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1
63장 기동요새가 모습을 드러내다(1)
강렬한 화염에 휩쓸린 인베이더들이 전신에 불꽃을 머금은 채 추락했다.
고위 마법은 SS급 최상위나 SSS급의 경지에서는 쉽게 피할 수 있다고 생각될 정도의 수준이었지만 범위가 넓었다.
이스텔의 화염 지배 가호 때문에 사실상 유도 능력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게다가 화력이 5배 강화되어 있어서 사실상 대마법에 가까운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크아아악!”
“으아아악!”
이스텔의 화염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간악한 생명체와도 같았다. 불의 정령처럼 기민한 움직임으로 실드가 커버하지 못하는 후방을 공략하기도 했다.
순식간에 일백이 넘는 인베이더가 화염이라는 전염병에 휩쓸려 불나방처럼 지상으로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현준에게 달려드는 적들의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 늘어났다.
소모전으로 가기로 작정을 한 것인지 등급이 낮은 인베이더들이 스스로 방패가 되어 시간을 벌고 현준의 마력을 소모했다.
하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그들이 시간을 벌었을지는 몰라도 현준은 지옥참마도로 인베이더를 벨 때마다 마력을 회복하고 있었으니까.
“인페르노!”
다시 한번 하늘에 불지옥이 펼쳐졌다. 현준이 흩뿌린 마력이 하늘을 붉게 물들였고 또다시 수십의 인베이더가 뜨거운 불길에 휩싸인 채 추락했다.
일단의 인베이더들이 추락하면서 전장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현준은 고개를 돌리며 눈동자를 빠르게 굴려 전장을 살폈다.
적의 수가 훨씬 많았지만 연합 함대의 주력을 이루고 있는 순양함들의 성능이 우세한 덕분에 전황은 전체적으로 유리했다.
아직은.
‘이것도 잠시다, 지원군이 도착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몰려드는 인베이더들을 훑는 시선이 차갑게 식었다. 싸늘한 살기가 그들을 관통한 순간 높은 하늘에서 시작된 황금빛 오러 블레이더의 비가 그들을 관통했다. 단숨에 현준으로서도 부담스러울 정도의 마력이 빠져나갔지만, 눈앞을 가득 채웠던 인베이더들이 모두 힘없이 추락하고 전투선도 6척이 격추당했으니 성과는 충분했다.
-주인아, 다음은?
“지휘선을 노린다.”
차갑게 내뱉은 뒤, 황금의 날개를 펼친 채 앞으로 나아갔다.
바로 눈앞에 지휘선이 보였다. 신격에 오른 강자의 접근을 감지한 것인지 지휘선에서 솔저 전투기 수십 기를 사출했지만 무의미한 저항이었다.
현준이 신격의 힘이 깃든 검을 한 번 휘두르니, 사출된 전투기들이 그 마력 파장을 견디지 못하고 일제히 폭발했다.
‘이대로 격추한다.’
정면의 지휘선으로 향하는 시선이 날카롭다. 굳이 선내에 침투할 필요 없이 이 자리에서 지휘선의 함교를 파괴할 생각이었다.
“이기어검.”
조용히 읊조리자 도살자 단검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신격의 힘을 불어넣자 도살자 단검이 파르르 떨렸다.
“가라.”
마치 자아가 있는 생명체에게 명령하듯 말했다. 동시에 마력을 움직이자 도살자 단검이 지휘선의 함교를 향해 매서운 속도로 날아갔다.
함교 주위에 설치된 대공포가 불꽃을 토해냈지만, 전투기에 비하면 아주 작은 크기의 도살자 단검을 막을 수 없었다.
콰아앙!
도살자 단검이 함교의 투명한 벽을 관통하는 것과 동시에 품고 있는 신격의 기운이 폭발했다. 강렬한 폭발에 함교는 단숨에 증발했고 비어 있는 공허한 공간에서는 검붉은 연기만 토해냈다.
-주인아, 더 온다.
지옥참마도의 경고에 현준은 고개를 들었다. 서서히 추락하기 시작하는 지휘선 너머로 수백 척의 비행선단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강현준 경!”
