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
60장 연합 함대의 시작(2)
연합 함대 계획이 시작되었다. 신형 전투선 건조를 위한 인력 확보, 그게 최우선 과제였고 레비앙은 의식을 쪼개어 ‘인형’에다가 담는 괴이한 마도학 술식까지 사용하여 박차를 가했다.
하급 마도학자 양성 과정에서 질드레의 비밀스럽고 사악한 술식이 동원되었지만, 구국의 이름하에 모든 과정이 불문에 부쳐지고 리스크가 강제로 눌러지게 되었다.
레비앙은 일기장의 도움을 받아서 침략사령부의 신형 전투선 이론을 완전히 익혔고 선진 기술들과 스승인 질드레가 남긴 술식들을 접목해서 새로운 설계도를 내어놓았다.
“기존의 신형 전투선으로 건조를 하게 될 경우, 침략사령부의 것을 사용하는 만큼 그들에게 취약점이 쉽게 노출될 확률이 큽니다. 그래서 기존의 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함선의 설계도를 만들었습니다.”
표면적인 이유다. 사실 레비앙은 새로운 함선을 만들고 싶었고 현준도 그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마도학적 지식으로 볼 때도 레비앙이 새로 보여준 설계도가 더 우수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정말 설계도대로 만들 수 있어?”
지나치게 사양이 높다.
“만들 수 있습니다.”
레비앙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현준은 그를 믿기로 했고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레비앙은 영혼까지 갈아 넣을 기세로 배틀쉽 프로젝트를 지휘했다.
그의 쪼개진 의식을 부여받은 ‘인형’들이 조선소와 공방을 분주히 들락이며 건조와 마도학자 양성을 지휘했다.
그리고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집정관, 이시리아가 차원 동맹의 마도학자 19명을 데리고 왔다.
레비앙만큼은 아니었지만 모두 뛰어난 마도학자들이었다.
그들이 도착하여 본격적으로 배틀쉽 프로젝트에 참가하기 전, 현준은 바쁜 레비앙을 호출했다.
“저들을 완전히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 부분에 대해서는 부정적입니다.”
차원 동맹이 현재 우군이라고 하지만 마도학적 기술에 대한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도 질드레라는 우수한 마도학자가 남긴 술식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다만, 그걸 강현준에게 직접 공유를 요청할 수 있을 입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섣불리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그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그 답은 정해져 있다. 현준은 물론이고 레비앙도 알고 있었다.
지금 질문을 던지는 건 의견을 묻는 게 아니라 동의를 구하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세뇌 술식을 각인하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레비앙이 말했다. 원하는 대답이 나왔기에 현준은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방법이 있을까?”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스승님께서 남긴 ‘일기장’에는 이런 상황에서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술식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자신감이 넘쳤다. 이미 게슈타인의 가호에 동화되어 있는 탓에 거침이 없었다.
“모든 걸 맡기겠다.”
레비앙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다. 현준이 말을 마치자 레비앙은 차가운 미소를 흘리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인형’이 아닌 그의 ‘본체’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계획의 시작을 알리고 3일의 시간이 지난 뒤였다.
“주군.”
최전방에서 방어전을 치르고 중앙 기지로 귀환한 현준에게 레비앙이 찾아왔다. 현준은 말없이 창문을 닫고 방음 술식을 작동시켰다.
“세뇌 술식을 각인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효력은 어느 정도?”
“어느 정도 대비를 하고 왔더군요. 명령을 내릴 수 있을 정도는 아니고, 저희 측 기술을 유출하지 못할 정도로만 해뒀습니다.”
중요한 술식은 레비앙의 의식이 각인된 ‘인형’들이 관리한다고는 하지만 보험을 들어서 나쁠 건 없었다.
레비앙의 대답에 현준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안심이야.”
전생, 질드레가 남긴 술식은 믿을 만했다. 지금까지 계속 활용했지만, 그 믿음을 배신하는 일은 없었다.
“이제 차원 동맹의 마도학자들이 합류하면 프로젝트는 순조롭게 진행되겠네.”
“속도가 3배는 빨라질 거라고 감히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의 목소리에서 자신감이 넘쳤다. 현준은 그 정도까지는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서 레비앙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작업 속도가 정말 3배는 빨라졌다. 차원 동맹의 마도학자들이 합류했다고는 하지만 그 속도의 상승이 비정상적일 정도였다. 현준은 레비앙을 따로 불렀고 그에게서 자백을 받아냈다.
“약간의 술식을 추가해서 쉽게 쉬지 못하는 몸으로 만들어 놨습니다. 심한 수준의 간섭은 아니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레비앙의 대답에 현준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지만, 따로 문제 삼지 않았다.
그가 뒤탈이 없게 잘 처리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흔들리고 있던 유럽 전선이 폴란드에서 안정화될 즈음이었다.
조선소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던 레비앙의 ‘인형’을 찾아온 이가 있었다. 인형은 전함의 선체에서 몸을 떼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경께서 저를 찾아오다니……. 별일이군요.”
“당신의 힘이 필요합니다. 레비앙.”
목소리의 주인은 김태민이었다.
“의외군요.”
레비앙이 말했다. 태민은 스스로를 현준의 오른팔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최근 자신의 자리를 빼앗은 레비앙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당사자인 레비앙은 눈치가 빠른 편이었기 때문에 금방 알아챘다.
그는 별다른 감정이 없었지만 설마 태민 쪽에서 먼저 접촉해 올 줄은 몰랐다.
“힘을 원합니까?‘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김태민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슬쩍 고개를 돌려 그 모습을 본 레비앙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일 정도의 결심이라면 양산형이 아니라 현준의 친위대에게 각인한 고급형 강화 술식을 사용해도 될 것 같았다.
