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호오, 저 분이 바로 작은 마님이신가.”
“옛적에 봤던 꼬마 아가씨가 어느덧 어엿한 숙녀가 되셨군.”
“허허, 어릴 적부터 공자님과 결혼할 거라고 말씀하시더니 결국 이루어지셨네.”
페네우스 가의 가신들과 북부 귀족들이 헤르윈과 루시아를 샅샅이 살폈다. 개중에는 루시아가 어릴 적 자주 공작저에 놀러 왔던 아이라는 걸 알아차린 사람도 있었다.
보통 같았으면 새로 등장하는 작은 마님을 탐탁잖게 여기겠지만, 아그네스 가문이 워낙 옛적부터 페네우스와 교류를 해서 그런가 반감을 가지는 사람이 현저히 적었다.
그렇다고 탐탁잖게 여기는 사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쯧, 툭 건드리면 쓰러지실 것 같군.”
“저런 몸으로 이 험난한 북부에서 지내실 수 있을지 모르겠네.”
그들은 한눈에 봐도 유약해 보이는 루시아가 거친 북부에서 버틸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여러 사람의 호의와 호기심, 시기, 질투 등이 한대 뒤엉킨 가운데에 두 사람은 주변의 압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히 하일과 스칼렛 앞에 섰다.
그리고는 동시에 허리와 무릎을 굽혀, 페네우스 공작에게 예를 다했다.
“헤르윈 페네우스. 11대 페네우스 가주, 하일 페네우스 님과 스칼렛 페네우스 님을 뵙습니다.”
“루시아 페네우스. 11대 페네우스 가주, 하일 페네우스 님과 스칼렛 페네우스 님을 뵙습니다.”
일어나란 듯 하일이 손을 내젓자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지하게 얼굴을 굳힌 그들을 보고 하일이 미소를 지었다.
공석은 물론이고 사석에서도 잘 웃지 않던 사람이 미소를 지으니 장내가 술렁였다.
“오늘 이 자리에서 나, 하일 페네우스는 북부를 지탱하는 페네우스 가문을 너희들에게 계승할 것이다. 페네우스 가문을 감당할 자신이 있느냐?”
“네, 어떠한 고난이 들이닥쳐도 북부의 대표로서 굳건한 모습으로 페네우스 가문을 지키겠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에 하일이 입꼬리를 올렸다.
“좋다. 혹시 이 계승에 불만이 있는 자가 있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이견을 제시하도록.”
헤르윈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직접 나서서 이의를 제기하는 멍청이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페네우스 가문과 척을 지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조용한 장내를 보고 하일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하일 페네우스는 오늘부로 공작위에서 물러나, 헤르윈 페네우스에게 가주 자리를 넘겨줄 것을 공표한다!”
몸이 오싹오싹해질 정도로 압박감이 느껴졌다. 하일이 자신이 달고 있던 가문의 표식을 헤르윈의 가슴에 달아주었다.
공작위를 무사히 물려받았다는 증표이자, 인장과도 같은 페네우스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물건이었다.
헤르윈은 이제 자리에서 물러난 하일을 꼭 껴안고는 뒤를 돌아,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을 훑어봤다.
“12대 페네우스 공작인 헤르윈 페네우스다. 앞으로 고단한 일이 있을 때나 즐거운 일이 있을 때나 그대들과 함께하며 민심을 헤아리고 평민과 함께 나아갈 수 있는 공작이 되도록 약속하겠네.”
곳곳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하일과 스칼렛, 제롬, 세인 등을 둘러보며 루시아도 박수를 쳤다.
평소에도 듬직했던 널찍한 어깨가 오늘은 더욱 넓어 보였다. 저 어깨에 얹어질 무거운 짐들을 같이 감내해야겠다고 루시아는 속으로 스스로 다짐했다.
엄숙한 가주 계승위가 끝나고 분위기가 한층 풀리며 연회가 시작되었다.
북부 귀족들만 모인 자리라 그런지 기 싸움이 다른 곳에 비해 그리 강하지 않았다. 다만, 북부 억양 특성상 화를 내는 것처럼 느껴지는 말투가 있어 저도 모르게 흠칫 떨게 된다.
“허허허! 부인, 혹시 저 기억나십니까? 어렸을 적, 사탕을 드린 적 있었는데 말입니다.”
“이 사람도 참! 주책맞게 뭐 하는 짓인가! 부인께서 놀라시지 않는가!”
루시아가 머쓱한 얼굴로 그저 허허 웃었다.
