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만 전생이 날 도와줘-205화 (205/217)

# 205

61장 지구 탈환(3)

강현준을 눈앞에 둔 인저블은 피가 새어 나올 정도로 입술을 깨무는 것과 동시에 눈살을 찌푸렸다.

차오르는 증오를 간신히 억누르며 눈동자를 움직여 현준의 전신을 훑었다. 그의 경지를 파악하기 위한 짧은 절차였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찬란하게 빛나는 경지 높은 신격의 마력에 인저블은 경악했다.

‘적격자, 이 정도로 성장했다는 말인가…….’

예로부터 적격자의 성장 속도는 예측할 수 없다고 했다. 괜히 침략사령부에서 ‘적격자’를 주적으로 삼은 게 아니다.

인저블도 제13침략군단장의 위치까지 오르는 중, 적격자를 간접적으로 보기도 하고 이야기도 많이 들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놀랐나?”

현준은 인저블을 향해 도발적인 시선을 보냈다.

“……우리의 예상을 벗어난 정도는 아니니 너무 자만하지 마라, 적격자여.”

경험이 풍부한 지휘관 출신답게 인저블은 가벼운 도발에 넘어가지 않았다.

그는 차분하게 대답하며 어둠을 머금은 것 같은 칠흑빛의 창을 들어 올려 공격 자세를 취했다.

창의 끝에 강대한 마력이 날카로운 기세를 풍기며 모여들었다.

그걸 본 현준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본능적으로 공격이 시작되었다는 걸 감지하고서 마찬가지로 황금의 검과 지옥참마도에 마력을 응집시켰다.

그리고 동시에.

“이기어검!”

허리에서 뽑혀 나간 이기어검이 마력을 머금은 채 인저블을 향해 날아들었다.

“속박되어라.”

허공에 그려진 칠흑의 마법진에서 검은 쇠사슬이 튀어나왔다. 현준은 당연히 자신에게 향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정작 검은 쇠사슬이 노린 것은 도살자 단검이었다.

이기어검에 의해 자유롭게 움직이는 도살자 단검에 의해 시야와 행동이 교란될 것이라 우려하여 먼저 차단하려는 듯했다.

도살자 단검은 처음에 이리저리 피하는 듯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검은 쇠사슬에 속박되고 말았다.

“꿰뚫어라.”

곧바로 이어지는 관통의 권능. 수십 개의 검은 창이 생성되어 현준을 노렸다.

“와라!”

잽싸게 지옥참마도를 검집에 집어넣는 것과 동시에 마력을 끌어올려 카르타고의 가호를 사용했다.

-카르타고의 정의로운 방패가 당신을 수호합니다. 위대한 수호가 함께하는 한, 당신을 위협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왼팔에 오러 실드가 깃들었고 동시에 현준은 황금의 검을 휘둘렀다. 흩뿌려진 오러 파편 세례가 검은 창의 절반을 격추시켰다. 남은 절반도 오러 실드를 꿰뚫지 못했다.

‘초월검을 사용할 필요까지는 없는 건가?’

현준은 생각했다. 제대로 붙지 않았지만 재앙급 신격의 경지에 올랐다는 제13침략군단장, 인저블의 마력이 생각보다 강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무리해서 초월검을 사용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원거리로 간을 볼까?’

문득 든 생각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인저블이 본 실력을 꺼내게 하려면 근접전을 펼쳐서 강하게 압박할 필요가 있었다.

-라이키리의 빛이 당신을 아득한 저편으로 인도합니다. 빛과 함께 한줄기의 섬광이 되어 적을 꿰뚫으세요.

한 줄기의 빛이 인저블을 노렸다. 숨이 막힐 듯한 가속, 일순간에 거리를 좁혀 들며 전격의 랜스로 인저블의 목을 겨눴다.

10m 안으로 거리를 좁혀드는 순간까지도 제13침략군단장, 인저블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여유로운 표정으로 뒤틀린 미소를 입가에 머금고 있을 뿐이었다.

찰나의 짧은 순간, 불길함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물러나기에는 늦었다.

라이키리의 가호를 발동하고 빛의 속도에 진입한 순간 ‘의식’도 함께 가속되긴 했지만, 그 빠른 속도 속에서 몸을 틀거나 물러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제, 제기랄!’

