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6
38장 선봉지휘부(1)
‘시험 내용은 간단하다네. 개한테 ‘목줄’을 채우는 것이지.’
아콘이 그렇게 말할 때만 해도 별거 아닌 시험일 것이라 생각했다. 현준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콘은 마법을 펼쳤고 현준은 낯선 곳에서 눈을 떴다.
“저 동굴 안에 잠들어 있는 개의 목에 이걸 채우면 된다네.”
옆에는 아콘이 있었다. 그는 현준에게 튼튼해 보이는 목줄을 건넸다.
“혹시 모르니까 여기 무기도 들고 가보시게.”
“무기요?”
“그래. 카르타고, 그리고 시든밀러의 밑에서 수련했으니, 검과 방패를 가지고 가는 게 좋을 것 같군.”
바닥에 놓여 있는 장비 더미에서 검을 챙겨서 건네주는 아콘의 모습에 현준은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꼈다.
‘개 한 마리 잡으러 가는데 칼이랑 방패까지 준다고?’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드래곤 같은 게 있는 건 아니겠죠?”
“걱정 마시게. ‘드래곤’은 아니니까. 그리고 미리 말해주는데, 안에서는 데우스가 개입하지 않는 한 가호를 사용할 수는 없을 것이네.”
아콘은 씨익 웃었다.
“일단은 알겠습니다.”
현준은 고개를 끄덕인 뒤, 동굴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넓은 입구를 넘어서자 벽을 따라 줄지어 붙어 있는 마법등이 차례대로 켜졌다. 불빛은 희미했지만, 시야를 확보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정도였다.
“기척은 없나……?”
깊은 곳으로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지만 소름 끼칠 정도로 고요했다.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거야?’
지옥참마도 만큼은 아니었지만, 현준의 기척 감지 능력도 뛰어난 편이었다.
꽤 깊이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두 가지 경우를 예상할 수 있다.
하나, 아콘이 말한 개가 훨씬 깊은 곳에 잠들어 있을 경우.
둘, 그 개가 ‘완전 은신’을 사용하여 기척을 지우고 있을 경우.
‘두 번째 경우는 생각하고 싶지 않아.’
S급 이상의 헌터 중에서도 극소수만의 기술인 ‘완전 은신’을 사용하는 개라니,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런데 그것이…….
“현실로 일어났습니다. 제기랄!”
갑작스럽게 감지된 살기와 기척에 현준은 황급히 옆으로 몸을 던졌다.
콰앙!
굉음이 터져 나왔다. 조금 전까지 그가 있던 곳에 거대한 짐승의 앞발 같은 게 보였다.
“오러라고?”
발톱에서 오러가 일렁이고 있다. 게다가 흙먼지가 걷히면서 드러난 모습을 자세히 보니 개가 아니라 늑대였다. 그것도 아주 거대한.
“이 영감이 약을 팔다니!”
현준의 검과 방패에서도 오러가 깃들었다. 가호를 사용한다면 더 강력한 오러를 일으킬 수 있겠지만 아쉽게도 아콘의 말대로 전생의 마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크르르릉.”
늑대가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울음소리를 낮게 깔았다. 피처럼 붉은 눈동자에 시선이 닿은 순간.
“쿠, 쿨럭!”
몸이 경직되면서 입 밖으로 새빨간 피가 쏟아져 나왔다. 마력 방출로 경직 상태를 강제로 풀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려는 순간,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허억!”
정신을 차려 보니 눈앞에 아콘이 있었다.
“어땠는가? 우리 펜리르는?”
히죽거리며 웃는 모습에 현준은 그의 안면에 주먹을 날리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억눌러야만 했다.
“개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군요.”
“개…… 에 가깝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했다네. 한창 말을 잘 들을 때는 애교가 많았거든.”
“무력 수준은 어느 정도입니까?”
현준은 금세 감정을 정리하고 당장 알아야 할 정보에 대해 질문했다. 펜리르가 지금의 자신보터 아득할 정도로 강하다는 것 정도는 현준도 인지했지만 정확한 수준까지는 짐작이 되지 않았다.
“자네의 세계에서는 SSS급이 최고의 경지였지?”
“예.”
현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아콘은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 세계는 그 위의 경지가 있다네. 펜리르 정도면 그중에서도 제일 낮은 위계에 속하지.”
