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1000번째 로그라이크 헌터(2)>
나는 건물 옥상을 날 듯이 뛰어다니며, 왼팔에 찬 스마트 워치를 조작했다. 헌터 협회로 긴급 회신을 할 때 사용하는 놈이다.
“D급 헌터 한정용입니다. 게이트 역류 상황 발생으로 능력 사용 허가 요청드립니다.”
어차피 3주를 채 못 버티고 헌터 협회는 괴멸하고, 유명무실해진다.
그래도 일단 지금은 헌터 협회의 매뉴얼대로 해줘야 한다. 재앙의 초창기 때는… 이 새끼들이 아직 사태를 통제할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멋대로 움직였다간, 아까운 시간을 빵살이로 허비할 수 있다.
이미 몇 번 당해봐서 알고 있다.
[D급 헌터 한.정.용. 던전 부산물 사용에 대한 승인을 요청 중입니다.]
당연히 승인에는 시간이 좀 걸린다. 나는 시계의 액정을 주시하며, 사건 현장의 중심으로 계속 전진했다.
그리고 삐빅. 고대하던 기계음이 들려왔다.
[D급 헌터 한.정.용. 던전 부산물 사용에 대한 승인이 완료되었습니다.]
원래라면 승인에 최소 하루는 걸린다. 그러나 고작 D급 헌터의 요청임에도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허가가 떨어졌다.
이유는 이미 알고 있다.
‘그렇겠지.’
차가운 조소가 입가에 머물렀다.
지금 벌어지는 게이트 역류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헌터 관리부 윗대가리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지금 놈들 입장에선 똥줄이 활활 탄다. 마음 같아선 일반인들이라도 고기 방패로 현장에 때려 박고 싶을 거다.
‘그래도 못 막아. 너희는… 망하는 게 운명이야.’
전 세계 70억 인구를 모두 때려 박아도 최후의 게이트붕괴는 막을 수 없었다.
999번 보고 온 내가 보증한다.
“흐음.”
상념에 잠긴 사이 게이트 붕괴 현장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눈에 힘주고 주변 환경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여기는 999번 회귀 중 다를 때가 없지.’
첫 번째 게이트의 정확한 붕괴 시간이나, 규모는 회차마다 소소한 차이가 있다. 하지만 장소만은 절대 변하지 않았다.
용산 전자상가의 옥상. 나는 허공에 일그러진 거대한 칠흑의 균열 앞에 서있었다.
―퀘에에엑!
―끼에에에엑!!
시커먼 균열 속에서 꾸역꾸역 끝도 없이 기어 나오는 거대한 괴생물체들.
전자상가의 옥상 전체를 점거한 것도 모자라, 거대한 날개를 펴고 하늘을 유영한다. 연신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며 인간들을 장난감처럼 유린하고 있었다.
―그르르르르!!
드래곤이다.
체장이 50미터는 될 법한 거대하고 알록달록한 도마뱀. 자그마치 수십 개체. 판타지에서 흔히 나오는 드래곤과 꼭 닮은 외형이었다.
“히아아악! 괴, 괴물!”
“이, 이게 뭐야! 살려줘!! 사람 살려!!”
“허, 헌터들은 아직이야?! 사람들이 죽어나간다고 X발!!”
롤러코스터가 왜 재미있는지 아는가? 그 고철 기차가 날 못 죽인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퀘에에에에엑!!
드래곤도 마찬가지다.
스크린 너머로 볼 때는 그렇게 웅장하고 멋진 생물인데. 지금 직접 보고 느끼는 인간들 중 감탄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카하아악!”
“끄아아악! 아아아악!!”
비명.
어딜 봐도 공포와 고통에 찬 비명 소리뿐이다.
우드득! 쩌적! 드래곤이 날개와 팔을 휘두르고, 입을 벌려 인간들을 삼킨다. 그럴 때마다 섬찟한 파육음이 울렸다.
“꺄아아악!!”
철퍽, 철퍼덕.
피와 살점. 찢어진 옷가지들이 전자상가 옥상에 무기질적으로 흩어졌다.
“끄아아아아악!!”
