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
58장 하사신의 어둠(2)
“도대체 이 안에 뭐가 있길래, 이렇게 통제하면서……. 우리까지 경비로 세우는 건지…….”
“글쎄요, 소문에 의하면 적격자와 관련된 뭔가를 보관하고 있다는 것 같아요.”
현준은 두 인베이더의 대화를 엿들으며 뒤를 밟았다. 둘은 이곳에 ‘하사신의 어둠’이 보관되어 있는 걸 모르는 모양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둘은 인베이더 중에서도 말단으로 보였다. 현준은 중간 지점부터 뒤를 밟는 걸 중단했다.
‘하사신의 어둠’이 흘리는 기운이 강해지고 있었다. 이제는 굳이 미행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
지하 시설은 넓었다. 신격의 경지에 오르면서 마력의 양이 많아졌다고는 하지만 5시간 이상 완전 은신을 사용하면서 소모되는 마력은 결코 적은 양이 아니었다.
-근처에 있는 것 같다.
지옥참마도가 말했다. 현준 또한 희미했던 기운이 점차 강렬해지는 걸 감지했다.
그는 기운이 흘러나오는 방향을 향해 천천히 그리고 은밀하게 나아갔다.
근처에서 기운이 느껴진다고는 했지만, 이곳의 구조가 마치 미로와 같아서 근원지에 도달하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현준은 곧 ‘하사신의 어둠’의 기운이 뭉쳐 있는 곳을 발견했고 천천히 거리를 좁혔다.
인베이더 1명이 통로를 지키고 있었다.
-통로를 지키고 있는 놈은 SSS급 중견 수준이다. 안에 비슷한 수준의 인베이더가 2명 더 있다.
굳게 닫혀 있는 철문에는 내부의 마력을 감지하기 힘들게 하는 결계 술식이 각인되어 있었지만 지옥참마도의 탐지를 속일 수는 없었다.
‘암살이 가능할까?’
신격의 힘을 해방하면 쉽게 처리할 수 있겠지만 완전 은신이 풀릴 뿐만 아니라 강대한 기운이 퍼져 나가면서 철문 너머의 인베이더들이 눈치채고 유물을 빼돌릴 가능성도 있었다.
‘순식간에 다 쓸어버리면 되겠지.’
현준은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통로를 지키고 있는 인베이더의 뒤로 천천히 이동했다.
그는 완전 은신 상태의 현준이 흘리는 기척을 눈치채지 못했다. 인베이더의 시선이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훑는 동안 현준이 뽑아 든 도살자 단검이 그의 목을 그었다.
푸슉!
“끄르르륵!”
붉은 피가 튀었다. 머리를 잃은 인베이더의 몸뚱이가 무너지듯 쓰러지기 무섭게 현준은 황금의 검을 뽑아 들며 신격의 힘을 폭발시켰다.
“환영검!”
12개의 검격이 철문을 조각냈다. 방어 술식이 각인되어 있기는 했지만 12개의 오러 블레이드를 버텨내지는 못했다.
조각난 파편들이 무너지면서 내부가 훤히 드러났다. 현준은 차분하게 눈동자를 움직여 안의 상황을 파악했다.
신격의 힘을 해방한 순간 공격을 인지한 것인지 2명 다 방어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현준은 마력을 일으켰다.
-라이키리의 빛이 당신을 아득한 저편으로 인도합니다. 빛과 함께 한줄기의 섬광이 되어 적을 꿰뚫으세요.
섬광이 터졌다. 현준은 한 줄기의 빛이 되어, 검을 휘두르는 인베이더를 꿰뚫었다.
“커, 커헉!”
인베이더는 전격의 랜스에 복부를 관통당한 채 경련하며 붉은 피를 토해냈다.
“타올라라!”
5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또 다른 인베이더가 권능을 사용했다. 하지만 검은 화염이 피어올랐을 때 이미 현준은 그곳에 없었다.
“어, 어디 갔지?”
“뒤다.”
현준은 당황한 인베이더의 말에 친절히 대답해주며 배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인베이더가 또 다른 권능을 사용하기 위해 마력을 끌어 올린 순간 황금의 검이 그의 목을 노렸다.
아차! 하는 순간 그의 목이 꿰뚫렸다. 초고속 재생이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지만, 그것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 현준의 왼손에 들려 있던 도살자 단검이 미간에 꽂혔으니까.
