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만 전생이 날 도와줘-115화 (115/217)

# 115

34장 박멸하라(2)

“전진!”

2개의 검은 깃발을 앞세우고 2백명의 혈맹원들이 빠른 속도로 전진하고 있었다.

그들이 달리는 속도는 시속 30㎞를 넘어서고 있었다. 인간의 한계를 넘은 이동속도는 그들이 헌터라는 걸 대신 말해주고 있는 듯했다.

“전속으로 목표 지점까지 이동한다!”

지휘를 맡은 집행관 계급의 혈맹원이 외쳤다.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무리는 달리는 속도를 더욱 높였다.

도로는 열려 있었고 그들의 앞을 막는 장애물은 없었다. 집행관은 이대로 교전 없이 지휘소에 도달할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생각보다 간단하군.’

임무나 너무 쉬워서 하품이 나올 지경이다. 하지만 왜일까? 지휘소와 가까워질수록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이 그의 전신을 휘감았다.

‘이 불안은 대체…….’

차가운 공기를 타고 희미하지만 날카로운 살기가 폐를 찌르는 듯했다.

“총원 정지! 방어 태세를 갖춰라!”

본능이 경고했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고. 집행관은 두려움을 잊기 위해 거칠게 고개를 저으며 외쳤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 당장 병력을 멈추고 방어 태세를 갖춰야 할 것 같았다.

“정지! 방어 태세!”

명령이 전달되고 대열이 멈춘 순간. 어두운 밤하늘이 오렌지빛으로 물들었다.

“마, 마력 반응!”

“마법입니다!”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지는 수백 개의 화염구. 일반적인 파이어볼과는 달랐다. 크기와 머금고 있는 마력, 그리고 속도까지 3배였다.

“토, 통상 3배의 스피드!”

누군가 외쳤다.

“막아!”

“실드!”

마법계 헌터들이 일제히 방어 마법을 전개했지만 수백 개의 강화 파이어볼을 버텨내는 건 무리.

화염구가 연이어 방어막을 두들기자 유리창 깨지는 소리와 함께 허무하게 박살 났다.

콰콰쾅!

단숨에 진형이 휩쓸렸다. 여기저기 옮겨붙은 불꽃은 자유의지를 가진 정령처럼 춤을 추더니 옆에 있는 혈맹원을 덮쳤다.

“부, 불의 정령?”

“불꽃이 살아 있다!”

“모두 조심해!”

혼란 속에서 대열이 무너졌다. 하지만 재앙은 끝나지 않았다.

“아악!”

“커헉!”

핏줄기가 솟구쳤다. 하나가 아니다.

“화염은 교란이다! 전원 4인 1조로 기습에 대응하라!”

혈맹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4인 1조의 진형으로 재정비하여 사방을 경계했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춤추는 불꽃 때문에 사주 경계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크아아악!”

시간이 지날수록 쓰러지는 이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도대체 어디서!”

비명 소리가 들리는 곳에 도착하면 시체만 남아 있다. 기척이 감지되는 건 일순간이고 정밀 탐지를 시도하면 연기처럼 사라진다. 신출귀몰한 게 귀신이 따로 없다.

“집행관님! 벌써 절반이 당했습니다!”

눈을 깜빡이면 서넛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1백 명이 넘는 인원이 시체가 되어 있었다. 불에 탄 이들도 있었지만, 그 수가 적었다. 대부분이 날카로운 뭔가에 당했다.

“집행관님! 이대로는 전멸합니다!”

“지시를 내려주십시오!”

부관직을 맡은 기사 계급의 혈맹원 2명이 재촉했지만, 머리는 새하얗게 물들고 있었다.

가면 안에 숨겨진 얼굴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대, 대체 어떻게 해야…….”

“집행관님! 벌써 30명이 더 죽었습니다!”

“마, 마력 탐색을 실시하라!”

“적은 완전 은신 능력자로 보입니다! 마력 탐색은 의미 없습니다!”

“제기랄! 대체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말이야!”

집행관이 울분을 토했다. 실력 위주로 움직이는 혈맹 내부에서도 낙하산이라는 게 존재했다.

지금 이곳에 있는 집행관 또한 낙하산의 혜택을 받은 이들 중 한 명이었다.

