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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만 전생이 날 도와줘-146화 (146/217)

# 146

42장 전환점(4)

아이반과 알파팀 헌터 몇 명이 뛰쳐나가기는 했지만, 브리핑은 예정대로 진행되어서 정해진 시간에 끝났다.

브리핑 내용은 별거 없었다. 보고타를 사수했지만 콜롬비아 전체 방어에는 실패했으니, 분발하여 토벌을 진행하자는 내용이었다.

끝나기 30분 전부터 토벌대별로 마수 구역이 할당되었지만, 현준은 독립 토벌권을 보장받은 상태였기 때문에 그런 제약에서 자유로웠다.

“보고타를 사수하면서 확보한 검은 마정석은 총 6개입니다. 계약에 따라, 1개를 위원회에서 매입하고 5개를 강현준 씨에게 양도하겠습니다.”

브리핑이 끝나고 오후 5시가 넘은 시간에 위원회의 요원이 검은 마정석 5개를 가지고 찾아왔다. 위원장 에릭이 현준과 계약한 내용을 이행하기 위해서였다.

“수고 많았습니다.”

현준은 내용물을 확인한 뒤, 수령했다. 특유의 마력이 느껴지는 걸로 보아 검은 마정석이 확실했다.

“그럼 저는 이만…….”

요원은 고개를 숙여 보인 뒤, 레이스 길드가 사용하는 건물을 떠났고 현준은 검은 마정석 5개를 아공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기존에 연구 목적으로 대한민국 정부에게서 받아낸 것들을 포함하면 적지 않은 수를 확보했다.

검은 마정석 하나로 소환한 무한의 군단도 적지 않은 수였다.

‘한 번에 여러 개를 사용하면 어떻게 될까?’

궁금했다. 한번 실험해 보고 싶었다.

‘조만간 기회가 오겠지.’

고개를 저으며 발코니로 나갔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인간 형태에서 날개만 꺼낸 플레임이 천천히 발코니로 착지하고 있었다.

“콜롬비아의 모든 마수 구역을 재정찰했습니다.”

“결과는?”

“선봉지휘부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혈맹의 거점을 찾아냈습니다. 검은 마정석에서 흘러나오는 것과 비슷한 마력이 감지되는 곳이 있어서 정밀 정찰을 해봤더니, 교묘하게 감춰진 결계 술식이 보이더군요.”

플레임이 말했다. 혈맹의 거점이라면 검은 마정석이 저장되어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굳이 선봉지휘부가 아니라도 공격할 가치는 충분했다.

“간이 은신 술식을 사용했지만, 이상한 낌새는 눈치챘을 겁니다. 최대한 빨리 공격해야 합니다.”

간이 은신는 기척을 지우고 주변에 인식 장애를 거는 기술이었다. 비교적 간단한 술식을 사용하는 만큼 상대방이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거나 마력 탐색을 사용하면 금방 들켜버린다.

선봉지휘부일지도 모르는 혈맹의 거점에서 마력을 감지하는 레이더를 사용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이상한 낌새 정도가 아니라 플레임의 존재를 이미 감지하고 방어 태세에 돌입했을 확률이 높았다.

“플레임. 부길드장한테 가서 공중항모와 길드원들을 대기시키라고 해. 지금부터 ‘토벌’하러 간다.”

“예, 형님.”

플레임이 날개를 펼치며 날아올랐다. 현준은 평소 습관처럼 장비를 점검했다.

이번에 페트렌코를 죽이고 손에 넣은 얼음 흉갑에 자꾸만 시선이 갔지만, 기능을 모르는 장비를 무턱대고 착용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건 ‘연출’을 위해서라도 남겨놔야지.”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번졌다.

-무슨 연출을 말하는 거지?

“넌 몰라도 돼.”

지옥참마도와 가벼운 잡담을 마쳤을 때는 장비 점검도 끝이 났다. 그는 곧장 비행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공중항모는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비행장에 도착하자 태민이 다가와 보고했다.

“집행부장은 어디에 있죠?”

“최종 점검 중입니다. 5분이 걸리지 않을 거라고 했으니까, 먼저 함교에 오르시죠.”

태민의 말에 현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함교로 올라갔다. 함교에서는 레이스 길드 집행부 소속의 마법계 헌터 몇 명이 공중항모의 술식을 조정하고 있었다.

현준은 규환에게 플레임이 적어준 좌표를 보여주었다.

“지정 좌표로 전속 항행하겠습니다.”

좌표를 확인한 규환이 각인된 항행 술식에 마력을 불어 넣었다. 천천히 보고타 상공으로 이륙한 공중항모는 지정된 좌표가 있는 남쪽을 향해 항행을 시작했다.

태민은 항행이 시작된 후에서야 함교로 합류했다.

