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
33장 성기사 강림(1)
콰앙!
10대가 넘는 차량이 어디선가 튀어나와서는 소진이 타고 있는 차의 경로를 막았다.
운전기사가 운전대를 돌렸을 때는 이미 늦었다. 굉음과 함께 차량이 충돌하면서 에어백이 터졌다.
뒤따르던 경호 차량 2대가 황급히 정차했다. 문이 열리고 레이스 길드의 집행부 헌터들이 일사불란하게 하차하여 곧 벌어질 전투에 대응했다.
“실장님, 괜찮으십니까?”
규환이 찌그러진 차 문을 열고 소진을 빼냈다.
“괘, 괜찮아요…….”
그녀 또한 A급 헌터였고, 던전 경험도 적지 않았지만 회복계라서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익숙하지 않았다.
소진이 정신을 수습하는 짧은 순간 규환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주변을 훑었다.
“제, 제기랄!”
욕설이 튀어나왔다. 도망치는 사람들 사이로 무장한 채 이곳을 향해 접근하는 헌터들의 모습이 보였다. 마력 반응도 다수였다.
“집행부장님!”
부하의 목소리. 그는 다급하게 외치며 손끝으로 도로 양측의 빌딩을 지목했다. 규환은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또다시 밀려 나오는 욕설을 삼켜야만 했다.
열린 빌딩 창문들에서 총구가 보였다. 적어도 30개 이상의 총구가 여기를 겨누고 있다.
C급 이상의 헌터를 상대할 때 총기가 비효율적이라고는 하지만 화망을 형성하면 회피가 쉽지 않다.
“실드!”
깊게 생각할 여유는 없다. 총기의 존재를 인식한 순간 규환은 방어 마법을 펼쳤다.
그와 동시에 다른 마법계 헌터도 방어 마법의 캐스팅을 끝냈다.
“다수의 공격 마법과 총격이 예상됩니다!”
누군가의 목소리. 분주히 방어 태세를 갖추는 헌터들. 하지만 기회를 주지 않을 생각인지 열린 창문들에서 삐져나온 수십 개의 총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먼저 총탄이 빗발쳤다. 2차로 마법이 쏟아졌다.
방어 마법은 총격까지는 버텼지만 이어지는 마법 세례에 하나둘씩 방어가 무너졌다. 그리고 총기로 무장한 사수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방어 마법이 무너진 곳부터 조준하고 쏴라!”
다시 총격.
“크아악!”
“커헉!”
집행부 헌터 2명이 총상을 입고 쓰러졌다. 소진의 시선이 닿았다. 그녀는 왼손이 그들에게 향했다.
“힐!”
박힌 총탄이 빠져나오고 출혈이 멎었다. 부상도 빠르게 회복되었다.
“홀리 스피어!”
“파이어 캐논!”
부상자들을 구원하기 무섭게 규환과 함께 공격에 합류. 사수들이 배치된 건물을 향해 원거리 공격을 날렸다.
콰앙! 쾅!
건물이 뒤흔들렸지만, 사수 전원을 제거하지 못했다. 애초에 홀리 스피어는 단일 공격 마법이었고, 파이어 캐논도 상위 마법이었다. 화력이 부족했다.
“라이트닝 스톰!”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 규환이 고위 마법을 완성했다. 전격의 폭풍이 건물을 덮쳤다.
“사수들이 제압되었습니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규환은 총격이 멈추자 안도하는 부하를 다그쳤다. 진짜 공격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옵니다!”
집행부 헌터 한 명이 경고했다. 도망치는 사람들을 뚫고, 무장한 헌터들이 천천히 거리를 좁혀오는 게 보였다.
“실장님, 오러 블레이드 사용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소진은 성기사라는 특수 능력을 얻으면서 여러 신성 마법 외에도 ‘오러 블레이드’의 발현이 가능해졌다.
“지속 시간은요?”
“짧아요.”
“모든 마력을 오러 블레이드에 집중하는 게 좋을 겁니다. 지금 적들의 8할이 오러 사용자입니다.”
“네.”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소진을 보며 규환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마력을 일으켰다.
아군의 수는 5명에 불과하지만, 적은 사십이 넘는 숫자였다. 압도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수적 열세였지만 포기할 마음은 없다.
‘여기서 포기하면 길드장님을 뵐 면목이 없지.’
규환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그는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한 여동생을 현준이 구해줬을 때 진심을 다해 충성을 맹세했다.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이 마력의 흐름은…… 대마법?”
