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6
61장 지구 탈환(4)
경미한 내상이 쌓여 크게 터졌다. 붉은 피가 인저블의 입술을 비집고 튀어나오는 것과 동시에 그의 자세가 짧은 순간 흔들렸다.
현준은 그 작은 틈을 놓치지 않았다.
인저블의 방어 자세를 찍어 누를 기세로 시든밀러의 검술을 펼쳤다.
빈틈을 파고들자 철옹성 같던 인저블의 방어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한 번 방어 자세가 무너지기 시작하자 그것은 곧 모래성이 쓰러지는 것처럼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제, 제기랄……!”
인저블은 욕설을 내뱉으며 뒤로 물러나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보법을 밟은 순간 현준이 귀신같이 알아채고 거리를 좁혀오니, 그것조차 쉽지 않았다.
검과 창의 충돌은 계속해서 이어졌고 그럴 때마다 오러의 취약점을 공략하여 내상을 입히는 시든밀러의 고유 검술이 발동하면서 인저블의 내상은 심각해져 갔다.
‘거리를 벌려야 한다!’
‘절대로 물러날 틈을 줘서는 안 된다!’
상반된 의도를 가진 두 신격은 서로를 향해 살기를 잔뜩 머금은 일격을 펼친다.
인저블은 최선을 다해 거리를 벌리려고 했고 현준은 그걸 용납하지 않았다.
초월검은 사용 시간이 정해져 있는 기술이었다.
짧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지금처럼 전투가 길어진다면 결코 현준에게 유리하지 않다는 말이었다.
황금의 검 또한 마력의 소모가 심하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결판을 내야만 했다.
현준은 공세를 더욱 날카롭게 다듬고 오러 블레이드에 마력을 더욱 끌어 올렸다.
“제, 제기랄!”
“환영검!”
또다시 수천 번의 검격을 주고받은 끝에 인저블의 방어 자세가 ‘완전히’ 박살 났다.
그걸 본인도 깨달은 것인지 그의 입에서 다급한 욕설이 튀어나왔고 현준은 강력한 일격필살의 기술인 시든밀러의 환영검을 펼쳤다.
12방향에서 쇄도하는 12번의 검격을 모두 막아내기에는 지금 인저블의 상태가 온전치 않았다.
“크아아악!”
인저블이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미처 막아내지 못한 3개의 환영검이 그의 왼팔을 자르고 허벅지와 옆구리를 깊게 베었기 때문이었다.
고통이 극심할 테지만 그는 끝까지 오른손에 쥐고 있는 검은 창을 놓지 않았다.
무기를 포기한 순간 모든 게 끝난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정신력을 끌어모아 버틴 것이다.
“크, 크으윽……! 내가 이 정도로……”
인저블은 경악했다. 처음 일격을 받아낼 때만 해도 이 정도로 밀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끝이다, 인베이더.”
“이,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검은 마력이 인저블의 몸에서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현준은 황급히 뒤로 물러났지만 검은 마력의 광선은 그를 지나쳐 뒤편의 함대를 향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모든 마력을 쏟아내도 현준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하고 침략사령부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뒤편의 연합 함대를 노린 것이었다.
“이런!”
아차 싶은 마음에 뒤로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늦었다.
칠흑을 머금은 마력 광선은 수십 갈래로 갈라져 연합 함대의 순양함들을 관통했다.
순양함 4척이 연쇄 폭발했다. 1척을 건조할 때 소모되는 자원과 비용을 생각해 보면 결코 적은 피해가 아니었다.
현준은 인저블이 더 미친 짓을 하기 전에 저지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그를 향해 황금의 날개를 펄럭이며 가속했다.
‘느려!’
회피를 시도하기 위해 한 차례 뒤로 물러난 것 때문에 인저블에게서 멀어졌다.
단숨에 거리를 좁히려 했지만 인저블 또한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아니라서 쉽지 않았다.
