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만 전생이 날 도와줘-131화 (131/217)

# 131

39장 복수를 위해 더 강해져라(1)

“몸은 좀 괜찮습니까?”

“예, 의사는 최소 이틀은 안정을 취하는 게 좋다고 했지만 지금 당장이라도 업무에 복귀할 수 있습니다.”

회복계 헌터의 ‘힐’로 대부분의 외상을 치료했다고는 하지만 마력도 많이 소모를 했고 후유증이 남을 수도 있기 때문에 적절한 휴식을 취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다행이네요.”

현준은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태민은 유능한 ‘부하’였다. 그를 잃었다면 손실이 컸을 것이다.

“다행히 공격 규모에 비해서는 길드의 피해가 적은 편입니다.”

“저도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래도 피해가 적다고 하기에는 가슴이 아플 정도더군요.”

냉정하게 봤을 때는 태민의 말대로 공격 규모에 비해서 피해가 적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잃은 길드원들의 명단을 보고 받았을 때는 가슴 한구석이 아팠었다.

그나마 길드의 주요 인사가 전원 생존했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반드시 복수한다.’

이번에 공격받은 일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건 사실입니다.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죽음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갚을 수는 있죠.”

현준은 품속에서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내서 태민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길드를 공격한 인베이더에게서 확보한 명단입니다. 무슨 명단일지는…… 부길드장도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쩐지, 특수경찰국과 한국군의 지원이 조금 늦는다 싶었습니다. 길드장님께서 대한민국의 높은 곳에 서 있는데도 아직 이런 세력이 남아 있나 보군요.”

“이너서클 쪽은 아니고 혈맹과 직접 연결되어 있는 부류입니다. 오늘 같은 결정적인 순간을 위해서 지금까지 몸을 숨기고 있었던 같아요.”

태민은 접힌 종이를 펼치고 적혀 있는 이름들을 살폈다.

“수방사의 영관급 장교들도 있고, 특수경찰의 고위 간부도 있군요. 지난번에 ‘대청소’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나 남아 있다니…….”

태민의 목소리에서 분노가 묻어 나왔다. 현준의 심정이라고 해서 그와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스미스 요원과 협력해서 모두 ‘처리’하세요. 저들은 우리에게 칼을 빼 들 수 있는 ‘자격’을 주었습니다.”

이걸로 정당방위다.

“부길드장을 믿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믿음과 신뢰를 주면 반드시 보답한다. 태민은 그런 사람이었다.

현준은 그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 격려한 뒤, 병실을 벗어났다.

아직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한 사람에게 무거운 일을 맡긴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지만, 이 일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이는 태민이 유일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제 쉴 생각인가?

“그래. 오늘은 이쯤 해두는 게 좋을 것 같네.”

마음 같아서는 소진의 병실도 방문하고 싶었지만 조금 전에 자고 있는 걸 확인했으니 방해할 생각은 없었다. 그녀도 많이 피곤했을 것이다.

‘너무 무리하는 건 아닐까…….’

가끔 걱정이 들기도 했다. 그녀는 병적일 정도로 짐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 중이었다.

길드 내부의 공략팀과 함께 던전 공략도 꾸준히 다니고 있었고 수련장도 자주 이용한다는 보고를 받은 적이 있을 정도였다.

‘내일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해야겠다.’

생각의 정리를 끝낸 현준은 저택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혈맹과 인베이더의 공격으로 엉망이 되었지만, 마법의 힘을 빌린 덕분에 하루 만에 꽤 많이 보수가 진행된 상태였다.

현준은 침실에 도착하기 무섭게 샤워를 끝낸 뒤, 침실에 몸을 던졌다. 전투 등으로 인해 쌓인 피로가 심해서 그런지 눈을 감기 무섭게 졸음이 몰려왔다.

의식의 끈이 끊어지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전생의 홀’이었다.

“섬광의 창기병일까?”

새로운 전생과의 만남을 기대하며 고개를 들었으나, 그곳에는.

[진리에 닿은 미치광이.]

익숙한 이명이 있을 뿐이었다.

‘질드레…….’

현준은 짧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육체적으로 구르는, 카르타고나 시든밀러와 같은 수련 방법에 못지않게 질드레의 수련 방식도 정신적인 소모가 엄청났다.

하지만 힘든 만큼 강해진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차분하게 손을 뻗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잘 지냈습니까? 질드레.”

“어서 오십시오. 나의 환생이여.”

