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
40장 남미 레이드(3)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 칼카쉬가 반응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푸욱.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칼날의 끝이 칼카쉬의 복부에 파고들었다.
“칼카쉬! 엄호하겠다!”
랄프스가 고위 주술을 펼쳤다. 날카로운 얼음 폭풍이 휘몰아쳤는데, 얼음 조각들은 정확하게 현준만을 노렸다. 지옥참마도의 마법 저항을 넘어서는 주술.
그가 질드레의 가호를 사용하여 주술을 무력화하는 사이, 칼카쉬는 복부에 꽂힌 지옥참마도를 뽑고는 블링크를 사용하여 현준과의 거리를 벌렸다.
“술식 파괴라고? 그렇다면 이건 어떠냐!”
뼈로 만든 스태프를 흔들자 수십 마리의 늑대 정령이 소환되었다.
“보아라, 위대한 선조들의 영혼을!”
랄프스의 광기 가득한 외침에 늑대 정령들 또한 호응하여 울음소리를 토해냈다.
-생각보다 엄청난 녀석이다. 하나가 최소 A급 최상위고 강한 몇몇은 S급 하위 정도로 보이는데, 이걸 고속 영창으로 소환할 줄이야.
지옥참마도가 설명했다. 현준은 적들과 자연스럽게 거리를 벌려 이든과 합류했다.
이든은 칼카쉬와 랄프스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상태로 입을 열었다.
“이든입니다. 협력에 감사합니다. 제 눈이 틀리지 않았다면, 당신은 한국의 초신성, SS급 헌터 강현준이시죠?”
이든은 현준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도쿄 공습 이후 있었던 기자회견을 눈여겨봤었던 것이다.
“제가 그렇게 유명했나요?”
“당신을 모르는 헌터는 많지 않을 겁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SS급 헌터라는 이유 때문에 유명한 게 아니었다. 기자회견 이후로 대중의 시선이 지금까지 현준의 행보에 주목하기 시작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2차 각성자라고는 하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성장 속도는 모두의 관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상황이 좋지 않네요.”
“예…… 보시다시피…… 여기를 지키고 있던 헌터 절반 이상이 쓰러졌습니다. 군부대는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고 1시간 전부터 난전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회복계 헌터 몇 명이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던 것인지 이든이 입은 상처에 백색의 마력이 깃드는 게 보였다.
다만, 그 수준이 높은 건 아닌지 회복 속도가 더뎠다. 그를 향해 뭔가 말하려는 찰나, 랄프스가 늑대 정령들을 움직였다.
“선봉을 저지하겠습니다!”
이든이 대검을 휘둘러 날카로운 오러 파편을 흩뿌렸다. 늑대 정령들의 선봉을 저지하기 위함이었지만 효과는 크지 않았다.
A급 늑대 정령들은 오러 파편에 당해 소멸했지만 바로 뒤에 있던 S급들은 능숙하게 회피할 뿐만 아니라 이든을 향해 입을 쩌억 벌리고 마력탄을 내뱉었다.
“반격!”
하지만 이든은 마법계열의 공격은 반격할 수 있는 특수 능력이 있었다. 이든의 주위로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그를 노렸던 마력탄은 모조리 소멸했고 생성된 마법진은 흩어진 마력을 흡수하여 오러 스피어를 사방에 쏟아냈다.
선명한 빛의 오러 스피어에 관통당한 늑대 정령들이 소멸했다. 10마리가 넘는 수가 당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십 마리 정도가 남아있었다.
“칼카쉬!”
“알고 있다!”
랄프스가 늑대 정령들을 다시 전진하게 했다. 칼카쉬는 그들의 틈에 섞여서 이든을 노렸다.
이든이 다시 한번 오러를 흩뿌렸지만 같은 수단이 2번 통하지는 않았다.
“제기랄!”
욕설을 내뱉는 이든을 보며 현준이 차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뒤로 물러나서 늑대 정령들이나 처리해주세요. 저 네임드 오크 둘은 제가 정리합니다.”
“죄송합니다.”
이든이 뒤로 물러나는 것과 동시에 현준은 지옥참마도를 들어 올렸다. 오러 블레이드가 솟구쳤다.
어느새 치유 술식을 받은 것인지 상처를 거의 회복한 칼카쉬가 빠르게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그 속도가 매우 빨라서 음속에 가까울 정도였지만 현준의 눈에는 느리게만 보였다.