비명은 뜯어먹힌 사람이 아니라 옆에서 도망치던 사람이 지른다. 먹힌 이들은 이미 잘게 다진 고깃덩어리가 되어 단말마조차 지르지 못했다.
―키야아아아악!
십수 마리 드래곤이 일제히 포효를 내질렀다. 도망치던 사람들이 일제히 우뚝 멈췄다. 그리고 그 자리에 털썩 쓰러졌다.
“아… 그, 윽…….”
“끄르륵… 그륵.”
남녀노소 구별 없이, 사타구니로 누런 물줄기가 질질 흘러내렸다. 그 자리에서 거품 물고 쓰러지는 이들도 보였다.
나는 그 현상이 왜 일어난 건지 알고 있었다.
‘드래곤 피어.’
A급 디버프 스킬 중 하나.
용족들은 괴물형이든 인간형이든, 기본으로 탑재한 스킬이다.
‘효과 자체는 수라흉인과 다를 게 없다.’
약자멸시.
나보다 현저히 약한 생물들에게 공포 상태 이상을 건다. 같은 A급 스킬이지만 수라흉인은 포효를 안 질러도 되니, 유틸성 면에선 드래곤 피어가 살짝 급이 떨어진다.
나는 곧장 모든 드래곤들을 시야에 담고 조용히 스킬을 영창했다.
‘현자의 눈.’
내가 가진 몇 안 되는 S급 스킬.
던전과 관련된 대상의 정보를 마력으로 읽어 들이고, 패널 형태로 가시화해서 띄워준다. 내가 211번 회차 때 얻은 뒤, 지금까지도 가장 유용하게 써먹는 효자 스킬이다.
[몬스터 정보]
[명칭: 멸망을 인도하는 용 - 칼라마이트]
[체력: 105 마력: 61]
[힘: 41 민첩: 27 지능: 42]
[상세: 제99던전 ‘대격변 지대’의 던전 마스터 중 하나. 그들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모든 생명체가 멸망한다는 전설이 있다.]
[몬스터 정보]
[명칭: 멸망을 인도하는 용 - 조르시카]
[체력: 98 마력: 77]
[힘: 23 민첩: 54 지능: 41]
[상세: 제99던전 ‘대격변 지대’의 던전 마스터 중 하나. 그들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모든 생명체가 멸망한다는 전설이 있다.]
…….
…….
그 뒤로 두셋 정도를 더 보다가 그만뒀다.
999번째 스캔에, 999번째 같은 결과. 직접 확인하고서야 미지근한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알던 그 용가리들 맞네.’
혹시나 이번엔 미래가 틀어졌을까 얄팍하게 기대했다만. 어림도 없었다. 딱히 기대를 안 해서 실망도 적다. 그나마 다행이다.
“스읍.”
나는 침음과 함께 눈을 슬쩍 들었다.
드래곤들의 행태를 가만히 주시했다.
―퀘아아아아악!!
높은 건물 사이를 제집 마냥 누비며 인간 사냥을 즐기고, 아파트나 상가건물을 통째로 들이받아 박살내고 있다. 그에 저항하는 세력은 실로 미약했다.
“머, 멈추지 말고 공격해! 일반인들 못 잡아먹게 막아!!”
“아, 안 됩니다! 무슨 짓을 해도 멈추질 않습니다!”
건물 옥상에 선 몇 명의 사람들이 드래곤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었다.
“으아아악! 이, 이런 X발!!”
“쏴! 쏴!! 죽여버려!!”
검이나 창 같은 냉병기부터, 미래적 디자인의 총을 든 사람도 있다. 거대한 드래곤과 대치한 행색이 사뭇 처량하다. 흡사 장수말벌에 대항하는 꿀벌 떼 같다.
나는 그들에게도 현자의 눈을 발동시켜봤다.
[인물 정보]
[명칭: 박강성]
[별칭: C급 헌터, 슬래셔, 글래디에이터]
[체력: 13 마력: 9 신체 상태: 정상]
[힘: 21 민첩: 9 지능: 5 포텐셜: 19]
[최종 전투력: 46]
[인물 정보]
[명칭: 김원율]
[별칭: C급 헌터, 마탄총 특등사수]
[체력: 15 마력: 4 신체 상태: 정상]
[힘: 12 민첩: 13 지능: 8 포텐셜: 11]
[최종 전투력: 51]
“아하.”
