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만 전생이 날 도와줘-134화 (134/217)

# 134

40장 남미 레이드(1)

서둘러 친위대 술식의 각인을 마무리하고서 태민과 함께 길드장 집무실로 자리를 옮겼다.

위원회로부터 영상 통신 요청이 들어왔다는 보고에 서둘러 자리를 옮긴 것이다.

다른 이한테 비밀이 많은 지하 공간을 보여줄 생각은 없었다.

“밀실을 사용하시겠습니까?”

태민의 물음에 현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길드장 집무실에는 밀실과 연결된 통로가 있었다.

밀실 안에는 영상 통신을 포함한 여러 설비가 갖춰져 있다.

“네. 공사할 때 요구하긴 했는데, 사용하는 건 처음이네요.”

“예, 위원장이 직접 연락을 부탁했습니다. 상당히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고 하더군요. 통신을 연결할 때 주변 보안을 신경 쓸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친위대를 배치해서 10층 통제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지시를 받고 집무실을 나서는 태민을 뒤로 한 채 현준은 책장에 숨겨진 인식 장치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삐빅.

기계음과 함께 책장이 좌우로 열리면서 어두운 통로가 나타났다. 현준이 통로에 발을 들이자 천장의 조명이 켜지면서 밝아졌다.

통로의 끝에는 20평 정도 되는 크기의 방이 하나 있었다. 현준은 보안카드를 삽입한 단말기를 책상 위의 컴퓨터에 연결했다.

-보안 회선으로 연결합니다.

짧은 기다림 끝에 화면이 켜졌다. 이윽고 모니터에 인자해 보이는 금발 남성의 얼굴이 나타났다. 주름이 거의 없는 걸로 보아 나이는 많아도 30대 중반일 것 같았다.

‘잔영의 에릭.’

워낙 유명한 헌터라서 언젠가 인터넷에 올라온 얼굴을 본 적이 있었다. 그는 전 세계에 4명밖에 없는 SSS급 헌터 중 한 명이었다.

‘아직까지는 4명이지.’

SSS급의 경지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멀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강현준 씨. 반갑습니다. 현재 위원장을 맡고 있는 에릭입니다.

영어로 말했지만, 통역 술식 덕분에 전부 이해할 수 있었다.

“강현준입니다.”

이름을 말하는 것과 동시에 로마노프의 가호를 사용했지만, 모니터 너머의 상대라서 그런지 진명이 보이지 않았다.

-연락을 받지 않으셔서 다른 경로를 통해 연락을 드린 점, 미리 사과드립니다. 이쪽의 일도 상당히 급하고 중요한 일이라, 레이스 길드의 공식적인 연락망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S급 헌터만 해도 힘에 취해 미친 짓을 하고 다니는 세상인데 에릭은 4명밖에 없는 최강의 SSS급 반열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정중한 태도를 보였다.

물론 현준은 에릭의 행실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이번 영상 통신만으로는 그에 대해 확신할 수 없었다.

에릭이 유명하다고는 하지만 평소 조심하는 것인지 인터넷에 사생활이 올라온 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지레 짐작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진명을 모른다는 게 이렇게 불편한 거였나.’

진명을 먼저 보고 그 사람의 행동을 곁들여서 판단하는 것에 너무 익숙해진 모양.

“괜찮습니다. 그만큼 급한 일이겠죠.”

-이해해 줘서 고맙습니다.

“급하다고 하니까 본론으로 들어가죠. 무슨 일입니까?”

연장자를 상대로 다소 예의 없게 보일 수도 있는 태도였지만 에릭은 오히려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남미 대륙이 공격받았습니다.

에릭의 입에서 나온 말은 충격적이었다. 대체 누구한테 공격받았다는 말인가?

‘국가 간의 전쟁은 아냐.’

위원회에는 국가 간의 분쟁에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이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남은 경우의 수는.

“혈맹입니까?”

현준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 것 같습니다.

“뉴스는 조용한 것 같던데, 도대체 어떤 공격을 받았다는 말입니까?”

