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만 전생이 날 도와줘-156화 (156/217)

# 156

46장 당근과 채찍(2)

이왕이면 넓은 공간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현준은 길드 사무소 단지 내에 위치한 비행장으로 향했다.

비행장은 넓어서 소환 마법을 시전하기에 적합한 공간이었다.

명령으로 경비 병력도 임시로 철수시키고 친위대가 잠시 경계를 대신했다. 넓은 비행장 중앙에 현준이 섰다.

10개의 검은 마정석을 바닥에 떨구는 것과 동시에 마력을 끌어올려 가호를 호출했다.

-아콘이 위대한 명령으로 차원 관문을 개방합니다. 무한의 군단을 호출합니다.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군단, 어둠하늘 비밀 경호대의 일부가 영구 소환에 응합니다.

목소리가 들리는 것과 동시에 사용된 검은 마정석들이 빛을 잃거나 깨졌다. 소환 마법진으로 막대한 마력이 집중되었다.

마력이 충분히 모였다 싶은 마음에 손을 들어 올리자 소환 마법진이 열리면서 차원 관문이 생성되었다.

“어둠하늘 비밀 경호대가 맹약에 따라, 소환에 응합니다.”

차원 관문 너머로 보이는 깊은 어둠 속에서 검은 가죽 갑옷을 입은 이들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들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는데, 유일하게 노출된 눈동자는 피처럼 붉었다.

“비밀 경호대는 내 앞에 정렬하라.”

“명령에 따릅니다.”

지시를 내리자 비밀 경호원들이 한목소리로 대답하고는 현준의 앞에 조용히 몰려와 대열을 갖췄다.

정렬 명령을 내린 이유는 다름 아닌 그들의 기강 상태를 점검하고 초원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검은 마정석 10개로 영구 소환한 비밀 경호대의 숫자는 100여 명 정도.’

S급에서도 하위로 보이는 실력자가 1명. 아마도 분견대를 이끄는 지휘관인 것 같았다. 그리고 B급 수준이 30여 명에 A급 수준이 70여 명이었다.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실망스러운 수준은 아니었다. 이 정도 숫자면 알파팀의 위협으로부터 국회의원들을 보호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비밀 경호대의 운용 계획은 부길드장에게 맡겨야겠어.’

경호 문제라면 태민이나 종서가 전문가였다. 현준은 두 사람 중에서도 더 믿음직한 태민에게 운용 계획을 세워달라고 할 생각이었다. 실질적인 지휘는 현준, 스스로가 할 계획이다.

“지휘관 앞으로.”

외견으로는 누가 지휘관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비슷해 보였다. 현준이 지휘관 확인을 위해 지시를 내리자 대열에서 한 명이 이탈하여 앞으로 다가왔다.

자세히 보니, 그의 가슴에는 지휘관 계급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이는 흉장이 달려 있었다.

“네가 지휘관이냐?”

“예. 어둠하늘 비밀 경호대 소속 분견대장 히든입니다. 새로운 군단 소환사님께 예를 갖추겠습니다.”

말을 마치며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히든.

“나도 반갑다. 소환은 계속 유지되는 게 맞지?”

군단 소환사, 아콘이 남긴 지식에서는 한 번 영구 소환을 할 때 많은 마력이 소모되지만 일단 소환에 성공하면 유지에 필요한 마력은 필요 없으며 소환 역시 영구적으로 지속된다고 했지만 혹시나 싶은 마음에 히든에게 질문을 던졌다.

“예. 소환은 저희가 전멸할 때까지 영구히 유지될 것이며, 군단 소환사님께서 추가로 마력을 소모할 일은 없을 겁니다.”

히든은 현준이 원하는 대답을 그대로 들려주었다.

“좋아.”

현준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그의 시선이 왼편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친위대장 사혈이 대기 중이었다.

“사혈. 어둠하늘 비밀 경호대를 숙소로 안내해주도록.”

“예! 황제 폐하!”

