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만 전생이 날 도와줘-178화 (178/217)

# 178

53장 군단이 온다(2)

“군단이 준비되었습니다.”

“균열도 확보했습니다. 군단장님께서 승인하시면 바로 차원 도약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전령들이 달려와 보고했다. 인저블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원 관문 제어기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그가 제어기에 마력을 주입하여 술식을 작동시키면 지구를 향한 차원 도약이 시작될 것이다.

차원 관문 제어기 바로 앞에 도달한 인저블은 생각에 잠겼다. 균열이 온전하지 않다.

억지로 만든 차원 관문이었기 때문에 지금 도약을 실행하면 절반 이상의 전력을 손실할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에 상륙하게 될 병력은 그들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대병력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희생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군단장님. 부디, 결정을 재고해 주시길 바랍니다.”

생각에 잠겨 있는 인저블을 향해 제2부관이 조심스럽게 설득을 시도했다.

잠시나마 인저블의 얼굴에 갈등의 빛이 스쳐 지나가는 듯했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희생 없이는 승리도 없다.”

“하지만 군단장님, 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너무 많은 병력을 잃는 것 같습니다. 군의 사기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겁니다.”

“침략사령부의 군사들은 모두 자신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정병들이다.”

인저블의 대답에 제 2부관은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뒤로 물러났다. 말이 통하지 않았다.

예상보다 빠른 적격자의 성장 속도가 제13침략군단장, 인저블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불안정한 균열을 로스칼이 강제로 확장하고 281번 부대를 차원 도약시켰다는 말을 보고 받았을 때만 해도 인저블은 로스칼을 이해하지 못했고 책임을 물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로스칼이 느꼈을 압박감을 인저블이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

“내 결정은 변하지 않는다. 제13침략군단은 지구를 향한 차원 도약을 시작한다.”

인저블이 결의에 찬 목소리로 말하며 제어기에 마력을 주입하자 술식이 반응했다.

도열한 무수히 많은 군세의 앞에 거대한 차원 관문이 생성되었다.

“전군, 전진! 차원 도약을 시작하라! 지구에 상륙하라!”

화려한 관문의 너머, 끝이 보이지 않는 공허의 입을 향해 제13침략군단의 전 병력이 몸을 내던졌다.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제2부관은 짧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저들 중 살아남아 지구에 상륙하게 될 인원은 얼마나 될까?

* * *

하늘이 열렸다. 연합군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281번 부대의 주력이 러시아와 중국에 상륙했을 때도 지금처럼 하늘이 열렸었다.

“대체, 무슨 일이…….”

밤하늘이 입을 벌리고 수십 척의 비행선을 토해냈다.

“적 비행선 42척 출현! 전원 상륙선입니다!”

상륙선의 무장이 전투선보다 빈약하다고는 하지만 42척은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지금 하늘 위를 지키고 있는 건 공중항모 1척이 전부였다.

“부길드장, 공군의 지원은 얼마나 기다려야 합니까?”

“20분은 기다려야 합니다.”

하늘에서 이상 징후가 관측되었을 때 현준은 인근 지역의 모든 공군 부대에 지원을 요청했었다.

가까운 곳에 임시 비행장이 있긴 하지만 규모가 작아서 당장 이렇다 할 원군을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버틸 만하네.”

현준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신격의 상징인 황금의 검을 뽑아 들었다.

예전과 달리 지금은 공중항모도 최종 단계까지 강화되어 있었고 현준도 신격의 경지에 오른 상태였다.

침략사령부가 보낸 수십 척의 상륙선들을 상대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는 말이다.

“가자.”

플레임한테 말하는 것이었다. 현준이 먼저 땅을 박차고 하늘로 솟구치자 뒤이어 플레임이 날개를 펼치고 날아올랐다.

황금의 검은 그 자체가 극도로 강화된 오러 블레이드다. 그래서 굳이 시든밀러나 듀렌달의 가호를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엄호해.”

-알겠습니다, 형님.

