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만 전생이 날 도와줘-168화 (168/217)

# 168

50장 전면전이다(2)

중국과 러시아가 공격받았다. 남미와는 달리 강력한 헌터 전력을 보유한 국가들이었지만 공격에 나선 이들도 남미와는 달랐다.

남미를 공격한 주력군은 혈맹과 마수들로 구성된, 사실상의 2군이었다. 그런데 중국과 러시아의 공격에 나선 이들은 엄연한 침략부대. 침략사령부의 선봉에 서는 인베이더와 솔저들이었다.

공격을 시도할 때만 해도 로스칼은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당장 지구 전체를 집어삼키는 건 무리라고 해도 중국과 러시아 정도는 점령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두 국가의 군사력이 강하다는 정보를 알고 있기는 했지만, 침략부대의 무력이 우위에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 무리했나……?’

로스칼은 피가 새어 나올 정도로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281번 부대는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니었지만 불안정한 균열을 억지로 열고 차원 관문을 연 탓에 이동 중에 대부분의 병력을 잃었다.

뒤늦게 후회가 몰려 왔지만 이미 늦었다. 281번 부대의 지휘부를 포함한 9할의 병력이 차원 관문을 넘어 지구의 경계에 도달했다.

남은 1할은 보급 부대 및 보조 병력이었다. 지금 회군하면 의미가 없다.

“부관. 그때 적격자가 주신격의 권능을 자유자재로 구사했었나?”

확인이 필요했다.

“확실하게 말해. 러시아에서 적격자가 주신격의 무력을 보였었나?”

“마력 농도는 주신격이었습니다.”

“혹시 영상 자료 있나?”

“화질이 좋지 않기는 하지만 영상을 기록한 마정석이 하나 있습니다.”

부관이 품속에서 검은 마정석을 하나 꺼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챙겼는데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은 마정석을 받아든 로스칼은 마력을 주입하여 영상을 재생시켰다. 부관의 말대로 화질은 좋지 않았다.

아레스가 내뿜는 강렬한 마력이 전장의 전체를 장악하고 있었던 탓이었다. 마력에 의한 기록이었기 때문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 감지된 마력이 주신격 수준이었다고?”

영상으로는 마력의 수준을 알 수 없었다. 그저 전투 방식 등의 정보를 분석할 수 있을 뿐이었다.

“예, 확실합니다. 관측 장교가 올린 보고서도 보관해 두었고 기록도 확보해 두었습니다.

“일단…… 눈에 보이는 무력의 수준은 주신격은 아냐. 기껏해야 악몽급 신격 정도군. 주신격은 현존하는 모든 초월 경지의 최상위다. 이 수만 명이라고는 하지만, 솔저급들과 하급의 비행선 정도면 손 한 번 흔들면 증발이다.”

“그, 그 정돕니까?”

놀란 목소리로 말을 더듬은 부관을 보며 로스칼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신격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부관과 달리 로스칼은 1번에 불과했지만, ‘주신격’과의 전투에 참전한 적 있었다.

비록 후방이었지만 아직도 그날을 기억하면 온몸에 소름이 돋고 몸이 떨려올 정도로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솔저 10만이 비명을 지르며 슬라임처럼 녹아내리는 걸 본 적이 있다. 적은 그저 스태프를 살짝 흔들었을 뿐, 다른 동작은 없었다.”

로스칼이 말했다. 부관은 입을 열지 못했다. 인베이더에 비해 부족하다고는 하지만 솔저도 결코 약한 존재는 아니다.

마수 중에서 선별된 A급 이상의 실력자들이다. 솔저 10만을 단번에 녹여 버렸다고?

믿을 수 없다. 하지만 로스칼이 허언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부관은 마른침을 삼키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나중에 상관한테 들어서 알게 되었지만, 당시에 그곳에 있던 적은 차원 동맹의 주신격이었다고 하더군,”

“차원 동맹의 주신격이라면…… 결코 만만한 적이 아니군요. 어떻게 처치한 겁니까?”

