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헤르윈 같은 거 흐으으, 완전 시러어어…….”
원망이 뒤섞인 울음은 끊이지 않았다.
새, 다람쥐, 토끼 등. 산에서 서식하는 동물들이 우는 루시아를 빤히 쳐다봤다. 그러던 도중 동물들의 귀가 일제히 뒤로 돌아갔다.
동물들은 모두 하나같이 무언가를 발견하고 후다닥 도망치기 시작했다.
으르르-
지척에서 낯선 울음소리가 들렸다. 루시아는 울음을 그치고 뒤를 돌아봤다.
“어, 어……?”
흐린 시야 사이로 갈색빛의 거대한 무언가가 보였다. 눈물을 닦자,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드, 들개?”
루시아에게 접근하는 것은 바로 숲속을 떠돌아다니는 들개였다.
어른 기준에선 중대형밖에 안 되는 크기지만, 8살밖에 되지 않은 루시아에게는 마치 늑대처럼 무섭게 느껴졌다.
컹! 컹! 으르르-!
“어, 엄마…아빠…….”
다리에 힘이 풀린 루시아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엉덩이를 뒤로 물리는 게 고작이었다.
개는 당장이라도 눈앞에 있는 아이를 해칠 것처럼 이빨을 드러냈다.
풀 위로 뚝뚝 떨어지는 침조차 소름 끼치도록 무서웠다.
으르르, 크왕!
루시아는 반사적으로 두 팔로 머리를 보호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깨갱-깽!
그러데 돌연 개의 신음이 들렸다.
감았던 눈을 뜨니, 방금 전까지 코앞에 있던 개가 쓰러져 있었다.
“루시아한테서 떨어져!”
“헤, 헤르윈……!”
루시아가 왔던 길목에서 헤르윈이 씩씩거리며 제 주먹만 한 돌을 들고 있었다.
마침 개가 쓰러진 곳에도 큰 돌이 하나 있었다.
퍽!
헤르윈이 다시 한번 들개에게 돌을 던졌다. 개는 재빠른 몸놀림으로 돌을 피했다.
“루시아한테서 떨어지라고!”
헤르윈이 이번엔 허리춤에 매달린 목검을 꺼내 들었다.
헤르윈이 검을 치켜들고 달려들자 깜짝 놀란 개가 뒤로 주춤 물러섰다.
개가 루시아에게서 멀어짐과 동시에 헤르윈은 서둘러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검을 다시 그러쥐며 루시아 앞을 막아섰다.
축축이 젖은 루시아의 푸른 벽안이 눈앞에 있는 등을 바라봤다.
어른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어린아이의 왜소한 등인데도 그것이 아버지인 요한만큼이나 거대하게 느껴졌다.
루시아는 검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작은 뒤통수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겁을 먹었던 개는 자신이 쉽게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지 어느덧 다시 이빨을 드러내며 두 아이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헤르윈은 남들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괜찮아, 해낼 수 있어.’
그동안 폼으로 검술을 배워온 것이 아니다. 아버지도 제게 재능이 있다고 칭찬하지 않았던가.
헤르윈은 자신의 능력을 믿고 붉은 눈을 부릅뜨며 떨어져 있는 개를 노려봤다.
크와앙!
개가 높게 도약하며 날카로운 이빨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헤르윈은 일말의 동요도 보이지 않고 목검을 치켜들었다.
퍽! 깨갱!
다행히도 헤르윈이 휘두른 목검이 제대로 공격에 성공했다.
얼굴을 맞은 개가 바닥에 한바탕 뒹굴었다.
개의 머리에서 피가 주르륵 흘렀다. 충격에 비틀거리던 개의 눈빛이 순식간에 돌변했다.
개가 다시 한 번 위협적으로 달려들었다.
“크윽!”
“헤르윈!”
개가 입을 쩍 벌리며 헤르윈 위로 올라탔다. 목검이 없었더라면 아찔한 상황이 펼쳐졌을 것이다.
컹! 으르르! 컹컹!
날카로운 이빨이 목검을 개껌 씹듯 물기 시작했다. 개는 헤르윈의 목을 노리며 점점 강한 힘으로 압박해왔다.
폭주하는 짐승의 힘을 8살인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웠다.
