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만 전생이 날 도와줘-157화 (157/217)

# 157

47장 상위 포식자(1)

공군 비행장에 군용 수송기가 착륙했다. 허가를 받지 않은 진입이었기 때문에 요격 절차를 밟았어야 했지만 군용 수송기 안에 블라디미르가 타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쉽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잘못을 했다고는 하지만 러시아의 간판이나 다름없는 블라디미르가 탄 군용 수송기를 요격하면 그를 죽일 수도 없을뿐더러, 최악의 적을 만들게 되어버리니까.

하지만 무력하게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비행장 경비 병력과 주변에 주둔하고 있던 육군 병력까지 출동했다.

가까운 곳에 있던 길드와 헌터들에게 지원까지 요청했다. 헌터를 포함한 2천여 명의 병력이 비행장에 몰려들었다.

“앞으로.”

지휘관이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그의 옆에는 러시아어 통역 장교가 있었다. 블라디미르를 제압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못 했다.

하지만 군과 특수 경찰을 동원하여 압박하면 제아무리 블라디미르라고 해도 양국의 외교 관계를 생각해서 날뛰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문이 열립니다!”

누군가 외쳤다. 군용 수송기의 도어가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절반쯤 열렸을 때, 차가운 냉기를 풍기며 블라디미르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냉기와 함께 번져가는 살기에 군인들은 물론이고 헌터들조차 공포를 느끼고 몸을 떨었다. 차가운 냉기가 살기와 함께 기분 나쁘게 달라붙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후우!”

지휘를 맡은 중령 계급의 장교는 심호흡으로 긴장을 털어내고는 통역 장교와 함께 블라디미르의 앞을 막아섰다.

“지금 내 앞을 막는 거냐?”

“허억!”

블라디미르가 살기를 뚝뚝 흘리며 말했다. 전신을 옭아매는 듯한 느낌에 중령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통역 장교 또한 블라디미르의 말을 전하지 못했다.

“이대로는 시간 낭비겠군.”

블라디미르가 무심한 목소리로 내뱉으며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중령과 통역 장교가 불길함을 느끼고 도망치고자 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블라디미르가 지배하는 잔혹한 냉기가 일대를 완전히 장악한 뒤였으니까.

제대로 된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2천여 명의 군인과 헌터들이 5초 만에 죄다 얼어붙었다. 서리 칼날의 블라디미르, 그는 전투계 헌터였지만 2차 각성자로서 가지고 있는 특수 능력 2개 중 하나가 대마법 수준의 냉기에 대한 절대 지배였다.

“다 정리한 건가?”

블라디미르는 혼잣말을 내뱉으면서 주위를 살폈다. 2천여 개의 얼음 조각상.

마지막까지 살기 위해 발버둥 친 흔적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얼어버린 얼굴에서는 절망과 고통이 묻어 나왔다.

순식간에 2천 명을 학살했지만, 블라디미르는 평온한 표정이었다. 군용 수송기에서 내린 알파팀 소속 헌터들과 함께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이었다.

“온다.”

강한 마력 반응의 접근을 감지한 블라디미르가 하늘을 가리키며 말하자 알파팀 헌터들이 바로 반응했다.

“대응하라! 공중에서 온다!”

하늘 위에 흑색의 용이 한 마리 보였다. 플레임과 강현준이었다. 플레임의 등에 올라탄 현준은 아래에 펼쳐진 끔찍한 광경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아주 그냥 박살을 냈구만…….”

최대한 빨리 왔지만 조금 늦어버린 모양.

“넌 여기서 기다려. 내가 내려가서 다 쓸어버리고 올 테니까.”

현준은 플레임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아래로 뛰어내렸다.

“요격해!”

알파팀 헌터들이 마법을 퍼부었다. 찬란한 빛줄기들이 하늘을 꿰뚫었지만, 현준은 질드레의 가호를 사용하여 자신에게 닿을 만한 고위 마법들을 모조리 파괴했다.

다량의 마력 소모가 있었지만, 그동안 베히모스의 가호로 마력로를 충분히 확장해 두었기 때문에 부족하다 싶을 정도는 아니었다.

콰앙!

요란한 충돌음과 함께 땅이 움푹 꺼지면서 흙먼지가 왕창 솟구쳤다.

