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만 전생이 날 도와줘-181화 (181/217)

# 181

54장 잠든 유적(1)

드레이크가 말한 거점은 침략군이 점령한 러시아 영토에 있었다. 현준은 레비앙, 그리고 플레임과 함께 움직였다. 친위대는 로마노프의 가호로 언제라도 소환할 수 있기 때문에 동행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플레임을 타고 은밀하게 움직였다. 점령지답게 침략군이 주둔 중이었고 순찰하는 병력도 많았지만, 탐색 능력이 뛰어난 지옥참마도 덕분에 침략군과 조우하지 않고 무사히 거점 인근에 도달할 수 있었다.

“멀리 있을 때는 몰랐는데, 가까워질수록 익숙한 마력이 느껴집니다.”

거점이 있는 좌표를 향해 분주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였다. 레비앙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은폐 결계를 작동하고 있는 것 같지만 마력이 워낙 강대해서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난 잘 모르겠는데?”

악몽급 신격의 경지에 올랐지만, 마력의 흐름이나 파장은 느껴지지 않았다.

“저도 낌새가 이상해서 고등 탐색 술식을 몇 번이나 중첩한 다음에서야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주군의 경지가 높고 마법 술식도 익혔다고는 하지만 흘러나오는 마력이 워낙 희미한 수준이라…….”

현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경지가 높다고는 하지만 레비앙에 비해서는 마법 술식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질드레로부터 마법 술식을 배웠다고는 하지만 평생을 투자하여 술식을 연구한 레비앙과 비교하면 그 깊이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뭐가 있을까?”

“인베이더 수십이 지키고 있는 곳이니까 뭔가 중요한 게 있지 않겠습니까? 어둠의 전쟁 병기라든지, 유물 같은 게 잠들어 있을 것 같습니다.”

현준의 말에 대답한 이는 플레임이었다. 그는 두 눈을 반짝이며 전쟁 병기와 유물을 언급했다.

“그래, 그런 게 있을 수도 있겠지.”

티 나지 않게 짧은 한숨을 내뱉으며 레비앙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시선이 닿는 걸 느낀 레비앙은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

“어둠의 전쟁 병기일지도 모른다는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유물일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군요.”

“유물이라면 어떤 걸 말하는 거지?”

“간단하게 말해서 다른 차원의 물건입니다. 차원이 멸망하더라도 강한 힘을 지닌 마도구들은 파괴되지 않습니다. 차원 폭풍 속에서 표류하다가 다른 곳으로 넘어가게 되는 거죠.”

강한 힘을 지닌 다른 차원의 마도구, 그것을 유물이라고 부른다. 적어도 레비앙의 세계에서는 그랬다.

현준은 지금까지 유물을 본 적이 없었지만 레비앙의 이론을 듣고 보니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되었다.

“슬슬 도착했나.”

산맥의 깊은 곳, 인베이더들이 지키고 있는 의문의 거점이 절벽 아래로 보였다. 현준은 지옥참마도를 뽑아 들었다. 지금 당장은 신격의 힘을 사용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황금의 검을 꺼내면 마력 소모가 너무 크기 때문에 최대한 아끼는 게 좋았다. 여기는 적진이었으니까. 돌아갈 마력을 아껴둬야 했다.

“플레임, 레비앙. 교란을 부탁한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형님!”

플레임이 힘찬 목소리로 대답했고 레비앙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신호와 동시에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흑염룡의 상태가 된 플레임이 레비앙을 등에 태운 채 날아올랐다.

“엄호하겠습니다!”

레비앙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마법 술식을 펼쳤고 찬란한 마력의 빛줄기가 거점을 향해 내려꽂혔다.

콰앙! 쾅!

갑작스러운 공격이었다. 플레임이 모습을 드러내기 무섭게 고등 마법 술식이 순식간에 완성되어 거점을 공격한 것이었지만 인베이더들의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다.

