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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9번째 로그라이크 헌터-4화 (4/235)

4화

<1000번째 로그라이크 헌터(3)>

―케에에에엑!!

거대한 드래곤, 조르시카가 나를 향해 수직낙하 한다.

나는 오른손을 꽉 쥐었다. 키잉! 손등 위로 흐느적거리던 사복검이 하나로 뭉쳐지며, 붉은 장검의 형태가 되었다.

‘스파이럴 블러드.’

속으로 영창하며 오른 주먹을 내뻗었다.

주먹과 함께 찔러 들어간 손등의 장검에 핏방울이 맺혔고. 꿀럭거리며 한 점으로 뭉치는가 싶더니.

콰아아앙!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나선의 혈사포를 쏘아냈다.

―쿠에아아아악!!

우득, 푸드드득!

아가리부터 꼬리까지 혈사포에 관통당한 조르시카. 나를 향해 벌린 아가리를 닫지 못한 채, 그대로 전자상가 옥상에 나뒹군다.

거대한 비명 소리가 공기를 찢어발겼다.

―키이이이이!!

쿠우웅! 드래곤이 추락하자 건물 전체가 요동쳤다. 도망치던 사람 몇이 깔려 그대로 납작하게 찌부러졌다.

―크… 그륵… 그르르…….

조르시카는 옥상 전체를 새빨갛게 물들이며 한참을 버둥거렸다. 하얀 눈에서 생기가 점점 사라졌다.

이내 털썩. 부르르 떨리던 육체가 그대로 늘어졌다.

“으, 으흐?”

“저, 저, 저건… 누구?”

사람들이 검붉은 갑옷에 둘러싸인 나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러든 말든. 나는 사복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드래곤 무리들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나도 좀 날아볼까?”

발끝에 신경을 집중했다. 콰아앙! 붉은 기운이 몰아닥치며 나를 공중으로 끌어 올렸다.

[스킬 발동: 블러드 스트림]

하트 기어의 특수 스킬을 총 세 개.

하나는 방금 사용한 공격 스킬. 스파이럴 블러드.

하나는 혈천갑에 공중 부양 기능을 더해주고, 공격력을 소폭 증가시켜주는 블러드 스트림이다.

마지막 하나는… 일단 킵. 나중의 재미로 남겨둬야겠군. 초반의 게이트 붕괴 때는, 이 두 개면 충분하지 싶다.

―퀘아아악! 케아악!

―키이이이이!!

내가 조르시카를 압살하는 장면은 사람들만 보고 있었던 게 아니다. 드래곤들 역시 그것을 똑똑히 목격했고. 위협을 느꼈는지 나를 단단히 포위한 채 이빨을 드러냈다.

―그르르르……!

―크르릉!

공중에 뜬 채로 사방을 포위당한 나. 히죽. 투구 안에서 낮게 웃었다.

“고맙네. 안 불러도 알아서 모여주니.”

하나씩 죽이러 다닐 수고를 덜었다.

키이잉! 내가 손을 휘적이자 다시 채찍처럼 흐느적거리는 사복검.

“이제 죽어.”

드래곤들을 향해 오른손을 미친 듯이 휘두르기 시작했다. 휘리리릭! 사복검의 핏빛 채찍이 한계를 모르고 늘어난다.

―크르르륵!

촤자자작! 붉은 잔영이 드래곤들 사이를 현란하게 유린했다. 수십 마리 드래곤이 그 움직임에 맞춰 춤춘다.

―케아아아아악!!

푸확! 뿌드득!

파육음이 끊이지 않았다. 전자상가 위로 드래곤의 피와 살점이 우박처럼 쏟아졌다.

* * *

“이놈이 마지막.”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전방으로 내질렀다.

철컹. 모여든 사복검이 장검의 형태로 벼려졌고, 그대로 칼끝이 드래곤 한 마리의 눈알을 후벼팠다.