“늘 해온 것처럼.”

로스칼이 잠시 말을 멈췄다. 그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칠흑같이 어두운 차원의 바다를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적이 1명을 보낸다면 우린 3명을 보낸다. 그뿐이다.”

주신격에 해당하는 특등 인베이더를 3명 보냈다는 말이다. 부관은 또 한 번 소름이 돋는 걸 느껴야만 했다.

* * *

마음 같아서는 러시아에 남아있는 침략사령부의 병력을 모두 쓸어버리고 싶었지만, 아레스의 강림이 끝나버리면서 남아 있는 마력이 모두 증발해버렸다.

전투는 불가능. 현준도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플레임은 물론이고 에릭 또한 치명상을 입은 상태였기 때문에 전투를 계속하기 힘들었다.

플레임과 달리 에릭과는 중요한 관계가 아니었지만, 전쟁이 다가오기 전에 강한 전력을 잃을 수는 없었다.

“어디로 이동해야 합니까?”

함교로 들어서자 레비앙이 물었다. 에릭은 뒤늦게 도착한 성좌대 병력에게 넘겼고 플레임은 응급처치가 끝났다. 이제 물러날 곳을 정할 때였다.

이대로 러시아에 남아서 무리한 공격을 계속하는가? 아니면 물러나서 재정비를 할지 노선을 정해야 한다.

“잔해 수색은 끝났고?”

“예. 수색 결과, 검은 마정석 40여 개를 확보했습니다.”

40여 개라면 적은 수는 아니다. 하지만…….

“침략사령부를 상대하기에는 부족해.”

이번 전투에서 침략사령부의 물량 공세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적대 대상을 확실하게 제압하기 위해 많은 수의 병력을 투입한다.

게다가 그 병력이 수가 많다고 해서 질적으로 수준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검은 마정석이 있을 만한 곳이 있을까?”

“남미 대륙의 필드가 있긴 하지만 러시아와 중국에 전선이 형성된 지금 상황에서 남미로 가는 건 추천하지 않습니다.”

공중항모가 일반적인 군용 항공기보다 빠르다고는 하지만 한계가 있다. 남미와 아시아 간의 거리는 꽤 길다.

남미 대륙에 검은 마정석을 루팅하러 갔다가 아시아나 대한민국에 문제가 생긴다면?

‘상상도 하기 싫네.’

현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 마정석에 대한 욕심이 생기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레비앙의 의견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귀국한다.”

“한국으로 방향을 돌리겠습니다.”

“속도를 올려, 최대한 빨리 돌아가서 재정비한다.”

현준이 말했다. 레비앙은 대답 대신 각인된 술식에 마력을 주입했다. 한반도가 있는 방향으로 선수를 돌린 공중항모가 서서히 속력을 올리기 시작했다.

수원의 레이스 길드 사무소 단지에 도착했다. 태민과 소진이 마중 나와 있었다. 현준은 그들과 짧은 대화를 나누고는 흩어졌다.

레비앙은 공중항모 정비와 강화를 위해 남았고 현준은 몇 가지 일을 처리하기 위해 길드장 집무실로 향했다.

“길드장님.”

집무실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가벼운 노크와 함께 태민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무슨 일이죠?”

“스미스 요원이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급한 용무라고…… 길드장님과 독대를 요청했습니다.”

“독대요?”

“예. 그렇습니다.”

현준의 물음에 태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스미스에게는 혈맹과 한창 대립 중일 때 협력했었다. 최근에는 바빠서 만날 시간이 거의 없었다.

“일단 오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재정비를 위해서는 남는 시간이 조금 있었다.

무슨 용건을 가지고 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잠깐 정도는 시간을 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태민이 집무실을 떠나고 10분 정도 흘렀을까? 다시 노크와 함께 천천히 문이 열렸다. 이번에는 예고했던 대로 UN 특수 기관의 스미스 요원이었다.