“치워라.”

“예.”

블라디미르가 지시하자 마법계 헌터 1명이 바람을 일으켜 흙먼지를 걷어내자 현준의 모습이 드러났다.

지구 최강의 4명 중 하나인 SSS급 헌터, 서리 칼날의 블라디미르와 알파팀의 최정예 100여 명을 바로 앞에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준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소름 끼치도록 침착한 모습에 오히려 알파팀 헌터들이 불안해할 정도였다.

‘세계 최강의 헌터가 앞에 있는 데도 이렇게 흔들림 없다고?’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것인가?’

알파팀 헌터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그들을 향해 현준은 말없이 한 걸음 다가갔다. 홀로 발걸음을 옮겼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군단이 움직인 것 같은 위압감이 알파팀 헌터들을 짓눌렀다.

“말도 안 돼…….”

“이, 이건 대체……?”

이 압도적인 위압감의 근원은 무엇이라는 말인가?

“이건…… 살기다.”

누군가 결론을 내렸다.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다만, 결론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알파팀 헌터들은 쉽게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이토록 진하고 위협적인 살기를 마주하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

“진정해라. 적은 혼자다.”

블라디미르가 냉기가 뚝뚝 묻어 나오는 목소리로 부하들을 진정시켰다. 그 모습을 본 현준은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니들 지금 SSS급 하나 믿고 남의 나라에서 깽판 치나 본데…….”

지옥참마도가 검집에서 뽑혀 나왔다. 동시에 특수한 술식으로 평소에는 숨겨두었던 모든 마력을 해방했다.

콰아앙!

일순간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천지가 흔들렸다. 알파팀 헌터들의 얼굴에는 이제 공포가 묻어 나왔다.

“괴, 괴물…….”

모두가 한마음이었다. 유일하게 블라디미르만 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공포를 느낄 정도는 아니었지만, 미지의 힘에 대한 경계를 올렸다.

“살아나갈 생각은 버리는 게 좋을 거다.”

현준의 두 눈이 날카롭게 빛난 순간.

-시든밀러의 용맹한 검이 당신과 함께합니다. 정의로운 용기가 무너지지 않는 한, 검은 부러지지 않을 것입니다.

-듀렌달이 당신과 함께합니다. 찬란한 광휘가 정의로운 검에 깃듭니다.

지옥참마도에서 짙은 청색의 강화 오러 블레이드가 솟구쳤다. 상대는 블라디미르. 전 세계에 4명밖에 없는 SSS급 헌터다.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야 한다.

“라이키리!”

-라이키리의 빛이 당신을 아득한 저편으로 인도합니다. 빛과 함께 한줄기의 섬광이 되어 적을 꿰뚫으세요.

한 줄기 빛이 되었다. 블라디미르를 노렸지만, SSS급 헌터라는 이름이 허명은 아닌 것인지 냉기를 흩뿌려 빛의 군마의 속도를 늦춘 뒤, 몸을 피했다.

전격의 랜스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꿰뚫었다. 라이키리의 가호가 풀리면서 현준이 노출되자 알파팀 헌터들이 일제히 무기를 뽑아 들었다.

“개입하지 마라. 내가 처리하겠다.”

당장에라도 달려들 기세였지만 블라디미르의 지시에 알파팀 헌터들은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전투 범위 밖으로 일사불란하게 물러났다.

그들에게 있어서 사령관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아무래도 내 능력을 알고 있는 것 같다. 주인아.

지옥참마도가 말했다. 현준도 굳이 대답하지는 않았지만 같은 생각이었다.

지옥참마도의 흡혈에 의한 마력 회복 옵션을 블라디미르가 파악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마력 회복을 막기 위해 알파팀 헌터들을 물러나게 만든 것이다.

하긴, 그동안 지옥참마도를 많이 사용했는데, 옵션 효과가 노출되지 않았다면 이상한 것이다. 지금쯤 정보가 퍼져도 전혀 이상한 게 아니었다.

‘장기전으로 가면 불리해질 수도 있다.’

블라디미르는 공식적으로 SSS급 중견 헌터다. 미국의 에릭이나 영국의 드레이크보다 한 단계 높으며 사실상 세계 최강의 헌터나 다름없다.

