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8
41장 이제 SS급은 내 상대가 아니야(1)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의 중심에 발생한 27개의 레이드 게이트로 인해 도시의 절반 이상이 불타고 토벌을 위해 초반에 투입된 병력도 대부분 목숨을 잃었다.
미국과 유럽에서 보낸 지원 병력이 도착했지만,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들은 전력을 다했지만, 고작 7개의 게이트를 파괴하는 데 그쳤다. 아직 파괴되지 않은 게이트들에서는 계속해서 마수 웨이브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SS급 헌터, 초신성 강현준이 공중항모를 타고 나타난 것이다.
공중항모가 무인 전투기 등을 동원하여 제공권을 장악하는 동안 현준은 혼자서 10개의 게이트를 파괴했다. 그중에 S급의 게이트만 해도 4개였다.
“보고타 전역의 레이드 게이트를 파괴했습니다. 모두 강현준 씨 덕분입니다.”
이든이 말했다. 그의 말대로 현준이 혼자 플레임을 타고 다니면서 10개의 게이트를 파괴하지 않았다면 보고타를 지켜내는 것은 힘들었을 것이다.
“상황은 좀 어떻습니까?”
“각 국가에서 보낸 토벌대가 하나둘씩 도착하고 있습니다. 조금 전에도 러시아 토벌대가 1시간 안에 도착할 거라고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그 수가 적지 않습니다.”
이든은 넌지시 그 규모를 말해주었다.
“생각보다 많이 모였군요.”
“저도 이 정도 규모의 토벌대가 모이는 건 처음 봤지만,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는 아닙니다.”
이든은 영어로 말했지만, 현준은 통역 술식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의사소통에는 문제없었다.
헌터들에게 있어서 레이드는 곧 돈이다. 게다가 지금 남미의 국가들은 붕괴될 위기였으니 정산 우대 같은 조건을 걸어둔 상태였다.
많은 헌터들이 모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지휘권은 누가 잡습니까?”
현준이 물었다. 로마노프의 가호를 유지하려면 최소한 누군가의 밑으로 들어가서는 안 되며, 가증하면 독립된 작전지휘권을 확보하는 게 좋았다.
당연히 강대국인 미국이 콜롬비아 쪽의 토벌 지휘권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확인차 물어본 것이었지만 이든은 그 질문에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뭔가 불길하군.
지옥참마도가 말했다. 현준은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라고 다그치고 싶었지만, 눈앞에 이든이 있었기 때문에 참았다.
지옥참마도가 에고 소드인 것을 모르는 그의 눈에는 혼잣말하는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실은, 러시아에서 SS급 최상위 마법계 헌터인 페트렌코를 보냈다고 합니다. 위원장님께서 브라질로 가신 상황이라, 지휘권을 두고 대립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위원장을 맡고 있는 SSS급 전투계 헌터, 에릭이 콜롬비아에 있었다면 러시아 측에서도 지휘권을 욕심내는 건 꿈도 못 꾸는 일이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는 브라질에 있었다.
러시아에서 에릭이 없는 곳에 SS급 최상위의 헌터를 보낸 이유는 안 봐도 뻔했다.
‘지휘권 장악.’
현준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러시아에서 지휘권을 장악하고 연합 토벌대의 작전을 자기들의 뜻대로 주무를 생각이라면 곤란했다.
위원회의 영향을 적게 받는 러시아 측에서 지휘권을 장악하면 현준이 에릭으로부터 받은 독립적인 토벌 권한이 무시될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 SS급 최상위의 마법계 헌터인 페트렌코가 현준을 부하로 부리려고 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누군가의 지시를 받는 걸 싫어하는 ‘로마노프’ 때문에 남미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다. 남미에서 물러나면 검은 마정석의 보급에도 차질이 생긴다.
‘검은 마정석은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강력한 무한의 군단을 소환하기 위해서는 ‘검은 마정석’에 내재되어 있는 다량의 마력이 필요했다.