“죽어.”

우지직! 파육음이 울린다. 막대한 피와 체액이 찢어진 각막 사이로 흘러넘쳤다.

―키에에에엑!

하늘이 쩌렁쩌렁 울리는 비명.

나는 격렬하게 요동치는 드래곤의 대가리를 부여잡고, 마구잡이로 눈깔 안쪽을 쑤셔댔다. 어느 순간, 사복검을 채찍처럼 길게 늘였다.

―크가라라락!!

뿌드드득!

늘어난 사복검의 칼날 파편이 드래곤의 반대편 눈알로 튀어나왔다. 잘게 갈린 뇌와 육편 건더기가 칼날에 묻어나왔고, 바닥을 향해 우수수 쏟아졌다.

―키… 기이익……!

집요하게 나를 쫓아오던 드래곤이 추락했다. 콰아앙! 놈의 육체가 전자상가 옥상에 그대로 처박혔다. 운석 충돌을 방불케 하는 기세였다.

쿠구구구! 육중한 울림과 함께 전자상가 옥상이 하릴없이 무너져 내렸다.

―기이이… 기이익…….

팔다리를 잘게 버둥거리던 드래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행동을 멈췄다.

순간적으로 전장에 적막이 찾아왔다.

“…….”

전투가 끝났다.

허공에 떠있는 내 아래로 수십 구의 드래곤 시체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나는 그것을 가만히 내려다보다, 이내 혈천갑을 해제했다.

“후우.”

한숨을 낮게 쉬었다. 한순간에 생명력이 빠진 여파로 약간 현기증이 일었다.

우우웅. 공명음과 함께 심장에서 박혀있던 붉은 보석, 하트 기어가 뽑혀 나왔다. 나는 그것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3분 28초라. 신기록이야.’

S급 아이템의 성능은 모르겠다만. 썩어도 준치는 되는 듯하다. 지난 1천 번의 도전 중에선 타임 어택 순위권에 들 속도다.

“…성능 확실하구만.”

하트 기어를 계승 유물로 선택한 게 정답이었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 * *

강수아는 아직 세상모르게 자고 있었다. 나는 흐트러진 이불을 제대로 씌워준 뒤. 그 옆에 대충 걸터앉았다.

후두둑. 몸에 잔뜩 묻어있던 핏방울이 순식간에 침대를 붉게 물들였다.

“으으응.”

강수아가 콧잔등을 찌푸리며 웅얼거렸다. 아무래도 지독한 피비린내 때문인 듯하다.

나는 더러워진 몸과 침대를 한 번 매만졌다.

“리스토레이션.”

A급 스킬 리스토레이션.

대상의 양태를 ‘원상태’로 복구시키는 스킬이다. 청소부터 상처 회복까지 쓸모가 다양해서, 다채로운 상황에 애용하는 편이다.

“후우.”

쉬쉬쉭!

내 주변으로 짙푸른 마력이 일렁거리다 빠르게 내 몸을 훑었다. 온몸을 뒤덮었던 드래곤의 꾸덕한 피가 마력의 기운에 섞여 사라졌다. 침대에 묻었던 핏방울도 거짓말처럼 씻겨나갔다.

“으음. 우웅.”

그제야 강수아의 표정에서 근심 걱정이 사라졌다. 그녀는 다시 편안한 얼굴로 침대와 이불 속으로 빠져들었다. 나는 그 모습을 한없이 무표정으로 지켜봤다.

“…….”

예전 회차 같았으면 이 무방비한 모습에 욕정이 들었을 거다.

강수아는 21살. 나는 25살. 한창때의 나이다. 실제로 초반 회차 때는 시도 때도 없이 욕정이 울컥울컥 쏟아져서 곤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그러고 싶지 않다.

‘어차피 내용물은 다 똑같다.’

인간은 그냥 생각하는 고깃덩어리다. 자고 있는 수아를 봐도 그런 생각밖에 안 든다.