2명이 부상을 입었을 뿐 나머지는 완전 회피에 성공했다. 무서울 정도의 반응 속도였다.

“적습이다!”

“경보 올리고 응전한다!”

거점을 지키고 있던 인베이더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거점 전체에 경보가 작동했다. 여기저기서 숨어 있던 방어 시설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임시로 설치된 것으로 보이는 울타리의 가장자리에서 4개의 거대 포탑이 솟아올랐다. 4개의 포구가 일제히 하늘, 정확히는 플레임을 조준했다. 하지만 레비앙이 그걸 가만히 놔둘 리 없었다.

레비앙의 원거리 저격 술식이 완성되었고, 이내 4개의 빛줄기가 거대 포탑을 관통했다. 뒤이어 인베이더들의 중앙에 현준이 부드럽게 착지했다.

“폭풍검.”

오러 블레이드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크아악!”

“커허헉!”

인베이더들이 피를 쏟아내며 쓰러졌다. 다른 이들은 간신히 폭풍검의 오러 블레이드를 피했지만, 하늘에서 내려꽂히는 레비앙의 마법 술식까지 완벽하게 회피하지 못했다.

현준과 레비앙, 그리고 플레임의 협공에 인베이더들의 수가 빠르게 줄어 들어갔다.

“반드시 막아야 한다! 이곳이 결코 적격자에게 넘어가서는 안 된다!”

“부대에 지원을 요청해!”

순식간에 인베이더들의 수가 절반 이상 줄었다. 남은 이들은 결사 항전의 각오를 불태우며 방어 태세를 가다듬었다. 일부는 지원을 요청하며 움직였다.

하지만 하늘 위, 플레임의 등에 타고 있는 레비앙은 그 모습을 보며 씨익 웃었다.

고위급 방해 술식이 작동 중이었기 때문에 지원을 요청해도 마법 통신이 닿지 않을 것이다. 현준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인베이더들의 수를 줄여 나갔다.

“커, 커헉…….!”

마지막까지 버티던 SSS급 수준의 인베이더가 붉은 피를 왈칵 쏟아내며 쓰러졌다. 팔과 다리가 잘리고 초고속 재생이 여러 번 있을 정도로 필사적으로 항전했다.

그러나 결국 신격의 경지에 오른 현준을 이기지 못하고 무력하게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인베이더들을 모두 정리한 현준은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정면에 보이는 유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지옥참마도를 검집에 집어넣자, 플레임과 레비앙도 지상에 내려와 합류했다.

“안에 뭔가 있는 것 같군요.”

마도학자의 호기심이 발동한 모양인지 레비앙이 두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세 사람은 유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제가 바깥 경계를 맡겠습니다.”

플레임이 먼저 이탈했다. 현준은 레비앙과 함께 유적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내부는 어두웠다. 신격의 경지에 오른 상태였기 때문에 앞은 보였지만 레비앙이 좀 더 편하게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빛의 정령을 불러냈다.

“정령술도 할 줄 알았나?”

정령술은 마법과는 조금 다르다.

“술식으로 정령을 부릴 수 있습니다. 고위급 정령을 소환할 수는 없지만, 조명 역할을 할 만한 최하급 정령 정도는 불러낼 수 있지요. 라이트 마법이나 조명 술식보다 편해서 가끔 써먹고 있습니다.”

“그래? 마법 술식은 편리한 점이 많네.”

레비앙의 말에 현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전생의 방에서 질드레에게 술식에 대해 배울 때부터 어느 정도 감이 왔지만 술식은 마법보다 다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유일한 단점이 있다면 대부분의 술식이 높은 집중과 마력 제어를 요구하기 때문에 전투 중에 사용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레비앙이 전투 중에 술식의 사용이 가능했지만 특이한 경우였다.

“여긴 별 거 없군요. 제대로 된 시설은 지하에 있는 것 같습니다.”