가속화된 반사 신경이 칠흑의 창을 들어 올리는 인저블의 모습을 포착했고 그 순간 현준은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늦었다!’

칠흑의 창에서 검은 광선이 쏟아져 나왔다.

광선은 하나가 아니었다.

그것은 처음에는 수십, 하지만 이윽고 수백 갈래로 나누어져 사방에서 현준을 노렸다.

검은 창, 그 근원부터 질주한 마력 광선이 현준의 몸을 꿰뚫었다.

“커, 커헉……!”

피할 수 없었다, 일격에 수십의 관통상. 덜컥! 하고 빛의 질주가 끝나는 것과 동시에 현준의 몸이 허공에서 멈췄다.

다른 권능까지 섞여 있었던 것인지 관통당한 순간, 시야가 아득해지면서 끔찍한 고통의 파도가 밀려 왔다.

“끄아아아아악!”

전생의 방에서 팔다리가 잘리고 몸이 관통당하고 창과 칼에 베이는 걸 반복했다.

현준은 스스로 고통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2급 인베이더이자 제13침략군단장을 맡고 있는 인저블이 구사하는 권능을 감당할 정도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걸로 끝날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무, 무슨……!”

“속박하라.”

전신을 꿰뚫었던 검은 마력의 광선이 사슬이 되어 현준의 몸을 휘감았다.

권능을 응용하여, 속박의 성질을 띠게 만든 모양이다. 고도의 집중력과 많은 마력이 필요한 기술이었고 현준은 예상치 못한 변형에 당황했다.

“제기랄!”

몸을 움직이려 해봤지만 쉽지 않았다. 권능의 속박이 생각보다 견고했다.

‘이렇게 된 이상, 초월검을 사용할 수밖에 없나?’

이를 악물고 마력을 끌어올리려는 그 순간.

“이것 또한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날카로운 살기를 머금은 목소리와 함께 강대한 마력의 유동이 느껴졌다.

검은 그림자가 얼굴을 뒤덮는다. 그나마 자유로운 고개를 들어 시선을 올리자 무서운 속도로 낙하하는 칠흑의 화염구가 보였다. 그 크기가 웬만한 축구경기장보다 컸다.

“보았나? 적격자여. 침략사령부의 힘을 얕보지 마라.”

인저블이 현준을 지긋이 노려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우리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위대하다.”

“잘 알 것 같다.”

얌전히 듣고만 있던 현준이 차갑게 내뱉었다.

동시에 마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하자 인저블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이것이 재앙급 신격의 권능이다. 적격자, 네가 아무리 눈부신 성장을 했다고는 하지만 지금의 네 수준으로는 그걸 파괴할 수 없다.”

“그래, ‘지금’의 나는 그렇지.”

이건 오만함이 아니라 자신감이다. 인저블은 본능적으로 감지하고서 권능을 강화하기 위해 마력을 운용했지만.

“이미 늦었어.”

초월검은 발동되었다. 온몸에서 마력이 넘쳤다.

가혹한 대가를 치르고 강제로 재앙급 신격의 경지에 올랐다.

전신에서 터져 나온 강렬한 마력의 폭풍이 칼날이 되어 속박의 권능을 찢어 놓았다.

걸레짝이 된 사슬에서 벗어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제는 화염구를 처리할 차례다. 저게 지상에 떨어진다면 연합군은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질드레의 가호는 사용할 수 없다.’

마법의 경우에는 질드레의 가호로 파괴할 수 있지만 인베이더들이 사용하는 권능은 전혀 다른 구조로 완성되기 때문에 파괴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 가장 낮은 단계의 권능인 흑염 정도라면 어떻게든 파괴가 되겠지만 저건 힘들 것 같았다.

-주인아, 저건 술식 파괴가 아니라, 상쇄하거나 박살 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지옥참마도가 말했다.

“그래, 어떻게든 되겠지.”

현준은 피식 웃으며 신격의 상징인 황금의 검을 두 손으로 꽉 쥐었다.

그 모습을 본 인저블이 황급히 움직이려는 했지만, 이미 현준은 다시 빛이 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라이키리의 빛이 당신을 아득한 저편으로 인도합니다. 빛과 함께 한줄기의 섬광이 되어 적을 꿰뚫으세요.

같은 신격이라고 해도 재난급과 재앙급의 격차는 컸다. 조금 전의 질주와는 품고 있는 마력부터가 달랐다.