욕정은커녕 무념무상.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다.

‘뭐, 안 그러는 게 이상하지.’

수아가 타 죽고, 얼어 죽고. 산채로 토막 나거나, 머리가 뽑히거나. 정수리부터 사타구니까지 반으로 갈라져서. 안에 든 것들을 쏟아내는 장면까지 봤다.

‘수십 번도 아니지. 수백 번이다.’

이래도 저 여자를 보고 욕정이 든다? 그 새끼는 정육점에 진열된 고기들을 보고도 거시기를 부풀릴 새끼다. 그게 더 정신병자지.

“…너무 곤히 자는데. 이거 벌써 죽은 거 아냐?”

다만 자고 있는 모습을 보니, 그런 걱정이 들기는 했다. 수아는 실로 개복치 같은 여자다. 뻑하면 뒤진다. 999번 반복된 회차에서 단 한 번도 살아남지 못했다.

하다못해 스쳐 지나가는 엑스트라들도 내가 노력하면 살릴 수 있던데. 그녀만큼은 세상 전체가 단호하게 사형 선고를 내린 듯했다. 정말 어떤 개지랄을 해도. 절대로 죽음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도 개지랄을 하는 거고.’

몇 번이고 말했지만. 나는 인류 멸망을 막기 위해서 이 지랄 쇼를 벌이는 게 아니다. 오직 강수아를 살리기 위해 회귀를 반복하는 거다.

다만 강수아가 살아남으려면 인류가 멸망하면 안 된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최후의 게이트 붕괴를 막으려 노력하는 것뿐이다.

“오빠. 대체 왜 그래요?”

“왜 나 때문에… 이렇게까지 하는 거예요? 대체 왜!”

언젠가 강수아가 나한테 그런 걸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녀를 구하기 위해 만신창이가 된 모습을 발각당했을 때였다.

“…….”

그때 나는 대답해 주지 못했다.

안 해준 거 아니다. 못 해준 거다.

회귀를 하도 반복하다 보니, 나도 진짜로 이유를 까먹었으니까.

‘분명히, 뭔가 절박한 이유가 있었던 거 같은데.’

대체 난 왜 강수아를 구하는데 집착하지? 이제 와선 나 자신도 그게 의문이다.

살다 보면 자주 있는 일이지.

무언가를 향해 인생을 바쳐 맹목적으로 달려온 결과. 행동의 의의는 퇴색하고 수단만이 남는다. 그러다가 수단이 목적처럼 변질돼 버린 거다.

그래서 나는 목적이 돼버린 수단을 위해서 아직까지 살아있고. 1천 번째 드래곤 레이드를 뛰고 돌아왔다.

“눈에 띄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단 3분.

3분 만에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온 수십 마리 드래곤을 몰살시킨 나. 이제 내 정체에 대해 각종 언론을 통해 서서히 발각되고. 도시 괴담처럼 여기저기서 회자될 것이다.

하지만 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도 모두 강수아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멘탈은 지킬 수 있을 때 최대한 지켜놔야지.’

몬스터로 쑥대밭이 되는 세상을 방치하고 있으면. 강수아의 정신상태가 빠르게 피폐해진다. 그러면 그만큼 수아가 금방 자살해 버린다.

999번의 지난 회차 중. 그녀가 자살을 택한 것은 몇 번이나 되지?

적게 잡아도 150번 이상은 된다. 그만큼 멘탈 케어는 중요한 문제 중 하나다.

‘나도 잠이나 좀 자둬야겠군.’

지금 별로 안 피곤해도, 잘 수 있을 때 충분히 자둬야 한다. 앞으로도 사람들 이목을 피해 게이트 붕괴를 틀어막아야지. 그것도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다.

나는 침대에 기대어 앉은 채로 눈을 감았다.

“후우.”

수마가 몰려들었다. 거부하지 않았다.

