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만 전생이 날 도와줘-180화 (180/217)

# 180

53장 군단이 온다(4)

폭풍이 불어 닥쳤다. 날카로운 마력의 칼날을 머금은 바람과 뇌전이 인베이더들을 덮쳤다.

바로 근처에 현준도 있었지만, 그는 폭풍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바람의 칼날과 뇌전은 인베이더들만을 정확히 노렸다.

‘이건 마법이다.’

그것도 아주 수준 높은 마법사가 펼치는 마법이 분명했다. 과다출혈로 의식이 멀어지는 도중에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폭풍에서 노골적인 마력의 냄새가 묻어 나왔다.

갑작스러운 폭풍은 현준의 곁에서 인베이더들을 몰아냈다. 그리고 허공이 갈라지더니 전신 판금 갑옷을 입은 기사가 나타났다.

“위원회 소속의 듀크입니다. 드레이크 경과 함께 위원장님을 지원하러 왔습니다.”

유럽에 있어야 할 영국의 SSS급 헌터, 폭풍의 드레이크가 여기에 왔다고?

“지, 지원군의 규모는…….”

현준이 피를 토해내면서 물었다. 그는 이 전장을 지휘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원군의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을 필요가 있었다.

“많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까……! 대체 어느 정도라는 말입니까?”

“잠깐의 시간을 버는 것 정도밖에 안 됩니다! 어서 여기서 빠져나가야 합니다!”

듀크가 힘없이 추락하려는 현준을 부축하며 외쳤다. 목소리가 너무 커서 뇌가 흔들리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현준은 고개를 돌려 주변을 빠르게 둘러 보았다.

드레이크가 이끌고 온 걸로 보이는 군대가 보였다. 하늘에도 전투기 편대 여럿이 날아다니고 있지만, 지상군의 규모는 고작해야 수천에 불과했다. 듀크의 말과는 달리 시간을 버는 것조차 벅차 보였다.

“위원장님!”

듀크의 재촉에 현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에게 완전히 몸을 맡겼다. 듀크는 현준과 함께 갈라진 공간 속으로 몸을 던졌다.

칠흑과도 같은 깊은 어둠이 그들을 덮쳤다. 현준이 다시 눈을 떴을 땐 전혀 다른 공간에 와 있었다.

“단거리 차원 도약, 제 특수 능력입니다.”

따로 묻지 않았지만, 듀크가 먼저 설명했다.

“백두산입니다. 여기에 방어선을 구축할 생각입니다.”

러시아에서 단번에 백두산까지 왔다. 단거리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차원 도약으로 분류되어서 그런지 이동 거리가 길었다.

“러시아 쪽의 연합군은 모두 후퇴한 겁니까?”

꺼져가는 의식을 간신히 부여잡은 채 질문을 던졌다. 드레이크가 이끌고 온 연합군의 지원 병력이 무사히 후퇴했는지 궁금했다.

듀크는 투구를 벗었다. 땀범벅인 얼굴이 드러났다. 그는 현준을 향해 힐끗 시선을 보내며 입을 열었다.

“제가 말하지 않았나요? 시간 벌이라고.”

“그 말은 수천의 군대가 단순히 시간을 벌기 위한 희생양이었다는 겁니까?”

“단순히 시간을 벌기 위한 게 아닙니다. 인류의 미래를 지키기 위한 고귀한 희생이었습니다.”

효율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지독할 정도로 냉정했다.

심지어 고귀한 희생이라고 말하는 듀크의 모습은 현준이 어이를 잃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뭐라 반박하고 싶었지만, 듀크와 드레이크 덕분에 목숨을 건졌기 때문에 강하게 언성을 높일 수 없었다.

“큭…….”

“위원장님!”

갑자기 현준이 비틀거리자 듀크가 다급하게 그의 몸을 붙들었다.

“가호가 끝났나…….”

단치히의 마력이 사라졌다. 정신이 급속도로 아득히 멀어지고 시야가 희미해졌다.

팔다리가 마비라도 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위원장님! 정신 차리세요!”

듀크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정신을 차리는 게 쉽지 않았다.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두 눈이 감겨왔다.