교육을 받기는 했지만 갑작스러운 변수에 대응할 정도로 머리가 좋지 않았다.

“무, 뭉쳐라!”

“뭉치면 화염에 당합니다!”

“이런 제기랄! 저 은신 쓰는 놈은 내가 직접 처단한다!”

검을 뽑아 드는 집행관. 비록 낙하산이기는 하지만 스스로는 정식으로 임명된 집행관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만만하게 진형 밖으로 튀어나갔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목에 붉은 실선이 그어졌다. 핏물이 튀더니 그것은 이내 분수가 되었다.

푸슉! 하고 핏줄기가 솟구치면서 집행관의 몸이 힘없이 무너졌다.

“집행관님께서 당하셨다! 총원 후퇴한다!”

교전 능력을 상실한 지 오래다. 지휘권을 이어받은 기사는 후퇴를 결정했지만, 황급히 진형을 이탈하는 그들의 앞을 막아서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중세 시대에서나 볼 법한 붉은 제복을 입고 있었다.

“뭐, 뭐야 이것들은……?”

황급히 전투 자세를 갖추는 혈맹원들. 붉은 제복을 입은 이들이 입을 열었다.

“황제 폐하께서 섬멸을 명하셨다.”

“영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라.”

그들은 현준의 친위대였다.

“공격!”

마법이 빗발치고 친위대원들이 무기를 휘두르며 전진했다.

혈맹원들은 저항했지만 거듭된 공격으로 그들의 수는 크게 줄어 있었고 친위대가 더욱 정예화된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얼마 버티지 못한 채 전멸하고 말았다.

“황제 폐하! 적들을 섬멸하였습니다!”

친위대장 사혈이 얼굴에 시뻘건 피를 잔뜩 묻힌 채 목소리를 높였다.

“수고했다.”

어둠 속에서 현준이 나타났다. 혼자서 2백 명에 가까운 적들을 휩쓸었음에도 몸에는 피 한 방울 안 묻어 있었다.

“사혈, 너는 친위대랑 돌아가서 저택을 지켜. 소진이 누나랑 동생들을 부탁한다.”

“저와 친위대가 목숨을 걸고 지킬 것입니다.”

길드 사무소 단지에 무장 병력이 지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저택 주위에는 집행부 헌터들 다수가 배치되어 있었지만, 혈맹의 대대적인 공격이 있다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

“좋아.”

사혈의 대답을 들은 현준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지휘소로 복귀했다.

“적은 모두 처리했습니다.”

지휘소로 복귀한 현준이 가장 먼저 한 말이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2백 명을 단신으로…….”

일반 무장 병력이 아닌 헌터 200명이다. 그들을 단신으로 처리했다고?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들이었지만 레이더에 마력 반응은 분명히 사라졌고 탐지를 맡은 마법계 헌터도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적이 전멸한 건 확실했다.

별다른 말은 없다. 지휘소의 사람들은 현준을 향해 경의를 담은 시선을 보내며 고개를 숙였다.

호위 병력이 거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200명의 헌터 병력이 곧장 지휘소를 공격했다면 떼죽음을 당했을 것이다.

“아수라 길드와의 전투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비교적 무덤덤한 표정으로 현준이 질문을 던졌다. 전술 지도를 살피고 있던 대위가 황급히 달려와 경례와 함께 입을 열었다.

“본관 건물의 잔당과 대치 중입니다.”

“건물을 무너뜨리세요.”

“예?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어차피 인질들은 전원 구출했잖습니까. 항복 권고 방송 2번 정도 하고 응답 없으면 날려버리세요.”

냉정하지만 아군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효율적인 판단이다.

“즉각 전달하겠습니다!”

대위는 속으로 감탄하며 무전기를 집어 들었다. 이윽고 멀지 않은 곳에서 연이은 포성과 함께 건물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끝났군. 마력 반응이 느껴지지 않는다.

지옥참마도가 말했다. 현준은 조용히 의자에 앉아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아니, 이제 시작이야.”

* * *

레이스 부길드장 김태민은 조사에 착수했다. 현준은 ‘위원회’의 힘을 사용하여 그에게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본관 건물은 전투 중 포격을 받고 무너졌지만, 마법 덕분에 잔해를 정리하고 조사를 진행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부길드장님! 여기 뭔가 있습니다!”

