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9번째 로그라이크 헌터-2화 (2/235)

2화

<1000번째 로그라이크 헌터(1)>

다음 날이 됐다.

회귀한 뒤 처음으로 한 일은… 해바라기 씨를 사는 거였다. 정확히 말하면 맨 처음은 한숨 때리는 거였고. 하루를 꼴딱 잔 뒤, 해 뜨자마자 한 일이 그거다.

“계산이요.”

펫 숍 카운터에 해바라기 씨를 툭 던져놓았다. 여직원이 잠깐 멀뚱하게 나를 쳐다봤고. 시선을 마주치더니.

“히익……!”

…하고 숨을 삼킨다.

손을 벌벌 떨던 그녀가, 허겁지겁 스캐너를 바코드에 갖다 댔다.

“사, 사, 삼천 원이, 이, 입니다.”

여자는 사시나무 떨듯이 온몸을 발발거리며 몸을 움츠렸다.

감히 시선을 마주치지 못했다. 두려움에 젖은 표정으로 내게서 필사적으로 멀어지려 하고, 죽을 것처럼 숨을 가쁘게 헐떡댔다.

“……?”

나는 영문 모를 행색에 고개를 갸웃거렸고.

“아.”

이내 나직한 탄성을 흘렸다. 상태를 보니 갑자기 왜 저러는지 대충 감이 왔다. 아차 싶어서 곧장 속으로 영창했다.

‘스킬 수라흉인 해제.’

그러자 삐빅.

익숙한 패널음과 함께 눈앞에 상태창 하나가 떠올랐다.

[스킬 ‘수라흉인’ 상시 발동을 중지합니까?]

‘중지하라고. 두 번 묻지 좀 마라. 새끼야.’

[토글형 스킬 ‘수라흉인’ 상시 발동을 중지합니다.]

스스스.

내 주위로 옅은 산들바람이 불어온다.

동시에 가게 전체를 무겁게 짓누르던 싸늘한 공기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푸흐으. 허억… 헉……!”

그제야 여직원이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이걸 두르고 있는 게 너무 당연해서 이런 스킬이 있다는 것조차 까먹고 있었다.

벌써 몇 번째 까먹는 거였지. 한 300번째 까먹은 것 같다.

‘역시 사람 참… 쉽게 바뀌는 게 아니네.’

치매에 가까운 건망증.

999번 회귀하기 전부터 가지고 있던 내 고질병이다. 그게 1000번이나 회귀가 반복됐더니 한층 더 심해졌다. 토할 정도로 반복되는 일상은 감정을 갉아먹고, 기억의 의미를 퇴색시킨다.

“저, 소, 손님?”

여직원이 나를 향해 어리둥절한 표정을 보내왔다.

공포심 반. 그리고 호기심이 반. 당신 대체 정체가 뭐냐고 묻는 면상.

“수고하십쇼.”

의문에 답해줄 이유는 없다. 인사만 박아준 뒤 가게를 나갔다.

‘이 스킬은 대체 무슨 메커니즘이길래, 회귀해도 온 오프가 바뀌질 않냐.’

다만 속으로 그런 불만을 잠깐 가졌다.

나는 눈앞에 떠오른 스킬창을 가만히 쳐다봤다.

[스킬 정보]

[스킬명: 수라흉인(修羅凶刃)]

[타입: 토글형/디버프]

[효과: 자신보다 전투력이 현저히 낮은 상대를 <공포> 상태에 빠지게 한다.]

[효력 범위: 반경 20m, 반구형 돔 형태.]

[상세: 제73던전의 던전 마스터 ‘무르무르’ 처치 시 선택 보상 중 하나. 나는 나보다 약한 자의 말 따윈 듣지 않는다. 상남자의 교양 필수 스킬.]

여직원이 공포에 질린 것은 이 스킬이 항시 발동 상태로 방치돼서다.

“흐음.”

스킬의 상세 설명을 읽다 보니 옛날 기억이 잠깐 떠올랐다. 설명란의 익살스러운 어투는 굉장히 지긋지긋하면서도, 아주 눈에 익다.

‘그 새끼 만난 지도 꽤 오래됐군.’

이 스킬의 원주인인 ‘무르무르’ 본인에 대한 기억이다.