-이런, 실수입니다. 정정하죠. 남미 대륙을 향한 공격이 예상됩니다.

에릭이 자신이 말한 내용을 정정했다. 허둥대는 모습을 보니 상황이 아주 급박하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공격이 예상된다는 건 첩보를 입수한 겁니까?”

-그런 건 아닙니다.

“그렇다면…….”

-대규모 레이드가 발생할 것이라는 예보가 떴습니다.

“레이드가 공격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고 알고 있는데요.”

목소리에서 짜증이 조금 묻어 나왔다. 위원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외국의 레이드까지 토벌할 생각은 없었다.

통신을 종료하기 위해 전원 버튼에 자연히 손이 갔다. 어차피 위원이 외국의 레이드까지 막아야 한다는 의무는 없었다. 지금 당장 통신을 종료해도 문제없다는 소리다.

-흥미를 잃으신 모양이군요. 레이드가 예상되는 곳을 보시면 생각이 달라질 겁니다.

에릭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가 현준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지금 파일을 보내겠습니다. 열어 보세요.

이윽고 파일이 도착했다. 활성화하자 모니터 구석에 남미 대륙의 지도가 펼쳐졌다.

-지도에 붉은점이 보이십니까?

“네, 보이네요.”

아주 많았다.

-레이드 게이트가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들입니다. 아주 많을뿐더러, 자세히 보면 국가의 수도이거나 전략적 요충지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에릭이 차분하게 설명했다.

“누군가 레이드를 유도했다는 거군요.”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주요 지역만 노리고 대규모 레이드가 예상될 리가 없습니다.

레이드 규모와 위치를 볼 때 인위적인 유도가 있는 게 분명하다. 이것이 에릭과 위원회의 생각이었다.

-위원회에서는 ‘혈맹’의 소행으로 보고 있습니다.

에릭의 말에 현준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현 시점에서 대규모 레이드를 유도할 정도의 차원 마법 기술을 가진 세력은 혈맹이 유일했다.

‘아니…… 혈맹이라고 해도 이 정도는 아니야.’

애초에 남미 대륙을 뒤덮을 정도의 대규모 레이드를 유도하는 게 가능했다면 가장 먼저 공격받은 일본이나 대한민국은 마수들에게 짓밟혀 불바다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혈맹 단독이 아니다. 침략사령부가 움직인 거야.’

표정이 굳었다. 침략사령부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건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질드레가 말했던 선봉지휘부가 남미 대륙에 세워진 건가?’

선봉지휘부를 최대한 빨리 파괴하는 게 좋을 거라는 질드레의 경고가 기억났다.

선봉지휘부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었지만 순식간에 남미 대륙을 뒤덮을 레이드 게이트를 만들어내는 걸 보면 위협적인 존재라는 건 분명했다.

-강제하지는 않습니다만, 위원회에서는 강현준 씨를 최고 전력 중 한 명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당연히 남미 대륙으로 행동하실 경우, 그에 따른 지원과 보상을 약속합니다.

에릭의 말을 들은 현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선봉지휘부는 어차피 상대해야 할 적이다.

그런데 UN의 위원회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서 지원해 주는 것으로도 모자라 보상까지 약속해 준다고?

‘일거양득이다.’

이 사실을 굳이 에릭에게 말해줄 필요는 없다. 이대로 얌전히 꿀이나 받아먹으면 된다.

‘검은 마정석 독점을 요구해 볼까……?’

남미 대륙에 예정된 레이드 게이트의 수만 봐도 위원회에서 웬만해서는 현준의 요구를 수용해줄 것 같았다.

“추가 보상을 제가 정해도 되는 겁니까?”

-무리한 요구만 아니라면 위원회에서 승인할 의향이 있습니다. 어떤 보상을 원하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이번에 남미 대륙에서 수집될 ‘검은 마정석’에 대한 독점권을 추가 보상으로 요구합니다.”