“여기서 시술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니, 공방으로 가시지요. 이 ‘인형’은 지금 조선소를 떠날 수 없습니다.”
공방이라면 레비앙의 본체가 있는 곳이다. 태민은 심호흡과 함께 마음을 다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공방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현준의 친위대원 몇 명이 입구를 지키고 있었지만, 태민의 앞을 막아서지 않았다.
사실 레비앙이 언질을 줘두었지만, 굳이 그러지 않아도 태민의 위치를 생각해보면 부자연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빨리 왔군요.”
“서두르는 게 좋다고 판단했습니다.”
“현명한 판단입니다.”
레비앙은 대답과 함께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는 태민을 시술실로 안내했다.
음험한 분위기를 풍기는 문을 열자 마법진이 가득한 시술대가 중앙에 자리 잡은 작은 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준비는 다 해두었습니다. 시술대에 올라가서 기다리세요.”
레비앙이 말했다. 태민은 망설임 없이 시술대 위에 누웠고 고급형 강화 술식의 각인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큭……!”
양산형과 달리 고급형 강화 술식은 출력의 효율을 최대로 하기 위해 부작용을 완전히 해결하는 걸 포기했기 때문에 다소의 고통이 따랐지만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강화 술식의 각인이 완전히 끝나고 시술대에서 몸을 일으킨 순간 태민은 전신에 차오르는 강한 마력을 느꼈다.
“이, 이 정도일 줄이야…….”
“강해진 소감은 어떻습니까?”
“제가 얼마나 강해진 거죠?”
이 정도로 충만한 마력을 품어본 적이 없으니, 감이 잡히지 않았다. 태민의 물음에 레비앙은 도구 정리를 끝내고 고개를 돌렸다.
“지구의 판단 척도로 볼 때, SS급 최상위 정도는 되겠군요.”
고급형이라고는 하지만 하나의 강화 술식을 각인하고 S급에서 단번에 SS급 최상위로 오르다니, 태민은 기쁜 마음을 넘어서 허탈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그의 표정 변화를 읽은 것인지 레비앙이 차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허탈해하지 마시길, 고급형 강화 술식의 혜택을 볼 수 있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이제는 선별 인원의 대부분이 양산형 강화 술식을 각인 받게 될 겁니다. 김태민 경은 거의 막차를 탔다고 봐도 되겠군요.”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비장함까지 묻어나오는 태민의 말에 레비앙은 피식 웃었다.
“보은할 날이 올지는 모르겠군요.”
* * *
배틀쉽 프로젝트의 전함이 거의 완성 단계에 도달했다. 숙련된 승무원들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처음에는 승무원들 전원을 강화 헌터들로 채우려고 계획했지만, 시간을 소요하여 전문 훈련을 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충성심을 보장할 수 없다는 부분에서 레비앙이 이의를 제기했다.
오래 논의해야 할 문제 같았지만, 해답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현준이 그동안 무지막지하게 쌓아둔 검은 마정석들을 일부 사용하여 승무원들과 전투 부대를 보충하기로 한 것이다.
이들은 훈련 경험도 충분했으며 충성심 또한 보장되어 있다.
그리고 유기적인 연계를 위해 소수의 강화 헌터들이 동승하기로 했고 레비앙이 ‘질드레의 일기장’에서 찾아낸 술식과 설계도를 바탕으로 제작한 소형 골렘 부대가 실험 배치될 예정이었다.
계획이 수립된 직후, 현준은 저장한 검은 마정석들의 일부를 소모하여 승무원으로 삼을 이들을 영구 소환하기 위해 조선소 앞에 자리 잡았다.
“군단이여…….”
완성된 전함, 가디언의 앞에서 마력을 끌어 올려 가호를 호출했다.
-아콘이 위대한 명령으로 차원 관문을 개방합니다. 무한의 군단을 호출합니다.
차원 관문이 열렸다.
-영웅, 항법 통제사가 소환에 응합니다.
-군단, 마도학 공병 군단의 일부가 소환에 응합니다.
-군단, 우주 해병대의 일부가 소환에 응합니다.
-군단, 함대사령부 장교회의 일부가 소환에 응합니다.
-군단, 지옥참수 백병전단의 일부가 소환에 응합니다.
검은 제복을 입은 금발의 중년 장교가 위풍당당하게 걸어 나왔고 그 뒤로 가디언에 승선할 수천의 승무원들이 차례대로 등장했다.
마치 열병식을 보는 것 같았다. 그들은 질서정연하게 탑승을 끝마쳤고 마지막까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현준도 제 1함교로 자리를 옮겼다.
가디언의 제 1함교는 공중항모의 주 함교에 비해 3배는 넓었다.
“시범 운항 준비가 끝났습니다.”
레비앙의 ‘인형’이 보고했다. 현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통제단에 섰다. 마력을 끌어 올리자 가디언이 반응했다. 술식을 통해 증폭된 마력이 선체로 퍼졌다.
“가디언. 상승합니다.”
함대사령부의 장교가 차분한 목소리로 알렸다. 전함, 가디언이 고도를 높였다.
처음에는 아주 천천히, 느린 속도였지만 이내 순식간에 상승하여 대기권을 돌파했다.
“괜찮네.”
현준은 작게 감탄했다. 제 1함교의 창문 너머로 지구의 모습이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지요. 상당량의 자원을 쏟아부었으니까요. 이 상태로 양산은 못 합니다. 설계도를 수정해야겠어요.”
레비앙의 말에 현준은 피식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그나저나 주포를 시험해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마침 저 앞에 제 13침략군단의 전투선단이 보이는군요.”
우주에서 지구를 감시하고 있던 이들인 것 같다.
“테스트로는 나쁘지 않겠네. 총원 전투 준비!”
가디언의 첫 출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