놈은 귀여운 이름과 안 어울리는 외관의 괴물이다. 태산처럼 거대한 몸과 휘날리는 백청색 갈기. 날카로운 뿔 아래로 일렁이는 짙푸른 안광.

그리고 내 신장보다 거대한 이빨을 잔뜩 단 네발짐승이, 잠깐 눈앞에 아른거린다.

“흐.”

이번 생에는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미래를 추억하는 나라니. 상황 자체가 아이러니해서 웃음이 나왔다.

‘꽤 오랜만에 웃어봤네.’

마지막으로 언제 웃었더라, 그래. 998번 전생 때였다.

강수아가 ‘인천 앞바다의 반대말은? 인천 엄마다’라는 개그를 쳤었지.

솔직히 개웃겼다.

이걸 어떻게 안 웃냐.

* * *

사람의 평균 수명을 80세 정도라고 치자.

1년은 12달. 그러니까 한 인간의 일생은 960달. 대략 1천 달이다. 그리고 한 달을 1천 번 반복하면, 당연히 그것도 1천 달.

그러니 내가 회귀로 경험한 시간을 합치면. 대략 한 인간의 일생 정도가 나온다. 물론 나는 자살하거나 중간 리타이어한 회차도 많다. 그러니 적게 잡아 900달 정도 될 거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

“저기요, 오빠. 듣고 있어요?”

다만 이 회귀의 X 같은 점은, 1천 개월을 1개월 단위로 똑같이 반복한다는 점이다.

당신의 일생 중 최악의 순간이었던 한 달을 골라보자. 그걸 지금부터 죽을 때까지 계속 반복하는 거다.

나중 가서는 무슨 생각이 들 것 같은가?

“저기요~! 오빠! 정용 오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 같은 경우엔 점점 아무 생각도 안 들었다.

모든 것이 부질없게 느껴진다. 무언가 얻어도 전처럼 기쁘지 않고, 잃어도 슬프지 않다. 1천 번이나 반복돼 왔던 행동들은 기계처럼 타성적으로 변했다.

대가리와 팔다리만 달린 목석이 되어간다. 그것을 스스로도 느낀다.

“…….”

내가 곧 닥쳐올 재앙의 대비나 걱정도 없이, 지금 햄스터에게 해바라기 씨나 주는 이유.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아이 씨! 진짜!”

그 순간 빠악!

어깨에 둔중한 충격이 전해져 왔다.

“일부러 무시하는 거죠! 오빠!”

상념에 빠져서 안 들리던 지방방송이 드디어 귀에 꽂혔다. 나는 햄스터 우리에서 시선을 돌렸다.

“……?”

체구가 작은 장발의 여자 하나.

화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음.”

나는 아릿하게 울리는 어깨를 슬쩍 매만졌다. 아무래도 눈앞의 여자… 강수아가 자꾸 무시당해서 후려친 듯하다.

“아냐. 전부 듣고 있었어.”

태연하게 거짓말을 했다.

강수아는 입매를 비틀어 올렸다. 그리고 가소롭다는 양 비음을 흘렸다.

“흐응. 내가 뭘 물어봤는데요?”

거짓말이 5초 만에 발각될 위기에 처했다. 여기서 무슨 변명을 얼마나 조리 있게 지껄이든, 강수아는 화를 낸다.

잘 알고 있지. 이런 자잘한 대화조차도 숱하게 반복됐으니까. 이것도 반복돼온 패턴 중 하나다.

1천 번의 리바이벌이란 꽤 녹록지가 않다.

“미안. 사실 안 듣고 있었다.”

그래서 강수아가 가장 화를 덜 내는 선택지를 골랐다.

강수아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고. 이내 내 어깨를 불만스럽게 두들겼다.

“오빠는 왜 헌터가 됐냐고요. 뭔가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아아.”

다만 나도 직접 듣기 전까진 그녀가 뭘 질문할지 모른다. 이 타이밍에 강수아와 하는 대화는 회귀할 때마다 달라지기 때문이다.

‘몇 가지 베리에이션이 있었지.’

왜 헌터가 됐냐. 왜 햄스터를 키우게 됐냐. 무슨 생각을 그리 하냐. 백수도 아니면서 왜 매일 한가하냐. 기타 등등.

그리고 지금 받은 질문이 빈도 상으론 가장 많았다.

