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만 전생이 날 도와줘-212화 (212/217)

# 212

63장 기동요새가 모습을 드러내다(2)

기관부, 동력실의 중앙에 위치한 마정석은 침략사령부에서 주력 운용하는 전투선 여러 대를 합친 것보다 컸다.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그 끝이 아득하게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희미한 마력의 잔재가 느껴지는군. 이 동력원을 다시 가동하려면 엄청나게 많은 양의 마력이 필요할 것 같다, 주인아.

지옥참마도가 말했다. 현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보기에도 기동요새의 동력원으로 추정되는 저 마정석을 재가동시키려면 많은 마력이 필요할 것 같았다.

“얼마나 필요할까…….”

혼잣말을 흘리며 가늠해 봤지만, 짐작이 가지 않았다. 빛을 잃은 마정석의 표면에 조심스럽게 손을 얹고 마력을 불어 넣어 보았다.

황금의 검을 꺼내 들고 신격의 힘까지 해방했지만 마정석의 내부에서 아주 희미한 마력의 불꽃이 피어오를 뿐이었다.

“데우스의 가호를 사용해서 그런가?”

후회하기에는 늦었다. 아니, 애초에 데우스의 가호를 강제로 발동해서 앞서 걷는 자의 가호를 받아내지 못했다면 환상조차 거두지 못했을 것이니, 의미 없는 후회였다.

-주인아, 검은 마정석……. 그거 아직 조금 남아 있을 텐데, 그거 전부 다 쓰는 게 어때?

지옥참마도가 제안했다. 비상용으로 남겨둔 검은 마정석이 수십 개 정도.

그중에서 10개는 단순히 무한의 군단을 소환하는 데 쓰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마력 농도가 짙은 것들이었다.

‘사용할까?’

고민했지만 길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현준은 차원 주머니에 보관하고 있던 모든 마정석을 쏟아냈다. 마정석의 마력 흡수 효율을 최대로 올려주는 질드레의 마법 술식을 작동하는 것과 동시에 마력의 이동이 시작되었다.

손이 벌벌 떨리고 굵은 땀방울이 비오듯 쏟아졌다. 준비한 검은 마정석의 마력을 모조리 빨아들인 거로도 부족한지 동력원은 계속해서 마력을 요구해왔다.

‘어, 언제까지…….’

황금의 검이 사라졌다. 마력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하고 전신에서 힘이 다 빠져나갈 때 즈음이었다.

동력원의 마정석 내부에서 희미하게 유지되던 불꽃이 갑작스럽게 화악! 하고 거세게 일어났다.

그리고 마력을 흡수하는 것도 멈췄다.

“허, 허억…….”

동력원에서 손을 뗀 현준이 크게 휘청거렸다. 말라비틀어질 것 같은 정신을 고쳐 잡고 간신히 균형을 되찾았다.

“죽을 뻔했네.”

무신경하게 툭 내뱉었지만 정말 위험했다. 마력을 너무 많이 가져갔다. 지금 당장 정신을 차리기도 힘들 정도였다.

-운명을 짓는 건축가, 락센클의 기동요새를 발견했습니다. 전생의 약속에 따라, 통제 에고 엔나의 봉인이 해제됩니다.

-현재 동력은 정상 작동 중입니다.

청아한 음성이 동력실 안에 울렸다. 기동요새는 잃어버린 빛을 되찾았고 조명등이 일제히 켜지면서 어둠을 거둬냈다.

-환영합니다. 성주님.

사무적인 말투의 가녀린 음성과 함께 푸른 빛무리가 뭉쳐 여인의 형상이 되었다.

현준은 단번에 그녀가 조금 전의 목소리가 언급했던 통제 에고, 엔나라는 걸 알아챘다.

“통제 에고?”

-엔나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많이 묻지는 않겠다, 기동요새를 지금 당장 전투에 투입할 수 있나?”

-가능은 합니다만, 추천 드리지는 않습니다. 최소한의 승무원이 탑승하지 않은 상태라, 최대 전력의 3할밖에 발휘할 수 없습니다.

“가능은 하다는 거네.”

현준이 거듭 질문하자 엔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가능은 합니다.

