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만 전생이 날 도와줘-117화 (117/217)

# 117

34장 박멸하라(4)

“여기가 한국인가?”

UN 전세기에서 내린 검은 선글라스의 남자가 혼잣말을 내뱉으며 주변을 살폈다.

그의 이름은 스미스. UN 정찰조사국 소속의 상급 요원이다. 그의 뒤로 검은 정장을 입은 남녀 수십 명이 계단을 따라 줄지어 내려오고 있었다.

“스미스 요원님. 이번 임무는 무엇입니까?”

정장 무리에서도 직급이 높아 보이는 여성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물었다. 그녀는 UN 무장집행국 소속이었고 뒤에는 두 기관의 요원들이 섞여 있었다.

“혈맹과 결탁한 국가 고위층의 정리다.”

“혈맹이라면 검은 마정석을 사용하는 테러 집단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악독한 놈들이지. 현재 대한민국의 혈맹 세력은 강현준 위원님의 활약 덕분에 많이 노출된 상태다. 이참에 뿌리를 뽑아 버려야 한다.”

스미스가 말했다. 그는 혈맹과의 전투에서 많은 동료가 잃었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증오가 하늘을 찌를 정도로 높았다.

혈맹에 대한 증오로 물든 연설을 하던 스미스는 활주로에 가까워지는 다수의 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붉은 제복을 입은 친위대의 호위를 받으며 다가오는 현준의 모습이 보였다.

“저분이 강현준 위원님이시다.”

요원들을 향해 현준을 소개하는 스미스의 목소리에서는 경외를 넘어서 광신에 가까운 감정이 묻어 나왔다.

현준은 혈맹과 최전선에서 싸우는 UN 무장집행국에서도 유명인사였다.

특히 그의 영향으로 일본의 혈맹 세력이 전멸했다는 건 비밀도 아니었다.

스미스에게 있어서 혈맹원들을 도륙한 사람은 ‘믿어도 좋은 사람’이라는 판단 척도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일본의 혈맹 세력을 전멸시키고 한국 내부에서 암약하는 이들도 수면 위로 끌어 올린 현준에 대해 광신에 가까운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모두 강현준 위원님을 존경하고 따라라. 언제나 앞장서서 혈맹을 토벌하고 계신 분이시다!”

우렁찬 목소리로 말하는 스미스. 빠르게 거리를 좁히던 현준은 그 말을 듣고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뭐지? 세뇌 술식을 걸어둔 기억은 없는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친위대 수준의 광신도가 탄생해 있었다.

* * *

“괜찮을까요?”

거친 인상의 사내가 외모와는 달리 소심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앞에 앉아 있는 진혁은 술잔에 양주를 채우며 입을 열었다.

“집행부장은 뭐가 그렇게 걱정인가? 조사 권한을 가진 특수 경찰국이 우리 편을 들고 있다네. 지금 내 저택을 보호하고 있는 특수 경찰 병력을 보면 모르겠는가?”

진혁이 창밖을 가리켰다. 넓은 저택의 정원에는 순찰 돌고 있는 특수 경찰관들의 모습이 보였다.

“뇌물을 많이 처먹기는 했지만 아깝지 않단 말이지.”

진혁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오성이나 제일 만큼은 아니지만 대한 그룹도 한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대기업인 만큼 국내의 여러 기관에 대한 영향력이 컸다. 그들의 돈을 안 받아먹은 곳을 찾기 힘들 정도.

“그나저나 밖이 소란스럽군. 시위라도 있는 건가?”

언론전이 한창이었기 때문에 간혹 시위대가 지나가기도 했다. 오늘 오전에도 그랬다.

그래서 진혁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그의 앞에 앉아 있는 집행부장은 달랐다.

“시위가 아닙니다. 마력 반응이 있습니다.”

그는 무전기를 들어 올려 부하들을 호출했다. 문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집행부 헌터 3명이 들어와 주변을 경계했다.

“상황을 보고하라.”

무전기로 저택 경비 책임자를 호출했다.

-다수의 헌터들이 저택 대문에서 뭔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소속을 물어봐도 대답이 없습니다! 내려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가겠다.”

통신이 종료되고 집행부장이 진혁에게 다가갔다.