어느새 인저블이 쥐고 있는 검은 창의 끝에서는 칠흑의 마력이 다시 응집하고 있다.
‘가호를 쓴다.’
초월검의 제한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고, 전투도 끝을 보이고 있었다.
인저블을 처단해도 전투가 끝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베히모스의 가호를 사용하여 인저블의 영혼을 흡수하면 마력이 회복될 게 분명하기 때문에 남은 마력을 소모해 가호를 사용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라이키리의 빛이 당신을 아득한 저편으로 인도합니다. 빛과 함께 한줄기의 섬광이 되어 적을 꿰뚫으세요.
한 줄기의 빛이 되었다. 인저블이 눈앞에 섬광이 번쩍인 걸 본 순간, 이미 전격의 랜스가 그의 복부를 꿰뚫고 있었다.
“커헉……!”
랜스에서 시작된 전류가 인저블의 전신을 마비시켰다. 그는 마비된 몸을 정상화하기 위해 서둘러 마력을 운용했지만, 정신을 차렸을 때 시야에 보인 것은 코앞까지 접근한 오러 블레이드였다.
“침략사령부…….”
침략사령부 만세, 라고 말하려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전에 현준의 오러 블레이드가 목을 관통했으니, 문장을 완성할 수 없었다.
인저블의 몸이 축 늘어지더니 힘없이 추락했고 현준 또한 초월검의 지속시간이 끝나고 끔찍한 고통이 찾아오면서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의식조차 멀어지기 시작하고 추락하려는 찰나, 누군가 잽싸가 다가와 그를 부축했으니, 고개를 들자 그곳에 태민이 있었다.
“안심하시고 푹 쉬십시오. 곧 전투가 끝납니다.”
“전황은……”
“당연히 연합군의 승전입니다.”
그 말을 듣고서야 안심하고 눈을 감을 수 있었다.
* * *
인저블의 죽음으로 우랄산맥에서의 대전투는 막을 내렸다.
이 전투로 인해 지구를 침공했던 침략사령부 소속 제13침략군단이 전멸했다. 현준은 그들이 지구의 점령지에 했던 것처럼 ‘몰살’의 패를 꺼내 들었다.
어차피 처음부터 항복하는 이들도 없었으니, 몰살은 피할 수 없는 선택지일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제13침략군단을 격퇴했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침략사령부의 일부에 불과했고 그들은 여전히 지구를 노리고 있었다.
“선제공격을 가해야 합니다.”
우랄산맥 전투가 끝나고 현준은 위원회를 소집했고 그 자리에서 선제공격을 제안했다.
쉽게 고개를 끄덕이는 이는 없었다. 처음과 달리 지금 그들은 침략사령부가 얼마나 거대한 존재인지 대강 짐작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현준이 꺼내든 ‘선제공격’의 패는 조금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그럼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겁니까?”
현준이 질문했다. 차분하지만 의지가 분명히 전달될 정도로 단호한 목소리였다. 그 묵직한 울림은 회의장에 모인 위원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흔들었다.
“저희도 선제공격을 반대하고 싶지 않지만, 그들을 상대할 전력이 부족하지 않습니까? 차라리 방어에 치중하는 게…….”
영국의 SSS급 헌터, 폭풍의 드레이크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현준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연합 함대에 제한 없는 차원 도약 술식의 각인까지 끝냈습니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현준이 말했다. 그는 얼마 전 레비앙에게 한 가지 지시를 해뒀는데, 그건 바로 질드레의 일기장에 잠들어 있는 무제한 차원 도약 술식을 연합 함대에 각인하라는 것이었다.
수준 높은 술식이었기 때문에 양산화 과정에서 ‘무제한’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마력 효율이 나빠지긴 했지만 결국에 레비앙은 해냈다. 그의 노력을 헛수고로 만드는 건 원치 않았다.
“잠깐, 그럼 이제 차원 도약이 가능하다는 말이에요?”