플레임이 흑염을 쏟아냈다. 상륙선에 큰 피해를 입힐 만한 공격은 아니었지만 시선을 교란하고 접근해오는 적의 비행 전력을 차단하는 데에는 효과적이었다.

넓게 펼쳐진 창공에 검은 화염이 퍼져 나갔다. 흑염에 휩쓸린 솔저 전투기들이 힘없이 추락했다.

“막아라! 반드시 지상 병력을 상륙시켜야 한다!”

상륙선단의 책임 지휘관이 지휘선 함교에서 목이 터져라 외쳤다. 차원 도약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는 바람에 상륙 엄호를 맡은 전투선들보다 상륙선단이 먼저 도착해버린 것이다.

덕분에 상륙선단은 전투선단의 엄호도 없이 현준의 앞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상륙을 하시겠다?”

상륙선단의 움직임을 살피던 현준이 혼잣말을 내뱉었다. 상륙선단이 고도를 천천히 낮추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누가 봐도 상륙을 시도하는 것이었다.

“그렇게는 안 되지.”

현준이 황금의 검을 휘둘렀다. 하늘에서 오러 블레이드가 비처럼 쏟아졌다.

수백 개의 오러 블레이드가 선두에서 고도를 낮추는 상륙선들의 동체를 처참하게 찢어 놓았다.

순식간에 10척이 넘는 상륙선이 폭발과 함께 사방으로 검붉은 연기를 퍼드렸다.

압도적인 파괴력. 뒤이어 레비앙이 지휘하는 공중항모가 마력 광선을 쏟아냈다.

연이은 공격에 상륙선단은 잠시 주춤하는가 싶었지만 금세 기세를 회복하고 상륙을 시도했다.

앞서가던 이들이 맹공격을 받고 폭발하고 추락했지만,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전진했다.

“대공 방어! 화망을 펼쳐라!”

방어선에 설치된 대공포들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총구가 과열될 정도로 쉴 새 없이 총탄을 쏟아냈지만 적들의 수는 좀처럼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주인아, 또 온다.

지옥참마도가 말했다. 현준은 아무 말 없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도 느꼈고 보았다.

열린 하늘의 공허한 어둠 너머에서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전투선들을.

“제기랄.”

욕설이 튀어나왔다. 뒤늦게 연합군의 공군 전력이 도착했지만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른다.

근처 육군 비행단에서도 공격 헬기 수십 기가 지원 왔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이건…… 너무 많잖아…….”

열린 하늘, 차원 관문에서 모습을 드러낸 전투선의 수는 수백 척, 어쩌면 그 이상이었다.

신격의 경지에 올랐다고는 하지만 이건 혼자서 감당할 수 없다. 저 많은 전투선이 일제히 마력 광선을 퍼붓는다면 일대가 쑥대밭이 될 것이다.

공중항모도 정면에 나선다면 1초를 버티지 못할 것이고 현준 또한 집중포격에 노출된다면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은 분명했다.

‘군단을 부를 수밖에 없겠군.’

아공간 주머니에서 수십 개의 검은 마정석을 꺼내 하늘에 흩뿌리며 입을 열었다.

“군단이여! 내게 오라!”

마력을 일으켰다.

-아콘이 위대한 명령으로 차원 관문을 개방합니다. 무한의 군단을 호출합니다.

차원 관문이 열렸다.

-군단, 하늘기병대의 일부가 소환에 응합니다.

-군단, 제13함대의 일부가 소환에 응합니다.

-군단, 제국 동쪽하늘 와이번 기사단의 일부가 소환에 응합니다.

-군단, 대공 방어 여단의 일부가 소환에 응합니다.

비행생물을 탄 1만의 기병대, 그리고 수십 척의 비행선 함대와 와이번에 탑승한 수천의 기사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상에도 차원 관문이 열리고 수백 개의 대공 장비를 갖춘 병력이 쏟아져 나왔다.

검은 마정석을 한 번에 많이 사용해서 그런지 고급 전력에 소환에 응했지만.

‘그래도 부족하다.’

