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만 전생이 날 도와줘-151화 (151/217)

# 151

44장 차원 표류자(3)

갈라진 균열, 그 칠흑과도 같은 암흑 속에서 움직임이 보였다.

“마력 반응은?”

차원 마력이 너무나 강력해서 균열 안에 있는 ‘뭔가’의 마력만 골라서 감지하는 게 힘들었다. 그래서 현준은 지옥참마도에게 탐색 부탁했지만.

-불가능하다! 주인! 차원 마력 때문에 저 안에 있는 음험한 녀석의 마력이 묻혔어!

현준보다 마력 감지 능력이 뛰어난 지옥참마도조차 포기할 정도였다. 긴장 속에서 시간이 흘러간다.

차원 균열은 여전히 열려 있는 상태였고 그 너머로 보이는 검은 형체는 조금씩 움직임을 보일 뿐 곧바로 넘어오지 않았다.

하나 이상한 점이 있다면 이런 상황에서도 하사신의 가호는 위험을 경고하지 않았다.

대체 어째서일까? 현준, 자신이 이미 위험을 인식했기 때문? 아니면 눈앞의 대상이 위험하지 않다는 것일까? 해답을 알 수 없으니 답답하기만 했다.

“살고 싶으면 나오는 게 좋을 거다.”

“안심하세요. 당신을 적대할 생각은 없습니다.”

어둠을 뚫고 균열 밖으로 천천히 걸어 나온 이는 놀랍게도 마수가 아니라 인간이었다.

인베이더들처럼 유사 인간도 아니었다. 완전한 인간의 모습이었기 때문에 현준도 조금 놀랐지만, 긴장을 내려 놓지는 않았다.

인베이더 중에서도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준은 오러 블레이드를 생성하며 입을 열었다.

“뭐하는 놈이냐?”

“저는 차원 표류자입니다.”

푸른 로브를 입은 남자, 그가 대답했다.

“차원 표류자? 그게 뭐지?”

처음 듣는 단어.

“차원 이동 중에 공격을 받고 길을 잃은 사람을 말합니다.”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했지만 그건 당장 급한 게 아니니까 넘어가고.

“조금 전에 나를 적대할 생각이 없다고 했는데, 무슨 의미지?”

“말 그대로입니다. 당신에게서, 제게는 너무나 그리운 마력이 느껴집니다.”

“그리운 마력?”

“자세한 설명은 천천히 하도록 하지요. 경계를 풀어달라는 말은 하지 않겠지만 최소한 검이라도 치워주겠습니까? 이런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대화가 힘들 것 같군요.”

남자의 말에 현준은 오러를 거두고 지옥참마도를 검집에 집어 넣었지만 경계를 풀지는 않았다.

눈앞의 남자가 수상한 행동을 보인다면 즉시 검을 뽑을 준비가 되어 있었고 자신도 있었다.

그것은 블라디미르의 과신과는 다른 분명한 자신감이었다.

“이제야 제대로 인사를 나눌 준비가 되었군요. 반갑습니다. 저는 레비앙입니다.”

“강현준이다.”

낯선 이가 자신을 소개했다. 현준도 잠깐 고민하더니 이름을 밝혔다.

이미 대한민국에서는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고 전 세계적으로도 관심 있는 이들의 충분한 시선이 집중되고 있으니, 이름 정도는 말해주어도 상관 없을 것 같았다.

“이 차원 균열에서 떨어져서 대화를 나눠도 되겠습니까? 다시 차원의 폭풍 속으로 빠져들기는 싫어서 말이죠.”

레비앙의 말에 현준은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레비앙은 크게 안도한 표정으로 차원 균열과 거리를 벌렸다.

그가 물러나기 무섭게 차원 균열은 점차 크기가 줄어들더니 이내 완전히 사라졌다.

“이제 자세한 설명을 해주실까?”

날카로운 목소리로 묻자 레비앙은 검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입을 열었다.

