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999번째 로그라이크 헌터>
‘영원회귀’라는 게 있다.
니체의 저서에 나오는 거란다. 사실 정확한 의미는 나도 잘 모른다.
그 말을 처음 알려준 것은 이웃집의 강수아였다. 철학과의 대학 새내기 여자. 그녀는 내 이해를 돕기 위해 이렇게 설명해줬다.
“쉽게 말하자면요. 오빠가 겪는 모든 사건들은, 무한한 시간 속에서 동일한 순서로 영원히 반복된다는 소리예요.”
저게 이해가 되는가? 나는 900번을 넘게 들었는데도 개 불알 빠는 소리 같다. 그러니까 더 쉽게 예시를 들어보자.
당신은 오늘 하루를 살았을 것이다. 공부나 일을 했을 수도 있고. 웹소설을 보느라 하루를 꼴딱 샜을 수도 있고. 중간에 게임을 했을 수도 있고. 아침 점심 저녁을 먹었을 수도 있고. 어쩌면 한 끼만 간단히 먹었을 수도 있겠다.
“그게 정용 오빠가 느끼기엔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유일한 오늘이지만요. 사실은 그 순간순간이 어디선가 무한히, 영원히 반복되고 있다고요.”
왜냐하면 유한한 우리의 인생과 달리, 시간은 무한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한하게 뻗어나가는 시간 속에서. 무한히 반복된 나의 일생 중 단 하나의 단면만을 인식하며 살고 있을 뿐이다.
이래도 뭔 소린지 모르겠다고? 사실 나도 그렇다. 그게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후후. 그러니까 하루하루를 후회 없이 살아야겠죠? 오늘 저희가 겪는 이 하루가 영원히, 무한하게 반복될 거니까요.”
아마 니체도 그런 교훈을 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강수아는 헤실거리며 사족을 덧붙였었다.
“그런데… 그런 건 갑자기 왜 물어보세요? 정용 오빠.”
167번째 2031년 12월 27일.
역겹게 반복되는 한 달 속에서. 강수아는 그렇게 말했다.
분명 그랬던 기억이 있다.
* * *
그리고 지금.
999번째 반복된 2031년 12월 27일.
오후 7시.
“오…빠.”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김없이 한국은 게이트에서 쏟아진 각양각색의 몬스터로 쑥대밭이 되었다. 그리고 강수아는 내 품에 안겨서 어김없이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걸로 꼬박 999번째 죽음이었다.
“미, 미안…해요.”
999번의 죽음을 겪는 와중.
강수아는 항상 나한테 사과하며 죽었다. 이번에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대체 뭐가 미안하다는 거지. 모르겠다. 999번 반복돼도 모르면 9999번 해도 모르겠지 싶다.
“…….”
나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할 말도 딱히 없고. 사과한 이유도 모른다. 그나마 남아있던 말주변도, 회귀를 반복하다 보니 나날이 일천해졌다.
“난 아무렇지도 않아.”
그래서 사실만 간결하게 전달해줬다. 실시간으로 차가워지는 강수아의 손을 슬쩍 쥐었다.
“네가 미안할 건 없어.”
전에는 답답한 나머지 뭐가 미안한 거냐고 캐물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어차피 강수아는 대답해 주지 않을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이번 생에선 물어보지도 않았다.
“…후후. 다행…이…….”
정확히는 대답해 주지 못한다.
그녀는 직후에 희미한 안도의 미소와 함께 숨을 거둔다.
“…….”
피투성이로 젖은 몸이 중력에 따라 축 늘어졌다.
강수아가 죽고 나서야 실감이 들었다.
‘끝났군.’
999번째 이 지랄을 반복한 나였고. 이번에는 999번째 실패를 했다.
강수아가 내게 미안할 이유라. 한 50번째 회귀 때까지는 분명히 있었다. 내가 그녀를 어떻게든 감싸려다가 같이 죽곤 했으니까.
‘하지만 이번엔 확실히 없었다.’
2031년 11월 27일부터 12월 27일까지.
인류의 멸망까지 일직선으로 치달리는 한 달의 카운트다운.
이걸 무려 999번 반복했다. 별의별 개지랄을 다 해봤다고 자부한다.
나는 붉은 번개가 몰아치는 심연의 하늘을 망연히 쳐다봤다. 그리고 주먹을 가만히 쥐락펴락 해봤다.
‘이걸로 확실히 알았다.’
발악하면 뭔가는 바뀐다. 확실히 내가 흐름은 바꿀 수 있다. 이번에도 전생과 비교했을 때, 변한 부분은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들은, 무엇 하나 바뀌지 않았지.’
999번이나 되풀이했다. 그 수많은 도전 동안. 단 한 번도 최후의 게이트 붕괴를 막아본 적이 없다.
스케일이 너무 큰가? 그럼 좀 작게 줄이자. 수아의 목숨 하나조차 지키지 못했다.
애초에 내가 구하고 싶은 건 세상이 아니다. 강수아였다. 오직 그것만을 위해서 999번이나 회귀를 반복했는데. 인류 멸망이라는 벽이 그 유일한 소원을 틀어막고 있다.
‘이 이상 돌아가는 게 의미가 있나?’
부정적인 생각들이 뇌리에 들어찬다.
서서히 좀먹듯이 잠식해 간다. 그런 내 절망을 포착한 듯이. 내 앞으로 패널이 하나 떠오른다.
[999번째 도전은 실패했습니다.]
[기억과 유물을 계승하고, 1000번째 도전을 실행합니다.]
시공 회귀를 통보하는 패널이다.
다시 한번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 지긋지긋한 지옥의 한 달을 반복해라.
그런 선고였다.
“…….”
처음 저 패널을 봤을 땐 신이 내려준 동아줄이라고 확신했지만. 지금에는 악마가 내민 손이 아니었나 싶다.