좋다, 그렇다면 된 거다.

-기동요새의 지휘탑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곳에 보관되어 있는 성주의 반지를 끼시면 기동요새의 완전한 주인이 되시는 겁니다.

엔나가 말을 마치며 앞서갔다. 현준은 여전히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다리를 움직여 그녀의 뒤를 따라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5시간은 걸은 것 같다.

“텔레포트 같은 기능은 없어?”

영화나 소설을 보면 이런 종류의 병기 내부에는 주요 시설들을 오갈 수 있는 텔레포트 마법진이 있던 걸 떠올리고서 현준이 물었다.

-있습니다. 하지만 성주의 반지를 끼고 계셔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엔나가 차분하면서도 딱딱한 어조로 대답했다. 더 이상의 불평은 의미 없으니 그저 엔나의 뒤를 따라 말없이 걸었다.

조금 더 걷자 엔나가 말한 거로 보이는 탑이 나타났다. 계단을 통해 최정상층으로 올라갔다.

-여깁니다.

엔나가 말했다. 그녀는 허공에 대고 가볍게 손을 흔드는 것으로 푸른 마력을 퍼트렸다. 마력의 파장에 닿은 마법등들이 일제히 켜지면서 어둠을 몰아냈다.

내부의 풍경은 전함, 가디언의 제 1함교와 비슷했다. 중앙보다 약간 뒤편에 통제단이 있었고 여러 술식들을 조정할 수 있는 자리들이 보였다.

통제단의 바로 앞에는 푸른 빛을 머금은 채 영롱하게 빛나는 작은 반지가 보관되어 있다.

-성주의 반지입니다. 착용하시면 정식으로 성주직을 승계받게 됩니다.

투명한 보관함에 시선이 닿는 걸 본 것일까? 엔나가 간단하게 설명했다.

현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가가서 보관함을 열자 은은한 마력이 슬며시 흘러나왔다.

“시험 같은 건 없나?”

-그런 건 없습니다.

단호했다.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기동요새를 찾기까지 과정은 순탄하다고 할 만한 건 아니었지만 막상 찾고 나니 시험도 없이 쉽게 얻게 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반지를 끼자 새로운 전생의 마력이 흘러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동시에 기동요새의 사용법과 관련된 기억 또한 주입되었다.

기동요새를 조종하는 데 사용되는 술식이 생각보다 복잡한 것 같았지만 걱정은 없었다.

기억에 의하면 기동요새가 잠들기 전까지 활용해왔던 성주들도 술식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해서 엔나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 같았다.

“엔나, 내가 있었던 리딘 차원의 교전 지역으로 차원 도약하겠다, 보조해.”

-알겠습니다.

엔나는 군말 없이 성주의 지시를 따랐다. 반지에 각인된 통제 술식을 작동시키자 기동요새가 완전히 깨어났다.

질드레의 지식으로도 해석하기 힘든 수준 높은 술식들이 통제단 앞에 생성되어 떠다녔다.

-차원 도약을 시작합니다.

엔나가 말했다. 현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기동요새의 동력원에 마력을 주입하여 술식을 작동했다.

우우웅!

동력원이 공명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이윽고 거대한 마력이 움직이는가 싶더니 칠흑으로 물들어 있던 지휘탑의 창문이 밝아졌다.

밖으로 시선을 돌리자 침략사령부의 비행선단과 교전 중인 연합 함대의 모습이 보였다.

현준은 눈동자를 바쁘게 굴려 전황을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공간에 있었다고는 하지만 재확인이 필요했다.

“현재 사용 가능한 무장은?”

고개를 돌려 엔나를 향해 질문했다.

-주포 사용 불가능, 마동포도 전체 전력의 2할 정도만 사용 가능합니다.

“실드는?”

-약 절반가량의 출력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나마 모든 마동포를 사용할 수 없어서 아쉬웠지만 그나마 실드의 출력이 높아서 다행이었다. 공격력이 낮은 상황이었지만 방어력이라도 확보되어 있으니, 해볼 만했다.

“교신 채널 열어! 그리고 최대 전속으로 적진을 향해 파고든다! 실드는 버틸 수 있겠지?”