“이기어검.”
“커헉!”
시동어와 함께 날아간 도살자 단검이 칼카쉬의 어깨에 꽂혔다.
속도가 너무 빨라서 정밀 조준은 힘들었지만, 질주를 멈추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짧은 순간 경직된 그를 보며 현준은 싸늘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너, 빛의 속도로 찔려 본 적 있나?”
“그게 무슨…….”
칼카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라이키리의 가호가 발현되었다. 어느새 현준은 빛의 군마를 타고 있었고, 랄프스가 방어 주술을 외치기도 전에 빛의 군마는 빛의 속도로 질주했다.
“컥……?”
눈앞에서 뭔가 번쩍하는 걸 인지했을 땐 이미 전격을 머금은 랜스가 칼카쉬의 흉부를 꿰뚫고 있었다.
“크, 크윽…….”
“심장은 비껴갔나?”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는 칼카쉬를 보며 현준은 아쉽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래도 SS급 수준의 네임드 마수라서 그런지 빛의 돌진을 시작하는 순간 랜스 차지의 경로를 읽은 모양.
칼카쉬는 피격 직전에 간신히 몸을 틀었고 심장이 관통당하는 치명상을 피했다.
“미안하지만 그래도 끝났어.”
랜스가 흉부를 관통한 순간 전격이 칼카쉬의 전신을 경직시켰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현준이 지옥참마도를 뽑아 들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카, 칼카쉬!”
랄프스가 서둘러 상위 주술을 완성하여 엄호를 시도했다.
“소용없어.”
질드레의 가호를 사용할 필요도 없다. 상위 주술로 만들어진 불타는 화염의 창은 지옥참마도의 높은 마법 저항을 뚫지 못하고 소멸했다.
“이, 이럴 수가!”
랄프스가 경악했다. 그는 스태프를 들어 늑대 정령들을 불러 모으려고 했지만 이든이 적절하게 대검을 들고 난입하여 행동을 차단했다.
이든이 늑대 정령들을 상대하는 동안, 현준은 지옥참마도를 휘둘러 칼카쉬의 목을 베었다.
경직이 풀리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그는 저항조차 할 수 없었다.
“끄르르르륵!”
목을 깊숙이 베었다. 붉은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고 칼카쉬는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언데드를 잡다가 와서 그런지 생기 넘치는 피를 맛본 지옥참마도의 환호를 들으며 현준은 빛의 군마에서 내려 랄프스를 향해 몸을 던졌다.
“자, 장벽이여!”
랄프스가 굳은 얼굴로 캐스팅을 완성하자 땅에서 장벽이 솟구쳤다. 질드레의 가호를 사용한다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현준은 굳이 그러지 않고 지옥참마도를 휘둘러 장벽을 통째로 절단했다.
장벽이 무너지면서 일어난 흙먼지를 뚫고 랄프스를 향해 질주했다. 일순간에 거리가 좁혀지자 늙은 오크는 당황하긴 했지만, 곧 침착하게 곡도를 뽑아 들었다.
“쉽게 당하지는 않는다!”
랄프스가 외쳤다. 그는 주술을 주로 사용하는 네임드 오크이기는 했지만, 현준이 도착하기 전에 S급 중견의 전투계 헌터를 순수한 검술로 상대해서 도륙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의 검사이기도 했다.
“와라! 인간!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랄프스가 검을 휘두르자 참격이 쏟아졌다. 바람을 가르며 날아오는 참격을 가볍게 피한 현준은 어느새 랄프스와의 거리를 10m 안으로 좁혔다.
“제, 제기랄…….”
검술을 구사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살아오면서 주술 위주의 실전을 경험했다. 압도적인 무력을 가진 적을 상대로 검을 들어본 적은 없었다.
‘이 괴물 같은 녀석! 상위 주술까지는 마법 저항력으로 무시하고 고위 주술조차 술식 파괴로 무력화시키다니…….’
랄프스는 피가 새어 나올 정도로 입술을 깨물었다. 그 모습만 봐도 랄프스가 얼마나 초조한지 알 수 있었다.
“으아아아! 오너라!”