순식간에 SSS급 수준의 무력을 가진 인베이더 셋을 처리한 현준은 눈동자를 빠르게 움직여 어두운 공간을 탐색했다.
잠시나마 신격의 힘을 해방했으니 곧 방해꾼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전에 ‘하사신의 어둠’을 찾아야만 했다.
그리고.
“찾았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희미한 조명 아래 구석진 곳에 보이는 작은 문에서 하사신의 마력이 흘러나왔다.
현준은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다. 그러자 어딘가로 내려가는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10평 남짓한 공간이 나타났다. 그 중앙에는 덮개가 없는 작은 보관함이 반쯤 잘린 것 같은 기둥의 단면에 올려져 있었다.
‘익숙한 마력이네.’
보관함이 품고 있는 검은 마력 물질을 보며 현준은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의 짐작이 맞다면 저것이 ‘하사신의 어둠’일 것이다.
현준은 작은 어둠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손끝에 닿는 순간 어둠이 녹아내리고 칠흑빛의 작은 반지만 남았다.
-하사신이 남긴 어둠을 찾았습니다, 진정한 어둠이 함께합니다. 마력을 사용하더라도 완전 은신이 해제되지 않습니다.
목소리와 함께 검은 반지에 닿은 손가락 끝에서 하사신의 마력이 흘러들어왔다. 현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이건 엄청난 이득이다.
헌터들은 인간을 초월한 움직임을 보일 때 마력을 사용하여 신체를 활성화한다. 그런데 마력을 사용하면 은신이 해제된다.
‘그래서 완벽한 암습은 없다는 말이 나온 거지.’
공격하는 순간 은신 상태가 해제되면서 마력이 드러나니까, 적이 찰나의 순간이지만 기척을 감지할 수 있는 빌미를 얻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마력을 사용해도 완전 은신 상태가 해제되지 않는다면?
그 어떤 기척도 없이 적을 암살할 수 있는 살수가 될 수 있다.
물론 적이 완전 은신 자체를 꿰뚫어 보는 강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만, 그런 감각을 지닌 이들은 극히 드물다.
‘단기전이면 완전 은신을 켜놓고 싸워도 될 것 같은데?’
문득 든 생각이었지만 현준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전투를 계속하는 동안 계속 완전 은신 상태로 있는 건 비효율적이었다. 완전 은신을 유지하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양의 마력이 소모되기 때문이었다.
-주인아, 적들이 온다.
지옥참마도가 경고했다. 현준은 칠흑의 반지, ‘하사신의 어둠’을 끼고 마력을 일으켰다.
-하사신의 음험한 발걸음이 당신을 완전한 어둠으로 안내합니다. 찬란한 빛 속에서도 당신은 그림자가 됩니다.
완전한 어둠으로 초대되었다. 신격의 힘을 감추고 은신한 채 유유히 지상으로 빠져나왔다. 완전 은신에 많은 마력이 소모된다고는 하지만 신격의 경지에 오른 데다가 베히모스의 가호로 마력로를 많이 확장해두었기 때문에 아직은 괜찮았다.
‘난리가 났네.’
비상 상황이 발령된 것인지 중무장한 솔저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비행장에서는 전투선 1척과 고속정 13대가 이륙했다.
현준은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절벽의 끝이 보였다. 저곳에서 집정관 이시리아와 고위 기사, 레빌이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은신 상태에서는 마력을 사용하지 못하니, 절벽을 오를 것을 걱정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현준은 ‘하사신의 어둠’을 손에 넣은 상태다. 마력을 사용해도 상관없으니, 저 높은 절벽의 끝에 닿는 것에 걱정이 없다.
한 번의 도약으로 절벽의 끝을 넘었다. 천천히 속도를 줄여서 절벽 쪽 고지대에 착지한 현준은 ‘완전 은신’ 상태를 해제하고 모습을 드러냈다. 침략사령부의 고속정 부대의 순찰은 여기까지 오지 않았다.
“성공하셨군요.”
은신의 장막이 갈라지듯 열리며 레빌과 이시리아가 걸어 나왔다. 레빌은 성공을 당연히 예상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현준은 그들을 향해 몇 걸음 다가서며 입을 열었다.
“‘하사신의 어둠’을 확보했습니다. 여기서 바로 차원 도약은 힘들죠?”
“네. 안전한 곳에서 해야 해요.”
