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만 전생이 날 도와줘-108화 (108/217)

# 108

31장 아수라(4)

군대라고 하기에는 초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A급 이상의 헌터들로 구성된 정예들이었다.

그들은 ‘쉐이드’이다.

끝없는 어둠 속에서 마침내 빛을 찾아준 현준을 따르기로 결심했고, 그가 비밀리에 각인한 질드레의 술식 때문에 충성도는 날이 갈수록 높아졌다.

그런 상황에서 현준은 친위대 제안을 하였으니 반대가 있을 리 없었다.

로마노프의 가호에 의해 친위대가 되면서 이제 그들은 현준의 ‘완전한’ 충신이 되었다.

사고와 개념 등 모든 것이 현준에게 맞춰 개변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소집령에 의해 소환되었을 땐 당연히 그들의 황제인 강현준의 적들을 향해 무기를 뽑아 들었다.

“황제 폐하를 위하여!”

“황제 폐하께서 섬멸을 명하셨다!”

친위대원들이 저마다의 무기를 뽑아 든 채 아수라 길드원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친위대에게 있어서 황제와 같은 전장에서 싸운다는 건 크나큰 영광이다.

물론 쉐이드 헌터들의 기존 상식과는 달랐지만, 로마노프의 가호가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 이 새끼들은 뭐야!”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수적 우위가 사라졌다. 친위대는 단순히 수만 오십을 넘는 게 아니었다.

친위대로 편성된 쉐이드는 전원 육체 개조까지 받은 A급 이상의 강자들이었다.

아수라 길드의 정예들을 상대로도 결코 밀리지 않는 스펙이다.

“수십 명을 이동시킬 정도의 차원 관문이라고?”

강진명은 경악했다. 지금은 닫혔지만, 조금 전 차원 관문이 열렸던 곳에서 쉽게 눈을 떼지 못했다.

SS급 이상의 마법계 헌터조차 차원 관문으로 소수의 인원을 이동시킬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현준은 수십 명을 불러냈다.

“놀랐어?”

현준이었다. 이제 ‘적’이 되었으니 경어를 붙이지 않았다.

“내가 좀 재능이 많아서.”

목소리에서 여유가 묻어 나왔다. 친위대를 소환하면서 전황이 역전되었다.

우위를 점했으니 집단 전에서 쉽게 패배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현준이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아수라 길드의 최대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한진우와 강진명이 전장에 합류하지 못하게 붙잡아 두는 거였다.

“재밌는 거 보여줄까?”

장난스러운 목소리와 함께 현준의 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 광경을 본 강진명은 입을 열고 경악했다.

“와, 완전 은신이라고? 대체, 특수 능력을 몇 개나…….”

“긴장하세요. 부길드장, 저 새끼…… 기척을 완전히 지웠습니다. 저는 부길드장도 ‘완전 은신’ 상태가 되는 걸 추천합니다. 숨어 있다가 절 엄호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진명 또한 어둠 속에 모습을 감췄다.

“도대체 어디냐…….”

혼자 남은 진우는 떨리는 시선을 진정시키며 주변을 훑었지만,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눈동자를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자연스레 전장이 시야에 담겼다.

‘제기랄!’

진우는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갑작스럽게 난입한 놈들 때문인지 아수라 길드가 밀리고 있었다.

‘합세해야 하는데…….’

하지만 그럴 수 없다. 빈틈을 보이는 순간, 기습을 허용할 뿐만 아니라 반격의 기회마저 잃는다.

돕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답답함 속에서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몇 시간은 흐른 것 같았지만 사실은 3분도 안 지났다.

“제, 제기랄…….”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는 순간에 현준은 기습을 가했다. 하사신에게 배운 암살 기술을 사용하여 진우의 측면을 노렸다.

완전 은신 상태였지만 공격 움직임으로 기척이 드러났다. 그 틈에 진명도 은신을 벗어던지며 개입했다.

세 사람이 얽혔다. 현준의 지옥참마도가 진우의 왼쪽 허벅지를 스쳤고, 진명의 단검이 현준의 뺨을 스쳤다.

“부길드장!”