1차 조사 보고서를 빠르게 훑고 있던 태민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향했다.

그는 발걸음을 옮겼다. 조사원이 다가와 뭔가를 건네주었다.

“비밀 장부인 것 같습니다. 강력한 암호 술식이 걸려 있습니다.”

“암호 술식?”

“예. 저나 조사대의 마법계 헌터들의 수준으로는 파괴하기 힘들 정도로 높은 수준의 술식입니다. 죄송합니다.”

“길드장님께서 술식 파괴가 가능하니까 상관없다.”

태민의 말에 조사원은 놀란 표정이 되었다.

“길드장님께서 술식 파괴도 할 줄 아십니까?”

“고등 술식도 쉽게 파괴하신다.”

“길드장님의 능력은 끝이 보이지 않는군요.”

“그래서 내가 존경하는 거지.”

짧은 대화가 끝나고 현준은 암호 술식이 걸린 장부를 가방에 집어넣었다.

이대로 현준을 찾아갈 생각이다. 마땅히 부하가 해야 할 일을 넘기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는 곧장 차를 타고 본관의 길드장 집무실을 방문했다. 현준은 마침 가볍게 몸을 풀 겸 길드의 A급 던전 공략을 지휘하고 돌아온 참이었다.

“저희 조사대의 수준으로는 풀 수 없는 암호 술식이 각인된 비밀 장부를 발견했습니다.”

조사대에는 위원 명령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수준 높은 마법계 헌터들도 모였는데 술식 파괴가 불가능할 정도라고?

“제가 확인해 볼게요.”

장부를 받아들고 살폈다.

‘고등 술식이 중첩되어 있잖아? 이 정도로 복잡할 줄이야.’

질드레의 개인 과외를 받은 현준조차 놀랄 정도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못 풀 정도는 아니지.’

그런 것이다. 마력을 일으키자 질드레의 가호가 반응했다.

-질드레의 어두운 지식이 당신을 보조합니다. 마법 술식의 분석을 시작합니다.

회로를 구성하는 마력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현준의 두 눈에 담겼다.

‘보인다. 보여.’

분석은 끝났다. 이제 파괴의 시간이다.

-질드레의 마력이 마법 술식을 침식합니다. 어두운 진리의 이름으로 마력의 강제 해산을 명령합니다.

파삭! 하는 소리와 함께 비밀 장부에 중첩된 암호 술식이 모조리 파괴되었다.

“암호 술식은 파괴했습니다. 일단 제가 한 번 훑어보고 조사대에 돌려줄게요.”

“역시 길드장님이십니다!”

태민의 두 눈이 반짝였다. 충성도 스탯이 있었다면 상승했다는 안내창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격한 리액션이었다.

굳이 스탯으로 충성도를 나타낸다면 태민은 이미 MAX를 찍지 않았을까?

“제가 1차로 검토하고 조사대에 넘기겠습니다.”

비밀 장부를 집어 들며 말했다. 암호 술식을 풀고 나니까 먼저 훑어보고 싶어졌다.

“예. 알겠습니다.”

“수고하세요.”

태민이 길드장 집무실을 떠나자 현준은 비밀 장부를 펼쳤다. 암호 술식이 파괴되면서 온전한 한글이 드러났다. 악필이었지만 알아보기 힘들 정도는 아니었다.

“뭔가 이상한데?”

읽을수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현준은 속독을 중단하고 다시 처음부터 정독을 시작했다.

날카로운 시선이 장부 내용을 훑을 때마다 입가가 씰룩이고 어깨가 들썩였다.

정독을 끝내고 장부를 덮었을 때 현준은 소름 끼치도록 환한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지금까지 에코 길드의 배후는 혈맹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 장부 안에 ‘배후’의 존재와 혈맹과의 연관이 모두 기록되어 있었다.

이걸로 두 세력은 대한민국에서 물러설 곳이 없다.

“이걸로 끝이다.”

눈동자가 싸늘하게 식었다.

-크큭. 드디어 흑염룡에 잡아 먹힌 건가? 유감이군.

지옥참마도는 자신의 주인이 미쳤나 싶어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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