“SSS급보다 한 단계 높은 경지라…….”
“너무 걱정하지 말게. 지금 펜리르는 예전의 기억을 조금 가지고 있으니 진심을 다하지는 않을 것이야.”
진심을 다하지 않을 거라고? 방금 전에 머리가 날아간 건 환상이었다는 말인가?
“계속 그렇게 있을 텐가? 전생의 방에서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고 하지만 너무 여유롭군.”
아콘이 은근히 압박을 넣는다. 현준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바닥에 널브러진 검과 방패를 집어 들고 동굴로 다시 들어갔다.
긴장한 표정으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이번에도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사신의 가호가 없는 상태에서 ‘완전 은신’을 알아채는 건 쉽지 않았다.
“크아아악!”
그리고 결국 이번에도 머리가 날아갔다.
“허억!”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아콘 앞이었다.
“115번째이라네.”
아콘은 친절하게도 펜리르에게 목숨을 잃은 횟수를 말해줬다. 어렸을 때부터 노인 공경에 대해 배우지 않았다면 욕설이 튀어나왔을 정도로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200번 안에 목줄을 채운다.’
굳은 다짐과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크윽!”
200번째도 실패했고 다시 아콘의 앞에서 눈을 떴다.
“할 만한가?”
“목줄을 걸지는 못했지만 상처를 내는 건 성공했습니다.”
“상처를 냈다고?”
아콘이 깜짝 놀라서는 질문했다.
“펜리르의 털은 마력을 머금게 되면 오러 블레이드도 막아내는 갑옷이 된다네. 그 단단한 갑옷을 뚫었다는 말인가?”
“갑옷을 뚫은 게 아닙니다. 빈틈을 노렸던 거죠.”
“펜리르는 엄청 빠르다네…… 넓다고는 하지만 동굴 안이니 초음속의 속도는 내지 못했겠지만, 빈틈을 찾아내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
“그래도 불가능한 건 아니더군요.”
현준의 대답에 아콘은 열린 입을 좀처럼 닫지 못했다. 한정된 공간이라고는 하지만 고속 이동을 펼치는 펜리르의 빈틈을 찔렀다고?
전생 시스템의 선택을 받은 환생이 한 말이 아니었다면 쉽게 믿지 못했을 것이다.
‘동료들이 극찬을 하고 하사신이 희생을 한 건 역시 이유가 있었군.’
아콘은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이번 환생은 천재일지도 모른다.’
그에겐 재능이 있었다.
‘이번에는 정말 가능할지도 모르겠군.’
아콘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얼마 남지 않았군.”
“그게 무슨 말입니까?”
다시 검과 방패를 챙겨 들고 동굴을 향하려던 현준은 아콘의 중얼거림을 듣고 발걸음을 멈췄다.
“말 그대로라네. 펜리르가 갖춘 오러 아머의 빈틈을 찔렀다는 건, 슬슬 그 녀석의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걸 의미한다네. 빈틈을 찾아낼 능력이 있다면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더라도 목줄을 채울 수 있겠지.”
“그런가요?”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가지게. 자네는 강해.”
“그랬으면 좋겠네요.”
현준은 희미한 미소를 흘리며 다시 동굴로 들어갔다.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니 펜리르가 보였다. 이번에는 완전 은신을 사용하지 않았다. 앞다리에 붉은 혈선이 그어져 있는 게 보였다.
‘회귀의 개념은 아닌가 보네.’
아콘이 시간을 되돌렸다면 펜리르의 상처도 회복되었을 것이다.
‘가능성이 보인다.’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다시 한번 제대로 간다.’
마력을 일으켜 신체를 강화하자 펜리르가 으르렁거리며 다가왔다.
‘물러나지 않는다!’
결심을 다잡은 순간.
-데우스의 절대적인 의지가 운명에 간섭합니다. 섬광의 창기병이 결계를 뚫고 당신에게 가호를 선사합니다.
전생의 폭발적인 마력이 느껴졌다. 전생의 간섭은 불가능한 게 아니었나? 그러고 보니 데우스라면 간섭할 수도 있을 거라고 아콘이 말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는 가능할지도 몰라.’
200회가 넘는 도전 중에 데우스의 가호가 발현된 건 처음이었다. 하나의 가호를 불러오는 것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는 걸 현준은 알고 있었다.