현준이 눈부신 성장을 거듭해왔다고는 하지만 부담스러운 적이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내가 세계 최강의 남자랑 맞붙게 될 줄이야.’

처음 전생의 방에서 카르타고를 만났을 때 나눴던 대화가 기억났다. 그는 4명의 SSS급 헌터들보다 강해질 수 있게 만들어준다고 했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때는 쉽게 믿을 수 없었지만 지금 이렇게 세계 최강의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자 비로소 실감이 났다.

‘각을 보고 있는 건가.’

긴장 속에서 1분의 시간이 흘렀지만, 현준이나 블라디미르나 먼저 움직이지 않았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서로를 탐색할 뿐이었다.

‘이대로는 끝이 없다.’

현준은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블라디미르. 이거, 내가 지나가다 주운 건데 혹시 주인이 누군지 알고 있어?”

조롱하듯 말하며 아공간 주머니에서 꺼내 보인 것은 페트렌코가 착용했었던 S급 장비, ‘얼음 흉갑’이었다. 장비 감정은 얼마 전에 끝났다.

S급 수준의 물리 방어력과 근접 공격에 대한 냉기 반격을 제외하면 평범한 장비였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극적인 효과를 발휘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런 현준의 예상은 적중했다.

“이 개자식!”

인베이더의 세뇌 술식이 블라디미르의 뇌를 점령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의 모든 감정을 장악할 정도는 아니었다.

기껏해야 간단한 지령과 방향성을 제시할 정도. 그런 상황에서 아끼는 제자의 유품을 봤으니 눈이 돌아갈 수밖에.

“이거 생각보다 좋더라고.”

현준은 씨익 웃으며 얼음 흉갑을 입었다. 그 모습은 악당과 별다를 바 없었다.

결국, 블라디미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얼음의 칼을 뽑아 들고 현준을 향해 몸을 던졌다.

모든 것을 얼려 버릴 것만 같은 냉기를 동반한 돌진에 현준도 방어를 위해 카르타고의 가호를 사용했다.

-카르타고의 정의로운 방패가 당신을 수호합니다. 위대한 수호가 함께하는 한, 당신을 위협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왼팔에서 오러 실드가 생성되었다. 어느새 거리를 좁혀온 블라디미르의 주변으로 냉기가 날카로운 얼음 조각을 형성하여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소형 블리자드를 보는 것만 같았다.

‘파기할까? 아냐…….’

질드레의 가호를 사용하여 파괴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지금은 파고든다!’

파괴하면 당장은 무사하겠지만, 블라디미르는 또다시 냉기를 이용해 공격을 해올 것이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마력 소모만 늘어난다. 피해를 입더라도 깊숙이 파고들 필요가 있었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해야만 했다.

“라이키리!”

다시 한번 라이키리의 가호를 호출했다.

-라이키리의 빛이 당신을 아득한 저편으로 인도합니다. 빛과 함께 한줄기의 섬광이 되어 적을 꿰뚫으세요.

“큭!”

오러 실드로 정면을 보호한 채 빛의 군마를 타고 블라디미르를 향해 빠르게 파고들었다.

공격적인 냉기와 오러 실드가 충돌하면서 마력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입고 있는 코트가 순식간에 얼어붙고 날카로운 얼음 파편이 팔과 다리를 찢었다.

붉은 핏줄기가 솟구치는 순간, 그것마저 바로 얼어버릴 정도로 차가운 냉기를 뚫고 마침내 블라디미르에게 닿았다.

‘생각보다 쉽잖아?’

마법계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SSS급 헌터의 특수 능력을 중상 없이 뚫었다. 현준도 놀랐고 블라디미르는 놀라는 걸 넘어서 경악했다.

“이걸…… 뚫었다고?”

예상하지 못했다는 목소리. 특수 능력으로 발현된 대마법 수준의 냉기 장막을 뚫고 들어올 줄은 몰랐다.

라이키리의 가호는 끝났지만, 거리는 충분히 좁혀졌다. 당장에라도 지옥참마도를 휘두르면 닿을 정도로 가깝다.

놀랍게도 SSS급 헌터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을 만한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일격에 치명상을 입혀야 한다.’

침착하게 마음을 다잡고 지옥참마도를 휘두르려고 한순간이었다. 블라디미르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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