러시아의 지휘권 장악 시도가 눈에 뻔히 보이지만 로마노프의 가호 때문에 누군가의 지시를 받을 수는 없는 상황.
‘문제가 되면 무력으로 제압한다.’
현준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 * *
러시아의 군용 수송기 편대가 보고타 상공에 진입했다. 보고타 사수에 성공했다고는 하지만 콜롬비아 지역 절반 이상이 마수들의 땅이 되어버린 상태라, 전투기 편대가 호위로 붙었다.
편대 중앙의 가장 커다란 군용 수송기 안에 SS급 최상위 마법계 헌터, 페트렌코가 알파팀 소속의 헌터들과 함께 탑승 중이었다.
알파팀은 러시아의 국기를 가슴에 달고 활동하는 최정예 헌터 집단으로 SSS급 헌터, 서리칼날의 블라디미르가 사령관직에 있는 걸로 유명하다.
“페트렌코 조장님. 블라디미르 사령관님으로부터 영상 통신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즉시, 통신실로 이동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S급 최상위의 마법계 헌터, 바실리크가 다가와 말했다. 그는 페트렌코의 부관이었으며, 알파팀 소속이었다.
“스승님을 기다리게 할 수는 없지. 지금 바로 가겠다.”
“이쪽입니다.”
페트렌코가 고개를 끄덕이며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자 바실리크가 수송기 내부의 통신실로 안내했다. 통신실에서는 이미 영상 통신 준비가 끝난 상태였다.
“연결하겠습니다.”
카메라와 모니터가 연결된 의자에 페트렌코가 앉기 무섭게 통신병이 장비를 만졌다. 모니터에
짧은 백금발에 얼음 같은 푸른 눈동자가 인상적인 남자가 나타났다. 그를 향해 페트렌코는 고개를 숙였다.
“스승님. 저를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는 러시아의 SSS급 중견 전투계 헌터, 서리칼날의 블라디미르였다.
“비행은 좀 어때?”
“보고타의 임시 비행장에 착륙하기까지 약 30분 정도 남았습니다. 스승님께서 신경 써주신 덕분에 긴 비행이었지만 쾌적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래. 수송관한테 가장 좋은 수송기를 준비해 달라고 말하기는 했는데, 잘 배정이 된 모양이군.”
페트렌코의 말에 블라디미르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제자를 위해 안락하게 개조된 군용 수송기를 사용할 수 있게 말해두었던 것이다.
“페트렌코. 내가 너를 보고타로 보내는 이유는 잘 알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입니다. 모스크바에서도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기억하고 있다면 다행이다.”
블라디미르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내가 브라질에서 에릭의 발을 묶어두고 있을 테니까, 반드시 콜롬비아 전역에 대한 토벌 지휘권을 얻어내야 한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것도 좋지만 최고의 결과를 보여다오.”
“예, 알겠습니다.”
블라디미르의 말에 페트렌코는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현재까지 변동 사항은 없습니까?”
“예정과는 달리 SS급 헌터 강현준이 콜롬비아에 출현하기는 했지만 문제없다. SS급이긴 하지만 공식적인 기록은 ‘하위’ 정도. 마찰이 발생한다고 해도 문제없이 ‘처리’할 수 있을 거다.”
“SS급 하위라면, 제 상대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별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투로 말하는 블라디미르와 씨익 웃으며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페트렌코. 하지만 두 사람은 알고 있을까?
그들이 만만하게 보고 있는 강현준이라는 이름의 헌터가 공식적인 기록과 달리 SSS급 수준의 무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행운을 빈다. 페트렌코.”
“최고의 결과를 보고하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통신이 종료되었다.
“곧 착륙하겠습니다.”
승무원이 말했다. 페트렌코는 자리로 돌아갔고 수송기 편대가 천천히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반쯤 폐허가 된 보고타의 모습이 보였다.
“드디어, 보고타에 도착했군. 결코 스승님을 실망시켜서는 안 돼.”
검붉은 연기를 토해내는 폐허 위로 시선을 던지며, 페트렌코는 스스로의 다짐을 중얼거렸다.
