도면 어느 정도 차이인지 아는가? 여러 변수를 고려해야겠지만, 실질 전투력은 약 600배 정도 차이 난다고 보면 된다.

‘순전히 노가다의 힘이었다.’

999번이나 이 지옥을 반복해서 겪으면. 솔직히 옆집 멍멍이 뽀삐도 이렇게 된다. 포텐셜이 5만 넘었어도 이미 최종 전투력이 1천은 거뜬히 넘겼을 거다.

성장판은 진작에 닫혔는데. 다리 째고 철심 꾸역꾸역 박아서 키가 3미터까지 큰 셈이다.

‘아무튼 저 정도 스펙이면. 역시 초반까진 써먹는 게 좋겠지.’

강서윤의 스테이터스를 살펴보고 그런 결론에 도달했다. 헌터 협회 자체는 이용할 생각조차 없지만. 강서윤 개인이라면 여지가 좀 있다. 그래서 곧장 강서윤에게 본론을 내밀었다.

“너 내일 한가하냐?”

“한가하겠냐? 용산에서 그 난리가 났잖아. 내일부터 당장 피해 수복하는데 투입될 거야. 아마도.”

“걱정 마. 넌 투입 안 돼. 그러니 무조건 한가할 거다.”

“뭔 개소리야 븅신아. 아까부터 진짜, 미쳤어?”

강서윤은 표정을 뒤틀고 나를 빤히 쳐다봤다. 저렇게 보고 있으니 역시 자매는 자매다. 미친놈 애틋하게 쳐다보는 시선이 똑 닮았군.

나는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나랑 월미도로 좀 놀러 가자.”

“…엉? 뭐가 어째?”

“인천 월미도. 1박 2일로. 같이 자고 오자.”

“으, 으엥?!”

서윤이 당황한 듯이 퍼뜩 몸을 굳혔다. 그리고 조금 붉어진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본다. 진심이냐고 묻는 눈빛. 나는 당연히 진심을 담아 진지하게 시선을 마주했다.

“나는 지금. 네가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필요해. 강서윤.”

“아니, 하. 진짜… 가, 갑자기 뭔……!”

강서윤은 답지 않게 당황했다. 시선을 이리저리 굴리다, 이내 나를 의심 어린 눈초리로 흘겨봤다.

“야. 너 X발. 설마 동생한테도 그런 소리 싸지르고 다니냐?”

“미쳤냐. 너니까 이런 말을 하는 거야.”

“윽……!”

나는 사실 그대로를 말했다. 다음 던전이 역류할 장소가 바로 월미도다. 멸망 초반기까진 오버랭커인 강서윤은 확실히 도움이 된다.

근데 짐짝만 될 강수아를 거기에 왜 데려가냐. 그런 의미로 한 말이다.

“아, 아니. 갑자기 급발진 오지네, 이 새끼.”

강서윤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우물거렸다.

“전에 좀 빌드업을 하든가… 하. 씨! 뭐냐고 진짜!!”

이젠 내가 시선을 맞추려고 해도 그녀 쪽에서 피했다. 또다. 전생에서 몇 번 협력을 요청할 때도 항상 이 반응이었지.

‘이 반응은 대체 뭘까.’

왜 강서윤답지 않게 똥 마려운 개새끼 마냥 안절부절못하는 거냐.

이건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은 의문이다.

‘뭐 어쨌든, 항상 대답은 같았으니 괜찮겠지.’

나는 이미 강서윤이 어떤 결정을 할지 알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강서윤은 큰 결심을 한 듯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그, 그래. 가자. 나 내일 한가하면. 월미도… 1박 2일. 응.”

내 기억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강서윤의 대답.

기억 상 지금까지 아홉 번인가 제안했고. 아홉 번 다 저 대답이었다.

* * *

이 반복되는 한 달의 지옥에 대해 의문은 많다. 항상 속으로는 가지고 있지만, 풀 방도가 없어서 방치하는 의문들 말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랜덤성 사건’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알아서 바뀌는 미래에 대해서다.

‘우선 첫 번째 게이트 붕괴. 드래곤이 용산에 역류하는 시간은 항상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제99던전 ‘대격변 지대’가 역류해서, 드래곤들이 튀어나와 용산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건 항상 똑같다. 그리고 두 번째 게이트 붕괴부터는 완전히 반대가 된다.

‘장소와 시간은 완전히 똑같은데. 역류하는 던전이 항상 달라지지.’

이 한 달 동안, 대한민국에서 게이트가 붕괴하는 것은 총 15번.

제1던전부터 제100던전까지, 총 100개의 던전 중 15개 던전이, 이틀에 한 번 꼴로 무작위 순서로 역류한다.

99번 던전인 ‘대격변 지대’는 이미 역류했고, 마지막은 무조건 제100던전이 역류하니. 정확히는 98개 중 하나겠군.

그리고 이게… 내가 게이트 붕괴의 사전 대비를 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다.

‘대비가 아무 의미가 없어.’

특정 던전을 저격해서 대비를 철저히 하면 뭐 하냐. 다른 던전이 나올 확률이 99%에 육박한다.

‘비효율의 극치.’

차라리 발 닦고 낮잠이나 한숨 때린 다음. 던전이 역류하면, 그때 상쾌해진 정신으로 임기응변을 생각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여기에서 나의 가장 깊은 의문이 시작된다.

‘대체 랜덤성 요소와, 비랜덤성 요소의 차이는 어디서 오지?’

비랜덤성 요소.

몇 번을 반복해도 똑같이 되풀이되는 확정된 미래. 다른 말로는… 운명.

‘왜 첫 번째 던전은 반드시 99 던전의 드래곤이 나오고. 왜 강수아는 반드시 죽어야 하는지.’

그리고 왜 세상은, 마지막 게이트 붕괴 때 반드시 멸망하는 건데. 다른 랜덤성 요소와 이 확정성 요소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건가.

궁금해 미치겠지만 알 방도가 없다.

몬스터면 모를까. 시공 회귀를 자각하고 기억하는 인간은 세상 전체 통틀어도 나뿐이다. 그러니 물어볼 사람이 어디에도 없다.

“…으음. 우으응…….”

나는 승용차를 운전하며, 옆좌석에서 졸고 있는 강서윤을 흘깃 쳐다봤다. 망할 년이 조수석 기본 매너도 모르고 자빠져 자고 있는데. 곧 X빠지게 뺑이 칠 거 생각해서 봐주기로 했다.

“도착했다. 월미도.”

나는 차창 너머에 펼쳐진 풍경을 보고 가만히 중얼거렸다.

―꺄아아아아!

―우후우우!!

두두두두!

멀찍이서 바이킹이 굉음과 함께 흔들리고. 즐거운 비명 소리가 섞여 들린다.

저게 전부 비탄의 절규로 바뀔 것이다.

앞으로 두 시간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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