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만 전생이 날 도와줘-177화 (177/217)

# 177

53장 군단이 온다(1)

281번 부대의 책임 지휘관, 로스칼이 지구에서 연이은 패전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제 13침략군단장, 인저블에게 보고 되었다.

“어이가 없군. 로스칼과 281번 부대가 이렇게 처참하게 깨질 줄이야.”

균열이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차원 관문을 열어버린 탓에 도약 과정에서 부대의 전력 대부분을 잃었다고는 하지만 그걸 감안 하더라도 너무 처참하게 무너졌다.

“대전사 또한 전사했다고 합니다.”

부관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인저블은 눈살을 찌푸리며 대놓고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다.

“281번 부대의 대전사가 누구였지?”

인저블이 부관을 보며 물었다. 직속 부대라고는 하지만 모든 정보를 외우고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5급 인베이더, 티링거입니다.”

“그 정도면 지구에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닐 텐데? 그의 최후에 대해 보고된 내용이 있나?”

“적격자에게 살해당한 걸로 추정됩니다.”

“그게 사실이더냐?”

부관의 보고에 인저블의 표정이 더욱 심각해졌다.

“얼마 전에 보고 받은 내용을 보면 적격자의 무력은 기껏해야 7급 인베이더 수준이었는데…… 그 짧은 시간에 5급 인베이더를 살해할 정도로 강해졌다는 것이냐?”

두려울 정도의 성장 속도였다. 인저블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만약 보고가 사실이라면, 적격자의 성장 속도는 군단 참모부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말이 된다.

“앞서 보고된 내용 역시 사실로 확인됩니다. 적격자가 성장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현재 확인된 정보들로 추정할 수 있는 적격자의 무력 수준은?”

지구에 상륙한 281번 부대의 책임 지휘관, 로스칼의 휘하에는 정보대도 소속되어 있다.

로스칼은 281번 부대와 함께 상륙한 직후부터 계속해서 정보대를 운용하고 있었고 여러 정보를 상부인 제 13침략군단으로 계속하여 전송하고 있었다.

“적격자가 신격에 오른 것 같습니다.”

부관의 보고에 인저블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신격’은 결코 가벼운 경지가 아니었다.

“그 경지는 악몽급 신격 정도로 예상됩니다.”

부관이 계속해서 보고했다. 악몽급은 주신격을 제외하고 신격을 세분화하는 4개의 경지 중에 가장 낮은 위치였지만 인저블에게는 큰 위안이 되지 못했다.

각성의 마력이 감지되고 긴 시간이 흐르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악몽급 신격까지 오른 걸 보면 머지않아 종말급 신격을 넘어서 주신격까지 도달할 수도 있을 거라는 추측이 가능했다.

“상황이 좋지 않군.”

인저블이 심각한 표정으로 혼잣말을 내뱉었다. 지금 적격자의 경지만 해도 침략사령부를 구성하고 있는 다수의 인베이더를 발 아래 두고 있을 정도다.

이 성장 속도로 볼 때, 주신격은 장담할 수 없지만, 조만간에 재앙이나 종말급 경지에 오른다는 것은 확정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종말급부터는 인저블이 지휘하는 군단에서 감당할 수 없다. 정예 군단이나 침략사령부 본대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주신격에 오르기 전에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

인저블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그는 짧은 고민을 정리하고는 부관을 향해 차가운 시선을 보내며 입을 열었다.

“현재 균열의 상태는?”

“열려 있긴 하지만, 군단이 통과할 정도는 아닙니다.”

“본대에 지원을 요청을 할 수도 없고…… 차원 균열은 불안정한 상태라…….”

본대와 정예 군단들은 차원 동맹과 전면전을 벌이고 있기 때문에 가용 병력이 거의 없었다.

지금 당장은 제 13침략군단의 힘으로만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군. 균열을 강제로 열고 상륙 작전을 개시한다.”

“피해가 심각할 겁니다.”

281번 부대의 책임 지휘관인 로스칼이 과거에 내렸던 결정과 같았다. 부관이 조심스럽게 우려를 표했지만 인저블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적격자의 성장 속도가 예사롭지 않다. 균열이 열릴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 그 전에 병력을 동원해서 지구를 쓸어버려야 한다.”

부관은 입을 다물었다. 어떤 말을 해도 인저블의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 같았다.