[회귀까지 남은 시간: 30초]
[계속 진행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멍하니 있자 그런 나를 질책하듯 또 다른 패널이 떠올랐다. 패널에 표기된 초시계가 빠르게 차감되어 간다.
나는 허탈하게 웃었고. 천천히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999번이다. 다음이면 1천 번째…….”
그렇게 중얼거린 나는 망설임 없이 패널의 버튼을 눌렀다.
‘예’라는 버튼이었다.
“…….”
999번이나 반복된 어리석은 선택을 나는 이번에도 골랐다. 왜냐고? 잘 모르겠다. 타성에 젖어서 습관적으로 누른 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오늘 하루를 후회 없이 살아야겠죠?”
다만 항상 이맘때가 되면,
167번째 생에서 강수아가 해줬던 말이 떠오르곤 한다.
999번이 아니라 9999번째 회귀가 돼도 절대로 잊지 못할 말.
니체의 ‘영원회귀’에 관한 목소리가 지끈지끈 울린다.
“오늘 저희가 겪는 하루하루가… 오빠에게 영원히 반복될 거니까요.”
정말 이번 생이 나의 최선이었을까?
나중에 정말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나?
어쩌면 지금까진 희망 한 톨조차 보이지 않았더라도. 다음엔 어쩌면. 다음에야말로 가능할지도 모르는 거 아니냐?
나는 최선을 다했다. 이쯤이면 됐다. 그냥 그렇게, 혼자 자위하고 있는 거 아니냐?
“돌아가… 돌아간다. 지금 당장.”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천성이 네거티브한 나조차 예스맨이 된다.
역시 나는 이런 현실은 받아들일 수 없다.
아니.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절대로.
피할 수 없으면… 그래.
즐겨야지.
[다음 회차로 계승할 유물을 선택하십시오.]
의문의 시스템도 곧장 다음 단계로 얘기를 진행시키고 있었다. 나의 굳건한 의지를 캐치한 듯하다.
‘…유물이라.’
나는 망설임 없이 손에 쥔 붉은 보석을 패널로 가져갔다. 우우웅, 짧은 울림과 함께 패널과 보석이 부르르 공명했다.
그리고 삐빅. 패널 위로 붉은 보석의 정보가 빼곡히 기재되었다.
[아이템 정보]
[명칭: 하트 기어(Heart Gear) (S급)]
[타입: 설치형/보조]
[효과: 생명력을 담보로 혈천갑(血天鉀)을 소환한다.]
[효력 범위: 신체 삽입 시 발동.]
[상세: 제12던전의 던전 마스터 ‘노스페라드’의 클리어 보상. 생명력을 소모하여 혈질(血質) 장비 ‘혈천갑’을 생성한다. 혈천갑의 공격력 및 방어력은 소비 생명력에 비례한다.]
999번의 모든 생에서 그랬지만. 이번 생에서도 한 달 동안 15번의 게이트 붕괴가 있었다.
이번 생에서 게이트 몬스터들을 막아내며 얻은 던전 아이템, 약 14개. 스킬이 19개. 그리고 약간의 추가 스탯.
그중에선 이게 가장 쓸 만한 계승품이었다.
‘아이템도 S급이 실존하긴 하는군. 성능은 잘 모르겠다만.’
S급 아이템을 얻은 건 999번의 도전 중에서 처음이었다.
적어도 다음 회차에 가져갈 만한 아이템이 있다. 그나마 운이 굉장히 좋은 회차라고 볼 수 있다.
얻은 게 세상 쓰레기 아이템뿐이면, 능력치나 스킬을 계승하고 끝났겠지. 999번의 경험상 아이템 계승에 비해 별로 효율이 좋지 않다.
[아이템 ‘하트 기어’를 선택합니까?]
“그래.”
나는 패널이 나오자마자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이 프레이즈도 999번째 해먹으니 지겨울 정도다.
“한번 해보자. 누가 이기나.”
이 말도 벌써 수백 번째다.
내가 뱉은 말이지만 스스로도 진부하게 느껴졌다.
[유물의 계승이 완료되었습니다.]
그리고 삐빅. 지긋지긋한 패널 생성음이 들려왔다.
999번이나 봐왔던 이번 생 최후의 패널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초인 ‘한정용’의 선택에 의해, 시간선이 역변합니다.]
파아앗!
시야는 새하얗게 명멸하기 시작했다.
몰아치는 하얀 파도에 정신까지 휩쓸려가는 듯한 느낌 속. 나는 그 패널을 부릅뜬 눈으로 끝까지 응시했다.
[2031년 12월 23일. 오전 3시.]
[2031년 12월 16일. 오후 2시.]
[2031년 12월 8일. 오후 8시.]
…….
…….
째깍째깍째깍.
패널에 기재된 시간대가 빠르게 역주행 한다.
정신이 아득해진다. 나는 현기증을 참기 위해 눈을 감았다.
“……!”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나는 다시 눈을 떴다.
[현재 시간선]
[2031년 11월 27일. 오후 2시.]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시간대를 알려주는 패널.
나는 입을 꽉 다문 채 손을 흔들어 그것을 물려버리곤 주변을 스윽 훑어봤다.
“…….”
한 달 전의 내 방 꼬라지가 시선 가득 들어왔다. 내 기억을 복사해 놓은 듯 고스란히 재현되어 있다.
아마 기억보다 눈앞의 풍경이 더 정확할 거다. 이건 진짜로 시간이 돌아온 거니까.
“후우.”
나는 우선 침대에 누워서 한숨 자기로 했다.
회귀하고 나면 언제나 피곤이 물밀듯이 쏟아진다. 이번 생도 예외는 없었다.
그렇게 1000번째 헌터 생활은, 낮잠으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