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만 전생이 날 도와줘-199화 (199/217)

# 199

59장 과학 부대(3)

극심한 손해를 입은 상태에서도 연합군은 흑마법에 가까운, 정신 나간 가호 덕분에 패주하지 않았고 결국에는 승리를 취했다.

전투가 끝나고 현준은 백두산 방어선에 대기 중인 병력 일부를 호출했다.

오늘의 승전으로 전체 방어선이 북진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이제 백두산 방어선은 후방 기지의 역할을 수행할 것이며 전선이 확대되면서 극동 전선이라는 이름이 붙을 것이다.

현준과 공격대가 반쯤 파괴된 침략자들의 기지를 지키는 동안 백두산 기지에서 증원군이 출발했다.

이제 그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기지를 지키면서 과학 부대 거점을 탐색하면 된다.

“주군, 제가 재밌는 걸 찾았습니다.”

공군 수송 부대를 통해 3천의 일반 헌터 병력이 먼저 도착한 날, 과학 부대 거점을 수색하던 레비앙이 현준의 집무실을 방문했다. 그는 잔뜩 들뜬 표정이었다.

“재밌는 거?”

현준은 읽고 있던 보고서를 책상 위에 내려두며 레비앙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예, 아주 재밌는 걸 찾았습니다.”

“설명해 봐.”

흥미가 생겼다. 현준의 물음에 레비앙은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침략사령부가 개발 중인 신형 전투선의 설계도를 찾은 것 같습니다.”

“전투선의 설계도를?”

“예, 그것도 일반 전투선이 아니라, 신형 전투선입니다.”

제 13침략군단은 전선에서 한 발 물러나 있는 부대라서 침략사령부의 과학 부대 중 하나가 배치되어 있었다.

그들은 신형 전투선의 연구와 개발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제 13침략군단장 인저블이 갑자기 지구행을 결정하면서 이탈하지 못하고 함께 지구로 오게 된 것이었다.

전선에 뛰어들었다고는 하지만 당장 돌아갈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연구와 개발은 계속해야 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자신들의 일을 하다가 이렇게 부대가 전멸하게 되면서 신형 전투선 설계도가 레비앙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다.

“우리 기술로 만들 수 있나?”

“과학 부대 거점에는 다른 기술들에 대한 자료들도 있었습니다. 이걸 전부 활용하고 제 지식까지 더한다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의 기능을 갖춘 전투선을 제작할 수 있습니다.”

반가운 소리다.

침략사령부와 연합군의 차이를 결정짓는 요소 중 하나가 공군 전력이었다. 침략군은 거대한 전투선을 편성하고 있지만, 연합군의 공군 전력은 공격 헬기와 전투기 같은 것들뿐이다. 공군 전력이 크게 차이 날 수밖에 없다.

“당장 제작할 수 있겠나?”

전투선단을 갖출 수만 있다면 앞으로의 전투에서 승리할 확률이 크게 높아진다. 현준은 조금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레비앙이 당장 특유의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여줬으면 하는 마음이었지만 그는 귀신같이 입가에서 미소를 거두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힘듭니다.”

“부족한 걸 말해 봐.”

“다른 기술 자료들은 제 술식으로 해석이 가능했습니다만, 설계도 만큼은 완전한 해석이 불가능했습니다.”

신형 전투선 설계도는 중요한 기술 자원에 들어가기 때문에 뺏기더라도 해석이 되지 않게 침략사령부에서 암호화해두었다. 그나마 레비앙이니 일부라도 해석이 가능한 것이었다.

“어느 정도까지 해석했어?”

“진행 상황은 50% 정도입니다. 전부 해석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할 수준은 아니지만 아주 오래 걸릴 겁니다.”

레비앙의 대답에 현준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신형 전투선 설계도의 해석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다.

더군다나, 본격적인 해석을 하려면 레비앙도 후방으로 가서 연구에 매달려야 하니까 전력 손실도 있다.

“이시리아 집정관을 만나봐야겠다.”