예전에 혼자서 공중항모를 통제했을 때는 소모되는 마력도 많았고 머리가 터질 정도로 술식 제어가 복잡했지만, 지금은 보조해주는 인원이 많아서 훨씬 수월했다.

전속력을 다해 비행하니까 좌표 지점까지 2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규환은 공중항모의 고도를 낮췄지만, 레이더에 감지되는 건 마수들의 마력 반응뿐이었다.

육안으로도 폐허가 된 도시와 무너진 건물 잔해들밖에 보이지 않았다.

“술식 파괴를 진행하겠습니다.”

현준이 말했다. 공중항모에도 술식 파괴 기능이 있다. 다만, 캐스팅 시간이 길고 마력 소모도 커서 전투 중에 사용하기 힘들었다.

“마력 소모는 제가 감당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길드장님. 술식 파괴를 사용하겠습니다.”

공중항모의 하단에서 마력 파장을 발사했다. 이윽고 지상의 결계와 은신 술식이 파괴되면서 장막 너머로 모습을 감추고 있던 마력 기척이 고개를 들었다.

“다수의 마력 반응을 포착했습니다.”

“마수와는 다릅니다.”

“다수의 비행물체가 이륙해서 접근 중입니다.”

“적의 대공 방어가 기동 중.”

혈맹의 거점이 저항을 시작했다. 상식적이지 않은 외관을 한 기묘한 칠흑의 전투기 10여 기가 하늘로 솟구쳤고 지상에 설치된 대공포들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공격 드론 편대를 사출하세요.”

현준이 지시를 내렸다. 공중항모에는 다수의 공격 드론이 탑재되어 있었는데, 모두 침략사령부의 기술로 만들어졌던 것들이지만 질드레의 가호로 해가 될 만한 술식은 모두 파괴된 상태였다.

“공격 드론 편대가 밀리고 있습니다.”

혈맹의 전투기들은 적은 수였지만 숙련된 기동으로 공중항모의 공격 드론 편대를 유린하고 있었다.

“플레임!”

“예, 형님.”

“가서 다 쓸어버려.”

“알겠습니다.”

현준은 플레임을 내보냈다. 일반적인 전투기 크기의 흑염룡이 날렵하게 침투하여 전투에 합류했다.

그가 사방에 흑염을 흩뿌리자 전황이 조금 안정되었다.

“모든 화력을 지상에 집중하세요. 어차피 생존자는 없을 테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생존자가 있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게슈타인과 구국의 의지가 함께합니다. 구국의 이름하에 잔혹한 수단이 묵인될 것입니다.

-동조율에 따른 현재 해방도는 1단계입니다. 비윤리적인 수단을 사용하더라도 구국의 이름이 함께한다면 주변인들은 당신을 적대하지 않습니다.

가호의 발동과 함께 마법계 헌터들은 현준의 생각에 이의를 제기할 생각을 지워버리고는 즉각 행동에 나섰다.

술식이 조정되고 공중항모의 모든 포문이 열렸다.

“포격 개시!”

규환이 힘찬 목소리로 외쳤다. 공중항모의 모든 포문이 지상을 향해 마력 광선을 쏟아냈다.

폭음과 함께 대공 포대가 일제히 전멸하고 지상은 쑥대밭이 되었다.

“착륙정 준비하세요. 지금 내려갑니다.”

“집행부가 대기 중입니다.”

“괜찮아요. 여차하면 친위대를 소환해도 되고, 무한의 군단도 있습니다. 집행부는 공중항모 방어에 주력해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격납고에 도착했을 때는 착륙정이 준비되어 있었다. 착륙정이 사출될 때까지 공중항모는 마력 광선에 의한 폭격을 계속했다. 이윽고 착륙정이 고도를 낮추자 현준이 밖으로 뛰어내렸다.

“방어 마법인가?”

폭격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멀쩡한 건물이 몇 개 있었다. 지상에 내려와서 자세히 살펴보니 방어 마법에 의해 보호되고 있었다.

중세 시대의 요새가 떠오르는 외형이었는데, 처음부터 도시에 있었던 건물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도시에 폐허가 될 동안 멀쩡하게 버티고 있을 리가 없었다.

“저기가 선봉지휘부인가?”

현준의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

-마력 반응 다수. 온다.

“알고 있어.”

지옥참마도를 뽑아 들었다. 그 순간, 사방에서 검은 제복을 입은 수십의 인영이 은신 장막을 뚫고 달려들었다.

“쳐라!”

“적격자를 죽여라!”

시선을 흩뿌리며 지옥참마도를 사방으로 휘둘렀다. 무아지경으로 생각 없이 휘두르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리퍼의 가호로 파악한 취약점을 정확하게 노리는 날카로운 검술이었다.

“커, 커헉!”

“으아아악!”

“이, 이럴 수가…….”

찰나의 순간이었다. 지옥참마도의 칼날이 반짝일 때마다 솔저들이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마수 중에서 선택받은 이들로 모두 A급 이상의 실력자들이었지만 현준의 상대가 되지는 못했다.