* * *

러시아, 시베리아의 바람은 유난히 차가웠다. 공중항모에서 착륙선을 타고 지상에 상륙한 현준과 친위대는 얼음을 머금은 바람이 부는 산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멀지 않은 곳에 먹구름이 껴 있고 그 밑에서 찬란한 빛이 춤을 췄다.

“전투가 한창인 것 같습니다.”

사혈이 말했다. 현준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공중항모는 남쪽에서 적의 비행전력과 교전 중이었다. 그래서 지금 당장 지원을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속도를 높인다.”

“알겠습니다.”

다리에 마력이 모였다. 약한 강화 술식을 부여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사혈과 사혁, 그리고 친위대가 뒤따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현준은 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높은 산맥에서 전투가 한창이었다. 설산을 뒤덮은 눈이 붉게 물들었다. 연합군에서도 헌터들로 구성된 별동대가 281번 부대의 중간 지휘 거점을 공격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공격을 시작한 쪽은 연합군 별동대인 것 같았지만 전황은 침략사령부, 중간 지휘 거점에게 유리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내가 나설 수밖에 없나.’

현준이 뽑아든 지옥참마도에서 선명한 오러 블레이드가 솟구쳤다. 동시에 적진을 향해 몸을 던졌다.

“지원군이다!”

“강현준 씨다!”

현준과 친위대의 개입으로 전황이 역전되었다. 별동대의 사기가 크게 올랐고 중간 지휘 거점을 지키고 있는 수비 병력은 빠른 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폭풍검!”

오러 블레이드의 폭풍이 폭탄처럼 터졌다. 솔저들이 붉은 피를 흩뿌리며 쓰러졌다.

일순간에 솔저들의 전열이 무너지자 별동대의 헌터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 올라갔다.

그들은 지금까지 당한 걸 갚아주기로 마음이라도 먹은 듯 우렁찬 함성을 내지르며 솔저들을 압박했다.

현준이 개입하고 겨우 10분이 지났을 뿐이었지만 수백의 솔저들이 시체가 되었고 인베이더 다섯이 무력하게 쓰러졌다.

“형님, 저희가 이겼습니다.”

플레임이 말했다. 그는 얼마 전에 치명상을 입었지만 최근 전투에 참여할 정도로 많이 회복이 되었다.

기쁜 목소리로 승전을 축하하는 플레임과 달리 현준은 어딘가 찝찝한 기분을 쉽게 떨쳐낼 수 없었다.

“이상한데…….”

“형님?”

“이쪽 산맥에 병력 배치가 이상한 것 같아서…….”

현준은 눈살을 찌푸린 채 말했다. 지금까지 압도적은 수와 전력으로 밀어붙이는 인해전술을 내세워 전선을 유지해오던 침략군이 갑작스럽게 병력을 잘게 쪼개서 사방에 배치했다.

말 그대로 전력으로써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고 헌터들로 구성된 별동대를 상대할 수 있는 가장 최소한의 병력을 구성된 부대가 수십 개로 나누어져서 산맥 곳곳에 흩어져 있는 게 무인 정찰기의 시야에 들어온 것이다.

“병력 배치가 이상하긴 하네요. 이건 이기기 위한 게 아니라 철저하게 시간을 벌기 위한 배치입니다.”

플레임도 뒤늦게 이상한 점을 깨닫고 눈살을 찌푸렸다. 산맥에 넓게 분포되어 있는 소규모 전투 부대들, 남겨두기에는 뒤가 위험했고 하나씩 상대하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그렇다고 이쪽의 별동대를 소규모로 많이 나누기에는 소집된 헌터들의 수가 생각처럼 많지 않았다.

“본대라도 기다리는 건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에라도 281번 부대의 책임 지휘관이 있는 확률이 높다는 중국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우선은 러시아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러시아의 적들을 두고 중국으로 진군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합니까?”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헌터 별동대의 지휘관이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현준은 현재 치명상을 입고 요양 중인 에릭을 대신해 위원장의 권한을 행세하고 있었다.

전시에는 연합군 내에서도 강력한 지휘권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였다. 특히 헌터 부대와 위원회는 위원장 직속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지금 헌터 별동대의 지휘관은 현준의 지시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소속이 어떻게 됩니까?”

“제 4별동대입니다.”