남자이지만 어깨까지 내려오는 은발의 머리카락. 여전히 며칠 밤을 새운 것 같은 몰골의 질드레가 현준을 반겼다.

현준은 책과 실험 도구가 많은, 정리되지 않은 방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 가장 먼저 눈에 띈 의자에 앉았다.

“침략사령부가 움직인 것 같습니다.”

심각한 표정으로 말문을 열자 질드레는 흘러내린 둥근 안경을 고쳐 쓰며 광기 어린 미소를 흘렸다.

“저 또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인베이더를 격퇴했다고는 하지만 자만하지 마시길. 그들은 ‘선봉’조차 되지 못하는, ‘척후’에 불과합니다.”

“정찰병이라는 말이군요.”

“그리고…… 흠…….”

질드레는 뭔가를 말하려다가 입을 닫았다. 그리고 1분 정도의 짧은 고민 끝에 다시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는 말할 수 있을 것 같군요. 이미 ‘선봉지휘부’가 세워졌습니다.”

“선봉지휘부라고요? 차원 관문을 넘은 인베이더는 전부 제가 죽인 게 아니었습니까?”

현준이 물었다. 애초에 지구에 있었던 인베이더 하렌은 현준에게 죽었고 두 번째로 소환된 걸로 보이는 두 명의 인베이더 역시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그들이 끝이 아니라고?

“그들이 전부는 아니었을 겁니다. 일부가 거점을 공격하는 동안 남은 인원이 ‘선봉지휘부’를 세웠겠지요. 아주 간단한 양동 작전입니다. 물론 이걸 예상하지는 못했겠지만요.”

“선봉지휘부라는 게 정확히 뭡니까?”

“마수를 마구 뱉어내는 차원 관문을 가진 거점을 말합니다. 이해하기 참 쉽죠?”

“차원 간의 연결을 고정시켰다는 말이에요? 그러면 침략사령부의 본대도 상륙하는 거 아닙니까?”

만약 그렇다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현준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지만, 다행히 질드레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차원 간의 연결이 고정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손실율은 굉장한 수준이고 침략사령부와의 직접적인 연결은 아니라서 본대가 건너올 일은 없습니다.”

“다행이네요.”

“과연 다행일까요? 일단 차원 관문이 고정된 만큼 지속적으로 균열이 확장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침략사령부의 상륙도 멀게만 느껴질 일이 아니지요. 이대로 방치하면 끔찍한 역사가 되풀이될 것입니다.”

질드레의 목소리에서 깊은 슬픔이 묻어 나왔다. 그제야 현준은 뒤늦게 깨달았다.

눈앞에 보이는 이 미치광이 또한, 그들에게 소중한 사람들을 잃은 ‘피해자’라는 것을. 단치히와 마찬가지로 처참한 기억만 간직한 채 최후를 맞이했다는 것을.

“처리해야겠네요. 선봉지휘부의 위치 정보는요?”

“아쉽게도…… 우리의 전지전능한 ‘전생’인 데우스가 거기까지는 파악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사실, 선봉지휘부가 세워졌다는 것도 그나마 외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데우스가 아니었다면 알아내기 힘들었을 테지요.”

선봉지휘부의 존재를 파악하는 것은 전생 중에서도 가장 신에 가까운 존재였던 데우스라서 가능한 일이었다는 것. 질드레의 말을 요약하자면 그렇다.

“그렇다면 선봉지휘부의 위치는 어떻게 해야 파악할 수 있습니까?”

보이지 않는 적을 상대하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다.

“마수를 토해내는 차원 관문을 두고 있으니, 선봉지휘부가 세워진 곳은 난리가 날 겁니다. 단순히 ‘위치’를 파악하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을 겁니다. 문제는 ‘파괴’를 하는 것이지요.”

차원 관문의 규모가 어느 정도일지가 문제다.

“저 혼자서는 힘들지도 모르겠네요. ‘군대’가 필요합니다.”

“당신에게는 이미 ‘무한의 군단’이 있지 않습니까?”

“그건 지금 쓸 수 없는 패입니다.”

군단 소환사, 아콘에게서 가호를 받을 때 전수된 지식의 조각에 의하면 ‘무한의 군단’을 일부라도 소환하려면 잠시나마 균열을 ‘강제 확장’할 필요가 있었다. 현준은 그 사정을 질드레에게 설명했다.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제가 균열을 잠깐이지만 강제로 열 수 있는 ‘술식’을 알고 있으니까요.”

