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3
63장 기동요새가 모습을 드러내다(3)
연합 함대를 구성하는 선원 대부분이 무한의 군단 소속으로 편성된 만큼, 결원을 보충하기 위해서는 검은 마정석의 수급이 중요했다.
그래서 현준은 전투가 끝나기 무섭게 가장 먼저 비행선단과 지상군 주둔지의 잔해를 수색하여 검은 마정석을 최대한 끌어모을 것을 명령했다.
그 결과 적지 않은 수의 검은 마정석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었고 이는 기동요새를 유지하고 보수할 승무원들과 전투부대를 무한의 군단에서 새롭게 영구 소환하는 데 쓰였다.
현준의 명령을 받은 레비앙이 기동요새의 참모이자 실질적인 지휘관으로 배치되었고 기존 가디언의 지휘는 ‘인형’이 맡게 되었다.
하스웰이 남은 전력을 끌어모아 움직이고 있을 때, 연합 함대는 제7침략군단의 주력군과의 전투로 인해 발생한 손실을 복구하기 위한 보수 작업과 기동요새의 지휘 훈련이 한창이었다.
“어때? 할 만해?”
휴식을 끝낸 현준은 지휘탑을 찾았다. 지휘 및 통제 술식들을 펼쳐놓고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레비앙의 모습이 보였다.
“술식이 복잡하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진 것 같습니다.”
“역시 레비앙이야.”
“저를 칭찬하시는 것보다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뭐지?”
지휘탑의 장교에게서 따뜻한 커피를 건네받으며 현준이 물었다.
레비앙의 표정은 나름 심각했다. 그는 바로 앞의 커다란 모니터에 마력 레이더 화면을 띄우며 입을 열었다.
“공전형 골렘 편대 3개에 탐색 술식을 각인시켜서 정찰을 보냈습니다.”
“적의 정찰대인가?”
마력 레이더를 보면 전투기 편대와 조우한 기록이 있었다. 그런데, 그 빈도가 잦았다.
“조금 문제가 될 수도 있겠네.”
“적의 정찰대 운용이 공격적입니다. 근처에 본대가 매복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현준의 중얼거림을 들은 레비앙이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본대의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걱정보다는 호기심이 묻어 나왔다.
얼마 전에 있었던 전투에서 최대 전력의 3할밖에 작동하지 않은 기동요새가 크게 활약했으니, 이제 승무원이 절반 이상 채워져서 성능 대부분을 갖춘 상태에서 얼마나 더 활약할 수 있을지 기대됐다.
“얼마 전의 전투에서 보았던 적들보다는 규모가 있을 겁니다.”
“우리도 정찰대를 공격적으로 전개한다. 적의 위치를 먼저 파악하고 배후를 점한다.”
“실행하겠습니다.”
그날, 추가로 제작된 공전형 골렘들까지 모두 동원하여 정찰 비행을 전개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제7침략군단의 본대를 찾아낼 수 있었다.
“찾았습니다.”
지휘탑에 입장하기 무섭게 레비앙이 보고했다.
“정확한 위치는?”
“마력 레이더에 표시해두었습니다.”
이윽고 현준의 시선이 마력 레이더로 향했다. 레비앙의 말대로 적들의 정확한 위치가 표시되어 있었는데, 기동요새와 연합 함대가 부유 중인 지역과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후방을 장악할 수 있을까?”
현준의 물음에 레비앙은 술식 자료를 검토하더니 곧 입을 열었다.
“기동요새의 고등 은폐 술식을 사용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진행해.”
레비앙이 장담했다. 현준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계획의 진행을 지시했다.
고등 은폐 술식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순간부터, 마력의 소모는 범상치 않아 보였기 때문에 굳이 따져 묻지는 않았다.
“그럼, 뒤를 잡아보겠습니다.”
레비앙이 말했다. 곧 기동요새를 필두로 연합 함대가 제7침략군단의 후방을 점하기 위해 우회를 시작했다. 그러나 제7침략군단장을 맡고 있는 하스웰 또한 바보는 아니었다.
그는 공격적으로 정찰 편대를 운용 중이었고 곧 연합 함대가 모습을 감췄다는 걸 확인했다.
