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만 전생이 날 도와줘-160화 (160/217)

# 160

48장 SSS급 헌터 강현준(1)

대한민국의 헌터, 강현준이 러시아에서도 세계 최강이라는 이름이 붙은 블라디미르를 죽였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전 세계 언론에 퍼졌다.

러시아 알파팀에서는 블라디미르와 혈맹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은폐하려고 했지만 그러기에는 블라디미르가 원래 가지고 있단 ‘최강’이라는 이름이 너무 유명했다.

현준이 태희를 시켜 한국 언론에 정보를 살짝 흘리자 그것을 시작으로 통제되던 모든 정보가 터져 나왔다.

“전 세계 언론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손태희 씨는 지금부터 정보 흘리기를 중단해도 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태민의 보고에 현준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이제 러시아에서도 혈맹과의 전선에 참여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정보 은폐에는 실패했다. 블라디미르가 크리처였다는 정보는 손태희를 통해 전 세계 언론에 유출되었다.

혈맹과의 연관성을 부인하기 위해서라도 러시아는 전선에 참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늘 던전 관리국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무슨 연락이요?”

“길드장님을 SSS급 중견으로 인정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심사가 생략되었다. 아무래도 SSS급 헌터였던 블라디미르를 꺾었다는 실질적인 결과가 생겨서 그런 것 같았다. 더 이상의 정밀 심사와 승급에 필요한 최소한의 실적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길드 총괄국에서도 연락이 왔습니다. 저희 레이스 길드를 다이아몬드 티어 15위로 승격시킨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승격 신청을 따로 하지는 않았죠?”

“다이아몬드 티어로의 승격은 따로 신청하지 않아도 자격이 되면 길드 총괄국에서 진행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고생이 많았어요. 복귀하세요.”

현준의 말에 태민은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길드장 집무실을 떠났다. 홀로 남은 현준은 창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밖은 어두웠지만 퇴근하기에는 찾아오기로 한 사람이 남아 있었다.

똑똑.

가벼운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푸른 로브를 입은 레비앙이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그는 현준의 책상 앞까지 다가와 차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했다.

“부르셨습니까?”

“일은 할 만해?”

현준이 물었다. 질드레로부터 레비앙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확인한 뒤, 그에게는 공중항모의 정비를 맡겼었다.

지구의 마법계 헌터들에 비해 수준 높은 술식 지식을 가지고 있는 레비앙이라면 공중항모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침략사령부의 기술이 상당히 많이 사용된 비행체지만 종합적인 정비와 관리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정도입니다.”

“다행이네.”

“단순 정비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성능을 강화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정말이야?”

지금도 공중항모의 전투력은 우수했다. 인공섬의 혈맹원들을 토벌할 때도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했을 뿐만 아니라 마법 폭격으로 지상을 쑥대밭으로 만들기도 했었다.

“저는 전투 마도학자이기도 하지만 제 전문 분야는 강화 술식입니다. 마도구의 강화는 물론이고 ‘인간’의 강화 또한 가능합니다.”

“필요한 건?”

술식 만으로 강화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분명 필요한 게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레비앙은 필요한 게 있는 모양인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정석이 필요합니다. 가능하면 침략사령부의 인베이더들과 동질의 마력을 지닌 ‘검은 마정석’이면 좋을 것 같군요.”

검은 마정석이라…….

“수집을 다녀와야겠네.”

현준은 혼잣말에 가까운 중얼거림을 내뱉었다. 생각보다 검은 마정석을 사용할 곳이 많았는데, 가지고 있는 건 많지 않았다.

“강화 작업에 얼마나 걸릴 것 같아?”

“재료만 충분하다면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여기서 ‘재료’라는 건 검은 마정석을 말하는 것일 터. 다시 한번 검은 마정석의 필요성이 상기되었다.

“검은 마정석은 차근차근 보급해 줄 테니까, 일단은 술식 설계부터 시작해.”

공중항모의 강화는 당장 급한 문제가 아니었다.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검은 마정석을 소모할 정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알겠습니다.”

레비앙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런데…… 조금 전에 ‘인간’의 강화도 가능하다고 했는데…… 위험성은 얼마나 되지?”

“검은 마정석이 많이 소모되고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 물리적인 위험은 동반되지 않습니다.”

“음…… 그래? 그럼 일단은 공중항모의 강화부터 집중해야겠네.”

‘인간’의 강화는 아직 때가 아닌 것 같았다. 레비앙도 아쉬운 표정이었지만 이내 납득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알겠어. 돌아가 봐.”

“예, 알겠습니다.”

레비앙이 물러가고 현준은 술잔을 채웠다.

“앞으로 바빠지겠네.”

복잡한 고민을 술잔에 함께 담아 그대로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현준은 태민으로부터 러시아가 혈맹과의 전선에 적극적으로 합류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강현준 위원님.”

러시아의 소식을 듣고 다음 날, UN 특수 기관의 스미스 요원이 찾아왔다. 현준은 잠시 업무를 중단하고 그를 맞이했다.

“무슨 일입니까?”

“위원장님께서 대한민국에 방문할 예정이라고 하십니다.”

위원장이라면 SSS급 헌터, ‘잔영의 에릭’이다.

“공식적인 방문입니까?”

“아닙니다. 비공식적인 방문입니다.”

“언제쯤 옵니까?”

“내일입니다.”