* * *

“오빠도 동물 좋아하세요?”

강수아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알았다.

“저는 진짜진짜 좋아해요!”

있을 수 없는 시절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이 대화는, 반복되는 지옥의 한 달 이전의 추억이다.

“물론 사람보다 동물을 우선시하는, 그런 사람들은 저도 이해 못하지만요.”

배시시 웃으며 말하는 강수아의 얼굴이 선하다.

강수아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귀여운 동물들을 좋아했다. 그때도 우리 집의 햄스터 우리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햄스터를 키워서 다행이다. 그런 생각을 했던 기억은 어렴풋이 난다.

“있잖아요, 오빠.”

수아가 철창에서 퍼뜩 얼굴을 떼며, 나를 똑바로 주시했다.

“오빠는 왜 동물을 좋아하게 됐어요?”

왜냐고?

…왜였지.

그러고 보니 왜였을까. 나는 대체 왜… 햄스터를 키우기 시작했지?

그때 강수아에게 해줬던 대답이 떠오르질 않는다. 최소 900개월 전. 너무 오래전 일이다.

* * *

철썩, 철썩.

볼이 욱신거린다. 누군가 내 뺨아리를 후려갈기고 있다.

“오빠. 오빠! 일어나 봐요, 오빠!”

여자 목소리. 들을 일 거의 없는 오빠라는 호칭.

게다가 내 뺨을 때릴 사람은 하나밖에 없다.

“어 그래. 일어났다.”

덥석.

나는 연신 날아오던 손바닥을 가볍게 붙잡아 버렸다.

“왜 그러냐. 수아야.”

대답과 동시에 눈을 떴다. 예상대로 내게 붙잡힌 것은 강수아였다. 그녀가 흠칫 손을 빼내려 했지만, 내 힘 스탯이 워낙 높아서 꼼짝도 않는다.

“아, 아팟……!”

수아가 아찔한 신음을 내뱉었다. 나는 퍼뜩 손에서 힘을 풀었다.

“미안. 너무 셌구나.”

“아, 아뇨. 괜찮아요.”

가까스로 풀려난 그녀가 볼멘소리를 냈다.

“저, 저기. 근데 뭐가 어떻게 된 거예요? 저 갑자기 잠들어서… 일어나 보니 이미 밤이었어요!”

그렇다는군.

창밖을 슬쩍 쳐다봤다.

“그러네. 밤이구나.”

나는 하품을 하며 태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태도를 본 강수아가 답답한 듯이 가슴을 두들겼다.

“아니 오빠! 그, 게, 게이트 역류는요? 그거 어떻게 됐는데요!”

“그거라면 걱정할 거 없어. 전부 진압됐다더라.”

“예?”

“진압됐다고. 게이트 붕괴니까 피해는 없을 수야 없지만. 그렇게 큰 피해는 안 입었을 거야.”

“아, 아아…….”

그제야 강수아는 안도한 듯이 어깨에 힘을 풀었다. 그리고 내 옆에 풀썩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린 듯하다.

나는 그녀에게 슬쩍 삿대질하며 어딘가를 가리켰다. TV였다.

“궁금하면 TV나 틀어보지? 어디서든 그 얘기를 할 텐데.”

“아, 아아! 맞다! 내 정신 좀 봐!”

그제야 강수아가 리모컨을 들고 전원을 눌렀다.

작고 낡은 TV가 켜지며 뉴스 속보를 우리 앞으로 띄웠다.

[…네. 끔찍한 용산 게이트 참사가 일어난 지, 현재 약 5시간이 경과한 상태입니다. 현장에 김대기 기자 나와있습니다. 김대기 기자?]

[네. 현장의 김대기입니다.]

치직. 화면이 바뀐다.

용산 전자상가의 풍경이 비쳤다. 무너지고 불탄, 피로 물든 도시의 풍경. 뉴스가 아니라 영화라 해도 믿을 정도다.