“조금 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적당히 줄여.”

레이드 상황이 아니라는 걸 확인했지만 러시아와 긴장 관계가 형성된 지금, 일행들과 오래 떨어져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정말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저는 마도학자고 당신에게서는 제 스승님의 마력이 느껴집니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해도 될 것 같다.”

설명을 너무 생략했다. 마도학자라는 단어에서 질드레가 생각나기는 했지만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사정을 더 들어봐야 할 것 같았다.

만약 레비앙이 질드레의 제자가 맞다면 침략사령부의 금제가 없는 정보원을 얻게 되는 셈이었다.

“평소와 다름없었던 나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차원 균열의 발생이 급격히 늘어나더니 결국에는 아주 거대한 관문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들?”

“예. 그들은 차원을 돌아다니는 침략자들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미 옛날에 멸망의 씨앗은 뿌려져 있었습니다.”

아직은 이르다. 설명이 더 필요했다.

“그들의 이름은 침략사령부였습니다. 스승님은 침략사령부에게 맞서기 위해 마도연합군을 일으켰습니다.”

마도연합군에 대한 이야기는 질드레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레비앙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퍼즐이 맞춰졌다.

“처음에는 승전이 이어졌습니다. 우리는 기뻐했고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레비앙이 잠시 말을 멈췄다. 감정이 격해진 것인지 눈동자가 흔들리고 표정은 일그러졌다.

“착각이었습니다. 선봉대의 뒤에는 더욱 강력한 본대가 있었습니다. 상륙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스승님께서 이끄셨던 마도연합군은 결코 약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침략사령부의 주력을 상대하기에는 부족했습니다.”

다리에 힘이 풀린 것인지 그는 힘없이 주저앉았다. 이윽고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는데, 그 눈동자에서 슬픔이 묻어 나왔다.

그리고 잠시 말이 없었다. 재촉할 수도 있겠지만 현준은 차분한 표정으로 말없이 기다렸다.

침묵은 길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감정을 수습한 레비앙이 다시 입을 열었다.

감정이 정리된 눈동자에서는 강한 의지가 묻어 나왔다.

“마도연합군은 패배했고, 본격적인 침략이 시작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생명이 목숨을 잃었고 살아남은 소수는 세뇌되어 침략사령부의 솔저가 되었습니다. 스승님의 희생으로 저는 간신히 차원 도약을 할 수 있었습니다. 술식이 완전하지 않아서 이렇게 표류하게 되었지만 말이죠.”

또다시 잠깐의 침묵. 이번에는 현준이 침묵을 깨기 위해 먼저 입을 열었다.

“스승의 이름…… 말해줄 수 있겠나?”

“마도연합군을 이끌어 침략사령부에 맞섰던, 내 자랑스러운 스승의 이름은 질드레.”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레비앙은 다시 일어나 현준을 향해 시선을 보냈다.

“그리고 당신에게서 내 그리운 스승의 마력이 느껴집니다.”

설명이 끝났다.

“이제 차례를 넘기겠습니다. 강현준, 당신에게서 제 스승의 마력이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설명을 부탁하겠습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간단하게 말해도 될까? 나는 설명에는 재주가 없거든.”

“상관없습니다. 제 입으로 말하기 부끄럽지만 저는 머리가 좋은 편이거든요.”

레비앙이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고 현준은 고민했다. 레비앙은 질드레의 제자가 맞는 것 같았지만, 전생에 대한 말은 아끼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과는 대화 자체가 불가능한 지옥참마도와는 경우가 달랐다.

5분 동안 생각을 정리했다. 스토리를 적당히 각색해서 설명했고 레비앙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하는 심정이었지만, 이것으로 확실해졌군요. 강현준, 당신은 스승님의 의지를 이어받은 게 분명합니다.”

레비앙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다시 한번 현준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을 탐색했지만, 처음의 결론은 변하지 않았다.