기동요새의 고등 은폐 술식 때문에 위치를 특정하지는 못했지만, 후방이 위험하다는 건 예상하고 경계를 강화했다.
“어떻게 할까요?”
후방 경계가 며칠째 삼엄하다. 레비앙은 지휘탑을 찾아온 현준을 보며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후방 경계가 강화되었으니, 이대로는 뒤를 점하고 있는 의미가 크게 없습니다.”
레비앙의 말에 현준도 눈살을 찌푸렸다.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아서 답답했다. 하지만 이대로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전생의 홀과는 달리 이곳은 시간이 흘러가는 곳이었으니까.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어.”
“공격을 감행합니까?”
레비앙이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현준은 고민했지만, 시간을 더 지체한다고 해서 해결 방법이 나올 것 같지도 않았다.
“공격한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현준은 곧바로 결정을 내렸고 기동요새가 가장 먼저 움직였다.
유지하고 있던 고등 은폐 술식이 해제되면서 기동요새와 연합 함대가 하스웰의 제7침략군단의 후방에 모습을 드러냈다.
“후방에 적 출현!”
“대응한다!”
후방 경계를 삼엄하게 유지하고 있었던 만큼 제7침략군단에서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연합 함대를 보고도 당황하지 않고 곧바로 대응했다.
후방의 전투선들이 일제히 반전하면서 포격을 시작했다.
“기동요새 앞으로.”
현준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7침략군단에는 재앙급 신격의 경지에 오른 하스웰이 있다.
그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마력을 아껴야 하기 때문에 현준은 기동요새의 지휘탑에서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하스웰이 나서거나 전황이 연합 함대에 불리하게 진행된다면 직접 나설 생각이었다.
기동요새는 견고한 실드와 막강한 마동포 화력을 내세워 적진으로 파고들었다. 전후좌우, 사방의 성벽에 설치된 마동포가 일제히 불을 내뿜을 때마다 수십의 전투선이 검붉은 화염을 내뿜으며 격추당했다.
제7침략군단의 본대가 보유하고 있는 비행선의 수는 많았지만, 기동요새 하나를 감당하기에도 벅찬 수준이었다.
전함 가디언과 연합 함대의 순양함들까지 가세하니, 전황은 점점 제 7침략군단에게 불리하게 진행되었다.
“내가 나서겠다.”
군단지휘선의 함교, 하스웰은 부관에게 직속 특전대를 준비시킬 것을 명했다.
본인이 직접 군단의 직속 특전대를 이끌고 참전할 생각이었다. 이윽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군단지휘선에서 하스웰과 수백의 인베이더가 쏟아져 나왔다.
“적의 군단지휘선에서 다수의 전력이 사출되었습니다!”
지휘탑의 장교가 거친 목소리로 보고했다. 현준은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그는 지옥참마도를 챙겨 들고 밖으로 뛰어내리며 신격의 힘을 해방했다.
황금의 날개가 펼쳐지고 강력한 기운이 퍼져 나갔다. 뒤이어 플레임과 태민, 소진, 그리고 사혈과 사혁이 지휘하는 친위대가 합류했다.
“단숨에 돌파한다.”
현준은 차갑게 내뱉음과 동시에 시든밀러의 초월검을 사용했다.
해방된 신격의 힘이 더욱 강력해지면서 일시적이지만 재앙급 신격의 경지에 올랐다.
일순간 폭발한 기운에 인베이더들이 주춤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현준은 적들에게 파고들었다.
뒤늦게 인베이더들이 무기를 들어 올렸지만.
-리퍼의 잔혹한 살의가 깨어납니다. 치명적인 살기의 일부가 해방됩니다. 살아있는 존재라면 본능적인 두려움을 피할 수 없습니다.
폭발하듯 터져 나온 살기의 폭풍에 주.
위에 있는 인베이더들의 몸이 돌처럼 굳었다.
-듀렌달이 당신과 함께합니다. 찬란한 광휘가 정의로운 검에 깃듭니다.
짙은 청색의 빛을 흩뿌렸다. 황금의 검이 혼용된 색의 오러 블레이드를 토해내자 수십의 인베이더들이 붉은 피를 흩뿌리며 추락했다.
