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0
62장 마지막 희망(4)
현준이 지휘하는 연합 함대는 리딘 차원에 진입한 이후, 19번 부대와의 교전으로 확보한 군사지도를 활용한 탐색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차원 동맹의 집정관, 이시리아는 기동요새가 리딘 차원에 있다는 것 정도만 확인했을 뿐, 정확한 위치는 특정하지 못했다. 다만, 기동요새가 잠들어 있는 곳 근처에 도착하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추격대가 붙은 것 같습니다.”
수색 5일 차, 가디언의 제1함교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며 가볍게 중앙 지휘를 하고 있던 현준에게 다가온 레비앙이 속삭이듯 말했다.
“마지막 교전이 언제였지?”
“어제입니다. 교전 간격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오늘도 오후 정도가 되면 추격대가 나타날 확률이 높습니다.”
“이쯤에서 한 번 뿌리를 뽑고 가는 게 좋겠지?”
소규모 추격대가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다.
고속정으로 구성된 추격 및 정찰대를 발견할 때마다 공전형 골렘을 내보내 격추하고는 있지만 이대로는 위치뿐만 아니라 이동 경로까지 예측 당할 확률이 높았다.
추격대를 운용하는 본대를 찾아내고 격파할 필요가 있었다.
“주군, 정찰전에 대해서는 저희가 불리한 상황이라는 걸 잘 알고 계시지요?”
레비앙이 말했다. 연합 함대의 화력은 침략군에 비해 우수했지만, 적들의 수가 더 많고 고속정 편대의 기동성 역시 우수할 뿐만 아니라 지형 조건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으니 정찰전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운용할 수 있는 고속정의 수는?”
현준의 물음에 레비앙은 짧은 한숨을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적은 수는 아닙니다만, 우리는 재보급이 힘들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손실 확률이 높은 정찰 작전에 고속정을 다수 투입하는 건 재고하셔야 합니다.”
“광역 정찰을 한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럼 장소 하나를 특정해서 정찰한다는 말입니까?”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말하는 레비앙. ‘그래서야 정찰의 의미가 있을까?’라고 묻는 듯한 표정이었다.
“예측하고 적의 위치가 확정된 순간 함대를 움직일 거다. 적의 추격대의 경로 분석 정도는 이제 가능하지 않나?”
“참으로 어려운 일을 간단하게도 말씀하십니다. 그럼 최종 정찰은 누가 합니까?”
“플레임.”
레비앙의 물음에 현준은 작게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어둠 속에서 플레임이 나타나 고개를 숙였다. 흑염룡으로 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수한 전투력을 가진 그라면 적의 화망을 뚫고 귀환할 수 있을 터였다.
“할 수 있겠지?”
“맡겨만 주십시오.”
“좋아, 믿음직해. 이제 레비앙만 남았네.”
추격대의 경로를 분석하여 본대의 위치를 특정하는 어려운 작업. 과연 할 수 있겠냐는 듯한 도전적인 시선을 보냈다.
그런 현준의 모습에 레비앙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저는 그런 얕은수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불가능해?”
“그런 말도 한 적 없습니다. 3일이면 됩니다.”
어려운 작업은 분명하다. 현준도 질드레의 제자로 그의 술식을 익혔지만, 지금처럼 자료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역추적은 힘든 일이었다.
일을 시키는 입장에서 미안할 정도였지만 레비앙의 표정과 목소리에서는 자신감이 넘쳤다.
“믿고 있다.”
그리고 3일의 시간이 흘렀다.
“여기까지가 제 한계입니다.”
레비앙이 결과를 가져왔다. 힘든 작업을 완수하기는 했지만, 그도 ‘인간’이라 한계가 있었던 것인지 본대가 있을 것으로 예측된 위치가 꽤 광범위했다.
현준은 옆에 서 있는 플레임을 향해 시선을 보냈다.
이 넓은 지역을 홀로 수색할 수 있겠냐는 무언의 질문이었다. 시선에 담긴 의미를 알아차린 플레임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가능합니다.”
힘들긴 해도 불가능한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현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플레임은 그날부터 바로 정찰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3일의 시간이 흘렀다.
