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만 전생이 날 도와줘-152화 (152/217)

# 152

45장 서리 칼날이 피에 물들다(1)

연합 토벌대의 남미 대륙 철수는 끝을 보이고 있었다. 이든과 미국의 최정예 헌터 집단인 ‘성좌대’에 소속된 이들 소수가 남아서 최종 점검을 하고 있었다.

“이든 님. 철수 준비가 끝났습니다. 성좌대 소속 헌터, 14명도 임시 비행장에 집결했습니다. 이제 수송기가 착륙할 때까지만 기다리면 됩니다.”

성좌대의 일원이자 이든의 부관을 맡고 있는 A급 회복계 헌터, 마이클이 보고했다. 서류를 파기하고 있던 이든은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제 콜롬비아도 끝이군요.”

“예. 당분간 올 일은 없을 겁니다.”

“더 많은 사람을 구하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어서 아쉽네요.”

문서 파쇄를 끝낸 이든은 그 조각마저 불태우고서 마이클과 함께 집무실을 나섰다. 임시 비행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상공에서 수송기가 천천히 고도를 낮추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 본국으로 돌아가는구나.’

콜롬비아에 머물렀던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마수들의 계속된 공격으로 인해 좋은 기억은 없었다.

이든과 마이클, 그리고 성좌대의 헌터들은 들뜬 마음을 진정시키며 수송기가 착륙하기를 기다렸다.

그때였다.

“공격이다!”

“엎드려!”

성좌대 헌터들이 일제히 무기를 뽑아 들기 무섭게 어디선가 연이어 날아온 미사일이 착륙 중이던 수송기에 꽂혔다.

콰앙!

굉음과 함께 수송기가 공중에서 폭발했다. 불꽃을 머금은 잔해가 사방에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끄르르륵!”

피 끓는 소리와 함께 성좌대 소속 A급 헌터의 몸이 갈가리 찢겨나갔다. 그가 서 있던 자리에는 핏물을 머금은 냉기만이 소리 없이 부유하고 있었다.

“브, 블라디미…….”

이든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잔혹한 냉기가 그와 성좌대 헌터들을 덮친 것이다.

서늘한 냉기가 가라앉았을 때 그곳에는 차갑게 얼어붙은 이들만 남아 있었고 유일하게 이든 만이 의식을 유지하고 있었다.

냉기가 덮쳐오는 순간 마력을 운용하여 오러 아머를 형성한 덕분에 간신히 목숨만은 건질 수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오러 아머를 전개했음에도 불구하고 몸의 절반이 얼어붙어 있어서 전투 능력이 크게 떨어졌다.

“크으윽…….”

얼음을 부수기 위해 마력을 운용했지만, 반응이 없었다. 마치 강철처럼 단단했다.

전력을 다했지만, 소용없었다. 이든의 얼굴에 절망이 깃들었다.

“SS급 대마법의 기습에도 목숨이 붙어 있다니…… SS급 하위치고는 나쁘지 않은 실력이군.”

어둠 속에서 블라디미르가 냉기를 풍기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눈동자에서는 차갑게 식은 분노가 폭풍처럼 휘몰아치고 있었다.

“블라디미르…… 당신…….”

이든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블라디미르에게서 낯선 마력이 느껴졌다. 마법 반격이라는 특수 능력을 가지고 있는 그는 마력 감지 실력이 매우 뛰어났다.

‘이건 세뇌 술식이다.’

현재 전 세계에 공식적으로 4명밖에 없는 SSS급 헌터 중 1명인 블라디미르가 세뇌당했다고? 도대체 누가 이런 미친 짓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믿을 수 없다. SSS급 헌터가 세뇌를 당하다니.’

이든은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블라디미르는 얼음의 창을 들고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당신은 세뇌당하고 있습니다!’ 같은 뻔한 대사를 내뱉을 여유는 없었다. 말 한마디로 완전히 세뇌당한 대상을 멀쩡하게 만들 수는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배후에는 누가 있는 거지……?’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블라디미르가 내찌른 얼음의 창이 이든의 심장을 꿰뚫었으니까.

고통이 느껴지기도 전에 그의 전신이 의식과 함께 얼어붙었다.

