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만 전생이 날 도와줘-136화 (136/217)

# 136

40장 남미 레이드(3)

서걱.

휘둘러진 지옥참마도가 오크 검성의 목을 베었다. 붉은 핏줄기가 솟구치고 머리를 잃은 몸이 힘없이 쓰러졌다.

하위라고는 하지만 S급 마수치고는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한 허무한 최후였다.

-검성이라고는 하지만 오크의 피는 역시 맛없군.

오크 검성의 피를 잔뜩 머금은 지옥참마도가 투덜거렸다.

“참아라. 인내 끝에 열매가 달콤한 법이야.”

현준이 말했다. 작은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주변의 소음에 묻혀서 주변에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외투에 튄 오크 검성의 피를 닦아내고 주위를 살폈다. 전투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맙소사, 오크 검성을 일격에…….”

“2마리를 정리하는 데 1분이 안 걸린 것 같은데요?”

“최소 SS급 헌터인 것 같은데…… 누구지?”

전투가 끝나가면서 여유가 생기자 일부 헌터들과 군인들의 시선이 현준에게 향했다. 현준은 말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들의 시선에 응답해 주는 것보다는 다음 웨이브가 시작되기 전에 게이트를 파괴하는 게 우선이었다.

게이트가 열리면서 생성된 통제석을 파괴하자 공허한 내면을 드러내고 있던 찢어진 차원의 틈이 닫혔다.

“후안 중령입니다! 지원에 감사합니다!”

현준은 감사를 표하는 후안 중령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지금도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온 마수들이 콜롬비아 전역에 역병처럼 번지고 있었기 때문에 한가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플레임.”

나지막이 이름을 부르자 하늘에서 흑염룡이 착지했다.

-형님. 부르셨습니까?

“다음 게이트로 가자.”

-예.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

플레임이 날개를 펼쳤다.

“오오오!”

“특수 능력인 건가?”

“용을 소환하다니……!”

흑염룡을 본 군인들과 헌터들이 경악했다.

-크큭. 이 몸의 위대함을 계속 찬양하거라.

흑염룡, 다크 플레임 드래곤 3세는 사람들의 반응에 우쭐해서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 그를 보며 현준이 한심하다는 시선을 던지며 입을 열었다.

“그냥 신기해서 보는 것 같은데?”

팩트 폭행에 플레임은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이, 이륙하겠습니다.

단숨에 하늘로 날아오른 흑염룡은 다음 목표가 있는 곳으로 현준을 안내했다. 게이트를 향해 접근하자 10여마리의 오크 와이번 라이더가 달려들었다.

오러를 자유롭게 다루는 A급 마수들이었지만 플레임의 상대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플레임은 소환 당시 제물이 부족하여 일부 힘을 봉인당했다고는 하지만 현재로서도 SS급 하위였다.

그가 쏟아낸 어둠의 불꽃이 오크 와이번 라이더 편대를 덮쳤다.

-크하하하! 어둠의 불꽃이 타 죽어라!

검은 화염에 휩싸여 추락하는 마수들을 보며 플레임이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레이드 게이트에서 비행 마수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군.

지옥참마도가 말했다. 현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플레임. 게이트까지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아?”

-마력 반응으로 볼 때, 둘 이상의 네임드가 있습니다. 쉽게 접근하는 건 무리일 것 같습니다.

네임드는 강하다. 평범한 오크라도 네임드 보정을 받으면 B급 수준의 무력을 낼 수도 있기 때문에 ‘규격 외’라고도 많이 부르는 편이다.

“난 여기서 내린다.”

혼란스러운 공중전을 겪는 것보다 지상으로 이동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플레임이 고도를 낮추자 현준은 망설임 없이 플레임의 등에서 뛰어내렸다.

여전히 높은 위치였지만 현준에게는 문제 되지 않았다.

쿠우우웅!

요란한 소리와 함께 마수 무리의 중심에 현준이 착지했다. 인간 고기를 즐기고 있던 B급 마수, 구울들이 고개를 들었다.

“이번에는 언데드인가……?”