적이 너무 많았다. 이 전력으로 이길 수는 없다. 얼마나 버틸지도 장담할 수 없다.

연합군 병력도 있지만 곧 눈앞에 펼쳐질 지옥에서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군단은 전진하라.”

잔인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일회용 소환이다. 가능하면 연합군 병력을 보전하기 위해 군단 병력을 앞으로 내세우는 게 옳았다.

“군단 소환사님께서 전진하라고 명령하셨다!”

“전진해서 싸워라!”

“적을 앞에 두고 결코 물러서지 마라!”

군단 병력이 움직였다.

13함대의 비행선들이 먼저 공격을 시작했다. 수십 척의 비행선들이 침략군의 전투선단을 향해 마력 광선을 퍼부었다.

공중에서 연이은 폭발이 일어났다. 전투선 여럿이 마력 광선에 격추당한 것이다.

-온다.

마력에 예민한 지옥참마도가 심상치 않은 파장을 느끼고 경고했다. 수백 척의 전투선이 일제히 마력 광선을 쏟아냈다.

“플레임! 내 뒤로!”

-예, 형님!

플레임이 잽싸게 뒤로 날아왔다. 현준은 마력을 일으켰다.

-카르타고의 정의로운 방패가 당신을 수호합니다. 위대한 수호가 함께하는 한, 당신을 위협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카르타고의 가호를 발현했다. 마력 광선들이 오러 실드를 연신 두들겼다.

적들의 수낙 워낙 많아서 그런지 포격은 몇 분 동안이나 계속되었고 사방에서 뭔가가 터지는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려왔다.

“돌격!”

하늘기병대와 제국 동쪽 하늘 와이번 기사단은 마력 쏟아지는 마력 광선을 뚫고 적진을 향해 돌진을 감행했다.

포격이 끝나자 현준은 오러 실드를 해제하고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절망했다.

“벌써 전멸이라고?”

검은 마정석 수십 개를 사용해서 소환한 군단 병력이 단 한 번의 일제 포격을 버티지 못하고 전멸했다.

하늘기병대와 제국 동쪽하늘 와이번 기사단은 몰살당했다. 그나마 제13함대의 비행선 몇 척이 살아남았지만,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현준은 절망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적들을 보며 그는 황금의 검을 들어 올렸다.

“와라!”

그런 그를 향해 지휘선의 함교에 있는 책임 지휘관과 인베이더들은 흥미로운 시선을 보냈다.

“저자는 신격의 경지에 올랐군요,”

“그렇다면 적격자가 분명하군.”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지금 이곳에서 신격의 경지에 오른 이는 적격자밖에 없으니까요.”

인베이더들은 짧은 대화 끝에 눈앞의 적, 강현준을 적격자라고 판단했다. 현준을 주시하는 그들의 눈동자에 탐욕이 묻어 번들거렸다.

적격자를 처단하면 출세는 보장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탐욕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책임 지휘관이 전진 명령을 내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전투선들이 눈치를 보다가 조금씩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먼저 포격을 시작한 전투선도 나왔다.

“큭!”

현준은 연이어 쏟아지는 마력 광선을 힘겹게 막아냈다. 잠깐 사이에 군단 병력은 완전히 몰살당했고 연합군의 공군 병력도 전멸했다.

지상도 무력화되었다. 사실상 전투가 가능한 병력은 레비앙의 공중항모와 현준, 그리고 플레임이 전부였다.

“제기랄…….”

욕설을 내뱉는 현준을 향해 전투선들이 몰려 왔다.

-주군, 제가 시간을 벌겠습니다.

그리고 레비앙의 공중항모가 적들의 앞을 막아섰다

“레비앙!”

-부디, 끝까지 살아남아서 침략사령부를 처단해주십시오.

그게 마지막이었다. 마력 광선의 빛줄기 수십이 공중항모를 관통했다. 그리고 폭발했다.

현준은 다급하게 무전기를 찾아서 입가로 가져갔다.

“레비앙! 지금 당장 응답해!”

하지만 응답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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