그리고 천천히 의식을 잃었다.

* * *

눈을 뜨자 낯선 천장이 보였다. 변한 환경에 대해 의문을 품기도 전에 의식을 잃기 직전,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그 기억들이 파도처럼 밀려 들어왔다. 현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켰다.

“여긴…… 어디지……?”

듀크와 함께 백두산 방어선에 도착하기 무섭게 의식을 잃은 게 마지막 기억이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조립식 건물의 내부인 것 같았다.

분위기를 보니 야전 병원이나 의무대의 건물인 것 같았다. 정황상 정신을 잃은 뒤, 옮겨진 모양이다.

“얼마나 정신을 잃은 거지?”

혼잣말이 아니다. 지옥참마도에게 묻는 것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주인아. 이틀 누워 있었다.

다행히 알아들은 것인지 지옥참마도가 대답해 주었다. 그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전혀 위안이 되지 않았다.

이런 위급한 전시 상황에서 이틀이나 뻗어 있었다고? 현준의 얼굴이 굳었다.

전력이 비슷하면 모를까, 침략사령부의 병력이 압도적이다. 이틀 동안 얼마나 참혹한 일들이 벌어졌을지 상상도 하기 싫을 정도였다.

“제기랄…….”

욕설이 튀어나왔다. 침대에 앉아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였다. 익숙한 마력 반응과 함께 기척이 느껴졌다.

“이건 설마……?”

문이 열리고 천천히 걸어 들어온 이는.

“회복하셨군요.”

레비앙이었다. 공중항모가 격추당하면서 죽은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살아서 다시 보게 되니 정말 반가웠다.

“레비앙, 살아 있었나?”

“탈출 술식을 준비해 두었지요. 아쉽게도 전원을 구출하지는 못했지만, 절반 이상이 저와 함께 탈출했습니다.”

역시 레비앙이다.

“상황은?”

살아 있다는 걸 확인했으니 되었다. 지금처럼 급박한 상황에서 다른 대화는 필요 없다. 현준은 바로 전황에 대해 물었다.

그래도 레비앙은 의식을 차린 상태로 지내온 것 같았으니 최소한의 정보는 알고 있을 것 같았다.

“연합군이 방어선을 펼쳤지만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침략군의 수가 너무 많습니다.”

“어느 정도야?”

“정확한 수를 짐작하기 힘들 정도로 많습니다. 확실한 건 그 날 모습을 드러냈던 그 대규모 병력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겁니다.”

그날, 그곳에서 봤던 비행선단만 해도 넓은 하늘을 뒤덮을 정도였다. 지상 병력이 상륙한다면 적어도 수십 만이겠지.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적병이 더 있다는 말인가? 만약 그렇다면 연합군의 방어선이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것만 해도 기적이다.

“방어선의 상황은 어느 정도지?‘

“아직 무너진 곳은 없지만 위태로운 곳이 몇 군데 있습니다.”

레비앙이 전선의 소식을 전했다. 현준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위태롭다고 할 정도면 꽤 심각한 것 같았다.

“이쪽 상황은?”

“여기 남부 전선은 드레이크 경께서 계시기 때문에 그나마 조금 낫습니다.”

침략사령부의 표적, 강현준이 있는 남부 전선은 맹공격을 받고 있었지만, 영국의 SSS급 헌터, 폭풍의 드레이크가 활약하고 있는 덕분에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

“다른 곳에 비해 조금 낫다고는 하지만 언제 무너질지 모릅니다.”

과장된 말이 아니었다.

콰아앙!

천지를 뒤흔드는 폭음과 함께 전투기 이륙하는 소리가 이곳이 후방이 아니라 전장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졌다.

현준은 말없이 지옥참마도를 챙기며 의무대를 빠져나왔다. 레비앙이 뒤에 바짝 붙어 따라 나왔다.

밖은 말 그대로 전쟁터였다. 하늘에는 수십 척의 전투선이 방어선 전역에 마력 광선을 퍼붓고 있었다.

급히 이륙한 100여 기의 전투기가 전투선들과 공중전을 펼쳤다. 대공포들이 쉴 새 없이 불을 뿜으며 전투기 편대를 엄호했다.

