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만 전생이 날 도와줘-114화 (114/217)

# 114

34장 박멸하라(1)

아수라 길드 비서실장과 정장을 입은 의문의 남자 한 명, 그리고 혈맹의 기사 계급 한 명은 특수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다.

현준은 송태식과 연계하여 철저하게 그들의 배후를 추적할 생각이었다.

“길드장님.”

오전 회의를 끝내고 나오는 현준의 앞에 어느새 회복을 끝낸 규환이 다가왔다.

“무슨 일인가요?”

“UN에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타이밍 좋네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이건 설계다. 은신처 습격이 있었던 다음 날 현준은 기자 회견을 열었다.

이유는 혈맹과 아수라 길드가 관계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였지만 사실상 UN에 정식 위원 임명을 서둘러 달라는 우회적인 압박이었다.

예전 기자 회견에서 ‘선동의 귀재’가 도와준 덕분에 현준은 여전히 세계가 주목하고 있었고 대한민국 유일의 SS급 헌터였기 때문에 목소리에 실리는 힘도 강했다.

그리고 이틀 만에 UN에서 이렇게 사람을 보내온 것이다.

방문자는 예전에 찾아왔었던 UN 집행관, 테일러였다. 그는 현준에게 보안카드와 단말기를 전달했다.

“이 보안카드로 위원의 신분을 증명할 수 있고, 단말기로 각 기관에 지시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간단한 설명. 테일러는 바쁜 일이 있는 것인지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서둘러 돌아갔다.

“단말기에 보안카드를 삽입하고 지시를 내리는 건가……?”

현준은 혼잣말과 함께 보안카드를 단말기에 삽입했다. 현준은 화면을 몇 번 터치하여 특수 경찰국과 수도방위사령부에 영상 통신을 연결했다.

-수도방위사령부입니다.

-특수 경찰국입니다.

두 기관이 응답했다. 각각 소령과 경위 계급의 간부가 단말기 화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위원회 전용 연락망을 관리하는 이들이다.

“위원회의 이름으로 우선 명령을 전달합니다.”

위원회의 권한으로 국가 기관에 전달할 수 있는 명령은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누어진다. 그중에서 ‘우선 명령’은 3번째로 높은 위치의 지령이며 국가 원수의 지시보다는 한 단계 낮게 취급된다.

-우선 명령이 확실합니까?

-어떤 상황인지 인지되어 있지 않습니다. 수방사 병력을 움직이려면 합당한 이유가 필요합니다.

국가 기관 아니랄까 봐 위원회의 이름을 빌려도 절차가 까다롭다. 수방사에서는 자료를 요청했지만, 상황을 인지하고 있는 특수 경찰국에서는 곧바로 행동할 기세였다.

‘국가 기관 간에 공조가 안 되나 보네.’

현준은 고개를 저었다. 제대로 된 연계가 있었다면 지금쯤 수방사에서도 정보를 입수했어야 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건가?’

관할이 다르니까 어쩔 수 없을지도. 현준은 짧은 한숨을 내뱉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특수 경찰국에서는 지금 당장 수방사의 담당 부서에 관련 자료를 전송하세요.”

-즉시 전송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전송에는 5분이 걸리지 않았다. 특수 경찰국에서도 서두른 모양이다.

-수도방위사령부입니다. 현 상황을 인지했습니다. 위원님의 지시를 기다립니다.

-특수 경찰국 역시 대기 중입니다.

준비가 끝났다.

“수도방위사령부와 특수 경찰국에서는 지금 당장 병력을 동원해서 아수라 길드 사무소 단지를 포위하세요. 명심하세요. 이건 ‘우선 명령’입니다. ‘긴급 명령’이나 ‘최고 명령’이 아니라면 최우선적으로 수행해야 할 겁니다.”

최고 명령은 국가 원수급만 가능하고 긴급 명령은 제한이 있으니 사실상 현재 수방사와 특수 경찰국 병력은 현준의 지시를 먼저 수행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군 병력을 이동하겠습니다.

-헌터 기동대를 투입하겠습니다.

명령이 전달되었다. 수방사와 특수 경찰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집행부장입니다. 긴급 상황입니다.”