현준은 고개를 돌려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주변은 군인들과 헌터들의 시체로 가득했다.

파괴된 전차와 추락한 헬기들의 잔해와 파편도 보였다. 그리고 언데드들이 죽은 이들에게 붙어서 살을 파먹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현준은 차분한 표정으로 마력을 끌어 올렸다. 강렬한 마력이 잠들어 있던 가호를 깨웠다.

-이스텔이 붉은 마법서를 펼칩니다. 일시적으로 화염 마법의 사용이 가능해집니다.

두 눈이 붉게 물드는 것과 동시에 그의 앞에 화염을 머금은 마법서가 펼쳐졌다. 구울 이상의 마수는 보이지 않았으니 화염 지배와 폭주 술식까지 사용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파이어볼.”

허공에 수십 개의 파이어볼이 생성되었다.

“가라.”

낮은 목소리로 명령을 내리자 파이어볼들이 붉은 빛줄기를 그리며 날아가 마수들의 머리통에 꽂혔다.

하지만 상대는 B급 마수에 해당하는 구울. 일부는 한 방에 핵이 파괴되어 쓰러졌지만, 대부분이 큰 피해를 입지 않은 모습이었다.

오히려 화를 나게 만든 것인지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 같은 것을 내며 현준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입을 쩌억 벌리고서 달려오기 시작했다. 언데드라고는 하지만 좀비와는 달리 B급에 해당하는 마수였기 때문에 달리는 속도는 인간의 한계를 넘은 수준이었다.

-온다.

지옥참마도가 경고했다. 시속 50㎞가 넘는 빠른 속도로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오는 수십의 구울. 하지만 현준의 표정은 평온하기만 했다.

“화염 지배까지 쓰게 될 줄이야.”

끝내 가호를 한 번 더 사용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그의 기분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이스텔의 가혹한 불꽃이 함께합니다. 화염에 대한 절대적인 지배력을 행사합니다.

다시 한번 이스텔의 가호가 발현되었다.

“파이어 브레스.”

붉은 화염이 춤을 췄다. 이스텔의 가호로 인해 마법의 불꽃은 더욱 넓게 퍼졌다. 다가오던 구울들이 일제히 화염에 휩싸였다.

“그어어어!”

그들은 고통을 모른다. 하지만 눈앞의 살아있는 인간을 두고 무너져가는 몸뚱이에 허망하다는 듯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수십을 넘는 구울 무리를 이스텔의 가호와 화염 마법으로 단숨에 정리한 그는 강한 마력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보통 강한 마력 반응이 있는 곳에는 보스나 게이트가 존재할 가능성이 컸다.

쉬지 않고 마수들을 베어 넘기며 전진한 끝에 게이트 앞에 도달했다. 다른 헌터 공격대가 파괴를 시도했다가 실패한 것인지 사방에 헌터들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사, 살려…….”

“제발…….”

살아있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간절함을 담아 현준에게 애원했지만 당장 죽어가는 그들을 살릴 방법은 없었다.

현준이 알고 있는 회복 술식은 마법과 달리 이런 긴박한 전장에서 여유롭게 사용할 만한 게 아니었다.

“현 좌표에 부상자 다수가 있습니다. 회복계 헌터와 의무대의 지원을 요청합니다.”

그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은 지원을 요청하는 것뿐이었다. 지원 요청을 끝내고 무전기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전방을 향해 시선을 흩뿌리며 입을 열었다.

“곧 의무대가 올 겁니다. 조금만 더 버티세요.”

다 죽어가는 이들에게 차가운 말을 쏟아낼 정도로 현준은 냉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숨이 끊어졌거나 말을 이어갈 기력마저 잃은 게 분명했다. 굳이 대답을 기다릴 필요는 없겠지.

“라이키리. 내게 가호를.”

현준의 시선에 게이트에 닿았고 그는 마력을 끌어 올렸다.

-라이키리의 빛이 당신을 아득한 저편으로 인도합니다. 빛과 함께 한줄기의 섬광이 되어 적을 꿰뚫으세요.

빛의 군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자.”