“회장님. 상황을 살피고 오겠습니다.”

“별일은 없겠지만 그렇게 하게나.”

잔뜩 긴장한 집행부장과 달리 고진혁 회장은 여유를 잃지 않았다.

“너희는 회장님을 지켜드려라.”

“예, 알겠습니다.”

부하들의 대답을 뒤로 한 채 집행부장은 저택 대문으로 이동했다. 저택 경비 책임자의 보고대로 선글라스를 끼고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대문 앞에 모여 있었다.

특이사항이 있다면 그들 대부분이 외국인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뭡니까? 소속이 어디에요?”

집행부장이 물었지만, 대답은 없었다.

“이 새끼들이…….”

그는 화를 내려 했지만 이내 더 좋은 방법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특수 경찰 간부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손을 들어 올리자 경위 계급의 특수 경찰 간부가 달려왔다.

“지금 사유지에 무단출입했습니다. 당장 해산하지 않는다면 무력을 동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단호하게 말하는 경위. 하지만 검은 정장의 무리는 물러나지 않았다. 대신 무전기를 통해 어떤 지시를 전달받고 양옆으로 갈라졌다.

“대한민국을 지키는 특수 경찰이 언제부터 재벌의 개가 되었나?”

날카로운 비판과 함께 가로등 불빛 아래로 누군가 나타났다. 그는 너무나도 유명인사라 특수 경찰은 물론 저택을 지키는 헌터들 또한 한눈에 알아보았다.

“SS급 헌터 강현준!”

“여긴 대체 왜…….”

헌터들이 동요했다. 50명이 넘는 인원이 저택을 지키고 있지만, 현준과 전투 상황이 발생하면 이길 수 없다는 걸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나마 국가 기관인 특수 경찰국의 병력이 이곳에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제아무리 SS급 헌터라도 국가 기관의 병력을 모조리 죽여 버릴 수는 없을 테니까.

“‘개’라니…… 말씀이 너무 지나치군요. 강현준 헌터.”

경위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도 국가 기관인 특수 경찰 소속이라는 자신감 때문일까? 감히 현준의 앞을 막아섰다.

“그건 중요한 게 아니지. 어서 비켜.”

“당신이 SS급 헌터라고는 하지만 여긴 사유지이고 필요에 의해 특수 경찰의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침범하시려면 저희를 상대해야 할 겁니다.”

“그렇다는 말이지?”

더 이상 말씨름할 필요가 없다. 그에게는 특수 경찰들을 물러나게 할 방법이 있었으니까.

“스미스 요원.”

통역 술식의 힘을 빌려 영어로 스미스를 호출했다. 검은 선글라스를 낀 요원이 다가와 가바엥서류 1장을 꺼내서 경위에게 건네주었다.

“이, 이건 대체…….”

서류 내용은 한글로 적혀 있다. 그것을 읽은 경위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으니까 대충 알려줄게. 현 시간 이후, 이곳 저택을 경비하는 모든 특수 경찰관의 직위를 해제하고 권한을 해제한다는 내용이다. 덧붙이자면 우리들의 권한 집행을 방해하면 혈맹과 관련된 위험인물로 판단될 테니까. 조용히 물러나는 게 좋을 거다.”

유사시에는 교전도 기꺼이 감수할 생각이다. 허리에 찬 지옥참마도의 검 자루에 손을 얹으며 살기를 끌어 올렸다.

저번에 전력을 다해서 살기를 뿜어냈을 때 심장마비에 걸려 쓰러진 헌터도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적당히.

“큭!”

“흐어억!”

효과는 굉장했다!

가볍게 풀어 놓았을 뿐이지만 앞을 막아선 대부분의 헌터들이 심장을 부여잡고 비틀거렸다.

그나마 등급이 높은 편인 집행부장은 버티긴 했지만, 현준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괴, 괴물…….”

그는 보았다. 풀어 놓은 살기 너머에 있는 원천을 조금이나마 엿보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심연이었다. 헌터로서 S급 던전을 공략할 때조차 몰랐던 공포가 전신을 침식했다.

“집행부장님. 저희는 어떻게 합니까?”

“교전하는 겁니까?”