“지금 이곳, 전방 기지에 있습니다.”

“안내해.”

산처럼 쌓인 보고서를 내버려 두고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옆을 지키고 있던 김태민이 자연스럽게 그 보고서들을 가지고 와서 검토를 시작했다. 그에게도 검토 권한이 있기에 딱히 문제가 될 건 없었다.

현준은 레비앙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집정관, 이시리아와 차원 동맹의 고위 기사들이 대기하고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이번 전투에 나선 공격대에 편성되지는 않았지만, 증원군으로 공군 수송 부대와 함께 얼마 전에 도착했다.

“강현준 경? 어쩐 일이십니까?”

고위 기사, 레빌이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이시리아 집정관은 어디에 있습니까? 대화를 좀 나눴으면 하는데…….”

“지금은 휴식을 취하고 계십니다. 안내해드릴까요?”

현준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자 레빌이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뒤를 따라 5분 정도 걷자 반쯤 무너진 조립식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부서진 벽의 잔해 너머로 이시리아의 모습이 보였다.

“오셨어요?”

차분한 목소리와 함께 이시리아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직 마력이 회복되지 않은 걸 아실 텐데, 무슨 일로?”

“조언을 구하고 싶어서요.”

현준은 동행한 레비앙에게 시선을 보냈다. 대신 설명하라는 무언의 신호를 이해한 레비앙이 이시리아가 있는 방향으로 한 걸음 다가가 사정을 설명했다.

약 5분 만에 설명이 끝나고 이시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형 전투선 설계도라면 특급 기밀에 해당하는 기술이에요. 침략사령부에서도 가장 희귀하고 수준 높은 암호가 사용되었을 텐데, 이 짧은 시간 동안 50%나 해석했다는 게 놀랍네요. 강현준 경은 우수한 수하를 뒀네요.”

그녀는 진심이었다. 특급 기밀을 지키기 위해 침략사령부에서 사용하는 암호는 차원 동맹의 우수한 마도학자들도 해석하는 데 애를 먹을 정도로 고차원적인 거였다. 그걸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50%나 해석했다는 건 대단한 성과였다.

“레비앙은 뛰어난 마도학자이지요.”

현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이시리아는 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는 현준이 원하는 걸 알고 있었다.

“암호를 해석할 만한 유물을 알고 있는지 물어보러 온 거죠?”

“잘 알고 있네요.”

“가능하면 그 위치도 말해주었으면 하고요?”

“당연한 걸 말하는군요.”

바로 대답하지는 않았지만 이시리아는 현준이 말한 조건을 충족하는 유물의 정보를 알고 있었다.

그 유물은 오래전 차원 동맹에서 확보하고 운반 도중에 잊혀진 차원에서 유실했다.

찾으려고 하면 찾을 수 있지만, 지금까지 수색 부대를 보낼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미뤄 왔다.

“유물명은 ‘질드레의 일기장’이에요. 지금은 잊혀진 차원 중 하나에 잠들어 있죠. 당장 우선순위가 아니라서 수색 부대를 보내지 않았는데, 침략사령부에서는 찾지 못했을 거예요. 거긴 차원 동맹의 영토니까.”

이시리아가 말했다. 유물은 전생의 힘을 다룰 수 있는 적격자가 아니면 쓸 수 없다.

그래서 차원 동맹에서는 유물의 수색을 우선순위에 올려두지 않았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아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유물의 정보를 입수했고 병력의 여유가 있을 때 하나씩 집어올 뿐이었다.

그마저도 침략사령부와의 교전이 필수라면 우선순위에서 또 밀려나게 된다.

“차원 도약을 하려면 마력을 얼마나 더 모아야 합니까?”

“하루만 더 기다려주세요.”

“알겠습니다.”

조급한 마음이 들었지만, 하루 정도는 더 기다릴 수 있다.

현준은 이시리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고는 고위 기사들의 공간을 떠났다.