* * *
“러시아에서 보낸 토벌대가 조금 전에 보고타 임시 비행장에 도착했습니다.”
태민이 천천히 다가와 보고했다. 초콜릿으로 공복을 진정시키고 있던 현준은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SS급 최상위 헌터, 페트렌코가 어디로 갔는지 파악했습니까?”
“길드장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페트렌코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지상에 착륙하기 무섭게 수십 명의 헌터들을 이끌고 토벌 지휘부로 향했습니다. 아무래도 지휘권 관련 분쟁이 있을 것 같습니다.”
“가장 늦게 도착한 러시아가 지휘권 장악을 시도하다니 이건 해적질이랑 다를 게 없지요.”
태민의 대답에 규환이 눈살을 찌푸린 채 말했다. 현준도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하지만 이대로 러시아가 토벌 지휘권을 가져가게 놔둘 생각은 없었다.
“집행부장에게는 공중항모의 관리를 맡기겠습니다. 그리고 부길드장.”
현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나는 규환에게서 태민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말씀하시지요. 길드장님.”
“지휘부로 안내하세요. 러시아가 진심이라면 제가 나서야 할 것 같네요.”
가만히 앉아서 지휘권을 뺏길 생각은 없었다. 러시아가 지휘권을 욕심내지 않는 만에 하나라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얌전히 있었지만, 페트렌코가 본격적인 행보를 보이는 지금,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움직여야 한다.
“앞장서겠습니다.”
먼저 가는 태민을 따라 현준이 발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의 뒤로 10여 명의 A급 헌터가 뒤따랐다.
이미 러시아에서 수십 명의 헌터를 동원한 시점에서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기는 글렀다.
최악의 경우에는 러시아의 최정예 헌터 집단인 ‘알파팀’과 무력 충돌을 각오해야 할지도 몰랐다.
지휘부와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공기가 무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현준은 물론이고 태민조차도 긴장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나는 절대로 지지 않는다.’
‘길드장님께서는 절대로 패배하지 않는다.’
각자 강한 확신이 있었기에 겁을 집어먹지 않은 것. 분주히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지휘부로 쓰고 있는 건물 앞에 도착했다.
“알파팀 소속 헌터들입니다.”
건물을 지키고 있는 헌터들의 소속을 태민이 말해주었다. 러시아 쪽에서 제대로 할 생각인지 벌써 지휘부 건물의 장악을 끝낸 모양이다.
“길드장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태민이 물었다. 그는 현준이 과격한 수단을 사용한다고 해도 믿고 따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것이 설령 러시아의 악명 높은 ‘알파팀’과의 대립이라고 해도 말이다.
“밀고 들어가겠습니다.”
“교전이 발생하면 어떻게 합니까?”
집행부 소속의 A급 헌터가 질문했다. 현준은 싸늘한 눈빛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피하지 않습니다.”
그리고서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대문으로 접근하자 알파팀의 헌터 14명이 앞을 막아섰다.
지원 요청이라도 보낸 것인지 다른 곳에서도 헌터들이 달려 나왔다.
“비켜라.”
차갑게 내뱉자 조장급으로 보이는 이가 앞으로 나오며 입을 열었다.
“싫다면?”
동시에 살기를 끌어 올렸다. S급 헌터의 살기에 현준의 뒤에 서 있던 A급 헌터들이 눈살을 찌푸렸고 2명은 가슴을 움켜쥐고 비틀거렸다. 더 이상 두고 볼 수는 없다.
현준은 가볍게 손을 들어 올리는 것으로 살기를 걷어냈다.
“내 살기를 걷어냈다고?”
“이것도 살기라고 흘리고 다니냐?”
현준의 입가에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미소가 번졌다.
-리퍼의 잔혹한 살의가 깨어납니다. 치명적인 살기의 일부가 해방됩니다. 살아있는 존재라면 본능적인 두려움을 피할 수 없습니다.
쿠우우웅!
진정한 살기의 해방에 천지가 요동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