그래서 개인적으론 좀 실망스럽다.

“다 비슷하지 않겠냐. 돈이야, 돈.”

사실대로 말해줬다.

현재. 2031년 11월. 초겨울.

전 세계에는 1억 명에 달하는 헌터들이 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출현하는 ‘게이트’를 들락거리며 몬스터를 사냥하고, 각종 마법 아이템들을 발굴해 오는 이들이 자그마치 1억.

나도 그들 중 하나다. 최하위 랭크인 D급. 보잘것없는 잡졸 중의 잡졸 헌터.

“학교에서 배운 건 없고, 노가다보단 돈 잘 버니. 돈 벌려고 뛰어들었지.”

D급 헌터의 또 다른 별명은 ‘럭키 노가다’다.

위험도가 높고 몸도 빡세지만. 현대사회에 필수적인 수요가 있어서 라이선스 따기가 쉽고, 일확천금도 노릴 수 있다.

그래서 노가다 할 바엔, 목숨 걸고 헌터로 뛰어드는 놈들도 적지 않다. 나 역시 그런 시정잡배 중 하나였다. 이 한 달의 영원회귀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분명히 그랬다.

“흐응. 그렇구나.”

강수아는 특유의 큰 눈을 끔벅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녀의 납득한 표정을 지그시 주시했고. 이내 나도 고개를 마주 끄덕여 줬다.

“그래. 그런 거지.”

“생각보다 평범하네요?”

“평범하지.”

“좀 재미없다. 뭔가 대단한 사연이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럴 사람으로 보이냐.”

“조금은요?”

강수아가 조금 풀린 얼굴로 헤실거렸다. 오랜만에 나와 티키타카를 해서 즐거워진 모양이다.

참고로 나는 약 300번째 전생부터 소소한 취미가 생겼다. 바로 강수아의 여러 가지 표정을 수집하는 것이다.

“수아야.”

“응? 네?”

일부러 화를 돋우거나, 기쁠 만한 말을 골라서 한다. 그에 따라 달라지는 수아의 반응이 재밌다.

말하자면 표정 가챠다. 전에 잘 보여주지 않던 희귀 표정이 나오면 기분이 좋다. 지금에 와서는 거의 유일한 삶의 활력소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오늘부터 당장 세상이 멸망하기 시작한다 치자. 너 뭐가 하고 싶냐.”

그래서 이딴 개소리를 시도 때도 없이 지껄인다.

이 질문은 전생 동안 수백 번에 걸쳐서, 지겹도록 반복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강수아의 반응이 회차마다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여전히 자주 사용하는 편이다.

“며, 멸망이요? 푸흐흐! 아무튼 오빠는 가끔 진짜 미친놈 같다니까!”

이번의 강수아는 박장대소를 하며 나를 타박했다.

“오빠가 이런 사람이니까. 헌터가 된 배경이 궁금한 거죠! 참나!”

전생을 통틀어 가장 흔한 반응. 노멀 등급의 표정이다. 좀 실망한 나머지 한숨을 쉬었다.

“후우.”

덜그럭. 나는 자연스럽게 햄스터가 들어있는 우리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방 밖으로 나가 복도를 가로질렀다.

“어어? 오빠. 갑자기 어디 가요? 햄스터는 또 왜?”

내 갑작스러운 행동에 강수아가 당황해서 뒤따라왔다.

나는 계속 햄스터를 쳐다보고 있었다. 놈은 갑자기 자기를 둘러싼 세상이 덜컹거리자 안절부절못한다.

회귀를 처음 시작했을 때의 나 같다.

“햄스터 놔주러 간다.”

나는 툭 말했다.

얘는 확실히 내가 키우는 놈이었지만, 이름도 까먹은 지 오래다. 일말의 정도 남아있지 않다.

“놔, 놔줘요?”

내 뜬금 발언에 강수아가 눈을 조금 크게 떴다.

“갑자기 왜요? 지금까지 잘만 키워놓고!”

“그냥. 지금 그러고 싶어졌어.”

“그러지 마요! 가, 갑자기 서울 길거리 한복판에 놔준다고 그게 제대로 살기나 하겠어요? 분명 어디서 차에 깔려 죽기나 하겠죠!”