“아, 아……!”

그것을 본 강수아가 아찔한 탄성을 흘렸다. 그러든 말든. 아나운서는 계속 브리핑을 진행시켰다.

[현재 피해 상황이 어떤가요?]

[이루 말할 수 없는 참혹함이 가득합니다. 헌터 본부와 중대본은 이번 사태의 피해 규모를 추산하는 중이며, 사상자는 최소 1천. 재산 피해액이 최소 5천억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상당한 피해인데요. 전문가들 분석은 어떻습니까?]

[전문가 의견에 따르면 이번 게이트 역류는 실로 이례적인 상황이며…….]

아나운서가 특파원과 함께 세상 심각한 얼굴로 끊임없이 왱알댄다.

털썩. 옆에서 강수아가 리모콘을 놓쳤다. 그녀는 멍하니 풀린 얼굴로 TV를 응시했다.

“사, 사, 사상자… 1천……?”

이내 강수아가 쩍 벌어진 입을 틀어막았다.

불안에 찬 얼굴로 안절부절못하다, 이내 주머니를 뒤져 핸드폰을 꺼냈다.

“으, 아… 으!”

벌벌 떨리는 손으로 꾸역꾸역 핸드폰을 조작한다. 보고 있기가 애처로운 몸짓이었다.

“언니라면 안 불러도 돼. 이미 이리로 오는 중일 거다.”

나는 그런 수아에게 툭 말했다.

“어, 으에?”

강수아는 흠칫 핸드폰을 자기 품에 가져갔다. 그리고 귀신에 홀린 듯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오, 오빠. 어, 어떻게?”

어떻게 내가 언니한테 전화할 걸 알았느냐. 대충 이런 의미일 거다.

‘이번엔 뭐라고 대답해 볼까.’

여기서 내 대답에 따라 강수아의 반응이 몇 갈래로 나뉜다. 이번 생엔 미친놈 컨셉을 밀고 가보기로 했다.

“난 사실 미래를 보고 왔거든.”

“…뭐가 어쨌다고요?”

“정말이야. 나 예언할 줄 안다.”

당연히 수아의 표정은 해괴망측하게 뒤틀렸다.

“아니, 이 오빠가 진짜 왜 이래……? 갑자기 뭔 미래요. 예지몽이라도 꿨어요?”

“지금부터 30초 후에 네 언니가 도착해. 우리 집 문을 박살 낼 기세로 두드릴 거다.”

“예? 뭐가 어째요?”

“자. 같이 한번 카운트를 세보자. 30. 29. 28. 27…….”

“아니 저기요! 오빠! 저 지금 장난칠 기분이 아닌데……!”

이 새낀 정녕 사이코 새끼인가? 사람이 천 명이나 뒤진 상황에 농담이 하고 싶나?

그런 표정이었다.

“15. 14. 13…….”

“오빠아. 저 진짜 화내요?”

아랑곳 않고 계속 입으로 카운트를 셌다. 이제 거의 막바지였다.

“…5. 4. 3. 2. 1.”

그리고 쾅쾅쾅!!

밖에서 누군가가 문을 부술 기세로 두들기기 시작했다.

“야 한정용! 당장 나와 봐 X발! 내 동생이랑 있는 거 다 알아!!”

걸걸한 말투와 앙칼진 목소리. 강수아의 언니인 강서윤이 확실하다.

“…어, 엥?”

당연히 수아의 표정은 다시 한번 해괴망측하게 뒤틀렸다. 귀신한테라도 홀린 표정이었다.

나는 무표정 그대로 더블 피스를 만들었고.

“데헷.”

개 같은 추임새와 함께 강수아를 쳐다봤다.

“…….”

이번엔 꽤나 희귀한 표정을 보여주는 강수아이었다. 단순한 당황 이상. 형언할 수 없는 오묘한 감정이 서려있었다.

저건 몇 번을 봐도 꿀잼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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