“적격자를 쳐라!”
인베이더들이 몰려 왔다. 한눈에 보기에도 그 수준이 높은 이들은 아니었다. 소모전을 유도하는 게 분명해 보였기 때문에 현준은 직접 나서는 것보다는 부하들을 앞으로 내세웠다.
부하들이 경지가 낮은 인베이더들과 싸우는 동안 현준은 플레임, 그리고 소진과 함께 SSS급 이상의 무력을 지닌 인베이더들을 상대했다.
전방의 SSS급 인베이더들이 몰살당할 때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해야 30분 정도에 불과했다.
고급 전력이 전멸하자 전방의 진형은 무너지듯 와해 되었고 결국에는 현준의 부하들이 전초전에서 승기를 잡았다.
소모전을 유도하기 위해 먼저 나섰던 인베이더들은 황급히 뒤로 물러났고 현준은 친위대를 포함한 부하들을 재집결시켰다.
“친위대는 피해 상황을 보고하라!”
“경미한 수준입니다!”
현준의 물음에 사혈이 보고했다. 이윽고 레비앙이 보낸 공전형 골렘 편대가 앞으로 나서면서 시간을 벌었고 그동안 친위대는 진형을 재정비했지만 인베이더들은 공전형 골렘 수백 기를 상대하느라 진형이 어지러운 상태였다.
“선봉은 내가 맡는다!”
현준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치며 마력을 끌어 올렸다.
-라이키리의 빛이 당신을 아득한 저편으로 인도합니다. 빛과 함께 한줄기의 섬광이 되어 적을 꿰뚫으세요.
전격의 랜스가 선두에서 지휘를 맡고 있던 인베이더의 흉부를 관통했다.
악몽급 신격의 경지에 오른 인베이더이자 군단 직속의 특전대 지휘관이었다. 운이 없게도 지휘에 전념하는 동안 허를 찔린 것이다.
“커, 커헉…….”
심장을 관통당했으나, 그는 경지가 높은 인베이더다.
바로 반격을 전개하려고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상처 부위를 통해 흘러온 전격을 견디지 못하고 일순간 몸이 경직되었고 그 틈에 현준이 지옥참마도를 휘둘러 특전대 지휘관의 목을 베었다.
“끄르르륵!”
심장이 꿰뚫렸을 뿐만 아니라, 목에도 치명상을 입었다. 초고속 재생의 권능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회복하기 힘든 정도였기 때문에 현준은 곧바로 다음 목표를 찾았다.
특전대의 간부로 보이는 인베이더 다섯을 더 요격하자 거물이 나타났다.
“적격자여…….”
제7침략군단장, 하스웰이 무거운 기세를 풍기며 현준의 앞을 막아섰다.
그의 곁에 군단 직속 특전대의 간부로 보이는 인베이더들이 보였다.
‘초월검의 마력은 충분하다.’
마력이 부족하지는 않을 정도였다. 하스웰이 뭔가 대화를 시도하기 위해 입을 열려고 했지만 현준은 망설임 없이 그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그래! 바라던 바다!”
하스웰 역시 기꺼이 응했다. 특전대의 간부 인베이더들도 개입하려고 시도했지만 불가능했다.
현준과 하스웰이 주고받는 공격과 방어의 수준이 너무 높았기 때문에 끼어들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마력을 충분히 아껴둔 덕분에 현준은 하스웰과의 전투에서 크게 밀리지 않고 안정적인 공방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오히려 인저블을 상대할 때보다 편해진 느낌이었다. 인저블과 하스웰은 동급의 인베이더였지만 미약한 실력 차이는 있을 수밖에 없고 무엇보다 현준은 실전 경험이 계속 중첩되면서 침략자를 잡는 노련한 사냥꾼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 이거 생각보다…….’
적격자의 무력이 예상보다 강했다. 이대로라면 패배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뒤로 물러나서 태세를 재정비하고 싶었지만 현준은 그럴 여지를 주지 않았다.
방어를 유지하면서도 폭풍과도 같은 공세를 퍼부었다.
“제기랄!”
결국, 하스웰은 거친 욕설을 내뱉고 말았다. 전투가 시작되고 30분 만에 왼팔을 잃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