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5
52장 신격(2)
현준은 격납고에 사혈과 사혁을 포함한 친위대를 소집했다. 격납고 주변은 그 누구도 들어올 수 없도록 집행부에서 출입을 통제했다.
부동자세로 서 있는 친위대의 앞에 현준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옆에 레비앙이 차분한 표정으로 뒤따르고 있었다.
“격납고 지하에 있는 2번 공방에 시설을 마련해두었습니다.”
2번 공방의 존재를 아는 이들은 길드에서도 현준과 레비앙밖에 없다. 비밀스러운 일을 벌이기 적당하다.
“역시 레비앙이야. 일 처리가 확실해서 좋아.”
“감사합니다.”
현준의 칭찬에 레비앙은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두 사람이 대열을 갖춘 친위대 앞에 서자 사혈과 사혁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황제 폐하.”
“소집령을 받고 전원 집결했습니다.”
친위대장과 그 부관이 고개를 숙이며 충성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이제 곧 그들을 실험대로 보내야 하기에 마음 한구석이 찔려 왔지만 짧은 한숨과 함께 그 감정을 모두 털어냈다.
전쟁은 시작되었다. 승리하기 위해서는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라.”
현준은 레비앙과의 계획을 설명했다. 물론 강해질 수 있다고만 했고 ‘실험’이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았다. 여러 단어를 필요한 상황에 적절하게 사용하는 게 좋았다.
“강해지고 싶습니다.”
“저희도 따르겠습니다.”
사혈이 먼저 자신의 뜻을 밝혔다. 뒤이어 사혁과 다른 친위대원들도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처음부터 그들에게 선택권은 없었고 당연히 따를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렇게 일이 쉽게 해결되니까 속이 시원했다.
“레비앙.”
“예, 말씀하시지요.”
“바로 시작할 수 있어?”
이번 패전으로 281번 부대가 주춤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기회를 보고 있다.
빈틈을 포착한다면 바로 진군할 것이다. 친위대의 강화는 빠를수록 좋았다.
“필요한 설비는 2번 공방에 갖춰져 있습니다. 우선, 친위대장과 부관부터 강화하겠습니다.”
레비앙도 눈치가 빨랐다. 그 또한 ‘실험’이 아닌 ‘강화’라는 단어를 골라서 사용했다. 현준은 흡족한 웃음을 머금은 채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친위대 전원을 강화하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 같아?”
다음 전투가 언제 어디서 벌어질지 몰랐다. 현준의 물음에 레비앙은 흐음, 하고 턱을 긁적이며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단기간에 해결될 것 같지도 않습니다.”
“마법계 헌터들을 지원해줘도?”
“이 강화 술식은 엄청 복잡합니다. 이 세계의 마법계 헌터들이 다룰 수 있을 만한 게 아닙니다.”
레비앙이 고개를 저었다.
“그럼 나는 어때?”
현준이 물었다. 그는 다른 마법계 헌터들과는 달리 질드레에게서 마법 술식을 배웠다. 분명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많이 바쁘시지 않습니까?”
“내가 도와줄 수 있는지만 말해.”
도움이 된다면 시간을 쪼개서라도 2번 공방에 틀어박힐 생각이다.
“주군께서는 제 스승님으로부터 술식을 배우셨으니,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이렇게 되면 시간을 쪼개서 당분간 출퇴근 도장을 찍을 수밖에.
“좋아, 2번 공방으로 안내해.”
* * *
강화 계획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현준이 도와준 덕분에 레비앙은 속도를 냈고 일주일 만에 절반 이상의 친위대원을 강화했다.
그중에는 사혈과 사혁도 포함되어 있었다.
S급이었던 두 사람은 검은 마정석 강화 술식을 이식받고 SS급의 경지에 올랐다.
남들이 보기에는 쉽게 그 경지에 오른 것 같았지만 사실 과정은 고통스러웠다.
친위대원들이 대상이 아니었다면 그 과정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래도 이 강화 술식은 보완이 조금 필요할 것 같습니다.”
사혈과 사혁, 그리고 친위대 전원에게 강화 술식을 이식한 직후, 현준을 찾아온 레비앙이 말했다. A급 수준이었던 친위대원들도 S급의 경지에 오를 정도로 강력한 강화 술식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너무나 큰 고통이 따랐다.
내상을 입는다거나, 마력로가 망가지는 것 같은 드러나는 부작용이 없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만약 그랬다면 현준은 당장 중지시켰을 것이다.
“보완에 얼마나 걸릴 것 같아?”
현준이 물었다. 시간이 많이 없다. 차원 균열이 언제 확장될지도 모르는 일이었고 281번 부대가 지금은 재정비 중이라고는 하지만 언제 다시 진군해올지 알 수 없다.
“장담할 수는 없지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최대한 빨리 진행해.”
평균 A급 수준이었던 친위대가 모두 S급 이상의 경지에 올랐다. 이걸 다른 헌터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면 침략사령부에 맞설 수 있는 전력이 크게 강화된다.
‘보완만 된다면 말이지.’
지금 당장은 길드원들이나 다른 헌터들에게 적용하기 어렵다.
“공중항모의 강화는?”
얼마 전의 전투에서 확보한 대량의 검은 마정석들 중 일부를 공중항모의 강화를 위해 사용하라고 레비앙에게 넘겼었다.
“그때 주신 마정석은 모두 사용했습니다.”
“더 필요하지는 않고?”
검은 마정석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공중항모의 강화에 더 사용할 수 있지만 레비앙은 고개를 저었다.
“공중항모는 더 이상 강화할 수 없습니다. 지금 이게 최종 단계입니다.”