날카로운 목소리. 고개를 돌려 보니 차원 동맹의 집정관, 이시리아가 고위 기사들과 함께 날아오고 있었다.
그녀는 마력을 이용한 도약으로 단숨에 거리를 좁히고서 입을 열었다.
“여기는 저희가 최대한 막아볼게요. 강현준 경은 기동요새의 봉인을 깨우세요!”
“괜찮겠습니까?”
“지금으로서는 이 방법밖에 없어요. 기동요새의 무력에 대한 전설이 과장이 아니라면 우리가 이길 수 있어요.”
연합 함대의 뒤편에서도 100척이 넘는 비행선단이 나타났다. 사방에서 적들이 몰려오고 있으니, 대안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시리아는 기동요새를 깨우는 게 대안이라고 생각했다.
“제기랄!”
현준은 짧게 욕설을 내뱉으며 지상으로 방향을 돌렸다. 허공을 박차고 미사일처럼 단숨에 지상에 내리꽂혔다.
콰아아앙!
요란한 소리와 함께 지면이 뒤집혔다. 지상에 있던 인베이더들이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현란하게 휘둘러진 칼날들이 그들의 목을 베고 심장을 꿰뚫었다.
‘여기서 가깝다.’
혼란스러운 전장에서 선명하게 느껴지는 하나의 기운이 있다. 전생의 마력이 품은 특유의 기운이 분명했다. 이 근처에 기동요새가 잠들어 있다.
현준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인베이더들을 향해 거침없이 검을 휘둘렀다. 동시에 남은 무한의 군단을 소환하기 위해 남은 검은 마정석의 일부를 사용했다.
-아콘이 위대한 명령으로 차원 관문을 개방합니다. 무한의 군단을 호출합니다.
차원 관문이 열렸다.
-군단, 철갑무장 기병대의 일부가 소환에 응합니다.
-군단, 국민 무장 돌격대의 일부가 소환에 응합니다.
-군단, 마법전 전문 여단의 일부가 소환에 응합니다.
무한의 군단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이 지상의 침략 부대를 상대하는 사이, 현준은 차분하게 전생의 마력이 흘러나오는 곳을 추적했다.
이윽고, 그는 전생의 마력을 발산하는 근원을 찾을 수 있었다. 전투가 벌어지는 전장의 중앙에 작은 비석이 하나 있었다.
술식 하나가 각인되어 있었는데, 현준도 질드레로부터 교육을 받지 않았다면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교묘하게 숨겨져 있었다.
현준은 영상 술식을 사용하여 레비앙에게 비석의 모습을 전송했다.
-주군, 레비앙입니다.
전함, 가디언을 지휘하여 전투에 참여 중임에도 불구하고 답신은 생각보다 빨리 왔다.
“말해.”
-비석에 각인된 건 차원 도약 술식으로 보입니다. 술식이 오래되고 복잡해서 목적지는 확인이 힘듭니다. 제가 직접 내려가면 어떻게든 알아낼 수 있겠지만…….
레비앙이 말끝을 흐렸다. 전후좌우에서 비행선단이 몰려와 연합 함대를 포위한 상황이니, ‘인형’을 쓴다고 해도 자리를 비우는 게 쉽지 않겠지.
“굳이 내려올 필요 없어.”
-주군, 어디로 통하는지 알 수 없는 문은 상당히 위험한 함정일 수도 있습니다.
“전생들이 나한테 함정을 남겼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시련을 부여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함정을 만난 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위급하면 친위대를 호출하셔야 합니다.
레비앙이 말했다. 현준의 전생이자 황제, 로마노프의 가호로 연결된 친위대들은 차원 단위로 떨어져 있더라도 소환할 수 있었다.
차원 동맹의 집정관이자 차원 마법의 전문가인 이시리아조차도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고등 술식이 관련되어 있었다.
“그건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무운을 빌겠습니다.
“내가 올 때까지 버텨라.”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자신만만한 레비앙의 목소리를 끝으로 통신이 종료되었다. 현준은 차분하게 마음을 가다듬고서 비석 위에 손을 얹고 마력을 주입했다.