허무할 정도로 무력하게 쓰러지는 솔저들의 모습에 오크 종족 출신의 솔저 지휘관 하칼은 뼈로 만든 투구를 벗어 던지며 스태프를 높이 들어 올렸다.

“천둥 일격!”

시동어를 내뱉는 것과 동시에 스태프에 마력이 집중되려는 순간이었다.

“컥?”

어디선가 날아온 단검이 그의 뒷목에 꽂혔다. 쓰러지는 그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닿은 곳에서 다른 솔저들을 모두 쓰러뜨린 현준이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회수.”

왼손을 들어 올리며 말하자 도살자 단검이 손아귀로 돌아왔다. 현준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훑었다.

공중항모의 폭격으로 인해 지상 병력 대부분이 목숨을 잃은 것인지 느껴지는 마력은 극히 적었다.

“SS급 중견이 하나…… 인베이더인가?”

멀지 않은 곳에서 제법 큰 마력 반응이 하나. 지옥참마도의 도움이 없어도 SS급 중견 수준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한 마력 반응이었다.

굳이 숨길 생각이 없는 듯했다. 이 정도로 선명한 마력 반응이라는 건 어쩌면 대놓고 드러낼 생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와라. 인베이더.”

차가운 목소리로 내뱉자 50m 정도 앞의 공간이 갈라지면서 2개의 거대한 대검을 든 트롤이 모습을 드러냈다.

“생각보다 빨리 왔군, 적격자.”

“인베이더냐?”

현준의 물음에 트롤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침략사령부의 10급 인베이더, 카르센이라고 한다. 네놈의 전력은 예상외이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살아나갈 생각은 버리는 게 좋을 거다.”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목소리에서 냉기가 뚝뚝 떨어졌다. 들어 올린 지옥참마도에서는 선명한 오러 블레이드가 솟구쳤다.

“간다.”

-라이키리의 빛이 당신을 아득한 저편으로 인도합니다. 빛과 함께 한줄기의 섬광이 되어 적을 꿰뚫으세요.

빛이 되었다.

“크, 크윽?”

간발의 차였다. 카르센은 간신히 옆으로 몸을 날려 광속의 랜스 차지를 피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그 자세로 내 연격을 어떻게 막을 생각이지?”

“제, 제기랄……!”

카르센은 욕설을 내뱉으며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지옥참마도가 그의 심장을 노렸다.

카르센이 대검을 교차하여 방어를 시도했지만 듀렌달의 가호로 강화된 오러 블레이드는 카르센의 오러를 처참하게 박살 내고 흉부에 꽂혔다.

“미안하지만 너는 너무 늦게 왔다. 인베이더.”

“크큭…… 예상보다 훨씬 강해졌군…… 하지만 이게 끝일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이미 선봉지휘부는 목적을 달성했…….”

그 순간, 카르센의 머리통이 터졌다.

“금제인가?”

옷에 튄 핏자국을 보며 현준은 눈살을 찌푸렸다. 카르센이 남긴 말 때문에 찝찝한 기분을 버릴 수가 없었다.

‘선봉지휘부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다른 인베이더들이 차원 관문을 넘었다는 말인가?’

생각이 많아졌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마음에 걸리면 선봉지휘부를 조사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새로운 정보를 입수하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게 좋을 것 같다.”

현준의 표정을 읽은 지옥참마도가 제안했다. 현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선봉지휘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30분 정도 조사했지만, 소득은 없었다. 자료는 모두 소각되었다.

그렇게 아쉬운 마음으로 1차 조사를 끝내려는 순간이었다.

-전생과 관련된 뭔가가 근처에 있습니다.

목소리와 함께 어떤 마력이 느껴졌다. 홀린 사람처럼 그곳으로 이끌렸다.

검게 그을린 보관함을 정신없이 뒤적이다 보니 뭔가 빛나는 석판이 보였다. 석판이 빛을 발산하는 게 아니었다. 그저 현준의 눈에 그렇게 보였다.

석판에 적힌 글귀를, 통역 술식의 도움 없이도 읽을 수 있었다. 너무나도 익숙한 글자였기 때문이었다.

“최후의 검성, 시든밀러…….”

소리 내어 읽은 순간, 석판에서 빛이 터져 나왔다.

-전생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해당 전생과의 동조율이 올라갑니다.

-시든밀러와의 동조율이 1차 해방의 조건을 충족했습니다. 최후의 검성이 당신에게 고유 검술을 전수합니다. 잊혀진 차원의 최고 검술을 계승하면서 검술에 대한 이해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처음 보는 검술이라고 해도 3번 이상 검을 교환하면 초식의 일부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목소리가 설명을 끝냈을 때 든 생각은 하나였다.

‘이걸로 나는 더 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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