* * *

북쪽의 침략군이 언제 다시 공격을 할지 모른다. 긴장 속에서 하루라는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뜬눈으로 밤을 지낸 현준은 스프와 빵으로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해결하고서 장비를 점검했다.

-전투인가?

전투를 앞두고 장비를 점검하는 건 현준의 습관이다. 그걸 알고 있는 지옥참마도의 물음에 현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비 점검을 끝내고 허리의 단검집에 도살자 단검을 집어넣은 순간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현준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문이 열리고 이시리아가 걸어 들어왔다. 그녀의 뒤에는 가벼운 무장을 갖춘 레빌이 서 있었다.

“보니까 준비는 끝난 것 같네요.”

“마력이 다 회복되었나 보군요.”

“물론이죠. 안 그랬으면 여기 올 일은 없었겠죠?”

얼핏 듣기에는 차가운 말투였지만 장난기가 다소 섞여 있었다.

그걸 감지한 현준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갑시다.”

세 사람은 숙소를 나와 공터에 도착했다. 이시리아가 차원 도약을 위한 관문을 열었고 현준을 시작으로 하나둘씩 갈라진 공간 속으로 몸을 던졌다.

시야가 어둠으로 물들었다. 처음은 아니었지만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 이질적인 기운을 견뎌내자 빛이 눈앞에 보였다. 빛을 따라 걸었다. 마침내 시야가 회복되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혼란스러운 마력이 뒤섞인 공간에 있었다.

“크어어어어!”

뒤틀린 이형의 존재, 괴물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뭔가’가 현준에게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뽑혀 나온 지옥참마도가 괴물의 목을 쳤다.

“이시리아 집정관이 말했던 변종인가?”

부서진 차원의 마력에 중독된 괴물, 그것이 변종이다. 얼마 전에 이시리아, 그리고 레빌과의 대화 중에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근데 이건 수가 너무 많은데……?”

태양이 빛을 잃었다. 어두운 하늘 아래 수백의 변종이 보였다. 이윽고 차원의 틈을 뚫고 이시리아와 레빌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들 역시 수백의 변종을 보았다.

“변종들이네요.”

“수가 제법 많은 것 같습니다…….”

이시리아는 비교적 여유로웠지만, 차원 도약 탓에 마력을 아껴야 하는 그녀를 호위하는 입장인 레빌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다.

“레빌 경.”

“예, 강현준 경……. 말씀하시지요.”

“이시리아 집정관을 부탁합니다.”

그녀가 없으면 지구로 돌아갈 수 없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믿고 맡기겠습니다.”

현준은 레빌의 대답을 듣기 무섭게 땅을 박차고 하늘로 솟구쳤다.

-주인아, 전부 S급 이상이다.

S급 이상의 변종이 수백이라, 그렇다면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황금의 검을 꺼내는 게 좋을 것 같다.

마력을 일으키며 황금의 검을 뽑아 들었다. 신격의 힘이 해방되면서 강력한 기운이 방출되어 변종들을 압도했다.

“소드레인!”

하늘에서 빛의 검이 비처럼 쏟아졌다. 변종들이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졌다.

하지만 그 수가 워낙 많아서 한 번의 소드레인으로는 몰살시키지 못했다. 결국, 현준은 황금이 검을 휘두르며 변종들의 무리 깊숙이 파고들었다.

“키에에에엑!”

“크어어어어!”

전부 S급 이상, 그리고 SS급이 십여 개체 섞여 있다. 하지만 신격의 힘을 해방한 현준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일순간에 수백의 변종이 잔혹한 검의 폭풍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고 그 광경을 레빌은 입을 떠억 벌리고 지켜봤다.

‘성장 속도가 너무 빨라…….’

이시리아 또한 그 모습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적격자들의 성장 속도가 괴물 같다는 건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강현준, 그는 처음 봤을 때보다 훨씬 강해졌다.

겨우 두세 달의 시간이 지났을 뿐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전쟁……. 승산이 있다.’

차원 동맹 수뇌부가 적격자에게 기대를 거는 이유를 이제야 제대로 이해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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