쿠구구궁!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일대가 격동했다. 비석에서 다른 차원의 것이 분명한 마력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주인아, 긴장되나?
지옥참마도의 물음에 현준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전혀.”
격동 속에서 낮은 음성이 은은하게 퍼지는 순간, 균열이 열리고 현준을 집어삼켰다.
* * *
사막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 처음 보는 공간에 떨어졌지만 당황하지는 않았다. 처음부터 레비앙이 차원 도약 술식이라고 언질해 준 덕분에 마음의 준비는 충분했었다.
“여기에 기동요새가 잠들어 있는 건가?”
이 넓은 사막에 내동댕이쳐지듯 떨어진 순간, 진하게 풍기는 전생의 마력을 느꼈지만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었다. 우선, 현준은 이 낯선 곳에 대한 정보를 모으기 위해 질드레의 지식으로 탐색 술식을 펼쳤다.
“조금 더 가야하나……?”
현준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탐색 술식의 마력을 거뒀다. 위치는 대강 파악했다. 이제 이동하기만 하면 된다.
그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중간에 부서진 차원의 마력에 중독된 괴물, 변종 수십 마리와 조우하긴 했지만, 그들을 정리하는 데 1분이 걸리지 않았다.
“길을 잃었나?”
전생의 기운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계속 걸었지만,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건 기분 탓일까? 끝없는 사막 만이 눈 앞에 펼쳐질 뿐이었다.
조금 전의 탐색 술식으로 시간이 흐르지 않는 세계라는 걸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투 중에 이곳으로 온 터라, 조급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지옥참마도.”
-나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제기랄.”
지옥참마도의 대답에 현준은 나지막이 욕설을 흘렸다. 하긴, 전생의 기운은 현준을 제외하면 극소수만 느낄 수 있는 희소한 마력이었으니, 지옥참마도에게 탐지를 기대하긴 힘들었다.
“색적만 부탁한다, 나머지는 내가 할게.”
-미안하다.
적들의 탐지 정도만 지옥참마도에게 맡기고 분주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이대로는 끝이 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현준은 데우스의 가호를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절반이 넘는 마력을 소모하겠지만 당장으로서는 방법이 없었다. 현준은 마력을 끌어 올려 데우스의 가호를 호출했다.
-절실한 요청에 따라, 데우스의 절대적인 의지가 운명에 간섭합니다.
-‘앞서 걷는 자’가 선도하여 당신에게 길을 알려줍니다.
새로운 전생의 마력이 느껴졌다. 동시에 눈앞이 맑아지는 듯하더니 허상이 녹아내리고 칠흑의 어둠이 덮쳐왔다.
조금 전까지 사막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곳이 사실은 깊은 지하 속이었던 것이다. 조명 술식을 작동하여 어둠을 몰아내자 여러 개의 문이 있는 넓은 공동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길 계속 헤매고 있었던 건가?’
뒤늦게 생각을 곱씹으니 소름이 돋았다.
“그렇다면 어디냐…….”
사막이라는 허상 속에서 방황할 때보다는 전생의 마력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다.
-주인아.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을 때, 지옥참마도가 말을 걸어왔다. 그의 탐지 능력은 우수하지만, 전생의 마력을 감지하기 힘들기 때문에 기대를 접어두고 있었다.
“왜?”
-왼쪽에서 다섯 번째 문, 저기서 특이한 기운이 느껴진다.
“확실해?”
-특이하지만 분명하다.
“믿고 간다.”
현준은 거침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지옥참마도가 말한 대로 왼쪽에서 다섯 번째 문을 열고 통로를 따라 걷자 또 다른 문이 나타났다. 그 문마저 열어젖히자 넓은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중앙에는 빛을 잃은 거대한 마정석이 있었고 주위로 복잡한 술식이 각인된 석판이 널려 있다.
질드레의 가르침 덕분에 널려 있는 석판들에서 마법 술식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로 인해 이 공간의 용도를 추정하는 게 가능했다.
여기는.
“기동요새의 기관실, 정확히 말하면 동력원이 있는 곳인가?”
사실 이곳은 기동요새의 내부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