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만 전생이 날 도와줘-164화 (164/217)

# 164

49장 대격변(3)

“커, 커헉!”

인베이더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격납고의 솔저 수십이 정리되는 데 1분이 걸리지 않았다.

수백 개의 잔상이 남을 정도로 초고속으로 움직이는 에릭을 A급 수준의 솔저들이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SS급 최하위 수준의 12급 인베이더조차 제대로 된 저항조차 못 하고 당할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인베이더의 숨이 끊어지자 에릭은 옷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입을 열었다.

“다음은 어디입니까?”

“탐색 술식을 사용하겠습니다. 5분이면 됩니다.”

술식은 마법과는 구조가 조금 달라서 사용에 많은 집중력과 시간을 소모한다.

그래서 전투 중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말이 나오고는 했다. 술식을 전문적으로 익힌 마법계 헌터들도 전투보다는 보조에 활동하는 추세였다.

현준은 질드레에게서 배운 지식을 활용하여 탐색 술식을 펼쳤다.

비행선 안에 술식 작용을 방해하는 마법진이 각인되어 있었지만 질드레에게서 술식 교육을 받은 현준은 교묘하게 허점을 파악하여 탐색 술식을 성공시켰지만 완전하지는 않았다.

머릿속으로 정보가 들어오기는 했지만 몇몇 지점은 희뿌연 안개에 가려진 것처럼 희미하게 보였다.

‘이거 바보들인가?’

위치로 볼 때 희미하게 보이는 곳이 기관실 같은 중요 시설이 분명했다.

중요 시설의 구조를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 방해 술식을 걸어둔 게 오히려 위치를 드러나게 해버린 것이다.

정말 바보들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허술한 침입 방지 대책이었다. 웃음이 터져 나올 정도였다.

“제가 앞장설게요. 뒤를 부탁합니다.”

“걱정하지 마시길.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습니다.”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그린 채 대답하는 에릭을 보며 현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격납고를 나오자 사람 수십 명이 옆으로 줄지어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폭이 넓은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계속해서 마력 광선을 발사하고 있는 것인지 약한 떨림이 벽을 타고 전해지는 게 느껴졌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요. 흩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두 번째 격납고를 파괴한 현준은 생각보다 비행선이 넓다는 걸 깨닫고 에릭에게 제안했다.

“인원은 어떻게 나눌 생각이십니까?”

“저는 혼자 행동하겠습니다. 위원장님은 플레임과 같이 행동해 주시죠.”

“알겠습니다.”

플레임은 당연히 현준의 뜻에 반대할 리가 없었고 에릭도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현준은 둘에게 간단한 약도를 그려주었다.

“확인했습니다. 함교에서 뵙죠.”

에릭과 플레임이 먼저 움직였다. 현준도 약도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서 파괴 공작을 시작했다.

비행선에서도 침입자의 존재를 확실하게 인식한 것인지 수비 병력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이 앞이 기관실인가……?”

운동장 수준으로 넓은 통로를 막아선 수백의 병력을 보며 현준은 눈살을 찌푸렸다.

수비 병력의 너머로 강한 마력 반응이 느껴지는 걸로 보아 마력 동력원이 있는 기관실일 확률이 높아 보였다.

앞을 막아선 솔저들의 규모만 봐도 저 너머에 있는 시설이 상당히 중요하다는 걸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인베이더는 다섯인가?’

현준의 날카로운 시선이 적들을 훑었다. 솔저와 달리 인베이더의 마력은 더욱 강렬하고 색이 진해서 섞여 있어서 티가 많이 났다.

-SS급 둘, 그리고 S급이 셋이군.

지옥참마도가 설명을 덧붙였다. 정밀 탐색 능력은 그가 현준보다 조금 더 뛰어났다.

“간다.”

짧은 중얼거림과 함께 마력을 끌어 올렸다.

-라이키리의 빛이 당신을 아득한 저편으로 인도합니다. 빛과 함께 한줄기의 섬광이 되어 적을 꿰뚫으세요.

가호의 발동과 함께 현준은 한 줄기의 빛이 되었다.

콰아아앙!

폭발하는 듯한 충돌음이 터져 나왔다. 빛줄기의 끝에서 전격의 랜스에 관통당한 인베이더가 경직된 몸을 부르르 떨며 피를 쏟아냈다.