“강현준 위원님. 사전에 연락도 없이, 이렇게 불쑥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스미스가 고개를 숙였다.

“괜찮으니까, 말해보세요.”

“위원장님께서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지금 사경을 헤매고 계십니다.”

스미스의 말에 현준은 기억을 더듬어 봤다. 마지막으로 봤던 에릭의 모습을 떠올렸다.

피투성이긴 했지만, 의식은 붙어 있었던 것 같았는데, 성좌대의 호송을 받는 도중에 악화된 모양이었다.

“심각합니까?”

“저도 정확한 내용은 전달받지 못했습니다만, 아무래도 수준 높은 독이나 저주에 당한 것 같습니다.”

독이나 저주가 언급되었지만 인베이더의 ‘권능’일 가능성이 높았다. 만약 권능의 영향을 받았다면 조금 힘들 수도 있다.

질드레의 가호로도 ‘흑염’을 넘어서는 격의 권능은 파괴가 불가능하니까.

“좋지 않네요.”

현준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위원회의 특성상 침략사령부와의 전쟁에서 선봉에 서게 될 것이다.

당장 전쟁이 코앞인데 최고 지휘관의 자리가 비어 있으면 곤란하다.

“예,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시기에 여기까지 왔다고? 무슨 생각일까? 그걸 추측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위원장 자리를 넘기려는 건가?’

SSS급에 올랐다고는 하지만 국제적인 정치력이 많지 않은 현준에게 영구적으로 위원장 자리를 넘기는 건 아닐 터, 아마도 에릭이 회복될 때까지 임시로 맡아줄 것을 부탁하러 온 것 같았다.

‘상관없다. 내 자리로 만들면 되니까.’

현준은 속으로 슬쩍 웃었다. 이미 에릭이 입지를 다져 놓았겠지만 불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이 위원회를 잡아먹을 기회였다.

“그럼, 용건을 말씀해보시죠. 저도 시간이 많지는 않아요.”

살짝 압박을 가했다. 스미스의 입장에서는 선뜻 말을 꺼내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조금 끌어준 것이다.

“임시 위원장 자리를 맡아주십시오.”

“어디의 결정이죠? UN? 아니면…… 다른 위원들?”

“둘 다입니다.”

둘 중 하나가 반대했다면 조금 귀찮아질 수도 있었다. UN 상부뿐만 아니라, 다른 위원들 또한 찬성했다는 것은 긍정적인 반응이다.

“위원장이라…….”

고민하는 척 연기를 했다.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의미심장하게 창밖을 주시하는 모습은 남우주연상 감이었다.

현준이 그런 모습을 보이자 스미스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고요한 침묵 속에서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마침내 현준이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정말이십니까?”

스미스의 표정이 밝아졌다. 현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절차 밟아주세요.”

“절차는 별거 없습니다. 중국이 침략사령부에 완전히 넘어가고 러시아도 공격받으면서 지금 전 세계는 비상사태입니다. 권한을 넘겨받는 데 얼마 걸리지 않을 겁니다.”

정말 오래 걸리지 않았다. 스미스가 돌아가고 바로 다음 날, 현준은 위원장의 모든 권한을 임시로 넘겨받았다.

절차가 끝나고 위원회의 모든 권한을 이어받은 현준은 대대적인 개편을 시작했다.

위원들의 독립적은 권한을 축소하고 유사시에 강제 동원할 수 있게 설정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공격받은 상황이라 개편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기자회견을 잡았다.

선동의 귀재가 도와주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세계 각국의 정부들을 설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미 공격은 시작되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기자회견장에서 침략사령부에 대해 공개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쏟아냈지만, UN은 특수 기관을 제외하고는 평화를 원했다. 협상 쪽으로 분위기가 흘러갔다.

침략사령부에서 점령지의 모든 ‘인간’을 처형하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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