질문에 답한 이는 이시리아였다. 현준은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바로 지구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차원 도약은 높은 집중력을 요구하는 고등 기술이었기 때문에 안전한 공간을 확보하는 게 좋았다.
조급해할 필요 없다. 급하게 진행하다가 차원의 미아가 되어버리는 비극적인 일은 피해야 하지 않겠는가?
“일단 이곳에서 벗어나죠.”
“제가 장막을 열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레빌이 나섰다. 고속정이나 전투기의 마력 레이더로는 그의 은신 장막을 탐지하지 못할 테니, 굳이 하사신의 가호를 사용할 필요는 없었다.
“주둔 부대에 비상경계가 발령된 것 같습니다. 최대한 빨리 이탈해야 해요.”
현준의 말에 레빌과 이시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은신의 장막이 펼쳐지고 그들은 침략사령부 주둔 부대의 눈을 피해 어둠 깊숙한 곳으로 숨어들었다.
전투기 편대와 고속정 부대의 모습이 계속해서 보였다. 쉴 새 없이 순찰 중인 모양이었지만 그들의 마력 레이더로는 레빌의 은신 장막을 탐지할 수 없었다.
인베이더들이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등급이 높은 이들은 엉덩이가 무거웠고 낮은 급들은 광역 정찰을 모두 감당할 정도로 숫자가 많지 않았다.
현준과 이시리아, 그리고 레빌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들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시작할게요.”
현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시리아는 마력을 끌어 올렸다. 공간이 갈라지면서 차원 관문이 생성되었다.
도약 준비가 끝났다.
“돌아갑시다. 지구로…….”
* * *
“실드 소멸! 제3함교 피탄!”
“우현 전타! 회피 기동!”
“적 선봉 함대의 주포가 본 함선을 노리고 있습니다!”
제1함교에 울리는 절망적인 보고의 행렬에 제7침략군단장 하스웰은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호위 함대에 군단 지휘선을 보호하라고 전파하라!”
명령이 전파되었다. 호위 함대가 일제히 앞으로 튀어나와 방패가 되어 장렬히 산화하는 동안 하스웰이 탑승한 군단 지휘선은 안전한 곳으로 피할 수 있었다.
“112번 부대, 앞으로. 28번 부대는 뒤로 물러나.”
하스웰은 최선을 다해 전선을 지휘했지만, 전황은 조금씩 차원 동맹 쪽으로 기울었다.
결국, 제2집단군 사령부에서는 제7침략군단장 하스웰에게 해당 차원에서 철군하라는 명령이 전달했다.
하스웰은 제7침략군단이 아직 더 싸울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집단군 사령부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미련이 남은 것인지 그는 후방 차원으로 물러나 군단이 재정비하는 동안 제2집단군 사령관에게 개인 통신을 요청했다.
5분 정도의 대기 끝에 통신이 연결되었다.
“제7침략군단장 하스웰입니다. 제2집단군 사령관님을 뵙습니다.”
-하스웰 군단장, 이렇게 개인 통신을 요청할 줄은 몰랐습니다.
“사령관님, 실례를 무릅쓰고 직언하겠습니다. 왜 철군 명령을 내리신 겁니까? 지원군이 올 때까지 더 싸울 수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원군이 올 때까지 버티는 것이라면 분명 가능했을 것이다. 적어도 하스웰과 군단 참모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스웰 군단장과 제7침략군단에게는 다른 임무를 맡길 게 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었어요. 그 임무를 수행하려면 군단을 최대한 보전할 필요가 있었으니까요.
‘다른 임무라고?’
하스웰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화면 속의 집단군 사령관을 향해 시선을 보냈다.
“전선 사수보다 중요한 임무입니까?”
하스웰의 물음에 집단군 사령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최근 적격자가 과거의 유물들을 찾아 나선 것 같더군요.
하스웰은 대답 대신 경청했다.
-그 속도가 매서울 정도입니다. 아무래도 동맹군에서 차원 관련 능력을 가진 집정관이 붙인 것 같아요.
“제가 그걸 막으면 됩니까?”
-그런 셈이죠. 정확히 말하면 가장 위협적인 유물을 선점하라는 뜻입니다.
“어떤 유물을 선점하면 되는 겁니까?”
새로운 임무에 적격자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에 하스웰이 조금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모든 유물이 위협적이지만 침략사령부에서는 ‘기동요새’를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지요?
집단군 사령관이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하스웰은 차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제7침략군단은 기동요새의 수색에 나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