몇 명을 훑어보고 나직한 탄성을 흘렸다.
정체를 알았다. 사건 현장 주변에 있다가 그대로 비상 투입된 저급 헌터들 같다.
‘괜히 주변에 있다가 개피 봤군. 불쌍하게.’
내가 시선을 거두기 무섭게 푸직. 문득 질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
나는 소리가 난 곳으로 퍼뜩 눈을 돌렸다.
헌터 무리들 위로 드래곤이 착륙했고. 거대한 발에 깔려 세 명이 즉사한 상태였다.
“그… 어… 극.”
찌부러진 한 헌터의 입에서 얼빠진 단말마가 흘러나온다. 박살 난 두개골 사이로 내용물이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로테스크한 광경이다.
“어…….”
“아.”
살아남은 몇 명의 헌터들이 입을 쩍 벌리고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그곳에 착륙한 드래곤도 입을 쩍 벌렸다.
―키에에에에엑!!
그대로 벌린 아가리를 들이밀고 헌터들을 씹어 삼킨다.
“끄아……!”
으적!
사람 하나가 죽는 소리치곤 현실감이 없었다.
방금까지 마탄총을 들고 있던 C급 헌터, 김원율이라는 사람이 다리만 남기고 드래곤에게 씹어 먹혀 버렸다.
“으, 흐아! 으아아악!”
“후, 후퇴! 일단 후퇴해!!”
그제야 헌터들은 헐레벌떡 도망갔다. 무기도 팽개친 채 전속력으로. 지켜야 할 일반인들을 밀치고 밟아가며 목숨을 연명하려 애썼다.
그들은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씨, X발! 살려줘! 으아아악!!”
자기들은 수호자 입장이 아니다. 주변에서 아우성치는 일반인들과 자기 처지가 하등 다를 게 없다. 저 거대한 드래곤들에게 있어선 똑같은 완구. 좁쌀만 한 간식거리에 불과했다.
‘아직 거물 헌터들은 출동하기 전일 테고.’
그 모습을 보며 가만히 생각했다.
아마 코드 S에 준하는 비상사태가 발령됐을 거다. 그러니 앞으로 15분 내에는 웬만한 네임드들이 전부 모인다고 봐야 한다.
그러면 시간이 얼마 없다.
헌터와 언론의 이목이 몰리기 전에, 속전속결을 낸다.
‘헌터 협회에 내 힘을 발각당하고 싶진 않아.’
내가 힘숨찐이라 그런 게 아니다.
스파이더맨에서 그랬지. 강한 힘엔 강한 책임이 따른다고. 현실도 마찬가지다. 헌터들에게도 강한 힘이 있으면, 그만한 제약이 따른다.
일거수일투족이 논란이 되고 화제가 되니. 헌터 협회에서 태클을 사정없이 쑤신다.
‘헌터 협회는 귀찮은 족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 제약이 중요한 곳에서 굉장히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나는 헌터 협회의 힘을 빌리겠다는 생각을 일찌감치 접었다.
수십, 수백 번의 고배를 맛본 뒤 내린 결론이다.
‘애초에 이 참사도, 막으려면 막을 수 있었어.’
반론은 일절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모든 상황이 벌어질 것을, 나는 미리 알고 있었으니까.
‘회귀하자마자 테러 협박을 하는 게 정답이었던가.’
테러 협박으로 전자상가 일대에서 사람들을 전부 대피시키는 것. 이게 베스트 솔루션이다. 헌터를 비롯한 전문 수비 병력까지 초빙돼서 사망자가 가장 적게 나온다.
‘그 외에도 하려면 할 수 있는 일은 많았다.’
내가 뭐든 하면 많은 사람이 살아난다.
알고는 있지만. 500회차를 넘어간 뒤부터는 이번처럼 아무 작업도 하지 않았다.
왜?
‘귀찮아.’
이름 모를 엑스트라들 한 트럭 살면 어쩔 건데. 그래봐야 강수아의 생존과 이어지지 않는다.