그녀는 현재 헤르윈과 함께 사람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들 모두 새로운 북부의 주인이 된 헤르윈에게 인사를 하러 온 사람들이었다.
처음엔 긴장하던 사람들도 어느새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헤르윈은 편하게 대하기 시작했고, 그중에서 몇몇 나이가 좀 있으신 사람들은 루시아에게 자신이 기억나지 않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8살 이후로 여름만 되면 공작가에 머물렀기에 확실히 안면이 있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기존에 스칼렛의 조언을 떠올리며 먼저 아는 체를 하지는 않았다.
특정 세력과의 친분을 내세웠다가는 나중에 의도치 않은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가주가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공작님. 여긴 제 여식, 유리안입니다. 전에 한 번 만난 적 있으시죠?”
“유리안 네이스 입니다. 공작님, 정말 오랜만에 뵙습니다.”
루시아는 철판을 깔고 나타난 부녀를 보고 눈썹이 꿈틀거렸다.
헤르윈과 함께 이곳에 나타났을 때부터 영애들이 애달픈 눈빛으로 헤르윈을 보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부모까지 대동하여 접근할 줄은 몰랐다.
‘아니, 아버지 쪽에서 먼저 얘기를 꺼낸 것일지도 모르지.’
겉으로는 루시아에게도 잘 부탁한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두 사람의 눈빛에는 은근한 기대감과 우월감이 숨겨져 있었다.
자신들이 루시아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헤르윈의 옆자리를 꿰찰 자신이 있는 건지. 남자는 은근하게 딸을 자랑하며 헤르윈과 엮으려고 했다.
꼬투리를 잡히지 않도록 교묘한 말투를 사용하는 터라, 나무랄 수도 없었다.
“네, 참으로 참한 딸을 두셨군요. 아직 약혼도 안 하셨다 하셨죠? 그렇다면 이곳에서 좋은 상대를 구하시면 되겠네요. 아니면 제가 영애에게 어울리는 근사한 남자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어딜 내 남자를 넘봐.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조용히 가라.
다분히 분노가 섞인 말이었다. 부녀의 얼굴이 얼어붙었고, 그와 반대로 헤르윈은 흐뭇함을 감추려 입술을 꾹 다물었다.
헤르윈은 멋대로 올라가는 입꼬리를 겨우 잠재우며 루시아를 더욱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거 좋은 생각이로군. 내 아내의 눈이 나보다도 훨씬 정확하다네. 참으로 현명한 아내를 두었지. 다른 사람과 비교도 안될 만큼 말이야”
알아들었으면 그냥 가. 난 아내 외에 다른 여자는 필요 없으니까.
두 사람 사이엔 빈틈이 없었다. 결국 네이스 영애가 얼굴을 붉히며 제 아비와 함께 자리를 떠났다. 두 사람이 뒤를 돌자마자 루시아는 얼굴을 굳히며 콧김을 내뿜었다.
“내가 바로 옆에 있는데 어디서 수작질이야.”
“화났어?”
“응. 앞으로 또 저러지 않으리란 법 없어. 너도 처신 잘해. 안 그러면 내가 확-!”
“확-! 뭐?”
“……확 본가로 내려가 버릴 거니까.”
“어이쿠, 그러면 안 되지. 나는 네가 없으면 하루도 못 살아.”
헤르윈이 웃음을 흘리며 루시아의 이마에 짧게 입을 맞췄다.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뽀뽀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번만큼은 가만히 있었다.
여전히 부루퉁한 루시아를 본 헤르윈은 의아했다.
“화 많이 났어?”
보통 같았으면 이미 풀렸어야 했다. 애초에 이런 수작질에 그리 화를 내는 타입도 아니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늘따라 유독 화가 잘 식지 않았다.
“몰라… 짜증 나…….”
울적한 목소리에 헤르윈은 당황하며 루시아의 어깨를 꼭 껴안으며 속삭였다.
“미안해, 루시아. 내가 진작에 쳐냈어야 했는데. 다시는 이런 일 없게 할게.”
“……응.”
“나는 오직 너 하나뿐이야. 사랑해, 루시아.”
루시아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헤르윈은 사랑한다는 말을 여러 번 읊조렸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가라앉았던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후우, 나 요즘 이상해. 감정조절이 내 마음처럼 되질 않아.”
“그래? 왜 그러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
헤르윈은 문득 루시아에게 미안해졌다. 제게 내색은 안 했어도 낯선 북부에 와서 이것저것 신경 쓰이는 것이 많았을 텐데 제 일이 바빠서 미처 마음 쓰지 못한 게 미안했다.