“성능은?”
“3배 정도 향상되었습니다.”
레비앙의 대답에 현준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설명을 더 요구하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너무 많이 생략했다. 어느 정도 향상되었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음, 제가 설명을 너무 생략했군요. 간단하게 말하자면 공중항모는 이제 침략사령부의 전투선을 압도할 수 있는 성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조금 더 자세한 설명에 현준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침략사령부의 우수한 마도 기술로 도배된 전투선을 압도할 수 있는 성능을 갖췄다는 점에서 레비앙의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었다.
물론, 검은 마정석도 많이 사용하기는 했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고생이 많았다.”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준의 칭찬에도 레비앙은 크게 으쓱하지 않았다. 겸손한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일 뿐이었다.
“이제 가도 돼.”
“그럼 이만…….”
강화 술식도 보안해야 하고, 레비앙은 할 일이 많았다.
현준도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더 이상 레비앙을 붙잡지 않고 보내줬다. 그가 길드장 집무실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기척이 느껴졌다.
노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스미스였다. 그는 현준에게 281번 부대가 다시 움직인다는 보고를 올렸다.
현준은 스미스를 돌려보내고 즉시 위원장의 권한을 사용하여 위원들을 소집했다.
“15명의 위원이 의정부에 집결했습니다. S급 11명에 SS급이 4명입니다.”
대부분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남미에 파견되어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소집된 위원의 수는 많지 않았다.
영국의 SSS급 헌터, 폭풍의 드레이크가 와주기를 희망했지만 그는 유럽을 지키는 방패였기 때문에 움직일 수 없었다.
전율의 에이나 또한 남미에 파견된 상태였고 에릭은 저주로 인한 부상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라 지금 당장 움직일 수 있는 최강 전력은 사실상 현준이 유일했다.
“소집에 응했습니다만, 위원장님의 계획이 궁금하군요.”
위원들과 군의 장성들이 모인 자리에서 위원의 자격을 갖춘 영국의 SS급 헌터가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위원들이 소집에 응하고 한국군이 집결했다고는 하지만 그들 중 현준의 계획을 아는 이는 없었다.
“북한에 있는 침략사령부 병력을 소탕할 겁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휴전선에서의 전투에서 남하하는 281번 부대의 병력을 전멸시키기는 했지만, 아직 북한에는 점령군이 남아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 수가 휴전선에서 교전했던 병력에 비해 적다는 것이다.
“가능할까요?”
누군가 말했다. 휴전선 전투는 현준이 없었다면 처참하게 패전했을 것이다.
한국군 수뇌부와 고위 헌터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사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가능합니다.”
현준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는 이 작전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이 개입하지 않더라도 한국군과 다른 헌터들 만으로도 북한의 침략사령부 병력을 패주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위원회의 정찰 보고서입니다. 다들 읽어보시죠.”
손짓을 하자 대기하고 있던 UN 특수 기관 요원들이 정찰 보고서를 배부했다. 한국군의 장성들과 수뇌부에 소속된 헌터들은 차분한 표정으로 정찰 보고서를 읽었다.
“북한 영토에 남아 있는 침략군의 수는 생각보다 적습니다. 중국과 러시아의 침략군이 지원병력을 보내기 전에 소탕해야 합니다.”
위원회에서 뛰어난 은신 헌터와 무인기를 동원해서 정찰한 결과, 현재 281번 부대의 병력 대부분은 중국에 있었다.
그다음으로 많은 수가 주둔 중인 곳이 러시아의 시베리아 연방 관구였다.
중국의 침략군이 북한의 침략군과 합류하면 곤란해진다. 현재 연합군 병력이 그 길목을 막고 있다고는 하지만 침략군이 본격적으로 움직인다면 방어선이 얼마나 버틸지 장담할 수 없다.
“지금 북한은 죽음의 땅이 되어 있습니다. 수천만 명이 학살당했지만 아직 수십만이 살아있는 게 확인되었습니다. 그들을 방치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북한을 점령한 침략군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학살’과 솔저급을 보충하기 위한 선별이었다. 현준은 차갑게 식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습니다. 머리 위에 적을 두고 쉴 수는 없습니다.”
“저도 강현준 위원장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한반도에서 전선이 유지되는 건 가급적 피해야 합니다.”
한국군 장성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지만 헌터들은 표정이 좋지 않았다.
북진 작전에서 피해가 클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군인들과 달리 이곳에 모인 헌터들은 대부분 길드장이거나, 정규 공략팀을 이끄는 자들이었다.
잃을 게 많다는 뜻이다.
“대한민국만 지키면 되는 게 아닙니까? 굳이 북진해야 할 필요가…….”
헌터들 중 한 명이 불만이 가득 묻어 나오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다이아몬드 티어의 길드를 이끌고 있는 길드장이었다. 현준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지킬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길드장은 할 말을 잃은 것인지 입을 다물었다.
“지키기 위해선 때로 과감하게 움직여야 할 때도 있는 법입니다.”
현준의 말에 군인들이 동조했다. 위원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뜻을 함께했다.
잃을 게 많은 길드장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러나 찬성하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들도 더 이상 반대를 할 수는 없었다.
“좋습니다. 반대 의견은 없군요.”
반쯤 강제였지만, 문제 삼는 이는 없었다.
“내일 이 시간, 한국군과 헌터 부대는 북진합니다. 백두산 너머에서 연합군이 남하하면서 저희를 지원할 겁니다.”
한반도에 발을 들인 침략군은 모두 살아 나가지 못할 것이다. 현준의 눈동자가 차갑게 식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