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만 전생이 날 도와줘-179화 (179/217)
  • # 179

    53장 군단이 온다(3)

    절망이 모습을 드러내자 희망은 고개를 숙였다. 추락한 공중항모의 잔해에서 검붉은 연기가 솟아올랐다.

    강화를 해서 3배 더 강해졌다고 자랑스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말하던 레비앙의 모습이 떠올랐다.

    현준은 이를 악물고 황금의 검을 들어 올렸다.

    ‘적이 너무 많다.’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려 봐도 보이는 건 적들 뿐이다. 하늘을 가득 채운 비행선단, 그리고 지상에도 무장한 병력이 상륙하고 있었다.

    전투선들이 거리를 좁혀오며 지상에 마력 광선을 쏟아냈다. 쉬지 않고 쏟아지는 마력 광선의 세례에 방어선은 일순간에 무력화되었다.

    “제기랄!”

    현준은 욕설과 함께 황금의 검을 휘두르며 전투선단을 향해 몸을 날렸다.

    “적격자가 온다!”

    “요격해라!”

    각 전투선의 함교가 반응했다. 열린 포문에서 마력 광선이 쏘아졌다. 그에 맞춰 현준도 마력을 끌어 올렸다.

    -카르타고의 정의로운 방패가 당신을 수호합니다. 위대한 수호가 함께하는 한, 당신을 위협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오러 실드를 펼쳤다. 하지만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장담할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오러 실드는 마력 광선 세례에 허무할 정도로 쉽게 박살 나고 말았다.

    ‘크, 크아아아악!“

    마력 광선이 몸에 닿았다. 타들어가는 듯한 고통에 현준이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멈추지는 않았다.

    그는 기어이 속력을 올리고 가장 앞의 전투선을 향해 몸을 던지며 황금의 검을 휘둘렀다.

    선수가 절단된 전투선이 무력하게 기울어졌다. 하지만 한 번의 승리에 도취될 여유는 없었다.

    아직도 적은 많았다.

    “적격자다!”

    “쳐라!”

    근처의 전투선들과 상륙선들에서 비행 능력을 가진 인베이더들이 튀어나와 현준을 포위하듯 에워쌌다.

    “방해 된다!”

    황금의 검을 휘두르자 하늘에서 오러 블레이드가 쏟아져 내렸다.

    “크아악!”

    “으아악!”

    포위진을 형성한 인베이더들의 몸에 오러 블레이드가 꽂혔다. 그들은 붉은 피를 흩뿌리며 추락했지만 아직 절반이 남았다.

    “지독한 새끼들…….”

    현준은 자신도 모르게 생각을 내뱉었다. 신격의 경지에 오른 소드레인을 피할 정도면 결코 만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포위를 유지한 채 천천히 거리를 좁혀오는 인베이더들에게서 강력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주인아, 조심해라. 만만한 놈들이 아니다.

    지옥참마도가 경고했다. 그의 말대로 지금 현준을 잡기 위해 모습을 드러낸 이들은 제 13침략군단장 직속의 특전대였다.

    모두 인베이더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구의 등급 기준으로 최소 SS급 이상의 강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길 수 있을까……?’

    남은 적들의 수는 열여섯. 예전이라면 모르겠지만 신격의 경지에 오른 지금 상태로는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지만 문제는 이 16명의 인베이더들이 아니라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는 제 13침략군단 소속의 전투병력들이었다.

    수가 너무 많았다.

    “감히 군단 특전대를 앞에 두고 한눈을 파는 것이냐!”

    “죽어라, 적격자!”

    인베이더 둘이 오러를 머금은 검을 휘두르며 깊숙이 파고 들어왔다. 현준은 황금의 검을 휘둘러 그들의 검을 쳐내며 다시 형성한 오러 실드로 가장 가까운 인베이더의 안면을 강타했다.

    콰앙!

    얼굴 뼈가 박살난 채로 멀리 튕겨 나가는 인베이더를 넘어서 또 다른 적들이 협공 진형을 유지한 채 날아왔다.

    전후좌우로는 스쳐도 치명상을 입을 것 같은 권능들이 화려하게 춤을 추며 다가왔다.