* * *

“오, 온다!”

“빨라!”

라이키리의 가호를 받은 현준이 한 줄기의 빛이 되었다. 알파팀 헌터들은 현준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순식간에 선두가 무력화되었고 그들이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현준이 진형 깊숙이 파고든 뒤였다.

“마법 저항이 있다! 고위 등급 이상의 마법으로 공격해!”

“고통의 주박!”

“라이트닝 스피어!”

“익스플로전!”

사방에서 마법이 쏟아졌다.

“제가 엄호하겠습니다.”

현준이 질드레의 가호를 사용하려는 순간, 어느새 옆에 모습을 드러낸 레비앙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며 두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익숙한 마력 파동이 느껴졌다.

“마, 마법 파괴?”

“마법 파괴에는 마력이 많이 소모된다! 계속 퍼부어!”

알파팀 헌터들이 움직였다. 전투계들이 적당히 거리를 좁혀오면서 현준과 레비앙을 압박했고 뒤에 있는 마법계들은 2차 공격을 위해 캐스팅을 시작했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친절한 설명과 함께 레비앙이 손을 흔들자 포격 술식이 작동했다. 레비앙의 머리 위로 생성된 수십 개의 마법진이 마력 광선을 쏟아냈다.

위력적인 마력 광선의 포격 세례에 알파팀 헌터들이 잠시 주춤하는 동안 현준은 그들의 현란한 움직임으로 지옥참마도를 휘둘러 그들의 수를 줄여나갔다.

그동안 레비앙은 재정비를 위해 고속 비행 술식을 사용하여 혼란스러운 중심에서 벗어났다.

“저 새끼 혼자 남았다!”

“공격해!”

현준이 홀로 남기 무섭게 알파팀 헌터들이 폭풍과도 같은 공세를 취하려 했지만, 아쉽게도 레비앙에게는 아직 마력이 남아 있었다.

“너무 날뛰지 마시길.”

그가 손을 들어 올리며 말을 끝맺자 구속 술식이 발동되었다.

“커헉!”

“모, 몸이!”

현준을 포위하고 전후좌우에서 달려들던 알파팀 헌터 21명의 몸이 일제히 경직되었다.

“남은 건 주군께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5초 안에만 처리하시길.”

5초. 분명 긴 시간은 아니다. 하지만 한창 전투 중에 속박되어 버린 알파팀 헌터들에게는 영원에 가까울 정도로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현준은 그들을 향해 차가운 시선을 흩뿌리며 지옥참마도를 휘둘러 검술을 펼쳤다.

“폭풍검.”

오러 블레이드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방패를 든 전투계 헌터들이 재빨리 앞으로 나섰지만.

“커헉?”

“오, 오러 실드가?”

폭풍검의 오러 블레이드는 오러 실드와 방패를 쪼개고 깊숙이 파고들어 알파팀 헌터들을 조각냈다.

일순간에 20명이 넘는 헌터들이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한차례의 짧은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곳에 멀쩡하게 서 있는 이는 강현준뿐이었다.

“괴, 괴물…….”

누군가 공포에 질린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들은 헌터 중에서도 선별되어 훈련을 받은 최정예들이었다.

그런데, 이 정도로 밀린다고? 애초에 페트렌코가 현준에게 목숨을 잃었다는 걸 들었을 때부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모두 생각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동행한 SS급 최하위 헌터조차 현준과 짧은 교전 끝에 목숨을 잃었다. 이제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이제 끝났어. 그냥 포기해라.”

현준의 말에 알파팀 헌터들은 거의 동시에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힘없이 주변을 살폈다.

10명 정도를 제외하고 모두가 쓰러져 있었다. 숨이 끊어진 이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나마 살아있는 자들도 심각한 중상이었다.

현준과 레비앙이 날뛰고 별장 일행들과 SS급에 해당하는 플레임까지 가세하면서 순식간에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은 것이다.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싸움이었다.’

알파팀 헌터 한 명이 허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제야 그들 또한 깨달았다. 이건 현준을 죽이기 위한 목적의 공격 동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그저 경고장에 불과했던 거야.’