여기서 물러서면 자신뿐만 아니라 루시아도 크게 다친다는 것을 알기에 헤르윈은 이를 악물고 바로 앞에 있는 개를 노려봤다.
주저앉은 루시아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혹시라도 헤르윈이 다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루시아는 서둘러 주위를 둘러봤다. 그때, 그녀의 시야에 헤르윈이 던졌던 돌이 들어왔다.
루시아는 엉금엉금 그쪽으로 기어가 재빨리 돌을 주웠다. 그리고 자리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야아아!”
루시아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당연히 개의 시선도 루시아에게로 돌아갔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당장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았지만 루시아는 제 손에 쥔 돌을 놓지 않았다.
“헤르윈 괴롭히지 마!”
루시아가 눈을 질끈 감으며 돌을 있는 힘껏 던졌다.
헤르윈만큼이나 강한 힘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가까운 위치에 있어서 돌은 개의 머리에 적중했다.
켕!
짓누르던 힘이 약해지는 틈을 타, 헤르윈은 재빨리 검을 휘둘렀다.
옆구리를 제대로 얻어맞은 개가 물러서자 그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개의 기색이 많이 누그러졌다. 계속 얻어맞기만 하니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개는 절뚝거리는 몸으로 루시아와 헤르윈을 힐끔 쳐다보다가 줄행랑쳤다.
“헉, 허억, 헉…….”
혹여나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싶어 개가 도망친 곳을 계속 주시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제야 안도한 헤르윈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뒤를 돌았다.
“루시아, 괜찮아?”
“으, 으우… 헤르윈.”
루시아가 훌쩍이다가 헤르윈에게 안겨들었다.
“나, 나 무서웠어……!”
“그러게 내가 깊숙이 들어가지 말랬잖아. 여긴 들개보다 위험한 짐승이 있다고.”
“훌쩍, 킁, 으응…내가 자, 잘못했어…….”
루시아가 헐떡거리며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부드러운 갈색 머리카락이 헤르윈의 볼을 간지럽혔다.
처음 들개 앞에 놓인 루시아를 목도했을 때, 철렁 내려앉았던 심장이 어느덧 제자리를 되찾았다.
긴장이 탁 풀리자 헤르윈은 루시아처럼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녀 앞에서 꼴사나운 모습을 보일 수 없어 울지 않도록 최대한 애를 썼다.
“다시는 혼자서 숲에 들어가지 마. 알겠지?”
“응, 으응!”
“그리고 자, 이거.”
헤르윈이 루시아의 눈물을 손수 닦아주며 주머니에 넣어둔 것을 들이밀었다.
“어? 네 잎 클로버…….”
“너 가고 나서 찾았어. 이거 줄 테니까 이제 울지 마.”
“나 주는 거야?”
“……그야 나 때문에 숲에 들어간 거니까.”
물기 가득한 눈과 마주하게 된 헤르윈이 얼굴을 붉히며 괜히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러면서 그는 네 잎 클로버를 루시아의 손에 올려놓았다.
네 잎 클로버는 당장이라도 이파리가 떨어져 나갈 것처럼 시들시들했지만, 루시아의 눈에는 그 무엇보다도 소중했다.
“헤, 헤헤…….”
루시아가 다시 웃음을 되찾자 헤르윈은 슬쩍 그녀를 훔쳐봤다.
“자, 이제 가자.”
“킁, 응!”
두 사람은 손을 꼭 잡고 숲을 빠져나왔다.
꽉 맞잡은 손이 땀으로 축축했다. 불쾌하여 뿌리칠 법도 한데 그 누구도 맞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자칫 놓치기라도 할까 서로의 손을 꽉 맞잡았다.
* * *
무사히 뒷산에서 내려온 아이들이 공작성에 도착하자 성이 한바탕 뒤집어졌다.
“세상에! 헤르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둘 다 옷이 왜 그래?”
헤르윈과 루시아의 옷은 흙과 풀물로 엉망진창이었다.
루시아는 엉덩방아를 찧은 것이 전부라 비교적 양호했지만, 헤르윈은 개와 한바탕 바닥에 뒹굴었기에 옷뿐만 아니라 얼굴과 머리까지 흙으로 뒤덮인 상태였다.
한눈에 봐도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암시했다.