    칠흑을 머금은 날카로운 칼날과 길쭉한 창이 수십, 그리고 머리 위에서는 흑염이 쏟아져 내린다. 수준 높은 권능들이라 질드레의 가호로도 파괴가 불가능했다.

    ‘피할 수도 없다.’

    쏟아지는 권능 너머로 인베이더들이 빈틈을 노리고 있다. 그들을 훑어보는 현준의 눈동자가 차갑게 식었다.

    ‘버틴다.’

    일부는 오러 실드로 막고 나머지는 몸으로 받아낸다. 오러 아머를 사용하면 치명상을 입는 사태는 간신히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결심이 섰다. 행동은 더 빨랐다. 현준은 가장 약한 권능 쪽으로 몸을 던졌다.

    날카로운 칠흑의 칼날이 어깨와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허공에 붉은 피가 흩뿌려질 때 현준이 휘두른 황금의 검은 이미 코앞에 있는 인베이더의 목을 잘라내고 있었다.

    “커, 커헉!”

    인베이더가 핏물을 토해냈다. 다른 인베이더들이 거리를 좁혀 왔다. 현준은 황금의 검을 휘둘렀다.

    오러 실드로 인베이터를 타격했다. 이스텔의 붉은 마법서를 펼치고 화염 마법을 난사했다.

    하지만 적들의 수는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계속해서 늘어났다. 또 다른 특전대원들이 합류한 탓이다.

    마력이 소모된다. 체력이 고갈된다. 부상은 늘어간다. 피는 흐른다. 정신이 아득해진다.

    -단치히의 의지가 깃듭니다. 지켜야 할 사람이 있는 한, 당신은 쓰러지지 않습니다.

    플레임이나 레비앙이 살아 있는 모양이다. 쓰러지기 직전에 단치히의 가호가 발동되었다.

    이걸로 숨이 끊어질 때까지 싸울 수 있다. 현준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번졌다.

    이길 수 없다면 최대한 많은 적을 저승까지 길동무로 삼아 데려갈 것이다.

    “와라!”

    죽음은 두렵지 않았다. 각오했던 일이니까 받아들일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전생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 이렇게 끝나는구나.”

    누가 내뱉은 말일까? 어쩌면 단치히일지도 모르겠다. 아스라이 흩어지는 목소리를 흘리며 황금의 검을 들어올렸다.

    적들이 다가온다. 이제 결전의 순간이 찾아왔다.

    * * *

    한 남자가 넓은 복도를 따라 걷고 있다. 붉은 제복을 입고 찬란하게 반짝이는 투구를 쓰고 있었다.

    거침 없이 발걸음을 옮기던 그는 두꺼운 철문 앞에 멈춰섰다.

    무장한 채 철문을 지키고 있던 병사가 남자의 얼굴을 알아보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 주었다.

    그의 행동으로 볼 때 남자의 방문이 앞서 약속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장식 하나 없이 그저 튼튼해만 보이는 투박한 철문과 달리 내부는 꽤 잘 꾸며져 있었다. 화려하다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세련된 여러 장식이 눈에 띈다.

    “부사령관님. 제 12침략군단의 후방에서 예비대 역할을 수행하던 제 13침략군단이 모습을 감춘 것을 확인했습니다.”

    붉은 제복에 투구를 쓴 남자가 보고했다. 정면의 소파에 앉아 있던 남자, 부사령관이라고 불린 그는 차분하게 책을 덮으며 입을 열었다.

    “부관, 그게 사실인가?”

    “정보국을 통해 입수한 내용입니다. 비밀리에 요원들을 보내서 사실 확인을 끝냈습니다.”

    부사령관의 물음에 부관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정보국 요원들까지 보내서 몇 번을 확인했으니 자신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부사령관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사실 확인까지 거쳤으니, 확실한 정보겠지만…… 이해가 안 가는군. 제 13침략군단이 예비대 역할을 포기하면 제 12침략군단의 전략적 위치가 많이 애매해질 텐데 말이지.”

    예비대가 없는 전방의 군세는 밀릴 수밖에 없다.

    “제 13침략군단장이 그렇게 어리석은 이는 아닐 텐데…….”

    “전방 군단의 후방에서 예비대 역할을 수행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임무를 부여 받은 게 아닐까요?”