“플레임으로부터 정찰 보고가 전달되었습니다. 추격대를 운용하는 본대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플레임은?”
“정찰 활동을 끝내고 귀환 중에 있습니다. 추격이 붙은 것 같지만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닙니다.”
레비앙의 보고에 현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곧바로 연합 함대에 전속 이동 명령을 내렸다. 지상을 향해 연합 함대가 움직였다.
“전방의 사막 지대에서 플레임 경의 신호를 확인했습니다.”
가디언 제1함교의 장교가 거친 목소리로 보고했다. 현준은 술식을 조정하여 눈앞의 화면에 마력 레이더를 띄웠다.
익숙한 마력 반응, 플레임이 빠른 속도로 접근해오고 있었고 그 뒤로 전투기의 마력 반응 수십이 맹렬하게 추격해오고 있었다.
“43기라……. 많이도 따라붙었네.”
적은 수는 아니었지만 인베이더가 지휘하는 전투선이 아니라 솔저가 탑승한 작은 전투기에 불과하다. 연합 함대의 상대가 될 리 없었다.
“공전형 골렘 편대를 사출합니까?”
레비앙이 물었다. 현준은 고개를 끄덕였고 곧 사출된 공전형 골렘 20기가 플레임의 퇴각을 엄호했다.
사출된 공전형 골렘의 숫자는 적 전투기의 수보다 적었지만, 성능 면에서 차이가 있는 탓에 전투기들은 패전할 수밖에 없었다.
43기의 전투기를 격추한 공전형 골렘 편대가 귀환했다. 현준은 차가운 시선을 정면의 투명한 벽 너머로 보내며 입을 열었다.
“근처에 적의 비행선단이 있을 확률이 높다. 마력 레이더 최대로.”
“마력 레이더, 최대로!”
제1함교의 장교들이 현준의 명령을 복창하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전함, 가디언의 마력 레이더가 최대로 전개되는 사이, 격납고를 통해 함내로 진입한 플레임이 어느새 제1함교로 들어왔다.
“늦었습니다.”
“적의 위치는?”
“완벽하게 파악했습니다. 꽤 수준 높은 은폐 술식을 사용하고 있어서 마력 레이더로는 쉽게 감지하지 못할 겁니다.”
플레임이 보고했다. 현준은 군사지도를 펼쳤고 플레임은 육안으로 확인한 적 비행선단의 위치를 정확히 짚었다.
“전진한다.”
가디언을 필두로 연합 함대가 사막 지대 위를 가로질렀다.
얼마나 비행했을까? 멀리서 비행선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수가 생각보다 많은 것 같습니다.”
“느, 늘어났나?”
레비앙의 지적에 플레임은 피가 새어 나올 정도로 입술을 깨물고서 초조하게 시선을 떨었다.
“아무래도 함정인 것 같다.”
현준이 말했다. 플레임에게 위치를 드러낸 것부터 함정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이제 유인을 했으니, 다른 곳에 숨어 있던 병력을 불러들인 것이겠지.
“최소 3개 이상의 전투 부대가 집결한 것 같은데?”
현준이 혼잣말에 가까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지상의 병력까지 합하면 4개 이상의 침략군 전투 부대가 모였다.
지구에서 상대했던 경우와는 달리 전력이 온전한 4개 부대를 한 번에 상대하는 건 연합 함대에도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
이게 함정이라면 이미 적의 추가 지원군이 오고 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어떻게 합니까?”
적의 수가 예상보다 많았고, 추가 지원군의 가능성도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자존심이 상하지만 작전상 후퇴라는 선택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레비앙의 물음에 현준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이 주변에서 ‘유물’의 마력이 느껴진다.”
왜 하필 여기일까? 적들도 알고 함정을 판 것 같지는 않았지만, 공교롭게 되었다.
유물, 기동요새의 마력이 느껴지는 이상 여기서 물러난다는 선택지는 사라졌다.
“교전한다.”
“예, 알겠습니다.”