“철창에 갇혀서 쳇바퀴나 평생 굴릴 바엔. 하루라도 자유를 만끽하다 깔려 죽는 게 낫지.”

거침없이 대답했다.

무의식중에 햄스터를 나한테 대입한 것 같아서 좀 쪽팔렸다. 아직 나한테도 이런 갬성이 남아 있었군.

어떤 면에선 기쁘다.

“…뭐라고요?”

강수아의 인상이 대번 찌푸려졌다. 나를 쳐다보는 시선에 미약한 혐오가 들어있었다. 이해 못할 괴물이나, 사이코패스를 보는 듯한. 그런 시선이다.

‘약하군.’

업계포상의 시선에도 나는 실망을 감출 수가 없었다. 저거보다 훨씬 진득한 혐오의 표정도 받아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정용 내부등급 상 SSR급의 희귀한 표정. 지금도 잘 잊히지 않는 강렬한 순간이었다.

“당신… 이, 쓰레기야!”

몇 번째 전생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장소와 상황은 지금도 뚜렷하게 뇌에 박혀있다.

‘분명. 선릉역 1번 출구였을 거다.’

제66던전인 ‘미궁 던전 타르타로스’가 붕괴했다.

서울의 2호선 지하철역과 지하도를 중심으로 몬스터들이 창궐했다.

포식하는 몬스터를 피해 허겁지겁 올라오는 일반인들. 그들을 내 손으로 100명 가까이 찢어 죽였던 적이 있다.

꺄아아악! 아아악!

끄아아악! 미, 미친놈아! 저리 비켜!!

당연히 강수아를 살리기 위해서였다. 그때 내 진심 어린 충고를 안 듣고 바득바득 친구 만나러 갔다가, 선릉역에 갇혀버리는 강수아를 탈출시키기 위해서.

“왜, 왜 이러는 거야! 당신 미쳤어?!”

“살려줘! 제, 제발 살려줘!!”

그때 들었던 사람들의 비명도 아직 뚜렷하게 기억난다.

“사람 살려!! 살려줘어어어!!”

다른 사람들의 사지를 분질러서 몬스터들의 식사거리로 던져줬다. 포식하는 동안 무방비해진 괴물들 사이를 돌파해 나왔다.

그때는 내가 아직 많이 약할 때였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수아를 구할 수 없었다.

“당신이 그러고도… 그러고도 인간이야!!”

물론 칭찬이나 감사의 말은 듣지 못했다. 강수아는 증오에 찬 얼굴로 내 뺨을 마구 휘갈겼었다.

알고 한 행동이니 딱히 대미지도 없었다.

“이, 이렇게 살아봤자……! 다른 사람들을 희생해서 살아봤자! 무슨 의미가 있어요!!”

반대로 나는 묻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을 희생하지 않은 채 개죽음을 당하면. 그건 무슨 의미가 있지? 토할 정도로 반복한 네 죽음에는, 대체 무슨 의미가 있냐고.

그때 물어보고 싶었지만 못 물어봤다. 멘탈이 완전히 박살 난 강수아가, 즉시 날붙이로 자기 목을 찔러 자살해버렸으니까.

“아니 오빠. 진짜 놔주려고요?”

수아의 목소리 덕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내가 기어코 도심 한복판에서 햄스터 우리를 열자, 강수아가 만류했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어. 놔줄 거다.”

햄스터를 꺼내 아스팔트 위에 올려놨다. 햄스터는 빠르게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상황을 파악하는 듯하다.

“얍.”

내가 발을 한 번 쾅! 구르자 햄스터가 화들짝 놀라서 도망갔다. 순식간에 골목 어귀로 햄스터가 사라진다.

“와… 진짜, 알다가도 모르겠네. 이 오빠.”

강수아가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그러냐. 나도 그렇다.

999번을 반복했는데도 아직 너라는 여자는 잘 모르겠더라.

어떻게 행동할지는 알아도, 그 행동의 원리를 모르겠다고 해야 하나.

‘음. 여자는 어렵군.’

그런 실없는 생각이나 하고 있으려니.

삐이이익! 문득 핸드폰이 높은 울음을 토해낸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옆에서 강수아의 핸드폰도 미친 듯이 경고음을 토하고 있었다.

“어, 이건……!”

수아가 먼저 문자를 확인했고. 특유의 여유로운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나는 그 모습에 확신했다.