“집행부장님!”
규환의 전신에서 흘러나온 마력이 격동했다.
“블리자드.”
차갑게 굳은 입술이 시동어를 내뱉자 마법이 완성되었다. 마법 명, 블리자드. 출력은 대마법 수준으로 조정.
“대, 대마법이다!”
“흩어져라!”
하늘이 열리고, 거대한 얼음 폭풍이 도로를 휩쓸었다.
“S급 헌터가 있었나?”
“저, 정보와는 다르잖아!”
대마법부터는 S급의 영역. 규환은 지금 무리하고 있었다.
“집행부장님…….”
소진의 목소리가 떨렸다. 규환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마력 또한 쉬지 않고 빠져나가고 있다.
마력 탈진의 초기 증상. 소진은 규환을 말렸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거대한 얼음 폭풍은 계속해서 적을 휩쓸었다.
“크아아악!”
하늘에서 거대한 얼음 조각이 쏟아졌다. 폭격에 당한 것처럼 도로가 엉망이 되고 습격에 동원된 헌터들이 끔찍하게 목숨을 잃었다.
얼음 조각들은 이내 박살 나면서 날카로운 조각이 되어 주변을 휩쓸었다.
“바, 방어 마법!”
“얼음 조각 자체에 마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대마법 수준이라서 저희의 방어 마법으로는 소용이 없어요!”
습격자들의 절반이 죽었다. 이제 남은 건 20명 정도. 하지만 규환은 한계.
시야가 흐릿하고 입과 코, 눈에서는 검붉은 피가 쉬지 않고 새어 나오고 있었다.
“기, 길드장님…… 죄송합니다…….”
규환이 쓰러졌다. 블리자드도 멈췄다. 정신없이 도망 다니던 적들이 다시 진형을 갖췄다.
그들은 조금 전과는 달리 빠르게 거리를 좁혀왔다.
“지금이 기회다! 쳐라!”
“목숨을 걸고 비서실장님을 지켜라!”
전투가 시작되었다. 거대한 물결이 레이스 길드 집행부 헌터들을 덮쳤다. 그들은 최선을 다해 싸웠지만 5분을 버티지 못하고 모두 쓰러졌다.
“혼자 남았군. 순순히 따라간다면 아무도 죽지 않을 것이다.”
습격의 지휘를 맡은 팀장급 헌터가 소진에게 한 걸음 다가서며 말했다. 그녀의 힐 덕분에 죽은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규환이 위태롭기는 했지만 숨은 붙어 있었다.
“고민할 생각은 버려라. 성기사의 특수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15명이 넘어, 이길 수 없다.”
팀장이 말했다. 소진은 두 눈을 감았다. 여기서 순순히 저들을 따라가면 현준의 발목을 붙잡게 될 게 분명했다.
“아니요.”
소진은 두 눈을 떴다.
“저는 당신들을 따라가지 않을 겁니다.”
걸림돌이 될 생각은 없다.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오른손에 든 소검에서 오러 블레이드가 솟구쳤다.
“결국, 싸울 생각인가? 가능하면 생포해라.”
“팔이나 다리 정도는 잘라도 됩니까?”
“숨만 붙어 있으면 된다.”
소진을 앞에 두고 소름 끼치는 대화가 오고 갔다. 그리고 헌터들이 살기를 뚝뚝 흘리며 천천히 거리를 좁혀왔다.
강자들 간의 대결일수록 순식간에 끝나는 경우가 많다. 소진은 물론이고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눈동자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릴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고요한 긴장 속에서 대치가 계속되었다.
“윈드 커터!”
“홀리 스피어!”
누군가 공격 마법의 시동어를 내뱉는 것으로 침묵이 깨지고 전투가 시작되었다.
윈드 커터가 먼저 소진을 노렸고, 뒤늦게 그녀 또한 홀리 스피어로 반격했다.
“커헉!”
공격 마법을 날렸던 마법계 헌터가 백색의 마력으로 이루어진 창에 심장이 꿰뚫려 즉사했다.
그의 몸이 바닥에 닿기 전에 이미 헌터들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머리 위에서 무기를 휘두르며 하강하는 모습은 위협적이었다.
4방향에서의 공격. 소진은 소검을 휘둘렀지만 모든 공격을 막지는 못했고, 복부에 깊은 상처를 입고 말았다.
“흐윽!”
