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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화 (123/129)

<123화>

피로연이 끝나고 드디어 결혼식도 막을 내렸다.

루시아는 보기 좋게 달아오른 얼굴로 헤르윈에게 기대며 웃음을 터트렸다.

“자! 가자! 또 마시러 가야지!”

“당장 마차를 대령하거라!”

루시아와 헤르윈의 뒤로 친구들과 루카스가 줄을 지어 나타났다.

그들 모두 피로연에서 와인과 샴페인을 딱 기분 좋을 정도로 마셨기 때문에 텐션이 올라가 있었다. 그리고 그건 루시아도 마찬가지였다.

헤르윈은 일전에 일주일 내리 술을 마신 이후로 금주를 선언했기에 정신이 멀쩡한 편이었다.

눈치 없는 친구 놈들이 드디어 부부가 된 저들을 배려하지 못할망정 훼방을 놓으려고 하자 헤르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야, 너희들 취했어. 추태는 그만 부리고 집으로 가.”

“가긴 어딜 가! 좋은 날이니 마지막까지 함께해야지! 안 그래?”

“맞아! 이대로 가긴 아쉬워!”

“안 가면 나 여기 드러누울 거야!”

취한 이들의 눈에는 화난 헤르윈의 표정이 들어오지 않았다. 오히려 웃음을 터트리며 당장 자리를 옮겨야 한다며 떠들어댔다.

“우리 저택으로 가자!”

안 그래도 잘 타고 있는 불길에 루시아가 기름을 쏟아 부었다. 아이들은 단번에 그녀의 말에 동의하며 마차에 하나둘 올라탔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에단을 데리고 갈게요.”

술을 못해 헤르윈처럼 유일하게 맨정신인 헬라가 얼어붙은 헤르윈에게 연신 사과를 했다. 그리고는 에단을 어떻게든 끌어내려 했지만, 가녀린 그녀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하아… 아닙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영애도 저희와 함께 가시죠.”

“네? 하, 하지만…….”

“저 혼자 도저히 저것들을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서 그래요.”

헤르윈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마차에서 광란의 파티를 보내는 친구들이 보였다. 그들과 한데 뒤엉킨 자신의 애인을 보고 헬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요. 그럼,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헬라가 마차에 올라타며 흥이 난 에단과 브라이언, 크리스틴을 달랬다. 헤르윈은 마차 문을 닫으며 마부에게 페네우스 저택으로 가라고 명령했다.

친구들의 마차가 먼저 떠나고 헤르윈은 자신의 마차에 올라탔다.

마차에는 루시아와 루카스, 아리스타, 그리고 헨리가 있었다. 여기도 다른 친구들 못지않게 잔뜩 들떠있었다.

“이 모습을 두고두고 볼 수 있도록 박제라도 하고 싶네.”

아직 학생 신분이라 술을 먹지 않은 헨리는 하나가 되어 노래를 부르는 세 사람을 향해 웃음을 터트렸다.

만약 그의 손에 수정구 하나가 들려 있었다면 정말 저 모습을 그대로 박제했을 것이다.

헤르윈은 한숨을 푹 쉬며 아리스타와 루카스 사이에 있던 루시아를 데려왔다.

“아아아~ 루시아 왜 데려가!”

“이제는 평생 네가 데리고 살 거잖아! 오늘 하루만 양보해!”

동생 바보 루카스와 아리스타가 합심하여 루시아를 돌려 달라 투정 부리기 시작했다. 애써 웃는 얼굴로 분노를 삼키는 헤르윈을 보고 헨리가 폭소했다.

“히, 헤르윈 이것 봐. 나 엄청 인기 많다, 그치?”

헤르윈의 속도 모르는 루시아는 자신이 인기 많다며 기뻐할 뿐이었다.

웃는 얼굴이 너무 귀여워 차마 화를 낼 수도 없었다. 루시아의 이마에 뽀뽀하는 것으로 타협을 보는 대신 헤르윈은 루카스를 쿡쿡 찌르며 아리스타와의 사이를 억지로 좁혔다.

두 사람이 서로 가까워지자 저절로 입을 다물었다.

처음 보는 광경에 헨리가 놀란 눈을 했다.

“이건 또 뭐야?”

“저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란다.”

“그럼, 사귀는 거야?”

“아니, 그건 아니고 서로 호감만 가지고 있는 단계.”

“아하.”

두 사람이 입을 다무니 마차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럼에도 루시아의 조잘거리는 입은 여전했다.

“자기야, 기분 상했어?”

다른 사람의 흥에 따라 텐션이 올라간 거지 사실 루시아는 그리 많이 취한 편은 아니었다.

그래도 알딸딸할 정도로 취하기는 했기에 헤르윈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평소보다 애교를 많이 부렸다.

당연히 헤르윈은 보기 좋게 넘어갔다.