“그런 술식이 있습니까?”

현준이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전생들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강대한 침략사령부조차 균열을 강제로 열지 못해서 이렇게 고생하는데?

“거짓말 같이 느껴지겠지만 사실입니다. 침략사령부에서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요.”

마도연합군이 전멸하고 사로잡힌 그에게서 균열 개방 술식을 알아내기 위해 끔찍한 고문을 가했다. 하지만 질드레는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끝까지 침묵을 지켰군요.”

“그렇습니다. 언젠가는 승리할 약속된 미래를 위해.”

“질드레…… 당신…….”

처음에 만났을 때는 그냥 미치광이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보니까 생각보다 멋진 ‘전생’이었다.

“이제 제가 오늘 왜 당신을 찾아왔는지 알겠지요? 저는 승리할 방법을 알려주러 온 거랍니다.”

감동은 오래가지 않았다. 질드레가 광적인 웃음을 흘리며 광적으로 손짓했으니.

“제가 뭘 해야 합니까?”

“이쪽으로 오시지요.”

먼저 발걸음을 옮기는 질드레. 현준은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넓은 방의 중앙에 도달했다.

철로 만든 탁자 위에 붉은 천에 덮힌 뭔가가 있었다. 질드레는 씨익 웃더니 붉은 천을 치웠다.

“검은 마정석…….”

현준의 눈동자가 일순간 살기를 머금었다.

“오늘은 이 친구를 연구할 겁니다.”

“그냥 알려주시면 안 되나요?”

순간, 날로 먹으려는 심리가 발동했다. 뒤늦게 입을 막았지만 쏟아진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저도 그러고 싶지만, 일부 정보가 제한되고 있는 상태라서 쉽지 않습니다. 선봉지휘부에 대한 정보도 처음 여기 왔을 때만 해도 알려줄 수 없는 정보였습니다.”

질드레의 말에 현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농담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질드레가 손짓을 하자 한쪽 벽면에 고정된 책장에서 마법서 수십 권이 날아와 현준의 앞에 놓였다.

“연구에 도움이 될 만한 술식이 적힌 마법서들입니다. 읽는 것을 권장하겠지만 강요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런데 검은 마정석의 분석이 균열 개방 술식과는 무슨 상관이죠?”

“잔말 말고 진행하세요. 다 도움이 되는 겁니다.”

마법서를 펼쳤다. 예상대로 복잡한 술식과 이론이 가득했다.

‘이거 한 권을 이해하는 것만 해도 세 달은 걸리겠네.’

현준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책을 덮었다. 앞에 놓인 책은 최소 20권. 게다가 전부 비슷한 수준도 아닐 것이다.

‘제기랄, 머리털 다 빠지겠네.’

정신노동의 시작이다.

마법서를 읽기 전에 검은 마정석의 연구를 시작했지만, 관련 술식의 도움이 없으니, 진행이 더뎠다. 결국 현준은 다시 마법서를 집어 들었다.

그래도 이제는 술식과 마법 이론에 대한 지식이 꽤 쌓인 상태라서 그런지 마법서를 이해하는 게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정신력 소모는 어쩔 수 없지만.’

기계가 된 기분이다.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노력하세요.”

질드레가 말했다. 처음에는 비아냥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보니 격려였다. 현준은 더 힘내서 마법서를 읽고 검은 마정석을 분석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끝났습니다.”

분석이 끝났다. 현준이 지친 목소리로 말하자 질드레가 박수를 쳤다.

“축하합니다. 이제 당신은 검은 마정석을 ‘마력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겁니다.”

“설마…… 이걸 분석하게 한 이유가…….”

“균열 개방과 소환 보조 같은 술식을 알려주기 전에 ‘마력 부족’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익힐 필요가 있었지요.”

나름 질드레의 빅픽처였다.

“자아. 이제 눈을 뜨면 많은 것이 달라질 겁니다. 술식은 제가 바로 전달해드릴 테니…….”

질드레가 씨익 웃었다.

“눈을 뜰 시간입니다.”

그리고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익숙한 천장이 눈에 보였다. 그리고.

-진리에 닿은 미치광이, 질드레의 도움으로 소환 마법의 진리를 조금 더 엿보았습니다. 황제의 통솔력이 강화되었습니다. 친위대의 충원이 가능합니다.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과 함께 균열 개방과 소환 보조 술식에 대한 지식이 뇌로 쏟아져 들어왔다. 마치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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