“크허어억!”

S급 상위 수준의 실력을 가진 인베이더가 일격에 목숨을 잃었다. 옆에 있던 남은 4명의 인베이더들은 압도적인 무력의 차이에 경악했다.

“이런 괴물 같은…….”

“협공이다!”

“일단 포위해!”

“권능을 아끼지 마라!”

예상외의 무력에 놀라기는 했지만, 그들은 크게 당황하지 않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현준을 포위했다. 동시에 전후좌우에서 강대한 마력을 끌어 올렸다. 권능을 사용할 모양인 듯했다.

‘권능을 쓰면 귀찮아져.’

현준 또한 마력을 끌어 올렸다.

“폭풍검.”

짤막한 시동어를 내뱉으며 검을 휘두르자 사방으로 폭풍이 휘몰아쳤다.

오러 블레이드의 폭풍은 전후좌우에서 권능을 준비하고 있던 인베이더들을 덮쳤다.

“크아악!”

“으아악!”

비명과 함께 핏줄기가 솟구쳤다. 인베이더들이 무력하게 쓰러졌다. 마치 줄이 끊어진 꼭두각시 인형들 같았다.

이 모든 게 불과 0.1초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 이럴 수가!”

“인베이더님들이…….!”

“크아아악!”

인베이더들이 당했다. 그 사실을 솔저들이 인식했을 때 현준은 이미 한 명의 전쟁 병기가 되어 그들의 진형을 휩쓸고 있었다.

“마, 막아라!”

“반드시 막아야 한다! 더 이상 침입을 허용하면 안 돼!”

솔저 지휘관들이 다급하게 외쳤지만, 현준을 막을 수는 없었다. 솔저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현준이 인베이더를 처치하고 회수한 지옥참마도를 다시 휘두르기 시작한 지 10초가 지난 시점에 이미 솔저들의 진형은 완전히 무너지고 있었다.

순식간에 1차 저지선이 돌파당했다. 1분이 지난 상황에서 수백 명의 솔저 중에서 절반 이상이 쓰러져 있었다.

“폭풍검!”

다시 한번 폭풍검이 발동되고 솔저들의 피가 허공에 흩뿌려졌다. 기관실까지 가는 길이 열렸다.

“이기어검.”

도살자 단검이 어지럽게 날아다녔다. 폭풍검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소수의 솔저들마저 쓰러졌다. 도살자 단검은 리퍼의 유품, 주인과 닮아있을 수밖에 없다.

정확히 숨통을 끊어놓는 것에 특화되어 있다.

솔저들을 완전히 정리한 현준은 굳게 닫혀 있는 철문을 향해 오러 블레이드를 머금은 지옥참마도를 휘둘렀다.

방어 술식이 갖춰져 있는 철문이었지만 시든밀러의 오러 블레이드를 버티지 못했다.

조각나서 무너지는 잔해들을 넘어 현준이 기관실 안으로 몸을 던졌다. 기관실 승무원들까지 방어에 동원되었던 것인지 내부는 텅 비어있었다.

-크큭. 이게 완벽한 빈집털이군.

지옥참마도가 신이 나서 말했다. 빈집이라고 하기엔 마중 나온 이들이 너무 많았지만, 굳이 태클을 걸고 싶지는 않았다.

-듀렌달이 당신과 함께합니다. 찬란한 광휘가 정의로운 검에 깃듭니다.

마력을 끌어 올리자 듀렌달의 가호가 발동되면서 오러 블레이드가 강화되었다.

휘둘러진 지옥참마도가 기관실의 시설을 가차 없이 파괴했다. 날카로운 파편이 튀었다.

기관실의 모든 시설에는 강화 술식이 각인되어 있었지만 듀렌달의 가호를 버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파괴 공작은 신속하게 이뤄졌다. 넓은 기관실의 모든 시설을 박살 내는 데 5분이 걸리지 않았다.

기관실이 치명적인 손상을 입자 비행선이 중심을 잃었다.

‘다음은 함교다.’

현준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희뿌옇게 가려져 있던 구역도 얼마 남지 않았다.

현준은 약도를 꺼내 기관실의 위치를 검게 칠했다.

‘이 중에 함교가 있다.’

남은 안개 구역은 3곳. 단순 계산으로도 확률은 30%였지만 머리는 장식이 아니다.

