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만 전생이 날 도와줘-132화 (132/217)

# 132

39장 복수를 위해 더 강해져라(2)

“기자들 다 모여 있어. 이상한 말은 하지 말고 잘해.”

태희가 작은 메모장을 건네며 말했다. 현준은 차분한 시선으로 메모장을 훑었다.

태희는 대중의 심리를 잘 알았다. 그런 그녀가 작성한 메모장에는 기자들의 정해진 질문에 대한 적당한 대답이 적혀 있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소진이가 부탁하지 않았으면 이런 귀찮은 일은 맡지 않았을 거야. 그러니까 실수하지 말고 잘해.”

“다 알죠. 별일 없을 겁니다.”

메모장을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기자회견이 있는 날이다. 이번에 길드가 공격받은 것에 대한 입장표명을 위해서 기자들을 불러 모은 것이었다.

회견장에 서기 전이었지만 규환의 보고에 의하면 길드의 영향력 덕분인지 100명이 넘는 기자들이 모였다고 했다.

“길드장님. 시간이 되었습니다.”

인기척과 함께 백한수가 다가왔다. 그는 ‘청소’로 바쁜 태민과 규환을 대신해서 오늘 현준의 보좌를 맡았다.

“걱정하지 말고 커피라도 한잔하고 있어요.”

현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태희를 뒤로 한 채 한수와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문을 열고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100명이 넘는 기자들의 모습이 보였고 무수히 많은 카메라의 시선이 집중되는 게 느껴졌다.

사회대 앞에 서니 더욱 크게 느껴졌지만, 긴장은 과하지 않았다.

적당한 긴장 속에서 현준은 메모장을 슬쩍 펼치려다가 고개를 저었다.

‘이런 건 필요 없어.’

있는 그대로의 진심을 전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3일 전, 레이스 길드의 거점이 혈맹의 대규모 공격을 받았습니다.”

플래시가 여러 번 터졌다.

“이건 단순히 ‘길드’가 공격받은 게 아닙니다. ‘대한민국’이 공격을 받은 겁니다.”

그리고 국민을 향한 현준의 고자질이 시작되었다.

* * *

“제기랄! 혈맹이 이렇게 무너질 줄이야!”

김 의원. 그는 혈맹에 조력하는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중 가장 큰 세력을 가지고 있는 이였다.

지금까지 정체를 숨기고 있었지만 이번에 정체가 다소 드러나는 걸 감수하고서 움직였다.

혈맹의 도움으로 매수한 특수경찰국 고위 간부들을 움직여 명령 체계를 교란하고 레이스 길드 사무소 단지로의 출동을 지연시킨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남한 교구가 보유 중인 최후의 병력은 증발했고 인베이더도 2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사실상 남한 교구의 혈맹은 전멸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실험체들은 어떻게 할까요?”

보좌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남한 교구는 일본 교구가 했던 것과 같은 생체 실험을 진행 중이었고 김 의원은 장소를 제공해 주고 있었다.

“어떻게 하긴? 팔아버리든가, 아니면 ‘폐기’해야지.”

실험체라고는 하지만 엄연히 생명이 붙어 있는 ‘사람’을 팔거나 폐기한다고 말하는 국회의원을 보며 보좌관은 소름이 돋았다.

“담당자한테 지시를 전달하겠습니다.”

“그래. 빨리 가서 전달하고 증거 은폐해. 난 술이나 마실 테니까.”

말을 마치며 술병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기다리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고 대신.

털썩.

쓰러지는 소리만 들릴 뿐. 불안한 마음에 황급히 권총이 보관된 서랍을 향해 몸을 돌리려는 순간.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시나?”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가면을 쓴 태민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오른손에 든 단검에서는 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굳이 오러를 사용할 필요는 못 느낀 것인지 차가운 칼날만이 달빛을 받아 빛났다.

“자, 자네는? 어떻게 저택 보안 시스템을 뚫은 거지?”

“제한적인 은신 기능이 있는 장비를 사용했다는 것 정도는 말해주마.”

김 의원의 시선이 다시 서랍 쪽으로 향했다. 거리가 얼마 되지 않아서 몸을 던지면 권총을 꺼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의 어리석은 생각을 짐작한 것일까? 태민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네 생각보다 나는 빠르니까.”

그렇게 말하며 극독이 묻어 있는 단검을 위협적으로 흔들어 보였다.