-적의 주력 무장의 분석이 끝났습니다. 일제 포격에 노출되더라도 기동요새의 실드가 충분히 버틸 수 있습니다.

“좋아, 간다.”

현준의 두 눈이 반짝였다. 기동요새가 차원 도약을 완전히 끝마치면서 거대한 몸뚱이를 드러내자 침략군의 비행선단은 순간 당황한 것인지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

그 틈에 기동요새는 적진 깊숙이 침투했다. 전함 가디언의 10배 정도 크기를 자랑하는 기동요새였지만 최대 전속 시 그 속력이 가디언보다 조금 더 빨랐다.

“마동포, 일제 발사!”

기동요새 곳곳에 설치된 마동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사용 가능한 마동포의 숫자는 2할에 불과했지만, 몸집이 큰 만큼 수백 대의 마동포가 포격을 펼쳤다. 맹렬한 일제 포격에 수십 척의 전투선이 격추당했다.

놀라울 정도의 화력이었다.

“마법 통신 준비해.”

엔나가 술식을 준비했고 현준이 마력을 주입하면서 회선을 정밀 조정했다. 마법 통신이 연결된 곳은 가디언의 제1함교였다.

이윽고 통제단 앞의 화면에 레비앙의 얼굴이 나타났다.

-기동요새를 찾으셨군요.

레비앙이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감정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스타일이었지만 전황을 단번에 역전시킬 수 있는 기동요새의 등장은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고속정에 분신 하나 태워서 보내, 여기 지휘를 맡기고 나도 참전한다.”

-역시 현장파이신 겁니까?

“그렇다고 해두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레비앙의 분신이 도착했고 현준은 그에게 권한의 일부를 위임한 뒤, 적진을 향해 뛰쳐 나갔다.

기동요새가 합류하고 30분이 지났다. 적의 지원군이 도착했지만, 기동요새 덕분에 연합 함대가 여전히 우세한 상황에서 전투가 진행되고 있었다.

현준은 남은 마력을 최대한 쥐어 짜내서 최전선에서 싸웠고 그의 마력이 정말 바닥을 보일 때 즈음이 되자 전투는 막을 내렸다.

침략군은 전투 부대 절반을 잃고 후퇴했다.

* * *

“병력을 너무 많이 잃었습니다. 이 상태로는 차원 동맹이 공격해 올 경우, 리딘 차원을 지킬 수 없습니다.”

부관의 보고에 제7침략군단장, 하스웰은 분한 마음을 참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주력군을 투입하면 적 함대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게 아니었나? 참모부와 정보부는 도대체 일 처리를 어떻게 하는 거지?”

하스웰의 목소리에서 분노가 묻어 나왔다. 슬며시 일어난 날카로운 기세에 부관은 마른침을 삼키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제7침략군단을 지휘하는 하스웰이 주력군을 움직이는 결정을 내리는 데 큰 역할을 한 게 부관과 참모부, 그리고 정보부의 진언 때문이었으니, 당장 변명할 여지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군단장님.”

“됐다, 지나간 일을 계속 언급해봤자 소용없겠지.”

다행히 하스웰은 크게 꼬장을 부리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부하들이 무능하다고는 해도 결국 결정을 내린 건 자신이었기 때문에 감정을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제2집단군 사령부에서는 답신이 없나?”

오전에 지원을 요청하는 연락을 보냈었다. 지금쯤 답신이 왔어야 정상이었다.

“전장의 상황으로 혼란스러웠던 탓에 답신이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연락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괜찮으니까, 빨리 보고해.”

“제2집단군 사령부에서는 추가 지원군의 파병이 불가능하다고 전해왔습니다.”

“제기랄!”

하스웰의 입 밖으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이건 좀 심각한 문제였다. 현재 제7침략군단은 주력군의 절반을 잃은 상태였고 적은 기동요새를 깨웠다. 이 상황에서 차원 동맹과 적격자의 함대를 상대로 리딘 차원을 사수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어떻게 합니까?”

“본대를 움직인다. 이대로 가만히 당하고 있을 수는 없지.”

하스웰은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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