    제 13침략군단장, 인저블의 의도를 짐작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부사령관을 보며 부관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말했다.

    “우리 차원 동맹의 군세를 상대하는 것보다 중요한 임무라…… 설마 적격자를 찾은 건가?”

    만약 그렇다면 인저블과 그의 군단이 제 12침략군단의 후방에서 사라진 게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침략사령부에 있어서 적격자를 처단하는 건 최우선 목표였다. 오래 전부터 그들의 압도적인 무력에 그나마 저항했던 이들이 적격자였기 때문이었다.

    “적격자가 다시 나타났다는 말입니까?”

    부관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고 보니 전대 적격자가 침략사령부에 의해 살해당하고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새로운 적격자가 나타날 때가 되었다.

    “만약 적격자가 나타난 거라면 우리가 그를 보호해야 한다.”

    99만 전생의 가호를 사용할 수 있는 적격자의 성장 속도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그래서 차원 동맹는 오래 전부터 적격자를 보호하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실제로 적격자와 함께 싸울 때는 가끔 침략사령부의 군세를 압도하고는 했다.

    “우선은 적격자가 있는 차원을 찾아라, 제 13침략군단이 있던 곳에 요원을 보내서 마력 흔적을 분석하면 찾을 수 있을 거다.”

    “하지만 현재 저희 차원 동맹에서는 가용 병력이 없습니다.”

    “지금 당장 대규모 파병은 무리겠지. 하지만 최소한 함께 싸우고 지원을 해줄 요원들은 보내줄 수 있지 않겠나?”

    “즉시 준비하겠습니다.”

    부사령관의 목소리에서 간절함이 묻어 나왔다. 부관은 힘차게 대답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적격자를 찾아내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 * *

    “환영검!”

    12방향에서 12번의 검격이 눈앞의 인베이더를 노렸다. SS급 상위 수준의 적이었지만 신격에 오른 현준의 환영검을 막아내지 못하고 팔과 다리를 잃은 채 추락했다.

    “이걸로 199명.”

    핏물 섞인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엇다. 199명의 인베이더를 베었다. 모두 하나같이 SS급 이상의 실력자들이었다.

    비행선도 20척 넘게 격추시켰다. 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았다. 갈라진 하늘이 칠흑의 비행선을 계속해서 뱉어냈다.

    시야가 검게 물드는 것 같았다. 피를 많이 흘려서 그렇기도 하지만 깊은 절망에 침식되어 버린 것이다.

    -주인아, 더 온다. 수는 130명 정도고 다 SS급 중견 이상이다.

    지옥참마도가 끔찍한 소식을 ‘또’ 전했다. 이제는 듣기 싫을 정도였다. 간신히 주위를 정리했다고 생각했건만, 계속해서 몰려오는 적들 때문에 전의가 상실될 지경이었다.

    단치히의 가호가 없었다면 이미 추락했을 것이다.

    “죽고 싶으면 와라!”

    인베이더들의 틈으로 파고들었다.

    -리퍼의 잔혹한 살의가 깨어납니다. 치명적인 살기의 일부가 해방됩니다. 살아 있는 존재라면 본능적인 두려움을 피할 수 없습니다.

    가호를 사용했다. 날카로운 살기의 파장이 인베이더들을 덮쳤다. 피를 토하는 이들은 극소수, 남은 이들은 경직되거나 비틀거렸지만,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강자들도 있었다.

    동시에 현준의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이제 남아 있는 마력도 거의 없다. 지옥참마도와 황금의 검을 휘두른다.

    흡혈로 인한 마력 회복은 소모를 따라가지 못했다.

    “큭!”

    고통에 찬 신음이 흘러 나왔다. 단치히의 가호가 있다고는 하지만 체력과 마력이 바닥을 드러내니 움직임이 느려질 수밖에 없다.

    그 빈틈을 노리고 인베이더 하나가 내찌른 창이 흉부에 꽂혔다.

    “죽어라! 적격자!”

    또 다른 인베이더가 휘두른 검이 허벅지를 깊게 베었다. 그리고 인베이더 다섯이 사방에서 검과 창을 내찔렀다.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한 순간,

    폭풍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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