‘시작됐나.’

재난 문자다.

이번엔 타이밍이 전보다 살짝 빨랐다. 보통은 내일 정도부터 시작되는데 말이야.

강수아가 울먹이며 내게 핸드폰 화면을 들이밀었다.

“오, 오빠. 이거……!”

“일단 진정해. 배운 대로만 하면 돼.”

“으, 아… 네, 네!”

나는 안절부절못하는 강수아를 서둘러 우리 집으로 데려갔다.

저 문자는 분명 차원 게이트 대책 본부, 약칭 차대본에서 보낸 재난 문자다.

내용은 대충 이렇다.

게이트의 역류가 발생해 몬스터들이 서울 한복판에 쏟아지고 있다. 헌터들 출동할 때까지 대피소로 대피하든 집에 박혀있든. 알아서 잘들 살아남아라.

블라블라. 나불나불.

‘알지. 알아.’

이제 1천 번째 반복되는 문자다. 읽지 않아도 글자 하나 안 틀리고 똑똑히 기억한다. 앞으로 이틀에 한 번 꼴로 저 문자가 오다가, 2주쯤 후부터는 뚝 끊긴다.

연이은 게이트 붕괴로 전 세계가 쑥대밭이 되고. 한국의 경우 3주차쯤 되면, 정부 자체가 괴멸하기 때문이다.

“오, 오빠… 벼, 별일 없겠죠? 괜찮겠죠?”

아까까지만 해도 나를 괴물 보듯 하던 수아였다.

그런데 꼴에 내가 헌터라 그런가. 강수아는 내 소매를 꽉 붙잡고 물어왔다. 꽤 의지하는 모습이다.

“음.”

아쉽게도 나는 세상에 착한 거짓말이 없다고 생각한다. 거짓말은 근본이 악이다.

“…….”

그래서 침묵했다.

이제 전혀 괜찮지 않을 걸 뻔히 알고 있어서 그렇다.

“일단 진정하자, 수아야.”

다만 강수아가 진정할 수 있도록 소파에 앉혔다. 담요를 덮어준 뒤 냉수 한 잔을 줬다. 그리고 내가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위로를 해줬다.

“여기서 꼼짝 말고 있으면 괜찮을 거야. 알겠지?”

“으, 네, 네에. 오, 오빠. 아, 아무 데도 가지 말고… 여, 여기 나랑 꼭……!”

콰아아앙!

밖에서 무언가 폭발하는 소리. 흠칫 놀란 강수아가 베란다 밖을 쳐다봤다.

쿠구구구구……!

매캐한 연기와 흙먼지가 올라오며. 멀찍이 빌딩 숲 한 무더기가 폭삭 무너져 내린다. 무수한 비명 소리가 떨리는 공기에 뒤섞여 들려왔다.

꺄아아아악!

끄아악! 아아아악!!

수많은 사람들의 비명이 창밖으로 들끓는다. 놀이공원 한 복판에 있는 것 같다. 현실감이 좀체 없는 사운드였다.

“아, 아아… 흐흑……!”

강수아는 창밖의 광경을 보더니 눈물샘의 둑이 무너졌다. 하얗게 질린 얼굴. 담요에 고개를 떨군 채 하염없이 눈물을 쏟는 강수아.

나는 그녀의 뒷목을 슬쩍 어루만졌다.

“쉬고 있어라.”

파아앙.

내 손에서 옅은 청색광이 일었다.

풀썩. 강수아의 육체는 하릴없이 침대 위로 엎어졌다.

[스킬 사용: 슬립]

스킬로 재운 것이다. 이제 누가 업어가도 깰 일은 없다.

“어디…….”

나는 마지막으로 우리 집에 둘러쳐져 있는 이중, 삼중 배리어를 다시 한번 체크했다. 그게 끝난 직후엔 침대 아래를 뒤졌다.

스르릉. 검집이 없는 거대한 묵빛 대검이 들려 나왔다. 그것을 능숙하게 등에 동여매고 곧장 베란다로 향했다.

“가보자.”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중얼거린 뒤. 창문을 열고 난간을 박차고 뛰었다.

콰아앙!

발밑에서 공기가 폭발한다. 역류하는 유성처럼 하늘로 솟구쳐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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