“기분 안 상했어. 어차피 오늘만 날이 아닌데 뭐.”

“다행이다. 애들이 오늘 아니면 다시는 이렇게 모일 일 없을 거라고 해서 그랬어. 이해해줄 거지?”

“그럼, 당연하지. 속 울렁거리지는 않아?”

“응, 괜찮아. 그냥 조금 어질어질해.”

“이리 와.”

헤르윈이 루시아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감싸며 제 어깨에 기대도록 했다. 그에 루시아가 부스스 웃으며 헤르윈의 팔을 꼭 껴안았다.

사랑스러운 눈길로 루시아의 머리를 쓸어 넘기는 헤르윈을 마차 안의 모두가 보고 있었다.

특히 헨리가 못 볼 꼴을 봤다는 양 헤르윈을 보고 질색했다.

“뭘 봐.”

“으으- 형이 그러는 거 진짜 아무리 봐도 적응 안 된다. 언제부터 애교가 많았다고…….”

“너도 나중에 애인 생겨봐. 너라고는 안 그럴 것 같냐?”

“아무리 그래도 형은 너무 심해. 평소에는 잘 웃지도 않으면서.”

“그래도 예전보다 지금이 더 낫지?”

“뭐래.”

헨리가 자의식 과잉이라며 진저리를 쳤다. 페네우스 형제가 다투고 있는 사이, 때마침 목적지에 도착했다.

익숙한 페네우스 저택이었다.

앞서 먼저 도착한 친구들이 마차에서 내려, 시끄럽게 떠드는 것이 보였다.

“와아! 얘들아!”

다시 신이 난 루시아가 환호하며 밖으로 나가려 했다. 헤르윈은 루시아가 넘어지지 않게 그녀를 안곤 마차에서 내렸다.

잠깐 마차 안을 살핀 헤르윈의 눈에 루카스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는 아리스타가 들어왔다.

‘언제 저러고 있었던 거지?’

자신이 잘못 본 건가 싶어서 눈을 깜빡하는 사이, 아리스타의 머리가 어느새 어깨에서 떨어져 있었다.

“헤르윈, 뭐해?”

오히려 루카스가 왜 안 비키냐는 뉘앙스로 묻자 헤르윈은 자리를 비킬 수밖에 없었다.

“어, 미안…….”

‘내가 잘못 본 건가?’

헤르윈은 어느새 다른 친구들과 합류한 루카스와 아리스타를 지켜보았다.

두 사람에 대해 생각하던 것도 잠시, 루시아가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헤르윈은 루시아를 챙기며 술에 취한 망아지들을 집으로 들였다.

어느새 그의 머릿속에서 두 사람의 모습이 말끔히 지워졌다.

* * *

“푸흐흐!”

“왜 자꾸 웃어?”

“몰라 계속 웃음이 나와!”

헤르윈은 피식 웃으며 자신의 품에 얌전히 안긴 루시아를 내려다봤다.

현재 시각은 새벽 2시.

광란을 넘어 무아지경의 파티를 보낸 친구들이 어느덧 곯아떨어지고, 하나둘 대충 아무 방에다가 던져놓고 나서야 드디어 방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신혼여행을 보내고 곧바로 북부에 올라갈 생각이라 수도에 있는 저택에는 아직 루시아의 방이 따로 없었다.

그래도 루시아의 취향에 맞게 침구와 커튼 등을 바꾸어 기존에 헤르윈이 쓰던 방보다는 훨씬 화사한 느낌이었다.

“우와. 전이랑 완전 다른데?”

“가구는 손 안 대고 침구랑 장식만 좀 바꿨어. 마음에 들어?”

“응! 완전!”

루시아가 헤르윈의 품에서 내려와 방을 둘러봤다. 결혼식을 치른 것도 모자라 새벽 2시까지 친구들과 달리느라 이미 그녀의 다리에는 힘이 풀려 있었다.

루시아가 앞으로 고꾸라지기 직전, 헤르윈은 그녀를 번쩍 안아 들었다.

루시아가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며 헤르윈의 목에 매달렸다. 헤르윈은 제 목을 간지럽히는 숨과 머리카락을 느끼고 짙은 미소를 지었다.

헤르윈은 조심스럽게 루시아를 침대에 눕혔다. 루시아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배시시 웃었다.

“엄청 푹신푹신해. 꼭 구름 위에 있는 것 같아.”

“우리 자기가 많이 취했네. 평소에 하지도 않는 말을 다 하고.”

“하지만 사실인걸-”

취할 때면 나오는 루시아의 버릇. 말끝 늘이기가 시작됐다. 불현듯 귀여운 루시아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헤르윈은 하나둘 옷을 벗기 시작했다.

피로연에서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있어서 답답한 참이었다.