문이 열리고 어두운 조명의 방으로 한 남자가 들어섰다. 안에는 2명의 남자가 5m 정도의 간격을 두고 앉아 있었는데, 희미한 빛 아래로 얼핏 드러난 표정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집행부장? 수도방위사령부에 내 명령을 전달해야 할 자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건가?”

“죄송합니다. 의원님. 수방사에 방문해서 전달했지만, 상위 명령이 하달되면서 기존의 지시가 묵살되었습니다.”

집행부장의 보고에 의원의 표정이 굳었다.

그는 수방사에 대한 직접 명령권은 없었지만, 수도방위사령관이 같은 조직, 이너서클의 회원이었기 때문에 독단적으로 일부 병력을 움직여줄 것이라 기대했었다.

그런데 우선 명령 때문에 묵살되었다고?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우선 명령? 그게 대체 뭐길래…….”

“저도 확실히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회장님. 하지만 확실한 건…… 수도방위사령관보다 윗선에서 내려온 명령이라는 겁니다.”

그들은 아직 위원회에 대한 정보를 거의 모으지 못했다.

“혹시 그 우선 명령의 내용을 알 수 있겠나?”

의원이 물었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저희에게 좋지 않게 흘러가는 건 분명합니다. 수방사의 군대와 특수 경찰국의 병력이 현재 아수라 길드 사무소 단지를 향해 움직이고 있는 중입니다.”

“뭐라고? 유석호가 우리랑 거래한 자료들 가지고 있을 텐데!”

비밀 거래를 한다고 해도 마지막 보험의 용도로 기록이나 장부 정도는 몰래 남기는 게 이 바닥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다.

아수라 길드에서는 일전에 비밀 장부의 존재를 부인했지만, 의원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장부 폐기를 요구했지만 거부했습니다. 아무래도 이걸 인질로 잡고 지원병력을 요청할 생각인 것 같습니다. 이미 혈맹 쪽에서는 병력을 보냈다고 합니다.”

혈맹은 벌써 움직였다.

“허어…… 상황이 좋지 않군요. 일단은 지원을 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1차 공격을 막아낸 다음에 그놈들을 정리할지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 같네요.”

회장이 말했다. 의원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쓸 만한 용병들이 있으니…… 그들을 보내야겠습니다. 우선은 우리가 1차로 병력을 보내고 조직에도 이야기해서 대규모 지원을 기획해야겠군요.”

“지원 보낼 병력의 지휘관한테는 장부를 확인하는 대로 파기하라는 지시를 내려둬야 할 겁니다.”

“동의합니다.”

은폐를 위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 * *

군 병력이 온다는 소식을 들은 길드 사무소 단지에서 근무하고 있던 아수라 길드원들이 대거 이탈했다.

시작은 비전투원들이었지만 군 병력이 거의 근접했을 때는 길드 직속의 무장 경비대와 집행부 일부 또한 도망쳤다.

집행부는 길드 내부에서도 충성심이 가장 강한 집단이었지만 군대가 오고 있는 상황이라 일부 인원이 도망치는 게 이상한 건 아니었다.

-무장을 해제하고 군의 조사에 협조하라.

3천 명의 군 병력이 아수라 길드 사무소 단지를 포위하고 항복을 권고하는 방송을 시작했다.

하지만 길드 사무소 단지에 남은 이들은 최후까지 싸울 것을 각오한 이들이었기 때문에 흔들리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반응이 없습니다.”

중위 계급의 장교가 보고했다. 현준은 차가운 시선으로 전방의 길드 사무소 단지를 훑으며 입을 열었다.

“비전투원은 얼마나 남아 있습니까?”

집행부나 무장 경비대 소속이 아닌 정규 길드원을 말하는 것이다. 아수라 길드원이라고 해서 모두 혈맹과 관련이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무작정 학살을 할 수는 없다.

“2백 명 정도의 인원이 인질로 잡혀 있는 걸 확인했습니다.”

중위가 보고했다.

‘자기 길드원을 인질로 잡다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인질 구출을 위해서는 정예 헌터 병력이 필요합니다.”