‘그러면 애쓸 이유가 없지.’
나는 지금 인류애를 위해, 세계평화라는 대의을 위해 이 지랄 벌이는 게 아니다. 자선사업 하는 게 아니라고.
이 세상에서 딱 한 명의 인간. 수아를 살리고 싶은 거다.
―케에에에엑!!
그 순간. 앙칼진 포효가 시시각각 가까워졌다. 드래곤 한 마리가 멀뚱히 서있던 나를 포착했다. 까마득한 하늘에서 급강하하며 아가리를 들이밀고 다가왔다.
―키이이익!
눈처럼 하얀 비늘. 그리고 이마의 굵고 긴 뿔과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인상적인 드래곤.
분명 조르시카인가, 그런 이름이었을 거다.
“흐.”
나는 딱히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늦게 발견해줘서 섭섭할 정도다.
“이번엔 어떻게 요리해 줄까. 도마뱀아.”
그렇게 중얼거리며 허리춤의 파우치를 뒤졌다. 스르릉. 서늘한 금속음을 내며 붉은 보석 하나가 들려 나왔다.
하트 기어.
내가 999번째 전생에서 특전으로 가져온 S급 아이템이다.
‘전생에선… 제대로 성능 확인할 시간도 없었지.’
분명 써보긴 했다.
하지만 회차 막바지라서 성능 측정이 제대로 안 된 상태다. 최후에 붕괴한 던전 앞에서는, 아무리 강한 아이템과 스킬도 전부 무용지물이니까.
이 아이템도 그저 그런 구더기 아이템처럼 느껴졌다.
‘이번 기회에 제대로 사용해 보자.’
첫 던전 붕괴와 드래곤의 습격은 999번이나 똑같이 반복됐던 프레이즈. 이거만큼 객관적인 시험 지표가 또 없다.
나는 날카로운 보석의 끝을 내 가슴팍에 힘껏 내리꽂았다.
“흡.”
푸욱!
보석의 끝단이 셔츠를 뚫고 내 가슴을 뚫었다. 갈비뼈를 헤집고 심장에 맞닿는다.
그리고 다음 순간, 덜컹. 심장이 잠깐 멈춘다.
[아이템 발동: 하트 기어]
[생명력을 담보로 혈천갑을 소환합니다. 소비할 생명력을 결정하십시오.]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서서히 붉게 물드는 시야로 패널이 떠올랐다.
나는 지끈지끈 울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히죽 웃었다.
‘소비 생명력, 최대로.’
삐빅.
곧장 패널이 그 대답을 내놓았다.
[최대 생명력 중 50%를 환원합니다.]
파바바박!
곧장 하트 기어를 중심으로 붉은 기운이 몰아쳤다. 동시에 몸속에서 핏방울이 사정없이 뿜어져 나와 붉은 기운을 타고 흐른다.
“그으으……!”
그야말로 영혼이 강제로 뽑혀나가는 느낌. 나도 모르게 낮은 신음을 흘렸다. 그런 와중에도 삐빅, 패널이 계속 떠오른다.
[생명력 환원의 요구 조건을 충족하여, 혈천갑이 진정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찰나의 시간이 흐르자, 격렬한 혈폭풍이 서서히 뭉치고 정형화된다.
이내 검붉게 맨들거리는 핏빛의 갑옷이 내 전신을 둘러쌌고. 오른손의 손등 위로 붉은 사복검이 흐느적거렸다.
“후우.”
변신을 마치는 것과 동시에 삐빅.
패널이 떠오른다.
[하트 기어의 특수 스킬이 개방되었습니다.]
[스킬 상세 정보를 확인하려면, ‘하트 기어 특수 스킬 상세’를 영창하십시오.]
그건 필요 없다.
무슨 스킬이 들어있는지는 다 알고 있다. 전생에서 전부 써봤으니까.
나는 슬쩍 시선을 위로 돌렸다.
―케에에에엑!!
온 시야가 시커먼 그림자로 뒤덮였다. 어딜 쳐다봐도 드래곤의 이빨만 가득하다.
화이트 드래곤. 조르시카가 나를 삼키기 직전까지 접근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