진우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면서 진명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진명이 화려하게 단검을 휘두르며 현준의 시야를 어지럽혔고, 진우는 섬광으로 변했다.

‘합격진인가?’

진명의 견제는 완벽했고, 섬광으로 변한 진우는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왔다. 꼼짝없이 당할 것처럼 보였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현준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공허의 방패를 버리며 두 손으로 지옥참마도의 칼자루를 붙잡았다.

‘심상치 않다!’

본능이 경고했다. 진명은 뒤로 물러나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환영검.”

12개의 검이 12방향에서 12곳의 급소를 노렸다. 아주 빠르게.

“이, 이런…….”

예상치 못한 공격이다. 황급히 두 개의 단검을 들고 방어를 시도했지만 완전치 못했다.

고작 4개의 환영검을 막아냈을 뿐, 남은 칼날들은 진명의 급소 8곳을 날카롭게 베거나 꿰뚫었다.

“커헉!”

즉사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한 7명의 헌터, 한국칠위에 오른 자의 최후치고는 허무했다.

“부길드장이 당했다고……?”

한진우는 공격을 중단했다. 강진명이 당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쫄았냐?”

가벼운 도발. 하지만 한진우처럼 자존심 강한 이들에게는 치명적이다.

현준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진우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도발? 그러면 응해주마.”

그의 몸이 빛으로 변했다. 한줄기의 섬광이 현준을 향해 날아들었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공허의 방패를 재빨리 들어 올리며 방어 자세를 갖췄다.

-카르타고의 정의로운 방패가 당신을 수호합니다. 위대한 수호가 함께하는 한, 당신을 위협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콰앙!

충돌과 함께 빛줄기가 천장으로 솟구쳤다. 속도를 잃은 빛은 인간의 형상으로 변했다.

“이기어검.”

도살자 단검이 한진우의 목을 노렸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그는 도살자 단검을 피하는 대신 왼손으로 잡아챈 다음 현준을 향해 던졌다.

이기어검의 제어를 받고 있기 때문에 중간 지점에서 통제를 받아 멈췄지만, 잠깐이나마 섬뜩했다.

“전력을 다해주마.”

진우의 눈동자가 살기로 번뜩였다. 그리고 질풍과도 같은 공세가 시작되었다.

그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섬광이 번쩍였다. 사방에 마력 파편이 튀었다.

‘약한 놈이 아니다.’

현준은 시든밀러와 카르타고에게서 배운 대로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나며 진우의 검술 패턴을 파악했다.

‘왜 이렇게 잘 버티는 거지?’

속으로 욕설을 내뱉으며 검을 휘두르는 진우였다. 아수라 길드 진영이 밀리고 있는 지금 초조한 사람은 그였다.

그래서 더욱 공격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만 더……!’

또다시 검격이 방패에 막혔다. 무너질 듯하면서도 아슬아슬하게 방어를 유지하고 있는 현준의 모습에 진우는 검을 회수하는 것과 동시에 다시 검을 휘둘렀다.

‘계획대로다.’

현준은 싸늘한 웃음을 흘렸다. 모든 건 그의 계략이었다. 밀리는 척하면서 진우의 강한 공세를 유도했다.

시든밀러로부터 검술을 배운 덕분에 그는 웬만한 검술은 몇 합 만에, 고등 검술이라도 일정 시간 검을 섞으면 완전히 파악할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

10분 이상 현준과 검을 섞은 진우는 이미 밑천까지 탈탈 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초조해지면서 모든 기교와 검술을 쏟아부은 것이었다.

‘준비는 끝났다.’

검술 패턴을 완벽하게 파악했다. 진우의 검술은 시든밀러와 비교하면 조잡한 수준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는 SS급 헌터라고는 현대는 제대로 된 검술이 전승되지 않은 시대였으니까.

‘지금이다.’

때가 되었다. 눈에 훤히 보이는 빈틈을 노리고 지옥참마도를 내찔렀다.

하지만 상대도 SS급 헌터다. 일격에 급소를 허용하지는 않았다. 진우는 몸을 기괴하게 뒤틀어 지옥참마도를 피했다.

미안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야.

“이기어검.”