현준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자 레비앙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주군으로 모시겠습니다.”

“잘 부탁한다.”

짧은 고민 끝에 현준은 레비앙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그는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았고 질드레와의 연관성도 증명되었다.

술식까지 사용해서 살폈지만, 수상한 기색은 없었다. 레비앙 또한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 현준이 탐색 술식을 사용할 때 모든 마력을 개방하고 스스로를 드러냈다.

당분간은 적당히 경계를 하는 게 좋겠지만 우선 함께 행동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저는 마도학 술식을 전투 중에 사용할 수 있는 전투 마도학자입니다.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일반적인 술식은 그 구조가 복잡해서 사용할 때 많은 집중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전투 중에 쉽게 사용할 수 없다.

그래서 현준 또한 많은 술식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투에 주로 사용하지 않았다. 만약 레비앙의 말이 사실이라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아. 저 사내에게서 SS급 중견 정도의 마력이 느껴진다. 저쪽 차원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는 일반적인 마도학자가 다룰 수 있는 양의 마력이 아니야.

지옥참마도가 설명을 덧붙였다. 마도학자는 전투보다는 이론에 뛰어난 이들이기 때문에 마력 수련도 최소한으로 하는 게 보통이다.

그래서 전투에 필요한 마력을 많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에, 일행이 근처에 있다고 하셨지요?”

레비앙의 물음에 현준은 차분한 목소리로 별장의 위치를 말해주었다.

“주군. 지금 당장 귀환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주군께서 말씀하신 지점에서 다수의 인원이 은신 상태로 있습니다.”

“뭐라고?”

이제야 별장이 있는 방향에서 일행들의 것이 아닌 마력 기척이 느껴졌다. 현준은 물론이고, 지옥참마도조차 눈앞의 레비앙에게 집중하느라 별장에 접근하는 다수의 마력 기척을 감지하지 못한 것이다.

“레비앙. 따라와라. 네 의지를 시험해보겠다.”

“기쁜 마음으로 함께하겠습니다.”

현준이 먼저 별장이 있는 방향을 향해 땅을 박찼다. 뒤이어 레비앙이 술식을 사용하여 3m 정도 떠오른 상태로 따라붙었다.

별장에 도착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공격이 시작되었다. 은신의 장막을 벗어 던지면서 100명은 우습게 넘기는 숫자의 헌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알파팀인가?’

현재로서는 추정에 불과했지만 최근 블라디미르와의 마찰을 생각해보면 확실했다.

미국 다음으로 많은 수의 고급 헌터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 받는 러시아답게 이번에도 물량공세다.

-주인! SS급은 1명이다! 그것도 최하위 정도다!

마력 탐색을 끝낸 지옥참마도가 말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SS급이 1명이라고?

‘암살 목적이 아닌가?’

복면인들을 주시하며 현준은 눈살을 찌푸렸다.

SS급 최상위의 페트렌코와 알파팀 수백을 도륙한 적이 있는데 지금 겨우 SS급 최하위 1명에 100명 정도를 보냈다고?

만약 배후에 러시아 알파팀의 배후인 블라디미르가 있다면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었다.

‘양동 작전? 그것도 아니면…….’

단순한 경고 목적의 버리는 패일지도 모른다. 현준은 오히려 후자가 더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경고라…… 그렇다면 전쟁을 시작하겠다는 건가?’

만약 경고의 의미가 맞는다면 선전포고라고도 볼 수 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현준은 씨익 웃으며 살기 가득한 시선을 흩뿌렸다.

“러시아 알파팀! 그리고 블라디미르!”

그의 외침이 산속에 울려 퍼졌다. 목소리에 실린 살기에 알파팀 헌터들은 몸을 흠칫 떨었다.

“너희가 전쟁을 원한다면!”

뽑아든 지옥참마도에서 오러 블레이드가 솟구쳤다.

“기꺼이 응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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