스미스의 대답에 현준은 눈살을 찌푸렸다. 갑작스러운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위원장님께서 강현준 위원님을 꼭 보고 싶어 하기에 갑작스럽게 일정이 잡히게 되었습니다. 비공식적인 방문이기 때문에 강현준 위원님께서는 별도의 준비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귀찮은 일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러운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스미스 요원이 그렇게 말하니까, 준비는 최소한으로 하겠습니다.”

“예. 위원님. 잘 부탁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었다. 현준은 스미스 요원한테 미리 말한 대로 정말로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다.

개인 항공기를 타고 인천국제공항에 내린 에릭을 마중 나가지도 않았고 그냥 이동에 필요한 헬기 편대를 지원해주었을 뿐이었다.

“괜찮겠습니까?”

규환이 조심스럽게 걱정을 표했지만, 현준은 태평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갑자기 일정을 잡은 건 저쪽입니다. 굳이 과한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어요.”

상대가 SSS급 헌터라고는 하지만 현준 또한 동급의 헌터였다. 저자세를 보일 필요는 없었다.

이동용 헬기 편대를 보내줬으니 기본적인 예의는 갖춘 셈이다. 의전까지 기대했다면 저쪽이 이상한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현준이 보낸 헬기에 에릭이 탑승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인천국제공항까지 거리가 있다고는 하지만 헬기를 이용하면 이동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기 때문에 현준은 업무를 정리했다.

정리를 끝내고 20분 정도 기다렸을까? 길드 사무소 단지에 에릭이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응접실로 가서 더 기다리자 문이 열리면서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인자한 인상의 금발인이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저 사람이 에릭인가……?’

현준은 로마노프의 가호를 사용하기 위해 눈동자에 마력을 끌어 올렸다. 영상 통신으로는 진명을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에 궁금했다.

-로마노프의 눈이 당신에게 깃듭니다. 절대적인 통찰을 담은 시선은 모든 존재를 꿰뚫어 봅니다.

시야가 황금빛으로 물들고 에릭의 머리 위로 그의 진명이 떠올랐다. 진명을 확인한 순간 현준은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에릭 : 기억을 잃은 회귀자.]

조금은 특이한 진명 때문이었다.

‘기억을 잃은 회귀자라니…….’

기억을 잃으면 회귀가 다 무슨 소용이라는 말인가? 어찌 보면 슬픈 진명이다.

“반갑습니다. 위원장님.”

“저도 반갑습니다. 강현준 위원. 이렇게 직접 보는 건 처음이지요?”

“네. 그동안 영상 통신으로만 몇 번 뵈었죠.”

통성명을 하면서 현준은 빠르게 에릭을 훑었다.

‘나보다 약하잖아?’

예상은 했지만 역시였다. 에릭은 블라디미르보다 약하다는 소문이 있었다.

이번에 블라디미르를 꺾으면서 스스로의 무력에 대한 판단 척도를 확실하게 하게 된 현준은 에릭이 자신보다 무력이 아래라는 걸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오늘 강현준 위원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드리기 위해 직접 찾아왔습니다.”

“그거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는 말인가요?”

다른 목적도 있을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현준은 물음에 에릭은 씨익 웃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개인적으로 강현준 위원을 한 번 만나 보고 싶기도 해서 말입니다.”

“그렇군요. 그 좋은 소식이라는 걸 바로 들어볼 수 있을까요?”

말이 길어지는 건 질색이다.

“아…… 다름이 아니라, 남미의 필드에 대한 출입 허가가 승인되었습니다. 주둔토벌대를 제외하면 강현준 위원에게 가장 먼저 승인이 난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특별 대우를 해준다는 말이다.

“잘 되었네요. 마침 그쪽에 용무가 있었습니다.”

군단의 소환과 공중항모의 강화 때문에 검은 마정석이 많이 필요해서 필드 출입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저 한 명에 대한 출입만 승인된 건 아니겠죠?”

“물론입니다. 공격대 규모의 동행이 있어도 됩니다.”

“좋습니다. 지금 바로 준비해야겠네요.”

“바로 남미로 향할 예정이십니까?”

에릭의 물음에 현준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합니다. 그곳에 나의 적이 있으니까요.”

멸망을 늦추기 위해서는 혈맹 토벌이 급선무였다.

* * *

지구로 파견된 10급 인베이더, 하빈스는 더러운 것을 씹은 것 같은 불쾌한 표정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어둠 속으로 길게 이어진 복도를 따라 분주히 걷던 하빈스는 갑작스럽게 걸음을 멈추고 눈앞의 문을 열었다.

“블라디미르가 당했습니다.”

하빈스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짙은 어둠 속에서 붉은 눈동자가 번뜩였다.

“세뇌 술식까지 들킨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블라디미르를 통해 러시아와 대한민국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계획은 사실상 무산된 거나 다름없습니다.”

“적격자한테 당한 건가요?”

“예……. 대한민국령에서 마력 반응이 끊기기도 했고 적격자가 블라디미르를 꺾었다는 사실을 트로피처럼 삼고 여기저기 정보를 흘렸습니다.”

하빈스의 보고에 일리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적격자의 성장 속도가 너무 빠르네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일리나 경.”

“하지만 이번에는 우리가 더 빨리 행동하고 있습니다.”

일리나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균열 확장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거겠죠?”

“물론입니다. 조만간에 증원군을 불러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차원 균열의 확장, 그것으로 인한 증원군 요청을 꾀하고 있었다.

“얼마나 걸릴 것 같아요?”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하빈스의 목소리에서 자신감이 묻어 나왔다. 그는 공격지휘부의 참모답게 이번 일을 앞장서서 책임지고 진행하고 있었다.

“일주일 안에 차원 관문을 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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