힘찬 목소리로 대답한 사혈은 히든과 비밀 경호원들을 데리고 미리 전달받은 숙소로 안내했다. 태민이 자세한 운용 계획을 짜서 보고할 때까지 그들은 임시로 길드 사무소 단지의 경비 임무에 투입될 것이다.

그날 밤, 현준의 지시를 받은 태민은 바로 운용 계획을 작성하여 보고했고 현준은 은밀하게 이성일 의원과 접촉했다.

“보호를 약속합니다.”

“확실한 겁니까? 당신을 믿어도 되는 겁니까?”

“믿지 못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저와 대적하다가 알파팀과 함께 파멸할 생각이면 그렇게 하세요.”

현준이 날 선 목소리로 말했다. 그제야 성일은 사색이 돼서 고개를 저었다.

그동안 현준의 행보를 보면 알파팀과 대적하더라도 그가 결코 물러나지 않을 거란 사실을 성일도 알 수 있었다.

이런 싸움에서 어중간한 태도를 취하다가는 가장 먼저 죽는다는 것 또한 성일은 알고 있었다.

‘러시아보다는 강현준의 편에 서는 것이 살 가능성이 크다.’

짧지 않은 정치 생활로 단련한 날카로운 육감이 강현준과 적대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미, 믿겠습니다.”

“좋습니다.”

“밖에 감시가 있는 것 같은데…… 언제쯤 정리가 가능할까요?”

“감시? 알파팀의 헌터들을 말하는 겁니까?”

현준의 물음에 성일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성일 씨가 믿는다고 대답한 순간, 제 부하들이 처리했습니다.”

“저, 정말입니까?”

“전 이런 걸로 장난치지 않습니다.”

성일도 휘하에 A급 헌터 출신 경호원을 부리고 있었다. 그는 분명 밖에 있는 감시들이 A급 정도의 실력자라고 했었다.

그런 이들을 3초 만에 처리했다고? 성일은 다시 한번 현준의 능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쯤 다른 분들을 감시하고 있는 헌터들도 제 부하들이 처리했을 겁니다.”

“정말입니까?”

한숨이 튀어나왔다. 오늘 ‘정말입니까?’라는 문장만 여러 번 들은 것 같은 느낌이다.

말을 이어가려는 순간, 알림음이 울렸다. 현준은 스마트폰을 꺼내 화면을 확인하고는 차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지금 막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다른 의원들을 감시하고 있는 러시아 놈들을 모두 제거했다는군요. 경호 인력의 배치도 방금 끝났습니다. 참 쉽죠?”

“그, 그렇군요. 이제 저는 강현준 씨를 어떻게 도와드려야 좋을지…….”

“앞으로 많은 일이 있을 겁니다.”

블라디미르, 그리고 알파팀과 정면충돌할 가능성이 컸다.

“때가 되면 뒷정리를 부탁하겠습니다.”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습니다.”

현준은 길게 설명하지 않았지만 성일은 한 번에 알아들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성일이 대답한 순간.

-정치인들의 포섭에 성공했습니다. 야망 있는 권력가가 당신의 거침 없는 행보에 만족해합니다.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망 있는 권력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까지 전생들이 준 능력 중에서 쓸모없는 건 없었으니까.

“믿겠습니다.”

현준은 말을 마치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가 다시 나타난 곳은 성일의 저택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어두운 뒷골목이었다.

“부길드장.”

“부르셨습니까?”

그림자에 몸을 숨기고 있던 태민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부터 우리가 파악한 모든 알파팀 거점에 대한 공격을 시작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대한민국에 뿌리내린 모든 어점을 파악하지는 못한 상황이지만, 공격이 시작되면 반응이 있을 겁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역추적이 가능할 겁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UN 특수 기관이 예전에 정찰한 기록을 열람한다고 해도 역추적해서 국내의 알파팀 거점을 모두 알아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태민은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공격을 시작하세요.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한국 내에는 알파팀 거점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곳의 의정부에 위치한 거점이었다.