곡도를 마구 휘두르며 고함을 내지르는 랄프스. 현준은 일순간에 거리를 좁혔다. 내찌른 지옥참마도과 랄프스의 목을 꿰뚫었지만.
‘본체가 아니다?’
현준은 단번에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SS급 마수가 너무나 쉽게 공격을 허용했을 뿐만 아니라, 지옥참마도의 흡혈로 인한 마력 회복이 발동되지 않았다.
‘분신, 그중에서도 환영 계열이다.’
그렇다면 본체는 어디에? 눈동자를 바쁘게 움직이고 마력을 흩뿌려 기척을 잡아내려고 노력했다.
기척을 잡아내지 못한다면 적은 보이지 않는 칼날이 되어 암습해 올 것이다. 하사신의 가호가 있다고는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얇은 얼음판을 걷는 것 같은 긴장은 오래 가지 않았다. 기척이 생각보다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 드러난 것이다. 애초에 랄프스는 강력한 전투 능력을 가진 현준을 직접 노릴 생각이 없었다. 그의 목표는 부상을 입은 이든이었다.
“커헉!”
이든의 짧은 비명과 함께 붉은 핏줄기가 솟구쳤다. 현준이 황급히 그에게 달려가 상태를 살피는 동안 랄프스는 다시 거리를 벌리며 대주술을 완성했다.
“이건…… 파괴가 힘들 것 같네…….”
지금까지 현준은 질드레의 가호로 여러 마법을 쉽게 파괴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였지만 사실은 마법 발동에 필요할 때 필요한 마력의 3배를 소모하고 파괴를 하는 것이었다.
대주술의 파괴도 불가능한 건 아니었지만 효율이 좋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장기전이 될 우려가 있다. 지금은 마력을 아껴야 해.’
이윽고 현준의 시선이 피를 쏟아내고 있는 이든에게 향했다. 그는 ‘반격의 검’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유명한 헌터였다.
특수 능력은 마법 반격. 주술 또한 반격이 가능하지만 지금 몰골을 보니 무리일 것 같았다.
“이쪽으로.”
현준이 이든의 팔을 잡고 땅을 박찼다. 하늘이 열리고 3층 건물만 한 크기의 운석 4개가 떨어졌다.
같은 편의 마수들까지 휘말리는 무자비한 광역 공격에 그나마 버티고 있던 헌터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크하하하하! 계속해서 간다!”
또다시 대주술. 랄프스가 캐스팅을 하는 동안 그를 지키기 위해 A급 마수인 오크 전쟁 군주들이 모여들었다.
A급 마수들이 20마리 이상 모이자 다른 헌터들은 접근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대로라면 전멸한다.’
현준은 살아남을 자신이 있었지만 다른 헌터들은 전멸할 게 분명한 상황. 현준은 마력을 조금 더 소모하더라도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이든 씨. 뒤로 물러나세요.”
“하, 하지만…….”
“지금은 방해만 될 뿐입니다.”
“큭…… 죄송합니다.”
이든이 물러나고 현준은 마수들의 보호를 받는 랄프스를 향해 차가운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마력을 일으켰다.
-이스텔이 붉은 마법서를 펼칩니다. 일시적으로 화염 마법의 사용이 가능해집니다.
이스텔의 가호. 그리고.
-듀렌달이 당신과 함께합니다. 찬란한 광휘가 정의로운 검에 깃듭니다.
듀렌달의 가호를 추가했다. 카르타고와 시든밀러의 가호까지 함께 하고 있는 상황. 총 4개의 가호가 발현되었다.
“조, 조심해라! 강력한 마력이 느껴진다!”
오크 전쟁 군주 하나가 동료들에게 경고를 전했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어.
-라이키리의 빛이 당신을 아득한 저편으로 인도합니다. 빛과 함께 한줄기의 섬광이 되어 적을 꿰뚫으세요.
라이키리의 가호까지 발현되었다. 빛의 군마에 올라탄 현준은 랜스의 끝을 랄프스를 향해 겨눈 채 입을 열었다.
“파이어볼.”
조금 무리했다. 100여 개의 파이어볼이 허공에 생성되었다. 그리고 오크 전쟁 군주들을 향해 일제히 날아들었다.
A급 마수에게 치명상을 입힐 정도는 아니었지만, 일순간 시야를 혼란스럽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그 틈에 현준은 ‘빛’이 되어 랄프스를 꿰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