-라이키리의 빛이 당신을 아득한 저편으로 인도합니다. 빛과 함께 한줄기의 섬광이 되어 적을 꿰뚫으세요.
빛이 깃들었다. 눈을 깜빡였더니 어느새 그는 빛의 군마 위에 타고 있었고 오른손에는 전격을 머금은 랜스가 들려 있었다.
“가자!”
빛의 군마가 가속했다. 찰나의 순간, 초음속을 돌파하면서 소닉붐이 터졌다.
동굴 전체가 굉음에 휩쓸려 뒤흔들렸고 순간 암전된 시야가 회복되었을 때 펜리르의 몸을 관통한 랜스가 보였다.
파지지직!
랜스에서 발생한 전격이 펜리르의 몸을 일순간 마비시켰다. 그 순간 현준은 직감했다.
‘지금이 기회다!’
왼손은 목줄을 펜리의 목에 채웠다. 경직이 오래가지는 않았지만 서두른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타이밍을 맞출 수 있었다.
목줄을 채우고 봉인 술식을 시행한 순간, 눈앞에서 섬광이 터져 나왔다. 백색으로 물들었던 시야가 정상으로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광경은 아콘의 얼굴이었다.
“살아 있는가?”
“예. 살아 있습니다.”
“다행이로군.”
현준의 상태를 살피던 아콘은 기어이 대답을 듣고 나서야 뒤로 물러섰다.
“제가 성공했습니까?”
현준의 물음에 아콘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네. 펜리르는 다시 나의 소환수가 되었고 자네는 시험에 합격했다네.”
“군단을 동원해도 될 텐데, 왜 굳이 저를 보낸 겁니까?”
“그럼 재미없잖아.”
“네?”
그의 대답을 들은 순간 솔직히 잘못 들었나 싶어서 귀를 의심했다.
‘이 영감탱이가?’
표정이 썩어들어갔지만 아콘은 개의치 않고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시험에 통과했으니 이제 보상을 줄 시간이군.”
기다리던 보상의 시간이다. 아콘은 품속에서 꺼낸 목줄을 현준에게 건네주었다. 목줄은 손에 닿기 무섭게 선명한 청색의 빛을 내뿜더니 현준에게 흡수되어 버렸다.
-소환사의 목줄이 영혼에 귀속되었습니다. 휘하 소환수들에 대한 지배력이 강화됩니다. 다크 플레임 드래곤 3세가 가지고 있던 반역의 감정이 소멸합니다.
플레임 이 녀석,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구나! 귓가에 파고드는 익숙한 목소리에 현준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아무래도 고등 지식을 가지고 있는 소환수답게 남몰래 반역을 기획하고 있었던 모양인데, 그것도 지금 현준이 ‘소환수의 목줄’을 얻으면서 끝이 났다.
“반가웠던 잠깐의 만남도 이제 끝이로군. 자네가 나를 필요로 한다면 다시 만날 수 있겠지.”
“기회가 된다면 또 뵙겠습니다.”
결과적으로 좋은 보상을 받았으니 짜증도 눈 녹는 것처럼 사라졌다.
“군단이 자네와 함께할 것이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 * *
“이 몸은 다크 플레임 드래곤 3세. 어둠의 불꽃을 지배하는 붉은 눈의 흑룡이다.”
보름달 아래, 검은 옷을 입은 플레임이 서 있다. 그는 난간에 기대어 아래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본관을 경비하는 무장 병력이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개미 같은 존재들이로다. 이 몸은, 절대로 저런 개미 같은 족속들에게 굴복하지 않는다!”
등 뒤로 검은 날개가 돋아났다.
“난! 자유를 찾아 떠난다!”
날개를 펄럭이자 작은 몸이 밤하늘로 솟구쳤다. 순식간에 높은 고도에 진입한 그가 마법진을 그리려는 순간.
-소환수의 목줄이 소환사에 대한 반역 의사를 제거합니다.
갑자기 들려온 음성과 함께 목에 푸른 빛의 띠가 둘러졌다. 마치 목줄처럼.
“으, 으악!”
전신에서 힘이 빠져 다시 본관 옥상으로 추락했다. 지면에 닿기 직전에 플라이 마법을 사용하여 간신히 충격은 피했다.
“플레임.”
귀에 익은 목소리. 플레임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 현준이 있었다.
“어딜 도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