최신 도입된 마법 기술의 자원 및 연구, 그리고 헌터 장비 제작 등의 여러 용도에 사용되는 일반적인 마정석과 달리 ‘검은 마정석’은 현 시점에서 자원으로서의 가치가 없었다. 오직 연구 목적으로만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검은 마정석에 대한 독점권을 승인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에릭이 말했다. 예상했던 반응. 하지만 바로 확답을 주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위원회 측에서도 검은 마정석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연구 목적으로 사용할 검은 마정석이 필요한가 보네요.”

-예. 그렇습니다. 저희 쪽에서 독점권을 승인해드리면 모든 검은 마정석이 넘어가게 되어서 말이죠.

“그렇다고 해서 우선권만 받기에는 검은 마정석의 가치가 너무 낮지 않습니까?”

현준에게는 검은 마정석이 일반적인 마정석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었지만 일부러 그 사실을 숨겼다.

협상을 할 때 모든 것을 다 드러내는 건 하수나 하는 행동이다.

-그래서 말인데…… 독점권으로 입수하게 될 검은 마정석 일부를 위원회 측에서 구매하고 싶습니다. 이 부분만 보장해 주신다면 독점권 승인에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린다. 무상으로 양도해달라는 요청을 할 것이라 생각했다. 팔아달라고 할 줄은 몰랐다.

검은 마정석의 가치가 증명되지 않은 상황이라, 비싸게 팔지는 못하겠지만 돈은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현준은 속으로 웃음을 흘렸다.

“저도 검은 마정석이 많이 필요하지만, 위원회에서 이렇게 부탁하니 ‘특별히’ 일부를 팔겠습니다.”

‘특별히’라는 부분을 강조했다. 생각 없이 퍼줬다가는 호구 잡히기 쉽다. 협상을 할 때는 상대방을 조련할 필요가 있다.

-저희 입장을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나중에 까먹지만 마세요.”

-서면으로 남길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현준의 말에 에릭은 인자해 보이는 미소를 머금은 채 대답했다.

“좋습니다. 남미 대륙으로 가겠습니다. 언제 출발하면 됩니까?”

-지금 출발하셔야 합니다. 상황이 좋지 않은 곳은 당장 3시간 안에 레이드 게이트가 열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한반도에서 남미 대륙까지 거리는 멀다. 최신 마정석 기술이 들어간 공중항모로 이동하더라도 비행시간이 10시간 이상 걸릴 정도였다.

-강현준 씨를 포함한 후속 병력이 도착할 때까지 미국과 남미 측 병력이 시간을 벌어줄 겁니다. 현재 선발 저지선을 구축 중에 있습니다. 필요하시다면 한국이나 일본 측의 군용 항공기를 이용하면 될 것 같습니다.

위원에게는 국가의 군용 항공기를 이용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예전이었다면 군용기를 요청했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도쿄 공습에 사용되었던 혈맹의 공중항모가 지금은 제 휘하에 있습니다. 그걸 이용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공중항모를 동원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게 좋겠지요. 아무래도 ‘전력’으로서 사용도 가능할 테니까요.

에릭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금 바로 공중항모에 대기 명령을 전달하겠습니다. 30분 안에 승무원 전원을 소집할 수 있습니다.”

-최대한 빨리 부탁드리겠습니다. 남미 대륙에서의 결전에 지구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영상 통신이 끝났다. 그동안 꾸준히 혈맹의 위험을 어필해서 그런지 몰라도 위원회가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남미 대륙 전체가 날아가게 생겼는데,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그것도 이상하네.”

피식 웃으며 밀실을 떠났다.

“보안 통신은 끝났습니까?”

복도로 나오자 태민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물었다. 현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살폈다.

지시했던 대로 10층 전체가 친위대에 의해 통제 중인 것 같았다.

“공중항모를 준비하세요. 남미로 갑니다.”

“승무원들을 즉시 소집하겠습니다.”

“그리고 2차로 합류할 길드원들을 소집하세요. 남미에서 원정 레이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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