참모 중 한 명이 말했다. 정예 헌터 병력은 B급, 적어도 C급 이상의 헌터로 구성된 병력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특수 경찰국이 보유한 전력으로는 부족했다.

“인질 구출에는 레이스 길드 집행부가 나설 겁니다.”

규환이 말했다. 마침 이곳에는 레이스 길드의 집행부 헌터 30명 정도가 현준의 지시를 받고 집결해 있었다.

“레이스 길드 집행부가 나서준다면 안심입니다.”

“이걸로 인질 구출은 해결입니다.”

긍정적인 반응이다. 레이스 길드도 이제 플래티넘 티어로 대한민국의 주력에 속하는 길드 중 하나였다. 브론즈 티어 시절에 비하면 눈부신 발전이다.

“집행부를 투입하겠습니다. 양동 작전을 위해 군 병력을 전진 배치하세요.”

“전달하겠습니다.”

군 병력이 길드 사무소 단지 방향으로 전진했고 현준은 규환에게 인질 구출을 명령했다.

“인질을 전부 구출하면 녹색 신호탄을 쏘세요. 그럼 총공격이 시작될 겁니다.”

현준이 규환에게 녹색 신호탄을 건네주며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완벽하게 처리하겠습니다.”

집행부가 움직였다. 그들은 아수라 길드 사무소 단지에 가득한 무인 방어 시스템을 하나도 건들지 않고 은밀하게 침투했다.

“녹색 신호탄입니다.”

하늘 위로 녹색의 불꽃이 솟구쳤다.

“공격하세요.”

현준이 차분한 목소리로 지시하자 군과 특수 경찰 병력이 공격을 시작. 순식간에 무인 방어 시스템을 제압하고 길드 사무소 단지로 진입했다.

“최대한 시간을 벌어!”

각 건물 옥상에서 아수라 길드의 집행부 헌터들이 뛰어내렸다. 갑작스럽게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정예 헌터들의 공격에 전진하던 군 병력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다. 현대전에서 헌터들이 괴물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알 수 있는 광경이었다.

날렵하게 움직이는 헌터들을 정조준하는 건 거의 불가능. 오러 블레이드에 전차가 반 토막 나고 하늘에서 쏟아지는 전격과 불의 비에 군인들이 무력하게 쓰러졌다. 마법계 헌터의 방어 마법은 총탄조차 막아냈다.

“헌터 기동대를 투입하라!”

전황을 지켜보고 있던 특수 경찰국의 간부가 헌터 기동대의 투입을 지시했다. 현준도 인질을 구출하러 간 집행부 병력이 귀환하기 무섭게 전장으로 투입시켰다.

아수라 길드의 기습에 잠시나마 전황이 흔들렸지만 특수 경찰과 레이스 길드 집행부가 나서면서 다시 안정되었다.

“후방에서 다수의 무장 병력이 출현했습니다.”

순조롭게 아수라 길드 사무소 단지를 밀고 있을 때였다. 후방 경계를 맡았던 부대의 장교가 지휘소 막사에 황급히 달려 들어오며 보고했다.

“자세히 보고하도록.”

대위 계급의 장교가 지시하자 소위는 거칠어진 호흡을 정리한 뒤, 입을 열었다.

“검은 깃발을 앞세운 헌터 병력이 출현했습니다. 수가 2백 명이 넘습니다.”

검은 깃발이라. 이건 대놓고 혈맹의 소속이라는 걸 드러내는 것 같은데?

“전진했던 군 병력을 되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휘소 호위 병력은 1개 중대가 전부입니다! 전차도 2대밖에 없습니다!”

“남아 있는 헌터 병력도 없습니다! 지금 지원을 요청해도 늦습니다!”

2백 명이 넘는 혈맹원들의 출현에 지휘소 내부는 난리가 났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다수의 헌터 병력이 후방을 공격해 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뭘 그렇게들 두려워하고 계십니까?”

현준이 차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내가 있는데.”

이 몸이 등장하실 순간이다.

-새벽이 붉게 물들겠군.

지옥참마도의 중얼거림에 피식 웃으며 지휘소를 나섰다. 하늘에 떠 있는 달이 오늘따라 밝았다.

“아아. 죽이는 달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