가디언을 필두로 연합 함대가 적 비행선단을 향해 전진했다. 거리가 어느 정도 좁혀진 것을 확인한 현준은 옆에 걸쳐 놓은 지옥참마도를 챙겨 들었다.
-전투인가?
지옥참마도의 물음에 현준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고는 레비앙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레비앙, 제1함교의 지휘를 부탁한다.”
“직접 참전하실 생각이십니까?”
“기선 제압을 하고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말이지.”
말을 마치며 현준은 씨익 웃어 보였다. 저기 재난급 신격이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차원 동맹의 집정관, 이시리아는 하나의 부대를 이끄는 책임 지휘관은 신격에 미치지 못한 5급에서 6급 수준의 인베이더들이 맡는다고 했었다.
여러 부대가 연합했다고 하니, 연합 지휘관 역할로 신격이 하나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래 봤자 악몽급에 불과할 것이다.
“격납고 열어.”
“열겠습니다!”
격납고 도어가 열렸고 현준은 황금의 검을 뽑아 들어 신격의 힘을 해방했다. 날개까지 나타나면서 단숨에 재난급 신격의 힘이 깨어났다.
시든밀러의 초월검을 사용하면 재앙급 신격의 경지까지 오를 수 있지만 그건 과잉이었다. 제7침략군단장, 하스웰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상 초월검까지 사용할 필요는 없었다.
‘우선 선봉을 정리한다.’
깊게 파고들어 한바탕 휩쓸어버릴 생각이다. 난전이 발생하겠지만 현준은 연합 함대의 조준 기술과 능력을 믿었다.
그리고 스스로도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눈먼 포격에 맞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황금의 날개를 펼치고 단숨에 적들과의 거리를 좁혔다.
오른손에는 신격의 힘을 발산하기 위해 황금의 검을 들었고 왼손에는 적들의 마력을 조금이라도 더 흡수하기 위해 지옥참마도를 들고 있었다.
황금의 검을 휘둘러 소드레인을 시전했다. 하늘에서 수백의 황금빛 오러 블레이드가 선두의 선두선들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회, 회피 기동!”
전투선들이 다급하게 움직였지만, 몸집이 커서 소드 레인을 회피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단번에 9척의 전투선이 소드 레인에 당해 추락하거나 공중에서 폭발했다.
“신격의 힘이다!”
“적격자가 분명하다!”
“요격해!”
전투선들에서 인베이더 전투부대가 쏟아져 나왔다. 그 숫자가 수백 명이었고, 그들은 일제히 권능과 마법을 사용해 공격해왔다.
-주인아, 온다.
지옥참마도가 호들갑을 떨었지만, 현준은 차분하게 마력을 끌어 올렸다.
-카르타고의 정의로운 방패가 당신을 수호합니다. 위대한 수호가 함께하는 한, 당신을 위협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마법 파괴보다는 방어를 선택했다. 장기전이 될 확률이 높았기 때문에 마력을 최대한 아끼려는 생각이었다.
질드레의 가호는 마법 정도는 완벽한 파괴가 가능했지만, 마력 소모가 너무 컸다.
쾅! 콰앙!
수십 종류의 마법과 권능이 오러 실드를 두들겼으나, 카르타고의 가호는 거대한 산처럼 모든 공격을 버텨냈다.
한 번의 화력 집중이 끝나고 잠깐의 소강상태가 찾아왔다. 현준은 오러 실드 너머로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며 씨익 웃었다.
“내 차례인가?”
다시 마력을 끌어 올렸다.
-이스텔이 붉은 마법서를 펼칩니다. 일시적으로 화염 마법의 사용이 가능해집니다.
-이스텔이 가진 붉은 마법사의 권능을 행사합니다. 화염계 마법의 위력을 5배 강화합니다. 고등 다중 영창을 사용합니다.
이스텔의 가호를 사용했다. 두 눈이 붉게 물들었고 눈앞에 마법책이 펼쳐졌다.
“인페르노.”
하늘에 뜨거운 화염이 번져 나갔다. 그 속도가 인베이더들조차 반응하기 힘들 정도로 빨랐다. 수백의 인베이더 중 절반이 잔혹한 화염에 휩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