얼추 사람 상대하는 것도 마무리됐겠다 헤르윈은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루시아를 홀 구석에 마련한 휴식 공간에 데려갔다.
“잠깐 앉아서 쉬고 있어, 내가 음료라도 가져올게.”
평소 같았으면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얘기했을 텐데 오늘은 그저 그의 호의를 받고 싶었다. 저도 모르는 새에 피로가 누적된 모양이다.
‘몸이 조금 뜨거운 것 같기도 하고.’
목을 만지자 뜨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머리가 아픈 건 아닌데 묘하게 한기가 들었다. 루시아는 저 멀리 헤르윈이 다른 사람들에게 붙잡힌 것을 발견했다.
제게 빨리 오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주변에서 그를 놔주지 않았다.
“피곤하신가요? 안색이 별로 좋지 않으시네요.”
그때, 간드러진 목소리와 함께 조금 전에 상대했던 영애들이 다가왔다. 루시아는 서둘러 피곤한 기색을 지우고 밝은 미소를 지었다.
“네, 조금 피곤하네요.”
루시아의 말에 영애들의 반응이 나뉘었다.
“부디 몸조심하세요. 타지 사람들에게 북부의 날씨는 혹독하니까요.”
한쪽은 진심으로 걱정하는 눈치였고
“몸이 연약하신 것 같은데 힘드시겠어요. 그래서는 북부에 적응이나 잘하실 수 있을지…….”
다른 한쪽은 걱정을 빙자한 비아냥이었다. 특히 루시아의 몸이 약하다고 판단한 건지 감히 그녀의 몸 상태를 들먹이고 있었다.
호의적인 태도를 가진 영애들이 당황하며 서둘러 막으려 했지만, 그들은 쉴새 없이 입을 더 놀렸다.
“안색도 파리하시고, 벌써 지치신 걸 보면 체력이 약하신 것 같네요. 의사에게 검진이라도 받으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미리 건강 관리하셔야죠. 다른 사람도 아니고 공작부인이신데요. 대를 이으시는 게 가장 중요한 일 아니겠습니까.”
“영애! 지금 감히 누구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겁니까! 입 조심하세요!”
“사적인 감정을 감추지 못하시다니 어른스럽지 못하시군요.”
선을 넘는 이들에게 루시아에게 호의를 가진 영애들이 나직한 목소리로 나무랐다. 아무래도 임신을 운운한 치들은 헤르윈에게 마음을 가졌던 영애임이 틀림없었다.
사람이 너무 어이없으면 화를 내지도 못한다고. 딱 그 짝이었다.
루시아가 어처구니없는 눈빛으로 그들을 쳐다보자, 제 발이 저린 건지 괜히 헛기침을 하며 자리를 피했다.
“죄송합니다, 부인. 저자들을 대신하여 사과하겠습니다.”
남아있는 영애들 중 가장 영리해 보이는 여성이 고개를 조아렸다. 루시아는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영애가 사과할 일이 아니에요. 제 편을 들어주어 고맙습니다.”
얼굴이 밝아진 영애가 부끄러워하는 듯 볼을 붉혔다.
“여보.”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헤르윈이 음식이 담긴 접시와, 샴페인 하나를 들고 나타났다.
잠시 동요하던 영애들이 서둘러 허리를 굽혔다.
“이 사람들은……?”
“아, 잠깐 얘기를 나누고 있었어. 나랑 대화가 잘 통하는 것 같더라고.”
“흐음, 그래?”
헤르윈이 영애들을 위아래로 훑어보자, 그녀들은 딱딱하게 굳어있음에도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루시아에게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이 기쁜 모양이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부인이 먼 타지로 오게 되어 많이 적적해 합니다. 괜찮으시면 자주 놀러와서 루시아의 말 상대라도 해주세요.”
헤르윈도 마음에 들었는지 루시아보다 한발 앞서 그들을 공작성에 초대했다. 초대받은 영애들은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다, 당연하죠! 가문의 영광입니다!”
“저희야말로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의례적인 미소를 지은 헤르윈은 곧바로 루시아 곁에 앉았다.
“자, 여기. 아침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지? 네가 좋아할만한 걸로 갖고 왔어.”
영애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헤르윈은 오직 루시아만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접시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로만 가득 차 있었다.
“고마워. 안 그래도 배가 고프던 참이었어.”
베리 타르트를 보고 루시아는 군침이 돌았다. 안 그래도 요즘 신 것이 당기던데.