콰앙!

충돌과 함께 거대한 칠흑의 화염구가 수십 조각으로 쪼개졌고 라이키리의 가호도 사라졌지만, 현준은 멈추지 않았다.

“폭풍검!”

초월검으로 재앙급 신격의 경지에 올랐다. 그로 인해 덩달아 강화된 폭풍검은 수천 개의 오러 블레이드를 사방에 쏟아냈다. 칠흑의 화염구는 결국, 수천 조각으로 갈라졌다.

-이스텔이 붉은 마법서를 펼칩니다. 일시적으로 화염 마법의 사용이 가능해집니다.

-이스텔의 가혹한 불꽃이 함께합니다. 화염에 대한 절대적인 지배력을 행사합니다.

-이스텔이 가진 붉은 마법사의 권능을 행사합니다. 화염계 마법의 위력을 5배 강화합니다. 고등 다중 영창을 사용합니다.

-당신은 드높은 재앙급 신격의 경지에 올랐습니다. 이제 이스텔이 당신에게 대마법을 허락합니다.

눈앞에 붉은 마력의 마법서가 펼쳐지고 두 눈이 붉게 물들었다. 익숙한 내용 사이에 섞인 새로운 메시지.

그것은 대마법의 사용을 허가한다는 것이었고 동시에 화염 계열의 대마법과 관련된 정보와 이스텔의 기억이 머릿속으로 파고들었다.

“메테오.”

다량의 마력이 빠져나갔다. 일시적으로 재앙급 신격의 경지에 오르면서 마력로가 많이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무시하지 못할 정도의 소모였다.

푸른 하늘이 갈라지면서 생성된 붉은 마법진. 그것은 잿더미가 되어버린 그들을 위한 붉은 마법사의 진혼곡이다.

“그 잘난 침략사령부의 힘을 보여 봐라.”

현준이 차갑게 내뱉으며 손을 흔들자 붉은 마법진이 쩌억 하고 입을 벌리더니 메테오를 쏟아냈다. 운석들은 조각난 칠흑의 화염구를 집어삼킬 뿐만 아니라 인저블을 향해 유도되었다.

“고작 대마법으로 나를 어찌할 수 있다고 생각했느냐!”

인저블이 창을 휘두르며 외쳤다. 칠흑의 광선 수십이 크고 작은 운석들을 꿰뚫었지만, 전부를 요격하지는 못했고 그중 일부가 인저블의 몸을 두들겼다. 폭발과 함께 사방에 파편이 튀고 검붉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해치웠으려나?

“아니, 아직 멀쩡해.”

검붉은 화염이 옆으로 물러나고 인저블의 모습이 드러났다.

메테오에 직격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상처 하나 없었다. 몸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마력이 그를 보호한 것 같았다.

-오러 아머가 꽤 튼튼해 보인다, 마법으로는 뚫는 게 쉽지 않겠어.

지옥참마도가 말했다.

마법으로 뚫기 힘들다면 오러 블레이드를 쓰는 수밖에.

현준은 황금의 검을 들어 올리며 중얼거리듯 내뱉었다.

“우선, 거리를 좁힌다.”

마력을 발판 삼아 허공을 박차고 인저블을 향해 쇄도했다. 일순간에 거리를 좁혀 오는 현준을 향해 인저블이 창을 휘둘렀다.

사방에서 마력 광선이 급소를 노렸고 칠흑의 창 또한 정면에서 매서운 기세를 풍기며 거리를 좁혀왔다.

찬란하게 휘둘러진 황금의 검과 칠흑의 창이 충돌하고 강렬한 마력 파편이 튀었다.

1초라는 짧은 순간, 수천 번의 검격이 오고 갔다. 하나라도 허용한다면 치명적인 일격들 속에서 현준은 점차 유리한 지점을 찾아갔다.

시든밀러와의 1차 해방 보상으로 받은 고유 검술이 인저블의 오러에 취약한 부분을 공략하여 내상을 축적시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번의 검격을 주고받을 때마다 조금씩 내상을 입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게 수천 번을 넘어서 1만 번을 넘기니 인저블도 부담을 느낄 정도가 되었다.

“큭!”

마침내, 인저블의 오러가 흔들렸고 붉은 피가 그의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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