“넘어지기라도 한 거니? 그런 것치고는 상태가 조금 이상하기는 한데…….”
“개랑 싸웠어요.”
스칼렛의 물음에 헤르윈이 당당하게 말했다.
“뭐?”
“들개가 루시아를 위협하길래 제가 무찔렀어요.”
차마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거짓말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두 아이의 얼굴이 너무나도 진지했다.
“어디 크게 다치지는 않았니? 개한테 물리지는 않았고?”
스칼렛이 조심스레 헤르윈의 얼굴을 닦으며 물었다.
“저는 괜찮은데…목검이 망가졌어요.”
목검은 날카로운 이빨 자국과 함께 온갖 스크래치로 가득했다.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전까지 아이들의 믿지 못했던 어른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스칼렛은 미처 말을 잇지 못했다. 제 아들이 대견하면서도 자칫 크게 다칠 수도 있었단 사실이 두려움을 몰고 왔다.
“일단, 다친 곳이 있을 수 있으니 의사한테 검진을 받아보자꾸나.”
“네.”
스칼렛이 서둘러 사용인들을 움직여 의사를 부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사이, 줄리안이 루시아에게 상태를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마저도 들리지 않는 듯 헤르윈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헤르윈!”
그러던 도중 루시아가 헤르윈을 있는 힘껏 불렀다.
“나 헤르윈이 제일 좋아! 그러니까 헤르윈이랑 꼭 결혼할 거야!”
루시아의 폭탄 발언으로 인해 소란스러웠던 홀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헤르윈과 루시아가 다쳤다는 소식에 황급히 달려오던 하일과 요한, 옷을 새로 갈아입은 루카스와 헨리, 그 외의 사용인들까지.
모두 말을 잇지 못하고 루시아를 쳐다봤다.
그녀는 이전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사랑이라는 감정을 맑은 벽안에 훤히 드러내며 얼굴을 붉혔다.
“허…….”
루시아를 살피던 줄리안이 허탈한 소리를 내뱉었다.
모든 사람이 당황한 와중에도, 그 발언에 가장 동요한 사람은 바로 헤르윈이었다.
그는 불과 몇 분 전만 해도 볼 수 없었던 감정이 자신에게 향해 있다는 것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쿵, 쿵, 쿵.
루시아의 고백을 받아서 그런 것인지 조용했던 심장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헤르윈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려던 찰나 그의 시야에 저 멀리 서 있는 아이들이 들어왔다.
수군, 수군.
가신의 자제들이 루시아와 헤르윈을 보고 저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쿵, 쿵, 쿵……!
이번엔 다른 의미로 심장이 쿵쾅거렸다. 간질거렸던 감각은 어느덧 울렁거림으로 변질되어 불쾌감과 공포를 몰고 왔다.
한 번 그들을 의식하고 나자 주변에 있는 어른들의 눈빛이 모두 자신에게 향해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속이 메스꺼웠다.
빨갛게 달아오르려던 헤르윈의 낯빛이 삽시간에 창백해졌다.
“나, 나는 싫어!”
헤르윈은 루시아의 고백을 거절하고 황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당혹스러움으로 경직됐던 분위기가 이제는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사용인은 자신들의 숨소리가 거슬릴까 싶어 숨 쉬는 것도 잊은 채 루시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느닷없이 공개 고백한 루시아도 루시아지만, 헤르윈의 공개 거절도 분위기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루시아, 괜찮니?”
줄리안이 루시아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긴장한 채 작은 아가씨를 지켜봤다.
분명 울고 말 터…….
루시아가 우는 타이밍만을 재던 어른들은 시간이 지나도 조용하기만 한 아이의 모습에 의아해했다.
“……루시아?”
놀랍게도 루시아는 모든 사람의 예상을 뒤엎었다.
그녀는 거절당한 상황에 그리 슬퍼하지도, 창피해하지도 않았다. 그저 헤르윈이 사라진 곳을 멀거니 지켜볼 뿐.
다소 당황스러운 상황임에도 루시아는 울상짓기보단, 무언가 굳게 결심한 듯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엄마, 씻으러 가요.”
“어? 괜찮겠니……?”
“네! 저 씻어야 한다면서요. 얼른 가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루시아는 줄리안의 손을 잡고 계단으로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