의식이 차갑게 식었다. 그는 잇몸에 붙어 있는 독 캡슐을 씹었다. 다른 알파팀 헌터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극독이 몸에 빠르게 퍼졌다. 알파팀 헌터들이 붉은 피를 입 밖으로 토해내며 쓰러졌다.

“이놈들아! 비겁하게 지옥으로 도망가는 것이냐!”

한석이 달려와 피거품을 물고 있는 알파팀 헌터의 멱살을 잡고 거칠게 흔들었지만 이미 숨이 끊어진 뒤였다.

“제기랄!”

한석은 분한 마음에 욕설을 내뱉었다. 그에 비해 현준은 차분했다.

‘이런 식으로 경고를 보낼 줄은 몰랐는데…….’

경고인 동시에 일종의 무력 과시였다. SS급 헌터 한 명이 포함된 100명의 고위 헌터 전력을 버려도 상관없을 정도로 알파팀은 강대하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던 모양.

덕분에 계획했던 휴가가 엉망이 되었다. 차가운 분노가 내면을 침식했다. 현준의 눈동자에서는 싸늘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그래, 어디 갈 데까지 가보자.”

그는 차갑게 중얼거린 뒤, 소진과 진아 등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소진과 진아, 두 사람은 S급 헌터였다.

불안해 보였지만 겁을 먹은 것 같지는 않았다.

“누나, 괜찮아요?”

“응. 나는 괜찮아.”

전투 중에 가벼운 부상을 입은 소진이 고개를 들고서 희미한 미소를 보이며 대답했다.

기다리던 휴가를 나왔다가 공격을 받았으니 놀라고 힘들었겠지만, 그녀는 현준이 속상해하지 않게 하려고 일부러 내색하지 않았다.

그런 소진의 모습은 러시아 알파팀, 그리고 블라디미르에 대한 현준의 분노를 더 키웠다.

화가 많이 났지만, 이성은 놀랄 정도로 차분했다.

“별장 안에 들어가서 쉬고 있어요. 특수 경찰을 부를게요.”

소진과 진아가 S급 헌터라고는 하지만 시체를 많이 봐서 좋을 건 없었다. 현준의 제안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

“플레임. 별장 주변의 경계를 부탁한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형님.”

두 사람이 S급 헌터라고는 하지만 러시아 알파팀이 본격적으로 움직일 것을 경고한 상황에서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그는 플레임에게 별장의 경계를 맡기고는 한석과 규환에게 걸어갔다.

“집행부장. 지금 당장 특수 경찰국에 연락해서 뒤처리할 병력 보내라고 해요.”

“예, 알겠습니다. 길드장님.”

“내 이름을 말하면 그쪽에서도 서두를 겁니다.”

“즉시 연락하겠습니다.”

규환은 스마트폰을 꺼내 특수 경찰국에 연락을 취했고 현준은 마지막으로 레비앙에게 다가갔다.

“지원에 감사한다.”

SS급 최하위 헌터가 포함된 러시아 알파팀 헌터, 100여 명의 대규모 공격이었다. 경고 목적이라고는 하지만 일행들이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공격뿐만 아니라 지원과 보조 능력이 뛰어난 레비앙의 도움이 없었다면 친위대를 소환하는 상황까지 갔을지도 몰랐다.

친위대를 소환한다면 길드 사무소 단지의 수비 병력이 크게 줄어들기 때문에 2차 공격의 위협을 받았을 수도 있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레비앙이 말했다.

“형님. 플레임이 지키고 있다고는 하지만, 두 분은 공중항모를 타고 먼저 길드 사무소 단지로 보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한석이 다가와 말했다. 그의 의견도 일리가 있었지만, 현준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공중항모에는 승무원이 충분하지 않아서 제가 없는 상태로 이동 중에 공격을 받으면 답이 없습니다.”

곁에 두는 게 마음이 편했다.

“특수 경찰국에서 지원 병력을 보내준다고 합니다. 길드에도 연락을 해봤는데, 길드 사무소 단지는 무사하다고 합니다.”

“다행이네요. 혹시 모르니까, 경계를 강화하라고 전해요.”

“예, 알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헬기 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특수 경찰국 소속의 헬기 편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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