시동어를 내뱉자 바닥에 꽂혀 있던 도살자 단검이 위로 솟구쳤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공격. 진우는 황급히 옆으로 몸을 던졌지만.

“그거, 유도야.”

현준은 씨익 웃었다. 진우의 뺨을 스치고 지나간 도살자 단검이 방향을 꺾어 다시 목을 노렸다.

“쿨럭!”

칼날이 뒷목을 파고들었다. 진우는 입 밖으로 피를 토해내며 추락했다. 힘없이 쓰러진 그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해치웠나?”

단검이 목에 꽂혔다. 누가 봐도 죽은 걸로 보였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를 뒤로 한 채 전장으로 향하려고 했다.

-주인. 저거 살아 있다.

-하사신의 음험한 웃음소리가 당신에게 위험을 경고합니다. 누군가 당신의 심장을 노리고 있습니다.

경고를 들은 순간 황급히 뒤돌아서며 공허의 방패로 몸을 가렸다. ‘콰앙!’ 하는 굉음과 함께 방패를 든 왼손을 타고 충격이 전해졌다.

방패와 충돌한 한줄기의 섬광이 튕겨 나갔다.

“퉤! 조심성 많은 새끼네.”

한진우는 입안에 남아 있는 피를 뱉으며 불평했다. 지옥참마도의 경고가 하사신의 가호보다 0.1초 정도 빨랐다.

그가 아니었다면 반응이 늦어서 급소는 피하더라도 몸 한쪽에 바람구멍이 뚫렸을 것이다.

“고속 재생인가……?”

“그래, 이건 내가 S급에 오르면서 각성한 특수 능력이다. 남 앞에서 꺼내 드는 건 처음이야.”

2차 각성자는 특수 능력을 하나 가지게 된다. S급 경지에 오르면 또 다른 특수 능력을 각성하게 되니 진우는 2개의 특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셈.

‘두 번째 특수 능력을 생각했어야 했다. 하마터면 치명상을 입을 뻔했어.’

이건 방심의 결과다.

“압도적인 힘으로 박살 낸다.”

스스로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리며 마력을 일으켰다. 폭발하듯 쏟아져 나오는 마력은 던전 내부를 크게 울리게 만들 정도.

-시든밀러의 용맹한 검이 당신과 함께합니다. 정의로운 용기가 무너지지 않는 한, 검은 부러지지 않을 것입니다.

-카르타고의 정의로운 방패가 당신을 수호합니다. 위대한 수호가 함께하는 한, 당신을 위협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단치히의 의지가 깃듭니다. 지켜야 할 사람이 있는 한, 당신은 쓰러지지 않습니다.

-달콤한 피의 냄새가 리퍼를 흥분시킵니다. 깨어난 본능은 잠시나마 당신을 살육에 특화된 학살자로 만듭니다.

-이스텔이 붉은 마법서를 펼칩니다. 일시적으로 화염 마법의 사용이 가능해집니다.

-듀렌달이 당신과 함께합니다. 찬란한 광휘가 정의로운 검에 깃듭니다.

당장 발동 가능한 모든 가호를 사용했다. 지금 그의 모습은 MMORPG에서나 볼 법한 버프를 많이 받은 광전사의 모습.

“이 내가 두려워하고 있다고……?”

진우의 눈동자가 떨렸다. 그는 경험이 풍부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이건, 이길 수 없다. 패배, 그리고 죽음이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 내가…….”

대한민국 최초의 SS급 헌터 한진우. 그는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패하거나 고개를 숙인 적이 없다. 그래서 지금 상황이 더욱 충격이었다.

“그럴 리 없어. 내가 대한민국 최강이라는 말이다!”

높은 천장까지 솟구친 한줄기의 섬광이 현준에게 내리꽂혔다.

“큭!”

공허의 방패를 가격하고 튕겨 나온 진우에게 수십 개의 파이어 볼이 쏟아졌다.

“내, 내가! 밀릴 리가 없다고!”

파이어 볼을 모두 방어해낸 그가 빛으로 변하려는 순간이었다. 어느새 다가온 현준이 휘두른 지옥참마도가 진우를 두 쪽으로 쪼갰다.

대한민국의 최강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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