게이트를 향해 시선을 고정한 채 랜스를 겨눴다. 그의 말이 끝난 순간, 빛의 군마가 땅을 박찼다. 초음속을 넘어 광속에 도달했다.

전격을 머금은 랜스는 레이드 보스, 엘리트 데스나이트의 흉부를 단숨에 관통했다.

빛의 군마는 멈추지 않았다. 조금 더 나아가 통제석까지 박살을 낸 후에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소멸했다.

-언데드는 오크보다 더 싫다. 다른 곳으로 가자. 주인아.

지옥참마도가 말했다. 언데드의 썩은 피는 영 취향에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실제로 흡혈이 거의 작용하지 않아서 그런지 마력도 회복되지 않았다. 현준은 아쉬운 표정으로 무전기를 입가로 가져갔다. 상황을 보고하기 위함이었다.

“현 좌표의 레이드 게이트를 전멸시켰습니다.”

응답이 없었다.

“전진 지휘부가 당했나?”

마지막으로 전달받은 내용이 3차 저지선이 무너졌다는 것이었다.

‘3차 저지선이 무너졌다면, 마수들이 암세포처럼 사방에 퍼지겠네.’

좋지 않다. 최종 저지선은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의 도시 경계를 주변으로 구축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도시 내부를 지킨다는 의미는 없었다.

그저 다른 도시로의 확산을 막을 목적. 현준은 짧은 한숨과 함께 교신 채널을 공중항모로 바꿨다.

“집행부장. 하늘에서 본 상황은 어떻습니까?”

기쁜 소식을 전해주기를 바랐지만.

-좋지 않습니다. 보고타 절반이 파괴되었고 저지선은 사실상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진 지휘부는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마수들의 집중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통신을 시도했지만 방해 전파가 있는지 연결이 안 됩니다.

“정밀 폭격은 힘듭니까?”

-비행마수가 너무 많아서 접근이 힘듭니다.

제공권을 장악하지 못한 모양. 현준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비행 마수들이 뭉쳐서 검은 구름을 형성할 정도.

“제공권 장악을 위주로 행동하세요. 저는 전진 지휘부에 있는 헌터들을 돕겠습니다.”

-전진 지휘부에는 적이 많습니다. SS급 마수도 둘 이상 보고 되었습니다.

규환이 우려를 표했지만, 현준의 입가에는 더욱 선명한 미소가 번졌다.

“제가 고작 SS급한테 질 거라고 생각합니까?”

* * *

“제기랄! 마수가 너무 많아!”

미국의 SS급 전투계 헌터, 이든이 욕설을 내뱉으며 대검을 휘둘렀다. 그는 미국 남부에 있다가 콜롬비아의 지원 요청에 응답했다.

하지만 그가 보고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상황이 많이 악화되어 있었다.

“크아아악!”

휘둘러진 대검이 오크 검성의 목을 깊이 베자 붉은 핏줄기가 솟구쳤다. 마수 진형 깊숙이 침투하여 오러를 머금은 대검을 휘둘러 대는 이든에게 네임드들의 시선이 꽂혔다.

“칼카쉬. 내가 엄호할 테니, 자네가 나서게.”

“걱정하지 말게. 랄프스.”

네임드 둘이 움직였다. 랄프스가 강력한 고위 주술을 완성하자 땅이 갈라지며 용암과 불기둥이 솟구쳤다.

그 뜨거운 열기를 뚫고 칼카쉬가 검을 휘두르며 이든에게 달려들었다.

“큭!‘

용암과 불기둥을 피했지만 칼카쉬에게서는 자유롭지 못했다.

“크윽!”

칼카쉬의 검이 이든의 왼쪽 어깨에 꽂혔다. 그의 특수 능력은 마법 반격.

물리적인 공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검을 회수하는 것과 동시에 연격을 펼치려던 칼카쉬는 일순간 불길함을 느끼고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전까지 그가 서 있던 곳에 단검이 날아와 꽂혔다.

“칼카쉬! 조심해라! 강한 마력 반응이 느껴진다!”

“제기랄! 어디냐!”

칼카쉬의 시선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뒤다.”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 그곳에 현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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