효과가 전혀 없는 건 아닌지 전투선 1척이 격추당하고 여러척이 검붉은 연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가자.”

현준은 바로 신격의 마력을 끌어 올렸다. 오른손에 황금의 검이 생성되었다.

그리고 왼손에는 지옥참마도를 든 채 땅을 박찼다. 하늘로 몸이 솟구쳤다.

가장 가까운 전투선을 향해 총탄처럼 쏘아졌다.

콰아아앙!

굉음과 함께 전투선에 구멍이 뚫렸다. 길게 늘어난 황금의 검이 전투선을 관통한 것이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부상에서 회복되기 무섭게 기력을 차린 현준이 악몽급 신격의 힘을 가지고 전장에서 날뛰기 시작했다.

“23번 전투선이 대파!”

“12번 전투선과 13번 전투선도 조금 전이 광역 공격으로 중파의 손상을 입었습니다.”

“15번 전투선의 실드가 완전 소실! 대형이 무너집니다!”

지휘선의 함교에서는 난리가 났다.

“갑자기?”

전투선단의 지휘관은 당황했다. 여태까지 간신히 공격을 막아내던 방어선이 이런 강력한 반격을 펼친다고?

“아무래도 적격자가 깨어난 것 같습니다!”

제 13침략군단에서는 적격자가 백두산 방어선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치명상을 입어서 정신을 못 차렸다고 들었는데…….”

“물러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부관이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지휘관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그는 차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지상군 지휘관에게 후퇴하는 게 좋겠다는 내용의 통신을 보냈다.

-엄호해 주겠소?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지상군이 무사히 물러날 수 있도록 30분간 마력 광선으로 엄호할 예정입니다.”

-부탁하겠소.

지상군 지휘관과 협의가 끝났다. 지상군이 먼저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들이 충분한 안전거리를 확보했을 때 전투선단 역시 천천히 후퇴했다.

오늘, 백두산 방어선이 승전했다.

* * *

“위원장님 덕분에 백두산 방어선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투를 끝내고 레비앙과 함께 정리를 돕고 있을 때, 폭풍의 드레이크가 찾아왔다. 그는 대뜸 감사부터 전했다.

“운이 좋았습니다.”

전투선의 잔해에서 검은 마정석도 20여 개를 추가로 확보할 수 있었다. 이전의 전투에서 소모한 걸 다 보충하지는 못했지만 적지 않은 수였다.

게다가 아공간 주머니에 보관 중인 것도 적지 않으니 기회를 봐서 큰 한 방을 노릴 수 있을 것이다.

“모두 지쳐 있습니다. 어제 공격이 있어서 설마 오늘 또 공격해 올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지요. 당연히 뚫릴 거라고 생각하고 북한 지역으로 물러날 경우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깨어나자마자 전투를 치르느라 방어선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지만, 지금은 드레이크와 함께 걸으며 주변을 살필 수 있었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상태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군인들과 헌터들의 얼굴에는 깊은 절망이 깃들어 있었고 전차와 전투기와 같은 병기들도 계속된 전투로 인해 수리가 되지 않은 게 대부분이었다.

“버티는 걸로는 끝이 없습니다.”

“당연히 그렇겠죠.”

드레이크의 말에 현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반격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제가 가죠.”

드레이크의 의도를 눈치챈 현준이 선수를 쳤다. 그는 지금 현준에게 반격의 선봉에 서줄 것을 부탁하고 있었다.

“공격 목표를 먼저 말해주시죠. 전략적 요충지라도 발견한 겁니까?”

“그건 확실하지 않지만 인베이더들이 철통같이 지키는 곳을 발견했지요.”

인베이더들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다? 그렇다면 거기 뭔가가 있을 확률이 높았다.

일반적인 곳이라면 솔저들을 보냈을 터, 굳이 다수의 인베이더를 파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베이더가 몇 명이나 있습니까?”

“S급 위원이 목숨 바쳐 확보한 정보에 의하면 인베이더의 수만 해도 3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건 확실하다.

“알겠습니다. 제가 가지요.”

그곳에 뭔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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