부하들이 바짝 붙어 질문했다. 특수 경찰관들은 명령서를 받아들고 살기를 맞이한 순간부터 해산 절차를 시작했지만, 그의 부하들은 그래도 집행부 소속이라고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목숨은 하나밖에 없으니까 신중하게 결정해.”

“크, 크윽…….”

현준은 갈등하는 집행부장을 보며 충고했다.

“무, 물러난다!”

특수 경찰 병력이 퇴각했다. 그런 상황에서 SS급 헌터를 상대로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집행부장의 지시가 전달되자 대문을 막고 있던 헌터들이 길을 열었다.

“경계를 늦추지 마세요.”

물러나는 척하고 뒤에서 기습해올 수도 있다. 현준의 말에 요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만약의 사태가 벌어지는 것에 대비했다.

요원들은 넓은 저택을 순식간에 장악했다. 검은 정장을 입은 이들은 집행부 헌터들의 무장을 해제시키고 감시하기 쉽도록 한곳에 몰아 두었다.

“위원님. 저택을 장악했습니다. 이제 서재만 남았습니다.”

“그쪽으로 가죠.”

스미스 요원의 보고를 들은 현준이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오기 전에 설계도를 본 덕분에 저택의 구조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이윽고 서재에 4층의 서재 앞에 도착했다. 스미스가 문을 열려고 했지만 잠겨 있었다.

“파괴하세요.”

지시를 내리자 스미스가 마력을 일으켰다. 콰앙! 하는 폭발음과 함께 문이 박살 났다.

“죽어라!”

흙먼지와 함께 흩날리는 나무 조각의 파편을 뚤고 검은 인영 둘이 불쑥 튀어나왔다.

‘B급 정도인가?’

지옥참마도를 뽑을 필요도 없었다. 한 명은 스미스가 내지른 전격의 창에 관통되어 강한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졌고 남은 하나는 현준의 손아귀에 목이 붙잡혔다.

“커, 커헉!”

목이 붙잡힌 헌터가 고통에 찬 신음을 토해냈다. 어깨너머로 당황한 듯한 표정의 고진혁 회장의 모습이 보였다.

현준은 그를 보며 씨익 웃어 보였다. 보는 이로 하여금 공포를 불러일으킬 만한 살인 미소였다. 동시에 붙잡힌 헌터의 목이 꺾였다.

“돌입!”

무장한 요원 셋이 먼저 서재 안으로 진입했다. 남은 한 명의 집행부 헌터는 저항을 포기했다.

그가 구속되어 밖으로 이송되는 동안 현준은 진혁에게 몇 걸음 다가갔다. 입가에는 여전히 섬뜩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잘 지내셨나? 표정을 보니까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옆에 있는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왼손은 허리에 찬 지옥참마도의 검 자루에 얹은 채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특수 경찰을 방패로 세우면 무사할 거라고 생각했어?”

“ SS급 헌터라고는 하지만 특수 경찰국에 이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수라 길드 사무소 단지를 밀어 버릴 때 수방사와 특수 경찰국의 병력이 동원되었다고는 했지만, 단순히 협조를 받았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보니까 특수 경찰국장보다 높은 위치에 군림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전화를 한 통만 쓰게 해주겠나?”

“마음대로.”

그래 봤자 변하는 건 없겠지만이라는 말을 속으로 삼키며 요원 중 한 명의 스마트폰을 빌려주는 현준이었다.

진혁은 황급히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응답은 없었다. 그의 얼굴이 절망에 물들었다.

“특수 경찰국장한테 전화를 걸었겠지?”

“그, 그걸 어떻게…….”

안 봐도 비디오다.

“네가 그렇게 돈을 먹인 특수 경찰국장은 체포에 불응하여 저항하다가 사살되었으니까. 포기하는 게 좋아.”

“트, 특수 경찰국장을 사살했다고?”

진혁은 당황했다. 이런 미친 경우가 있나?

“네, 네놈! 대체 정체가 뭐냐? 대한민국 법이 두렵지도 않으냐?”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터져 나오는 걸 간신히 참았다. 그러면 너희들이 해온 짓은 뭔데? 현준은 싸늘한 미소를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

“나? 법 위에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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