침샘이 폭발하기 전에 타르트를 입 안에 넣어 잠재웠다. 루시아가 세상 행복한 얼굴로 우물거리자 헤르윈이 꿀 떨어지는 눈빛으로 미소를 지었다.
한눈에 봐도 헤르윈이 루시아를 많이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샴페인을 마시려던 루시아는 뭔가 이상한 기분에 잔을 내려놓았다.
“왜? 다른 거 마시고 싶어?”
“음… 그냥 왠지 기분이 이상해서.”
다른 걸로 가져오겠다는 헤르윈을 서둘러 말리고 이번엔 다른 것을 집었다. 선홍빛이 도는 연어 음식이었다.
수도에서 자주 먹진 못했지만, 북부에 올 때 나름 즐겨 먹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먹는 음식인지라 기대감에 부풀어 있을 때-
“욱!”
갑자기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화들짝 놀란 헤르윈이 루시아의 어깨를 붙잡았고, 제일 놀란 루시아가 얼떨떨하게 있다가 다시 연어를 쳐다봤다.
“우욱!”
이번엔 속이 매스껍기 시작했다.
루시아는 저도 모르게 접시를 바닥에 떨구고 계속 헛구역질을 했다. 루시아가 고통스러워하자 헤르윈의 낯이 창백해졌다.
“의사! 당장 의사를 불러와!”
주변의 시선이 쏠렸다. 영애들이 놀란 눈으로 루시아를 쳐다봤고, 사람들 사이로 하일과 스칼렛이 달려왔다.
“왜 그러니!”
“아가, 어디 다친 게냐?”
“아뇨. 그게 아니라 갑자기 속이 울렁거려서… 욱!”
“루, 루시아 조금만 참아. 의사를 부르러 갔으니 곧 올 거야.”
헤르윈이 어쩔 줄 모르며 루시아의 주변을 서성이고 있던 때에 하일과 스칼렛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며 오묘한 눈빛으로 루시아를 쳐다봤다.
“아, 아가…….”
스칼렛의 목소리가 떨렸다.
“혹시… 달거리를 언제 마지막으로 했니?”
작은 목소리였지만, 주변이 워낙 조용해 또렷히 들렸다. 루시아는 너무 당혹스러워 주변 눈치를 봤다.
“어머님? 그건 갑자기 왜…….”
“부끄러워하지 말고 말해보렴. 중요한 일이야……!”
“어… 그러니까…….”
곰곰이 생각하던 루시아는 문득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예정일이 지났어요. 한 2주 정도 지난 것 같은데…….”
계승식 준비하느라 너무 바빠서 달거리를 넘긴 것도 미처 모르고 있었다.
“이, 이상하다. 단 한 번도 예정일을 벗어난 적이 없는데…….”
“왜? 그게 안 좋은 거야? 어머니, 루시아한테 큰일이 생긴 거예요?”
헤르윈이 이제는 거의 울 것처럼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스칼렛과 하일의 표정이 더할 나위 없이 환해졌다.
“세상에! 루시아!”
“아가! 네가 큰일을 했구나! 큰일을 했어!”
“네? 갑자기 무슨…….”
“아직도 모르겠어? 임신한 거잖니!”
스칼렛의 말에 루시아와 헤르윈 모두 순간 말을 잇지 못하고 말을 잃었다.
‘임신? 누가? 내가?’
루시아는 그제야 요즘 들어 제 몸이 바뀐 이유를 알아차렸다.
임신을 해서 그랬던 거였나?
“임신? 루시아가……?”
멍하니 임신이라는 말을 읊조리던 헤르윈이 몸을 떨며 루시아의 어깨를 잡았다. 루시아는 행복 그 이상의 기쁨으로 찬 표정을 볼 수 있었다.
“루시아!”
헤르윈이 단숨에 루시아를 들어 안고는 제자리에서 빙그르르 돌았다. 다른 사람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루시아는 제게 임신을 들먹이며 조롱하던 영애들의 낯이 창백해지는 모습과, 다른 사람들이 놀라워하며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게다가 저 멀리 의사가 하인들에 이끌려 헐레벌떡 달려오고 있었다.
그제야 이 모든 것이 현실로 다가왔다.
오늘 계승식에서 받았던 축하보다 훨씬 많은 박수와 축하가 주변에서 쏟아졌다.
루시아는 얼떨떨한 얼굴로 헤르윈 품에 안긴 채 배를 내려다봤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이곳에서 새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앞으로 파란만장한 생활이 펼쳐질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101번째 고백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