현준은 짧은 고민 끝에 함교가 있을 확률이 가장 높은 구역을 하나 선정했다.

‘여기서 멀지 않다.’

망설임은 없었다. 현준은 즉시 발걸음 옮겼다. 기관실 방어에 대부분의 전투원을 동원했던 것인지 앞을 막아서는 이들이 거의 없었다.

-빙고.

지옥참마도가 또 신이 났다. 눈 앞에 펼쳐진 넓은 통로의 끝에 보이는 거대한 철문에 ‘이계어’로 ‘함교’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장된 마력은 충분한가?

쓸데없는 말이 늘었다. 현준은 피식 웃으며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 오면서 적지 않은 마력을 소모했지만, 흡혈 옵션 덕분에 상당량의 마력을 보충했다.

지옥참마도가 마력이 충분하냐고 물은 건 자신의 흡혈 능력을 생색내기 위해서인 듯했다.

“후우!”

짧은 호흡 정리와 함께 다시 오러 블레이드를 켰다. 양손으로 지옥참마도를 쥔 채 힘차게 휘두르자 함교를 방어하는 철문이 처참하게 조각났다.

함교 내부가 훤히 드러났다. 그곳에는 단 한 명의 인베이더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는 공격지휘부의 참모를 맡고 있는 10급 인베이더 하빈스였다.

“이건 예상외라고 할 수 있겠군. 설마 적격자…… 네가 여기까지 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하빈스가 말했다. 내색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떨리는 게 느껴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는 10급 인베이더로 SS급 중견 정도의 실력자였지만 그들이 적격자라고 부르는 현준은 블라디미르를 공식적으로 꺾으면서 SSS급 이상의 실력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침략사령부의 이름으로, 너를 처단하겠다.”

먼저 움직인 쪽은 하빈스였다. 그는 한줄기의 섬광이 되어 현준에게 날아들었다.

동시에 배후에서는 검은 창과 쇠사슬이 현준의 등과 다리를 노렸다.

‘사각은?’

눈동자를 빠르게 굴렸다. 하빈스와 검은 창, 그리고 쇠사슬의 경로를 읽었다.

-카르타고의 정의로운 방패가 당신을 수호합니다. 위대한 수호가 함께하는 한, 당신을 위협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마력을 일으켜 카르타고의 가호를 호출했다. 왼팔에 생성된 오러 실드는 검은 창과 쇠사슬을 막아냈고 지옥참마도의 끝은 정면에서 빛의 속도로 돌진해오는 하빈스의 목을 노렸다.

“큭!”

하빈스는 기형적으로 상체를 비틀어 회피를 시도했지만, 현준이 내찌른 지옥참마도를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다.

목의 절반이 찢겼고 입밖으로 붉은 피가 쏟아졌다. 조금만 더 옆으로 비켜 갔어도 머리가 날아갔을 것이다.

일순간이지만 하빈스는 안심했다. 그러나 오래가지는 못했다.

어느새 현준이 이스텔의 가호를 사용하여 파이어볼 수십 개를 날려 보낸 것이었다.

전후좌우에서 하빈스를 노렸다. 너무 순식간이라 SS급 수준의 실력자인 하빈스조차 제때 반응하지 못했다.

“큭!”

3배 강화된 파이어볼 수십 개가 하빈스의 몸을 두들겼다. 화염 내성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강화까지 되어 있는 상태라 마치 철구에 얻어맞는 듯한 느낌이었다. 큰 피해를 입히지는 못했지만, 일순간 시야를 교란하기에는 충분했다.

하빈스가 정신을 차렸을 때 현준은 완전 은신의 장막으로 몸을 숨긴 뒤였다.

“제, 제기랄!”

그는 욕설을 내뱉었다. SSS급의 헌터가 사용하는 완전 은신의 마력 흔적을 쫓기에는 그의 실력이 부족했다.

불안감은 길지 않았다. 2초가 지나기 전에 오러 블레이드가 하빈스의 흉부를 꿰뚫고 튀어나왔으니까.

“커, 커헉…….”

검붉은 피가 쏟아졌다. 하빈스는 시야가 희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적격자……가 이 정도로 강할 줄이야…….”

그것이 하빈스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그 말을 끝으로 그의 목이 꺾였다. 목숨이 완전히 끊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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