“죽기 싫으면 방금 전의 그 ‘실험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사실대로 말하면 살려주는 거요?”

“네 태도를 봐서.”

김 의원은 모든 것을 털어놓기 시작했고 태민은 싸늘한 미소를 흘렸다.

“잘 들었다. 이제 죽어라.”

“자, 잠깐…….”

“미안하지만 길드장님께 해가 되는 놈을 살려둘 수는 없다. 편히 보내주는 거에 감사해라.”

애초에 살려줄 생각은 없었다. 그는 감히 태민의 우상인 ‘강현준’을 공격하는 일에 협조했으니까.

날카로운 단검이 심장을 꿰뚫었고 김 의원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절명했다.

“실험실이라…….”

김 의원이 말한 곳은 여기서 멀지 않았다. 보안 카드도 서랍에서 챙겼다.

“길드장님께서 말씀하셨던 그건가?”

생각은 길지 않았다. 직접 확인해보면 될 일이다.

태민은 저택 제압을 위해 동행한 부하 3명과 함께 김 의원이 말한 건물로 이동했다.

실험실은 저택에서 차를 타고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는 작은 2층 건물의 지하와 연결되어 있었다.

모습을 감춘 채 은밀하게 건물 주변을 지키고 있는 이들이 셋 정도 있었지만, 태민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들은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빠르게 제압되었다.

“무인 경비 시스템을 무력화시켰습니다. 이걸로 경보는 울리지 않을 겁니다.”

동행한 부하 중에 보안 전문가가 있었다. 이 혼란한 시대에 국회의원의 저택 보안을 해제할 정도의 실력자였다.

혈맹과 관련된 실험실이라고는 하지만 보안을 해제하는 데에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바로 돌입하셔야 합니다. 저쪽에서 보안이 해제된 걸 눈치챘을 확률이 높습니다.”

“수고했다.”

태민은 단검을 뽑아 들고서는 주위를 살폈다.

“혹시라도 지하실에서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먼저 나오면 죽여.”

“예, 알겠습니다.”

부하들의 대답을 들은 태민은 지하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보안 전문가의 말과 달리 적들은 이상 징후를 눈치채지 못한 것인지 평온한 분위기였다.

“커헉!”

“큭!”

복도를 순찰하던 무장 경비 둘을 순식간에 제압한 태민은 자세를 낮춘 채 빠르게 깊숙한 곳으로 침투했다.

김 의원에게서 대략적인 구조에 대해 설명을 들었기 때문에 중요 시설을 찾는 게 크게 어렵지 않았다.

감시 카메라가 많았지만, 상황실에서 습격을 인지했을 때는 이미 헌터들로 구성된 내부 보안팀 대기실이 습격받아서 전멸한 뒤였다.

상황실 인원들도 5분이 지나지 않아서 같은 지옥행 기차에 탑승했다. S급 헌터라고는 하지만 감탄스러울 정도의 침투제압 실력이었다.

“비상사태! 보, 보안팀!”

태민은 어느새 실험체 격납고까지 침투했다. 홀로 격납고를 지키고 있던 연구원은 황급히 보안팀을 호출했지만, 응답이 있을 리가 없었다.

“미안하지만 보안팀은 전멸했다.”

도망친 이들이 소수 있었지만, 지상에서 대기 중인 부하들이 처리했을 것이다.

“제, 제발 살려…… 커헉!”

살려달라고 비는 연구원의 목에 단검이 날아가 꽂혔다. 짧은 비명과 함께 연구원이 힘없이 쓰러졌다.

태민은 실험체 격납고 안으로 들어서며 드론을 띄웠다. 소형 드론에 장착된 조명이 빛을 뿜자 어둠이 물러가면서 내부의 모습이 훤히 보였다.

“맙소사…….”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끔찍한 광경에 태민은 할 말을 잃었다. 떠오르는 생각이라고는 당장 이곳으로 집행부 헌터들을 소집해서 ‘정리’를 해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중앙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던 그는 걸음을 멈추고 좌측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50개 정도 되는 숫자의 실험관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는데, 안에는 사람이 들어 있었다.

태민은 실험관 안에 들어 있는 이들이 평소 현준이 말한 ‘쉐이드’와 동류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일단 현장을 확보해야겠군.”