대충 티셔츠와 바지만 남겨둔 채 헤르윈은 루시아의 옷으로 손을 옮겼다.

“하하하! 간지러어-!”

헤르윈의 손이 닿기 무섭게 루시아가 간지럽다며 웃음을 터트렸다. 덩달아 웃으면서도 그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엉큼한 생각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대로 피로연 드레스를 입고 자기에는 불편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헤르윈의 손이 옷에 달린 리본과 단추를 하나둘 풀기 시작했다. 겨울이라 껴입은 옷이 많았다.

한 꺼풀씩 옷이 벗겨질 때마다 루시아의 웃음소리가 잦아들었다.

어느새 코르셋이 보이자 루시아와 헤르윈 모두 입술을 깨물었다. 두 사람 모두 끈끈하고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풀게.”

“응…….”

헤르윈은 긴장되는 손길로 코르셋을 조이고 있는 리본을 풀었다. 코르셋을 벗기려 하자 루시아가 자연스레 허리를 들었다.

이제 그녀가 입고 있는 것은 단 하나. 얇은 이너 원피스뿐이었다.

몸의 굴곡이 적나라하게 보이는 얇은 옷 위에 헤르윈은 조심스레 손을 올렸다. 루시아 입에서 뜨거운 숨결이 튀어나왔다.

“루시아.”

어느새 루시아의 위로 올라탄 헤르윈이 루시아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커다랗고 뜨거운 손에 얼굴을 묻던 루시아는 헤르윈의 부름에 속눈썹을 파르르 떨며 그를 올려다봤다.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속에서부터 뜨거운 열기가 올라왔다.

“헤르윈-”

루시아가 말끝을 늘이며 헤르윈 목에 팔을 둘렀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고 잠시간의 침묵 끝에 누구랄 것 없이 눈을 감고 입을 맞췄다.

버드 키스로 시작된 입맞춤은 점차 서로의 입이 열리며 진득하게 혀가 얽히기 시작했고, 분위기를 타자 숨쉬기 버거울 정도로 질척였다.

뜨거운 숨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깊고도 짧은 입맞춤이 끝나고 눈을 뜨자 촉촉해진 벽안이 보였다. 헤르윈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는 다시 한번 루시아의 도톰한 입술을 머금었다가 바로 밑으로 내려갔다.

턱에서 시작하여 목으로 내려가며, 잘록한 허리를 쓸어내렸다.

그러자 급히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듣기 좋은 소리라 생각한 헤르윈은 달큰한 목덜미의 향을 느꼈다.

그리고 처음 루시아와 키스했을 때처럼 조심스레 여린 살을 빨아들이고 살짝살짝 깨물었다.

잠시 뒤, 루시아의 하얀 목덜미를 보자 예쁜 선홍색 꽃이 피어올랐다. 헤르윈은 그것을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보며 손가락으로 쓸어내렸다.

“루시아, 괜찮…….”

들뜬 눈으로 루시아에게 괜찮냐고 물으려던 헤르윈은 순간 얼어붙고 말았다.

색색-

루시아가 어느새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헤르윈은 지금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아니, 저만 흥분한 게 아닐 텐데 어떻게 3분도 되지 않아서 잠을…….

“으음, 헤르윈-”

루시아가 잠꼬대를 하며 뒤척이자 달큰한 와인향이 풍겼다. 그렇게 제 주량을 넘어서 마시더니 기어코 잠이 들고 만 것이다.

헤르윈은 입을 오물거리는 루시아를 허망하게 내려 보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하, 하하…….”

너무 어이없어서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허탈한 웃음을 터트리던 헤르윈이 곧바로 루시아의 위에서 내려왔다. 그리고는 마른 얼굴을 쓸어내렸다.

“설마, 결혼 첫날밤에 손가락만 빨게 될 줄이야.”

어디서 잘못된 걸까? 루시아가 계속 술을 들이켤 때 말리지 못한 것? 들뜬 친구들을 진정시키지 못한 것?

“애초에 그놈들을 데리고 왔으면 안 되는 거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 모든 일의 근원은 2차를 가야 한다고 진상을 부리던 친구놈들이었다.

헤르윈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으로 친구 놈들에게 어떻게 복수할지 고민했다.

“응… 추워…….”

그때, 루시아가 헤르윈의 허리에 파고들며 투정을 부렸다. 헤르윈은 찬기 하나 들어갈 수 없게 두툼한 이불을 꼼꼼하게 덮어주었다.

그제야 찌푸려졌던 그녀의 미간이 펴졌다. 그걸 보고 미소 짓던 헤르윈은 천천히 고개를 밑으로 내렸다.

“……이건 어떡하지?”

헤르윈은 짙은 한숨을 내쉬며 외로이 욕실에 들어갔다.

그리고 내일 있을 신혼여행에 이 모든 것을 만회하리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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