브라보 포인트라고 불리는 이 거점은 무려 S급 헌터가 책임자로 있고 다수의 A급 헌터가 전투원으로, 그리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비밀리에 정보원들이 왕래하고는 했다.

대한민국과 동아시아의 정보 수집을 위해 만들어진 이 거점은 대립관계이기는 하지만 전쟁 중인 적국에 설치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나름 평화로운 편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강현준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크아아악!”

비명과 함께 S급 헌터의 왼팔이 날아갔다. 피 분수가 솟구쳤고 그는 황급히 뒤로 물러나려고 했지만,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현준이 지옥참마도를 휘둘렀다.

“끄르르륵!”

목을 베었다. S급 헌터는 피 끓는 소리를 내며 힘없이 쓰러졌다. 고통의 지배자, 피어의 가호를 사용해서 정보를 얻어낼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미 정보는 다른 거점에서 충분히 수집했다.

이틀 전부터 알파팀 거점에 대한 동시다발적인 공격이 시작되었는데, 워낙 순식간에 거점들이 무력화되면서 정보 문서의 파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었다.

순식간이라고는 하지만 훈련받은 알파팀의 정보원들이 정보 파기가 늦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겠지만.

데우스의 가호가 있었다. 절대적인 의자가 운명에 간섭하면서 조금 이해가 힘들지도 모르는 일이 발생한 것이었다.

“여기도 이제 끝인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지옥참마도에 깃든 오러를 거두었다.

-마력 반응은 느껴지지 않는다. 깨끗하게 정리했군.

지옥참마도가 말했다. 브라보 포인트에는 다수의 전투원이 있었지만, 강현준이라는 이름의 헌터 앞에서는 비무장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무력했다.

현준은 지옥참마도를 검집에 집어넣으며 브라보 포인트를 벗어났다. 뒤는 집행부에서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

그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귓가로 가져갔다.

“부길드장. 다음 거점의 위치는요?”

-가깝습니다. 정확한 좌표를 메시지로 보내겠습니다.

통화가 끝나기 무섭게 현준은 전송된 좌표를 전달받았다. 태민의 말대로 가까운 곳이었다.

현준은 다음 거점도 무리 없이 전멸시켰다. 저항이 있었지만, 현준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또 좌표를 전달받고, 다시 거점을 공격하는 걸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태민에게서 한국의 알파팀 거점을 모두 전멸시켰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애초에 한국은 전쟁 중인 적국이 아니었기 때문에 거점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슬슬 반응이 오는 것 같습니다.”

이른 아침, 태민이 길드장 집무실에 찾아와 보고했다.

“블라디미르가 움직이고 있습니까?”

“예. 최근 블라디미르의 움직임이 이상하다고 여겼던 것인지 UN 특수 기관에서 그의 동선을 추적하고 있었나 봅니다. 지금 실시간으로 블라디미르의 위치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한국으로 오고 있나요?”

“예. 길드장님. 다수의 알파팀 헌터들을 이끌고 한국을 향해 오고 있습니다.”

태민의 대답에 현준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정치인들을 매수했다고는 하지만 다수의 알파팀 헌터들을 이끌고 한국 땅을 밟을 생각이라는 말인가?

‘전쟁이라도 하자는 건가?’

설마 이 정도로 막 나올 줄은 몰랐다. 러시아라는 국가를 대표하며, 소속되어 있기 때문에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지금 블라디미르는 폭주하고 있었다.

“길드장님. 방금 블라디미르와 알파팀 헌터들이 탑승한 군용 수송기가 대한민국 영공에 진입했다고 합니다.”

“한국군은 그걸 허락해 준 겁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대신 미국에 지원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아주 바보는 아닌 모양. 하지만 최선의 방법은 분명 아니다. 짧은 한숨과 함께 현준은 옆에 놓아둔 지옥참마도를 챙겼다.

“길드장님?”

“블라디미르를 마중하러 갑시다.”

현준의 눈동자에서 차가운 살기가 흘러나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