혼자서 50개가 넘는 실험관을 옮기는 건 마법계가 아닌 이상 불가능한 일이다. 태민은 집행부와 연결된 무전기를 들어 올렸다.

“집행부는 현 위치에 집결하라.”

* * *

기자회견은 효과적이었다. 선동의 귀재가 도움을 주지는 않았지만, 혈맹에 당한 이들이 워낙 많아서 여론은 현준에게 우호적이었다.

물론 첫 번째 기자회견에서 ‘선동의 귀재’가 도움을 주지 않았더라면 이번에 이 정도까지의 뛰어난 효율을 보여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청와대에서도 더욱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합니다.”

길드장 집무실. 의자에 편히 앉아 있는 현준을 보며 규환이 보고했다. 지금까지 청와대는 혈맹과 관련된 문제에 애매한 입장을 보여왔다.

일본 교구는 먼저 나서서 사냥하고 관련 사건에서 현준을 지원했지만, 남한 교구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지원은 없었다.

그저 생색내기 수준에 불과했던 것이었다.

“이번 기자회견에서 확실하게 입장을 말씀하셨고 여론도 일어서고 있으니 청와대의 선택지는 많지 않을 겁니다.”

규환이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옆에 서 있는 태희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길드 피해 상황 집계와 수습은 끝났습니까?”

현준의 물음에 규환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태희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살짝 흘렸다.

“난 언론 상대하러 가볼게. 둘이서 비밀 이야기 많이 해.”

다소 장난스러움이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말하고는 길드장 집무실을 빠져나가는 태희.

신중한 성격의 규환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피해 및 수습 상황에 대한 보고서입니다.”

서류가방에서 두꺼운 보고서 뭉치를 꺼내서 현준의 책상에 올려놓는 규환. 현준은 말없이 보고서 뭉치를 집어 들었다.

“사망한 길드원들에 대해서는 충분한 위로금을 지급했습니다.”

“이건 너무 적습니다. 1.5배 더 지급하세요.”

규환의 보고에 현준이 말했다. 보고서에 기록된 위로금은 적은 편이 아니었지만, 현준은 조금 더 지급하는 게 좋다고 생각되었다.

혈맹이나 침략사령부와의 전쟁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돈으로 충성심을 온전히 살 수는 없겠지만 없는 것보단 나을 터.

게다가 다행히 레이스 길드는 세금을 면제받는 데다가 그동안 현준의 활약 덕분에 자금이 넉넉하다 못해 넘치는 수준이었다.

“1.5배는 너무 많은 거 아닐까요?”

규환이 조심스럽게 이의를 제기했지만, 현준은 차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필요할 때 확실하게 써야죠. 이런 곳에 돈을 아끼면 좋은 소리 못 들어요.”

“알겠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검은 마정석은 순조롭게 확보하고 있습니까?”

검은 마정석을 마력으로 활용할 방법을 찾았으니 최대한 많이 모아야 했다.

“공중항모 조사 때부터 꾸준히 모으고 있습니다. 인공섬에서도 대량을 발견했고, 이번에 ‘대청소’를 하면서 몇 개 더 수집했습니다.”

“좋습니다. 그리고 부길드장과 상의해서 길드 사무소 단지의 무인 보안 시스템을 강화하도록 하세요. 이번에 너무 쉽게 뚫렸습니다.”

현재 티어에서 무장 경비대의 충원은 한계가 있다. 낮은 등급이라고는 하지만 전원 헌터 출신으로 정예화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이제 남은 건 무인 보안 시스템의 강화뿐이다.

“무인 보안 시스템도 한계가 있습니다.”

“3천억 정도 더 투자할 생각이 있습니다.”

“길드 사무소 단지를 요새화시킬 생각이십니까?”

“그것도 좋겠군요. 그 어떤 적이 쳐들어와도 막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예전에도 이런 말을 했었지만, 당시에는 청와대의 눈치를 보느라 무인 보안 시스템 확충에 한계가 있었다.

“청와대에서…….”

“이번에는 막지 못할 겁니다. 우리는 이미 공격받았으니까요.”

“알겠습니다. 부길드장님과 상의해서 기획서를 제출하겠습니다.”

규환이 길드장 집무실을 떠났다. 그리고…….

-누적 소모한 자금이 1조 원을 돌파했습니다. 황금률의 대상인이 당신에게 관심을 보입니다.

또 누군가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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