“4별동대라…….”

품속에서 군사 지도를 꺼내 펼쳤다. 지도에는 별동대의 예상 침투 경로가 기록되어 있었다.

현준은 눈동자를 움직여 그것을 빠르게 살피고는 입을 열었다.

“5별동대와 9별동대가 근처에 있네요.”

“예, 그렇습니다.”

“합류해서 북진하세요. 북쪽 7㎞ 정도 지점에 중간 지휘 거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다른 거점들에 비해 규모가 큰 편이라서 별동대 3개 정도는 모여야 공략이 가능할 겁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현준의 지시에 별동대 지휘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위원장님께서는 어떻게 할 예정이십니까?”

지휘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속마음은 자신들과 함께 산맥의 침략 병력을 소탕해 주길 바라고 있었다.

현준도 그들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다른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저는 친위대와 함께 산맥 깊숙이 침투할 생각입니다. 중앙 지휘부를 찾아야죠.”

중앙 지휘부가 전멸하면 중간 지휘 거점들만으로는 통일된 명령을 내려서 전력을 규합하는 게 힘들다.

“그렇군요. 행운을 빌겠습니다, 위원장님.”

별동대 지휘관은 짧은 경례를 남기고 물러났다. 현준은 플레임, 그리고 친위대와 함께 산맥 깊숙이 침투했다.

정찰 기록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건 각종 거점만 표기되어 있을 뿐이었다.

무인기 운용으로는 정밀 정찰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은밀하게 숨어있는 중앙 지휘부를 찾아낼 수는 없었다.

그나마 거점들의 배치를 바탕으로 중앙 지휘부의 위치를 레비앙이 추정한 자료가 있기는 하지만 정확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레비앙은 4곳의 장소를 특정했지만, 그중 3곳에서 아무런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제 4번째 장소에 도착했다.

-주인아, 희미하긴 하지만 마력이 느껴진다.

레비앙이 기록한 좌표에 진입하기 무섭게 지옥참마도가 반응했다. 현준의 눈동자가 빛났다.

지옥참마도와 달리 마력을 감지하지는 못했지만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미약한 살기를 감지했다.

“누군가 있다.”

아주 작은 목소리로, 현준이 말했다. 사혈이 휘하 친위대원들에게 은밀하게 수신호를 보냈다. 친위대가 일사불란하게 전투 진형을 갖췄다.

적들도 발각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인지 은신의 장막을 벗고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사신의 음험한 웃음소리가 당신에게 위험을 경고합니다. 누군가 당신의 심장을 노리고 있습니다.

하사신이 경고했다. 동시에 수십의 인영이 하늘 위로 솟구쳤다.

“친위대는 황제 폐하를 지켜라!”

사혈과 사혁, 그리고 친위대가 움직였다.

“굳이 나설 필요는 없으려나.”

강력한 마력은 느껴지지 않았다. 가장 강한 기운이 기껏해야 9급 인베이더, SS급 상위 정도였고 그나마도 하나에 불과했다.

사혈과 사혁이 협공하면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상대로네.”

현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인베이더 10명과 솔저 32명으로 구성된 수비 병력을 완전히 박살 냈다.

그들이 전멸시킨 현준은 마력을 끌어 올렸다.

-질드레의 음흉한 시선이 숨어있는 마력을 찾아냈습니다.

은폐 결계의 마력 기척이 느껴졌다. 현준은 더욱 세밀하게 주위를 살폈고 마침내 마력 흔적을 찾아냈다.

-질드레의 마력이 마법 술식을 침식합니다. 어두운 진리의 이름으로 마력의 강제 해산을 명령합니다.

다량의 마력을 소모하여 술식을 파괴했다. 그러자 중앙 지휘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색해.”

마치 영장을 들고 온 검사처럼 현준은 친위대에게 명령을 내리고는 성큼성큼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중앙 지휘부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크지 않았지만, 아직 파기되지 않은 중요 정보들이 많았다.

삐빅.

탐색을 벌이고 있을 때, 무전 신호가 감지되었다.

“뭐지?”

아직 저쪽에서는 시베리아의 중앙 지휘부가 전멸했다는 걸 모르는 것 같았다. 현준은 신호기를 작동시켰고 짧은 한 줄의 문장이 완성되었다.

[곧 군단이 상륙할 것이다. 준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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