피가 새어 나왔다. 소진은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뒤로 물러나려고 했지만, 뒤에도 이미 적 헌터가 자리 잡고 있었다.
“하하!”
“꺄악!”
물러나려다 오히려 당했다. 등에 단검이 꽂혔다. 날카로운 비명이 허공을 꿰뚫었다.
전후좌우에서 빠르게 접근한 헌터들이 휘두른 검과 창이 소진의 팔과 다리를 노렸다.
“비, 빛이여…….”
고통 속에서도 남은 마력을 끌어모아 방출. 백색의 마력이 소진의 몸에서 빠져나와 일순간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강한 물리력을 지닌 마력 방출에 그녀의 팔과 다리를 끊으려고 다가왔던 헌터들이 물러났다.
하지만 그것도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마력 방출이 끝나기 무섭게 헌터들은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며 천천히 그녀에게 접근했다.
‘미안해, 나는 여기까지인가 봐.’
마력은 바닥났고, 팔에는 힘이 없었다. 피를 많이 흘려서 시야도 흐릿했다. 도저히 싸울 수 없는 상황. 소진은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네 곁에 끝까지 있고 싶었어…….’
눈물이 맺혔다.
‘미안해, 현준아. 그래도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게.’
그녀가 쥔 소검의 끝이 스스로의 목으로 향했다. 그 순간이었다.
-절대 황제, 로마노프가 지엄한 황권으로 충신의 운명에 간섭합니다.
-고결한 성기사가 당신의 용기와 의지에 감탄하여 신성 마법을 부여합니다.
-최후의 순간까지 검을 놓지 않은 성기사여, 그대의 앞길에 빛의 축복이 함께하기를.
흐르는 눈물과 함께 들려오는 목소리가 끝나자 그녀의 몸에서 순백의 섬광이 터져 나왔다.
그녀의 몸에 성기사가 강림했다.
* * *
“밟으세요.”
현준의 차가운 목소리에 종서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속도를 최대로 올렸다.
그는 신들린 듯한 운전 솜씨를 보여주며 규환이 소지한 추적기가 말해주는 위치로 향했다.
“얼마나 걸립니까?”
“아무리 빨라도 30분입니다.”
방금 전의 습격과 동일한 규모의 인원이 소진을 공격한다고 가정하면 규환을 포함해 5명 정도 되는 수의 경호팀은 10분도 못 버틸 게 분명했다.
“정보부장.”
“예, 길드장님. 말씀하십시오.”
“저는 방금 공격받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길드 비서실장이 공격받고 있을 확률이 높죠.”
소진을 잃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렇습니다. 길드장님, 현 상황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계십니다.”
“지금 당장 길드 집행부에 무장 대기 명령을 전달하세요. 전쟁 상황입니다. 오늘 레이스 길드는 공격당했고, 이 치욕은 몇 배로 갚아줄 겁니다.”
“지금 즉시 전달하겠습니다.”
종서가 집행부와 직통으로 연결되어 있는 무전기를 집어 들었다.
“길드장 명령. 집행부 총원은 무장 대기.”
무전기에서 알았다는 대답이 들려왔다.
“그리고 중무장 공격 헬기도 띄우세요.”
플래티넘 티어로 승격되면서 군용 무기에 대한 접근 제한이 해제되었다.
길드 재정은 넘치고 있어서 태민은 그 비싼 중무장 공격 헬기를 현준의 허락을 받고 몇 대 구입해 두었는데, 그게 오늘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서울 상공에 중무장 공격 헬기를 띄우려면 허가를…….”
“일단 띄우세요. 뒷일은 제가 책임집니다.”
“지시를 전달하겠습니다.”
종서는 다시 운전에 집중했고, 현준은 스마트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송태식입니다.
“서울 상공에 중무장 공격 헬기 편대를 띄우겠습니다.”
-예? 가, 갑자기요?
“제가 공격받았습니다. 이미 보고받았을 텐데요?”
서울 한복판에서 테러가 터졌다. 특수 경찰의 고위 간부인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저도 3분 전에 보고를 받았습니다.
“지금 저는 화가 많이 난 상태입니다. 혹여, 특수 경찰이나 수방사에서 요격 절차를 밟는다면 대한민국 정부에서 저와의 관계를 끊고 싶다는 걸로 알겠습니다.”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눈과 귀를 막고 하늘을 열어두세요.”
일방적인 통보와 함께 스마트폰을 집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