임시 위원 자격을 얻어 참석한 이시리아가 깜짝 놀랐다.
무제한 차원 도약 술식은 침략사령부조차 완성하지 못한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고급 술식이 질드레의 일기장에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마력 소모가 크긴 하지만 가능은 합니다.”
현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럼 침략사령부의 병력이 주둔 중인 차원에도 도약이 가능하다는 건가요?”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
이번에는 레비앙이 이시리아의 물음에 답했다.
“세상에, 그걸 왜 이제야 말해준 거예요?”
“물어보지 않았으니까요.”
레비앙이 어깨를 으쓱였다.
“무제한 차원 도약이 가능하다면 연합 함대의 전력을 크게 증가시킬 방법이 있어요.”
“예전에 말했던 그 기동요새라는 걸 깨우는 방법입니까?”
현준의 물음에 이시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맞아요.”
“위치는 알고 있는 겁니까?”
“네, 정확하게는 파악하지 못했지만요.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침략사령부의 병력이 주둔하고 있다는 것 정도네요.”
“수는 얼마나 됩니까?”
주둔 중인 적의 숫자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 전에는 어떤 내용도 섣불리 확답할 수 없다.
현준은 차분하게 질문했고 이시리아는 눈동자를 한 바퀴 굴리며 기억을 더듬었다.
“마지막 정찰에서 확인한 주둔 병력의 규모는 한 개 군단 정도였어요.”
차원 동맹에서는 이시리아와 같은 유능한 집정관이나 고위 기사들을 동원하여 비밀리에 주기적으로 침략사령부의 점령지역을 정찰하고는 했다.
그래서 기동요새가 잠들어 있는 리딘 차원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최신 기록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정찰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한 개 군단이라……”
현준은 이시리아의 말을 곱씹었다. 제13침략군단을 격파했다고는 하지만 지구에 도착한 그들의 전력은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다.
그러니 침략사령부의 군단 하나를 상대했다고 보기에는 어폐가 있다.
‘연합 함대가 1개 군단을 상대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연합 함대를 구성하는 주 전력, 순양함은 침략사령부의 전투선보다 우수한 성능을 자랑한다.
지금까지 제13침략군단과의 공중전에서는 큰 피해 없이 승전을 거듭해 온 걸 생각하면 1개 군단과 맞붙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이 경우 순양함 전력을 조금 더 보충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1개 군단, 그 이상이 있는 건 아니겠죠?”
만약 2개 군단이 주둔하고 있다면 곤란해진다.
연합 함대가 감당할 수 있는 적의 수는 1개 군단이 마지노선이었다.
“침략사령부의 상황도 좋지 않아요. 차원 동맹은 강현준 경이 생각하는 것처럼 약하지는 않답니다.”
이시리아의 목소리에서 강한 자부심이 묻어 나왔다.
차원 동맹에 대한 그녀의 충성심은 깊었다. 그렇기에 동맹이 조금이라도 무시당한다 싶으면 곧바로 반응하고는 했다.
“그곳까지 안내해 줄 수 있습니까?”
“어려운 일은 아니에요. 차원 동맹에서 내려온 지시 사항도 있으니, 우리는 강현준 경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할 겁니다.”
현준의 물음에 이시리아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윽고 현준의 시선은 회의장에 모인 위원들을 훑었다.
“지금부터 위원장 직권을 사용하여, UN에 가입된 모든 국가에 총동원령을 선포합니다.”
연합 함대의 규모를 늘리기 위해서다.
총동원령이라는 이름이 무거운 만큼 반발이 있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모두 굳은 얼굴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연합 함대가 없으면 침략사령부의 공격에 지구의 연합군은 맥없이 무너질 확률이 높다는 걸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깨달은 것이다.
무언의 협조를 받아낸 현준의 시선은 이제 레비앙에게 향했다.
“레비앙.”
“말씀하시지요.”
오늘 그는 인형이 아니라 본체였다.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 전력을 다해 연합 함대를 키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