빛의 정령들을 따라 유적 안을 돌아다녔지만 인베이더들이 목숨을 지킬 만한 무엇인가는 발견되지 않았다. 레비앙의 말에 현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깊숙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조금 전에 입구 쪽으로 나오면서 지하로 향하는 것 같은 작은 계단을 본 게 기억에 남아 있다.

“찾았다.”

아니나 다를까 구석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현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고 레비앙도 두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먼저 내려갈게.”

“뒤에서 엄호하겠습니다.”

현준이 먼저 계단을 내려갔고 레비앙은 빛의 정령을 앞으로 보내 시야를 확보하며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따라붙었다.

지하는 넓었다. 빛의 정령들이 어둠을 다 몰아내지 못할 정도였다.

“축구장 크기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레비앙의 말에 현준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거대한 공동이었다.

“여기 뭔가 있는 것 같습니다. 확실해요.”

“탐색 술식을 사용하는 게 좋겠지?”

“예, 신호를 차단했다고는 거점이 공격받았다는 사실이 언제 발각될지 모릅니다. 최대한 서두르죠.”

“나는 왼쪽을 맡을게.”

“저는 오른쪽으로 가겠습니다.”

둘은 탐색 술식을 펼친 채 각자 맡은 방향으로 흩어졌다. 눈앞에 형성된 마법진이 마력의 흔적을 추적했다.

뭔가 있는 것 같다. 희미한 마력의 흔적이 마법진에 잡히는 것 같았지만 그 정확한 위치는 특정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돌아다녔을까? 1시간 이상 시간을 소모한 것 같다.

‘슬슬 위험하지 않나?’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다. 적의 상위 부대가 거점의 이상을 파악하고 병력을 보내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시간이었다.

포기하고 돌아가려는 찰나였다.

“여기 뭔가 있습니다!”

레비앙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준은 레비앙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빛의 정령 셋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오셨습니까?”

레비앙은 뭔가를 살피고 있었다. 기계 장치라고 하기에는 조잡한 뭔가였다. 영화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고대의 컴퓨터 같은 느낌의 석판이었다.

“이게 뭔지 알겠어?”

“글쎄요. 확실하지는 않지만, 일종의 신호를 보내는 장치인 것 같습니다.”

레비앙이 조심스럽게 짐작했다.

“어디로 신호를 보내는 건지 알 수 있나?”

“일단 침략사령부 쪽에서 사용하는 술식 각인은 아닙니다. 그건 장담할 수 있어요.”

“정확하게 해석하는 건 불가능하고?”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합니다.”

아공간 주머니에 들어갈 정도로 작은 크기는 아니었다. 현준은 심각한 표정으로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저걸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거듭했지만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뗄 수 있어?”

“유적 전체에 술식이 깔려 있는 것 같습니다. 제거를 시도하면 술식 연결이 끊어지면서 무용지물이 될 확률이 높습니다.”

아공간 주머니에 넣지 않고서라도 가져가는 건 힘들다는 말이다.

“형님! 침략군 병력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그때, 플레임이 지하로 뛰어 내려오며 외쳤다.

“침략군이 거점의 이변을 눈치챈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차분히 말하면서도 술식 각인의 분석을 멈추지 않는 레비앙을 보며 현준은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 같아?”

버텨야 한다면 그렇게 해야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오래 걸려도 3시간을 넘기지 않을 것 같군요.”

레비앙은 솔직하게 말했다. 이윽고 현준의 시선은 플레임에게 향했다.

“적의 수는?”

“상륙선 2척에 전투선 1척입니다.”

다행히 최악은 아니다. 상황을 살펴보러 온 선발 정찰대인 것 같았다.

‘하지만 교전이 발생하거나 이상을 발견하면 그들은 지원 병력을 요청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수만의 병력이 몰려오겠지.’

“레비앙, 뒤를 부탁한다.”

“최대한 빨리 해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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